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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심각한 고민

경험 없는 여자에게 지난 여름 있었던 일

심각한 고민? 머리를 싸매고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해답 얻지 못할 물음을 줏대 없이 반복하는 짓? 무엇이든 단순하게 결론 내려야 속이 시원한 성격 탓에 간단명료하게 고민을 끝내버렸다. 사랑이라는 건 ‘세상의 기원’이라고 멋들어진 말을 만들어 가면서.

사랑에 대해 깊이 천착할 수 없는 가장 근접한 이유는 사랑이란 걸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엇비슷한 건 해보았던 것 같지만 모욕과 모멸감밖에 남지 않았던 그 과거를 다시 들추고 싶지 않다. 물론 아직 과거라고 부를 만큼 먼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자꾸 까보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지지난달 말 금요일에 안양을 다녀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기는 참 오래간만이었다. 미국에서 오신 데이비드 교수님을 ○○신학교에서 초청하여 여름방학 중에 글쓰기를 가르쳐준다기에 주저하다가 등 떠밀려 길에 나선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날은 찌는 듯이 더웠다. 그 주에 간혹 비도 내렸지만 금요일은 여느 때보다 화창한 여름 날씨였다. 정오가 조금 지난 2시 강좌였고, 가장 더운 시간이었다. 땀을 흥건히 흘리며 초조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초조한 마음과 달리 평소보다 학교 앞은 한산했다. 원래도 사람이 다니는 길거리는 아니었다만 그날의 한산함은 좀 유난스럽다고 해야 하나? 손잡이를 돌려 문을 당겨보았는데 잠겨 있었다. 가끔 문을 잠가두기도 했지만 역시 평소보다 건물 안 기운이 고즈넉했다. 얼른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자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강의 시간과 날짜가 진작 변경되었다며 오늘은 수업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은 황망하고 참담하고 어지러웠다. 그리고 수치스럽고 얼떨떨했다. 특히나 수치스러웠다. 부끄러웠다. 날 이렇게 우스운 꼴로 만들다니, 돌아가는 긴 시간 동안 담당 직원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며 이를 북북 갈았다. 그때까지 당장 터질듯 위태롭게 불어나있던 풍선에서 속사포처럼 빠르게 바람이 빠져나왔다. 안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키워가던 설렘과 떨림이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강좌에서 만난 한 학생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이 무한으로 증대되고 심지어는 벌써 사랑 근처에까지 가서 어슬렁대고 있었다. 고작 10여분 눈을 맞추고 대화를 했던 그 짧은 기회 덕분이었다.

사랑은 그처럼 내게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사랑은 그냥 어느 순간 빠져들어 하고 만다. 이왕이면 더 어리석고 더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돌진했어야 했다. 평생 그렇게 사랑다운 사랑을 갖추고 해본 적이 없다. 불안과 걱정이 사랑보다 더 무겁고 더 짙은 색이라서 사랑이 앞장서서 나를 이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거기에 끌려 다니면 무서운 일,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마음이 더 강하다.

내가 하는 사랑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이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서, 사랑조차 유리한 계산이 나와야만 시도하는 그런 인간이라면 어떻게 하지? 실패가 두렵기만 하다. 지는 게임을 시작하는 건 시간낭비이고, 수치심만 조장할 뿐이다. 수치심은 어두운 화장실에 숨어있는 귀신보다도 훨씬 현실감 있는 놈이다. 이런 내가 할 수 있을까? 자존심을 다 버려야 하고, 늘 져야 하고,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모욕도 당해내야 하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이미 버거워서 감당하기도 전에 질겁을 하고 냅다 도망가지나 않을까?

그래서 한 번은 해보고 싶다. 그게 날 밑바닥으로 처박아버릴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철저히 그 고통을 당해보고 싶다. 뼛조각 하나하나 바스러지는 고통에 있는 그대로 몸을 깊숙이 담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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