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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이에 대해서 上

특별한 사람

나는 기영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가끔 꿈에 기영이가 나타나면 나는 자신 없는 태도로 기영이를 다그쳤다. 기영이는 웃음으로 방어하고 무마시켰다. 기영이와 함께 한 시간보다 소식도 연락도 끊긴 시간이 훨씬 길어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한 번도 다시 만난 적도,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었다. 우리가 친해져서 함께 다니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으로 만나 2학기나 되었을 즈음이었다. 기영이와 친해지지 못했던 1학기를 낭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처음에 그 애를 오해한 것은 기영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의 한계를 알게 하기도 한다.

나는 기영이가 이상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막상 말을 걸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여자아이 말이다. 마치 어른이 아이의 동심을 흉내 낼 때 하는 말들을 기영이는 곧잘 했다. 기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 아이들을 죽 둘러보며 “나는 너희들이 다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단 걸 알아.”로 자기소개를 시작했을 때 난 단박에 ‘쟤 좀 이거 아냐?’하고 머리가 빙 돈 사람을 떠올렸다. 언제나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을 해버리는 나였다. 친구들은 기영이의 말에 깔깔대고 웃었다. 난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따라 웃었다. ‘그런 식으로 관심을 받으려고 하다니, 스스로 왕따의 길에 들어서는 구나.’ 그때부터 나는 기영이에게 달리 말을 걸지 않을 생각을 했다. 이상한 아이고, 보통 저런 이상한 아이들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니까 별로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기영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유달리 못되게 구는 것만도 아니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함께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내 성격이 워낙 모나고 삐딱해서였는지 예전부터 친구와의 관계가 원만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만족스런 학교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부터 친하다고 여기던 친구였는데, 막상 같은 반이 되어 함께 지내다 보니 부딪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도 나는 감정이 상해서 마냥 웃으며 전 같이 친구를 대할 수 없었다. 친구도 나를 점점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랬지만 같은 한 공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린 쥐가 다 갉아먹은 동아줄을 건성으로 손에 쥐고 각자에게 집중했다. 친구는 말이 많지는 않지만 무슨 말이든 우습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나보다 친구가 많았다. 반에서도 친구들은 나보다 녀석을 더 좋아했다. 나는 질투와 시기로 인해 매일 속상했다. 친구가 말을 재밌게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다만 그 때문에 친구에게만 사람이 달라붙는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했다. 또 결국은 외로워졌다. 사실 나도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사춘기가 더디게 온 것뿐이었다. 아니면 사춘기가 아니라 어른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뭔지 모르지만 나는 이전과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뭐가 달라졌는지, 무엇이 날 변하게 만들었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외모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그보다 여성성이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여성인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나를 여자로 보는 것이나 여자 친구들이 내게 성적인 면을 발견할 때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성스런 옷을 입고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이 거북한 십대 여자아이가 또 있을까? 모순적이게도 신체적인 콤플렉스로 가슴이 작고 종아리가 굵은 것을 여자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 때도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편으로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것이 싫으면서도 또 여성성이 부정당할 때마저 기분이 상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성에 관련한 대화를 하는 것도 겉으론 담담하고 아닌 척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항상 그래왔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음과 다른 행동과 말로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했다. 누군가 스파게티는 어느 집이 맛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잘 모르면서도 어디서 들은 풍월로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거기에 말을 덧붙여 “근데 피자는 별로.”라는 식이었다. 나는 실제로 경험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19살이 되는 동안 나는 별로 해본 것이 없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본 적도 손에 꼽았고, 외식을 해본 적도 손에 꼽았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흔히 하는 일상적인 일들도 내게는 이례적인 것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겁이 많았기 때문에 남자애를 남몰래 좋아하는 일도 자주 있지 않았다. 혹여 누구를 좋아하게 되어도 친구와 공유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걔를 정말 좋아한 건가? 아님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애를 좋아하는 흉내를 내본 것뿐인가?’하며 헷갈리기도 했다. 나는 소문이 두려웠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사실 바보 같은 짓을 참 많이도 했다. 나보다 더한 바보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면서도 막상 실행하지 않고, 아주 나쁜 생각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기억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면 내게 끔찍한 정신적인 질병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가끔은 정신과 병원에서 심리 상담치료 같은 것을 받아보고 싶다. 나는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정말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나와 같아지길 바라는 동경을 품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자신감도 없고 혼자 있는 때가 많았고 말도 별로 없었다. 가끔 내뱉는 말도 친구들을 웃겨주기는커녕 곤란하게 만들었다. 또 따분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것을, 특히 부정적인 그런 일들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자세히 느끼고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와 항상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아주 심하게 매일을 자책하고 못난 인간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그 재밌는 말로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친구에 대한 열등감이 깊어진 때문이리라.

심지어 나는 공부도 못했다. 전교 등수로 뒤에 겨우 열 명이 될까 말까하는 정도였다. 그건 1학년 때부터 계속 그래왔다. 1학년 때 한 번은 반에서 완전히 꼴찌를 한 적도 있었다. 1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들은 내게 학업에 대한 기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가난한데다가 꼴통이었고, 호감가질 외모가 아니었고, 성격도 삐뚤었다. 열등감은 깊이 파인 상처보다도 아프게 나를 지배했다.

기영이와 처음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너 랑토스레 돈가스 먹어봤니?”라고 했던가. 나는 먹어본 적 없었다. 언니에게 듣기로 그 집이 싸면서 맛있다고 했었다. “아, 거기! 맛도 좋고 가격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대답해줬다. ‘괜찮대’도 아니고 마치 먹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간직한 채 기영이와 대화를 계속 했다. 아니, 기영이가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기영이가 내가 정말 가본 것인지 한 번 더 물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는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리고선 기영이는 ‘장자’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왜 그 이야기가 갑자기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영이 앞에서 ‘무슨 소리하는 거야?’라고 대놓고 이상한 소리 말란 표정을 지었다가 옆에 앉아있던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얘 왜 이래?’하고 신호를 주고받았다. 실제로 친구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기영이의 말에 한바탕 웃어넘기더니 나를 남겨두고 그냥 제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거기 서서 기영이의 ‘장자론’을 계속 들어주어야 했다. 결국 나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기영이의 말에 무례하게 끼어들어 대화를 중단시켰다. 기영이가 무안한 웃음을 흘리며 홀로 그 자리에 남겨졌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게 대놓고 무례하게 굴며 자기를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는 내게 기영이는 여전히 친절했다. 한 달에 한 번씩이었나, 자리를 바꾸곤 했는데 나는 거의 복도 측 자리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앞뒤로 나란히 앉았고 기영이는 창가 쪽 한 구석에, 반에서 주로 시끄럽게 굴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 사이에 앉았는데 처음에는 기영이가 그 중에 섞여있는 줄도 몰랐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담당 과목 선생님이 볼일이 생겨 우리에게 자습을 시키고 자리를 비웠었다. 대입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전보다 잘 통제하고 있었다. 핑계하자면 그날 유독 날씨가 우릴 훼방 놓았던 것 같다. 누렇게 낀 구름과 심하게 치는 바람에 이끌려 창을 몹시 때리는 빗방울. 분위기는 그야말로 어수선 그 자체였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옆자리에 앉은 친구, 대각선에 앉은 친구,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수다를 떨었고 종종 웃기는 말을 하는 그 친구 덕분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엄마야!”하는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옆 반에서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듣고 달려왔다. 기영이가 울고 있었고, 주변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기영이 바로 앞에 앉은 친구는 기영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었는데, 그 애도 함께 웃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 반 무슨 수업이냐, 선생님은 어디 가셨느냐, 무슨 일로 우는 거냐고 하나씩 물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와 나머지 아이들도 기영이와 그 주변에 시선을 고정했다.

“별 일 아니에요. 천둥이 쳐서 그래요. 얘가 겁이 좀 많거든요.”

선생님은 조용히 자습하던 거 하라며 다시 자기 반으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가시자 대답을 한 아이와 친구들은 더 크게 웃었다. 눈물을 찔끔거리기까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영이 주변에서 녀석들은 괴담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다들 기영이가 겁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좀 놀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엄청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들어도 코웃음을 칠 만한 웃긴 이야기였다. 나는 기영이를 보며 ‘쟤도 나처럼 연기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친구들과 수다를 떨려고 했지만 창가 쪽 아이들이 자꾸 큰 소리를 내고 기영이를 괴롭혀 울리는 등 거슬리게 굴었다. 내가 갑자기 정의감에 불타올라 이러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괴롭히는 것 같겠지만 그 아이들은 기영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그만해달라고 싹싹 비는 모습이 귀여워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기영이와 아주 친해지려고 저들 방식으로 정답게 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거슬리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었다. ‘연기파 배우 납셨네!’

내가 왜 이리도 꼬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내가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고 부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아무도 기영이를 이상한 아이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대화 주제가 남다르다 보니 친해지기 어려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기영이가 착하고 순수한 아이라는 생각을 남들은 다 하고 있었나 보다. 나만 너무 멀리 나갔던 것 같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좋은 면보다 나쁜 면을 보고 그로써 나를 높이고자 하는 교만은 오히려 나를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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