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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이에 대해서 下

특별해지고 싶은 사람

시끄러운 무리의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자신감 넘치고 목소리가 큰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특별히 ‘장’이라고 부르겠다. 언제부턴지 장은 기영이와 단 둘이 지내는 때가 많아졌다. 기영이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아마 이때부터 나도 기영이를 보는 시선이 조금 바뀐 것 같다. 그리고 기영이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기 시작했고. 잘은 모르지만 둘이서 석식시간에 함께 밥도 먹고 남은 시간 속 깊은 얘기도 많이 나누는 모양이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건지 나는 그때도 여전히 파악을 못 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둘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자체로 꽤나 신선했다. 장이 기영이와 어울리자 다른 아이들도 기영이를 스스럼없이 대하고 대화에 끼어주었다. 그 모습도 참 이색적이었다.

기영이가 반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을 무렵, 나는 그 반대로 아웃사이더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으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친구들과 웃고 지내는 일들이 지겹고 지쳐갔다. 될 대로 되라지. 혼자 있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딱히 잘 하는 과목은 없지만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계속해서 오르는 과목도 생겨났다. 앉아서 공부하는 척 딴 생각을 하기도 하고, 딴 생각을 하다가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 전에 없던 흥미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에 생겨나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을 재미있게 알아갔다. 때로 나처럼 이 과목을 선택한 친구가 내게 문제를 물어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아웃사이더로서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만족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바꾸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자리는 자기가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선택하되 수학을 포기한 학생은 수학시간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야 하니까 아예 구석자리를 고정 석으로 만들었었다. 나처럼 기영이도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영이가 내 뒷자리를 선택했고 한동안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기영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기영이가 내 말을 꽤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나는 원래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 그런데 기영이가 내 이야기에 반응해주었고, 솔직하게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또 누구나 그렇겠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기영이는 내게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난 별로 칭찬을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말했다시피 가난했고, 공부를 못했고, 호감 가는 외모가 아니었고, 여성스럽지 못하고, 노골적으로 솔직했고, 솔직할 때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기영이는 나에게 처음 예쁘다고 말해주어서 내 마음을 가져간 중학교 시절 남자애 다음으로 내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종종 예쁘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그랬는데, 내 삐뚤어진 마음이 그런 칭찬을 곧이 듣지 못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남자애나 기영이처럼 그 칭찬이 정말 진심에서 나온 말인 것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 화살처럼 날아온 말에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1학년 때 처음 4반 교실에 있던 너를 보고 ‘세상에 저렇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하고 생각했어. 작고 하얀 얼굴에 새카만 머리.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 그때 머리 분명 길었었지? 생머리로? 이지적인 느낌이 들어. 너 정말 예뻐.”

나는 기영이는 좋은 애라고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1학년 때 내 상황은 3학년 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친구라곤 단 한 명. 그 외에 친구들은 친했다, 멀어졌다 하기 일쑤였고 성적은 바닥, 담임선생님은 눈곱만치도 존경스럽지 않았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존감도 바닥, 열등감은 하늘 꼭대기. 그런 나를 보며 동경어린 눈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있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니 그때의 내 결점 투성이 모습과 결점 밖에 보지 못했던 나의 심리 상태, 그리고 언제나 마음 따뜻했던 친구 기영이가 생각나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난 기영이가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웃었다. 속으로는 잘해준 것도 없는 나에게 왜 항상 친절한지, 정말 내 모습이 그렇게 예뻤는지, 너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증이 흘러넘쳤지만 언제나 그렇듯 속과 겉이 다른 나는 웃고 말았다. 그리고 모르기도 몰랐지만 칭찬인지도 모르겠다는 척 “이지적인 게 뭐야?”라고 까지 묻고 말았다. 언젠가 회사에서 알게 된 언니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해주었는데, 나는 그런 단어를 쓰지도 않았건만 언니는 “그런 말은 처음 듣네. 이지적이란 말. 고마워.”라고 했었다. 난 또 속으로 ‘언니, 이지적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이지적이란 뜻도 아니었고.’라고 생각했지만 전보단 솔직하게 “이지적?”이라고 반문하듯 어물쩍 넘기고 말았다.

장에게 바통 터치 받듯이 기영이를 넘겨받았다. 그러다가 기영이와 장, 나 이렇게 셋이 친해졌고, 다시 나와 장이 끈끈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내가 기영이를 따라한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기영이가 내 본모습을 찾게 도와주었고, 반에서 가장 솔직하게 마음을 표출하는 장이 그런 내게 친구로서 이끌린 건지도 모르겠다. 기영이처럼 나도 장에 의해 다시 반 아이들에게 흡수되었다. 장과 어울리는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더 이상 이상해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나? 아니, 결국은 기영이와 나 전부 독특한 사람이었고, 장에 의해 독특한 특성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정말은 기영이 덕분일 것이다. 기영이가 독특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었던 때문인 것 같다. 기영이의 진짜 특별한 점은 바로 다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었다. 타인이 그 사람을 특별하게 여겨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 생각이 정말 맞는다면 기영이는 특별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사람이다.

기영이와 친해지고부터 나는 글을 쓰는 일을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 앞으로 장래에 글 쓰는 사람이 돼보는 건 어떨까 고민했다. 그리고 다들 기정사실인 것처럼 나를 미래의 작가 취급해주었다. 그래서 싸이월드라는 사이트를 통해 미니홈페이지에 내 글을 자주 게시했다. 많지 않은 주위 친구들이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내 글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댓글을 달아주는 친구는 기영이나 장이 전부였다. 처음 순수한 의도로 글을 올리던 나는 다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글을 적어보기도 했다. 아무도 내 글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적어주지 않아 실망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주로 기영이의 글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 영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영이의 글을 읽다보면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기영이와 나, 서로 말고는 서로를 특별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나는 다시 수렁에 빠지고 만 것이다. 기영이는 언제나 특별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 특별하게 여겨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벌써 6년이나 흘렀다. 지루했지만 자기만족은 상상 못할 정도로 크게 불어났다. 어느덧 20살이 되어 대학교의 문턱을 밟았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만 나는 왜 운이 좋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남들이라면 공부를 꽤 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에 붙고서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이리도 시시한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남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기영이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남자들을 통해 내가 외모로 빠지지 않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빼어나진 않지만 누구나 나를 보며 괜찮은 외모라고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 빼어나지도 않고 보통에서 아주 조금 위인 정도의 외모가 내가 가진 전부인 것을 여전히 모르고서 말이다. 여전히 공부도 중하, 경제력도 하위, 재능도 없는 나였다. 그런데다가 나의 자존감을 도와주던 기영이도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나는 먹고 자고 욕하고 위안하고 약간은 우울하게 약간은 도취되어 시계 침에 목덜미 옷자락이 걸린 채 하루를 보태고 또 그 하루가 지나면 다시 하루를 보태는 나날을 보냈다. 말하자면 도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글을 쓰겠다고 막연한 말을 하고 막연한 생각을 머리로 되뇌었다. 다들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뭘 보고 내가 가만히 이러고 있도록 인정해주는 걸까?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을 다 모르는 걸까? 아니면 다 알고서 내가 깨닫도록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내게 정말 뭔가가 있는 걸까? 나는 저번에도 어딘가에 글을 남겼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자주 울고 싶은 심정에 빠진다. 우울함에 빠지는 것도 실은 지겨워서 요새는 반대로 뭘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기도를 하려고 열 손가락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가 도로 빼버리고 성경을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고 만다. 지금은 ‘꿈’이라는 소재로 글을 써보려고 진행 중인데,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시작조차 하지 않고서 벌써 슬럼프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붙잡고 있는 한 가지. 권 교수님이 말해준 나의 그 발가락의 때 만큼인지 얼마 만큼인지 확인도 안 되는 ‘소질’ 그거 하나.

배가 고프다. 기선이가 된 기영이가 그립다. 밉다. 보고 싶다. 밉다. 이유를 알고 싶다가도 연락이 끊기면 그만이지. 나도 여럿에게 그 짓 했지. 하지만 그건 나고. 기영이는 기영이잖아. 기영이라면 그럴 애가 아닌데, 도대체 왜? 대체 왜?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글을 못 쓰고 있다. 그런데도 공부하지는 않는다. 사실 뭐부터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시계 침에 목덜미가 걸린 채로 하루를 째깍, 넘기고 만다. 아, 이 부질없는 인생. 이 못난이. 그러고 보니 글의 제목은 기영이에 대해서였구나. 깜박 잊었네. 그래, 이게 다 기영이 때문이야.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기영이를 탓할래. 심심하니깐.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영이를 한 번도 못 보았다. 그러니 더 이상 기영이에 대해서는 쓸 것이 없다. 왠지 기영이에게 미안해진다. 왤까? 난 또 뭘 잘못한 걸까? 언제나 잘못한 건 내 쪽이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기영이를 잃고 나서부터 주욱 기다려왔다. 특별한 사람을. 가만 생각해보면 나를 특별하게 해주는 사람을 기다려온 것이다. 그리고 자기기만 하듯이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고, 전부 다 매양 똑같고 진부한 사람뿐이라고 다른 사람을 판단했다. 내게 인연으로 다가온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내게 다가온 것이 잘못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기영이와 같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특별한 자존감을 갖고서 남도 특별하게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이 내 안에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기에…

기영이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고 하나로 족하다. 내가 기영이가 될 필요도, 내가 기영이 아닌 사람이 기영이 같기를 바람으로 그 사람을 괴롭힐 필요도 없다. 그 애가 만약 하나라도 더 있다면 기영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이다. 기영이도 무수한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영이가 그립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 여러 가지 안 좋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마지막 연락을 할 때쯤 기영이는 부모님과 여행을 갈 거라고 했던 것도 같고 갔다 온 직후라고 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던가?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정말 여행을 다닌 걸 수도 있다. 알기로는 기영이의 집이 그래도 중산층은 되는 것 같았다. 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기영이가 대학 생활에 적응을 못했던가 아니면 마음에 확신이 없었던가 했었다. 결코 내게 불평을 말한 적이 없었던 기영이이기에 그 당시 무슨 마음이었는지 난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추측하기만 했다. 기영이의 특별한 점은 그 애의 진심은 항상 비밀이라는 것도 가담했다. 그랬기에 나도 기영이에게는 기분 나쁜 일을 겪은 것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할 수 없었다. 그런 점은 거의 공유하지 못했는데,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영이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내 이런 마음을 기영이가 느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은 추측일 뿐, 기영이의 여행은 정말 여행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건강하게 살면서 때때로 나처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또 나를 추억해주기만 바랄뿐이다. 아마도 기영이라면 정말 그럴 것이다.

기영이에게 정말 고마운 점이 많이 있다. 여기 쓴 모든 것이 다 기영이에게 고마웠던 것을 적은 것이니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한때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자주 만나고 19살의 그날들처럼 문학과 영화와 음악과 그림에 대해서 시시콜콜 밤새 얘기하자 약속했었는데, 아직 난 26이고 기영인 생일이 빨라서 25이니까 가능성이 ‘0’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그저 그때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안녕, 기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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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이에 대해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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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는 대화의 종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