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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기

조만간 일을 관두겠다고 말한 게 바로 어제였다. 이튿날 아침에 마주친 청소 아주머니가 내게 대뜸 말을 거신다. “그래도 아가씨는 오래 있네요.” 9개월을 다닌 나에게 오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얼마 안 있어 그만두기는 하겠지만 9개월이 분명히 길게 다니긴 한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온 동네 소문 퍼뜨리길 좋아하는 아줌마, 입담도 좋고 여기저기 말을 많이 하기 좋아한다는 얘길 들어서 딴 소리는 안 하고 그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하고 대꾸해주었다. 아줌마가 무슨 대답이 그래 먹었는지 아리송한 얼굴로 날 보고 있다가 “적성에 맞으면 오래 있는 게 맞지, 뭘.”라고 대답하는 걸 보아선 내 생각대로 애매하게 알아듣기는 했나 보다.

9개월이 이들에겐 긴 시간이었구나. 나에게만 긴 시간인 줄 알았다. 이 정도는 그래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자금을 다 갚고 나니까 동기부여가 거의 다 사라지기도 했다. 이제 나에게는 완벽히 나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든 계획을 해야 하고 계획을 실행해가야 한다. 학창시절이나 대학생 때, 또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처럼 자잘한 이정표는 앞으로 없다. 오히려 내가 이정표를 그리고 만들어서 뒤따라 올 사람들에게 앞길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미리 귀띔해주는 역할이 되었다.

20대는 1년이 차곡차곡 쌓였다. 10대 때 1년이 쌓이는 무게와는 체감마저 달랐다. 한 해가 지나면 꼭 그만큼 나의 시대가 뒤로 물러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허무함,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쉽게 달래지지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금방 또 눈에 눈물이 가득 찬다.

사람의 가장 좋은 시대는 너무나 빨리 절명한다. 깨달음은 아무리 빨라도 항상 늦다. 한 번도 젊음의 아까움을 잊은 적이 없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생은 여러모로 깨달음 속에 비통을 주었다.

이리도 나의 감정은 천박하고 냉소적이다. 마치 모든 인생을 다 경험하기라도 한 것처럼 끝에 가서는 절망과 후회, 탄식만을 남긴다. 원인은 태생인가? 깊이 생각하면 그 말도 맞다. 태생은 누구나 비참하다. 귀천이나 부빈이나 무엇을 타고나도 삶의 시작은 비참함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어를 잊은 삶을 이어가며 탄식만이 낙인 냥 살아가고 있으니 과정도 별 볼 일없이 이대로 지나갈까 두렵다.

애초에 두려움이 문제였다.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이정표 없는 삶,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삶, 사회에서 도려내진 삶, 모든 원초적, 말초적 두려움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뼈마디가 바짝 오그라든 겁먹은 짐승이 내 눈에 비친다.

이유를 알아서 또 문제가 된다. 이런 삶의 이유를...

이런 생각도 다 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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