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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링크를 풀기 위한 우류신화 연구서(3.2)

다시 써야 할 미완성 장편소설

 

 

 

 

 

3.2

 

우류의 출현

 

 

 

 

 

“찾았어!”

 

미란이가 등을 떠다미는 바람에 재희가 우리의 가방을 떠맡았다. 현아와 미란이가 덤불더미로 굴려버렸던 것을 간신히 찾아와 재희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그들은 대강 흙이 묻은 것을 털어내고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재희의 외침에 여기저기 방을 뒤지던 녀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디서 찾았어?”

 

건민이 뛰어오며 물었다. 재희가 미리 준비한 대로 “청소도구 있던 데, 청소기 뒤에 숨겨져 있더라. 이게 왜 거기에…….” 슬기가 갸웃거렸다. “제가 거기 물건 다 꺼내서 뒤져보고 그래도 없었는데…….” 건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어. 그걸 어떻게 찾았냐? 근데 우리는 어디 갔어?” 승수가 기지개를 켜며 나와서는 “아! 날 샐 뻔했네. 어디 갔어, 진짜? 방에 없어?” 라고 물었다. 건민이 재희에게 가방을 건네받아 2층 우리의 방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환하게 불 켜진 방안은 텅 비어있었다.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고 휴대폰을 열었다. 1층으로 내려가면서 우리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어디까지 찾으러 간 거지? 전화 해봐야겠다.” 여학생들은 소파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승수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고 재희도 따라갔다. 현아도 은근슬쩍 일어나 방으로 올라갔다. 조금 시간차를 두었다가 미란이와 주희도 씻어야겠다며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고 건민과 슬기만 1층에 남았다. 방에 있던 현아가 2층 난간으로 나와서 건민을 불렀다. “오빠, 언니 핸드폰 여기 있는데요!” 현아의 손에 들려 있는 우리의 휴대폰은 소리 없이 진동만 울렸다.

 

“어떻게 된 거야? 밖에 나가볼까?”

 

건민이 슬기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 우리를 불렀다. 서로 양 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집 앞으로 돌아왔다. 슬기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건민이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우리가 안 보여!”

 

그제야 주희가 꾸물대며 나와서 “아까 지나온 길 살핀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하고 작게 말했다. 건민이 “진짜야?” 하고 되묻자 주희가 “잘 모르겠어. 그랬던 것 같아.” 하고 우물거렸다. 건민은 전에 없이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서둘러 신발을 끼워 신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다 다시 문을 열더니 “찾으러 안 가?” 하고 물었다. 슬기가 아차 싶어 얼른 따라나섰지만 다른 사람들은 선뜻 나서질 않았다. 미란이가 양심에 찔려 “저도 갈게요.” 하고 따라 갔다. 세 사람이 우리를 찾으러 나가고 주희는 화가 나서 샤워를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주희는 우리가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질투로 타들어 갔다.

피곤에 지쳐 침대에 누워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만 있던 승수가 자기 방도 아닌데 계속 승수의 방을 떠나질 않는 재희에게 말을 걸었다.

 

“안 자?”

“아니, 자야지. 애들 오면…….”

“별 일 아니겠지.”

“별 일 아니야.”

“그래?”

 

승수가 몸을 옆으로 돌려 팔을 구푸리고 그 위에 머리를 얹으며 재희를 쳐다보았다.

 

“신재희.”

 

재희가 승수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건데? 말해봐.”

 

승수가 씩 웃으며 재희에게 물었다. 재희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뭐가 어떻게 돼? 나야 모르지. 애들이 청소기 뒤까지는 잘 못 봤나보지.”

 

승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승수의 아버지는 승수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존중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승수의 아버지가 승수를 믿고 지인에게 말을 잘 해서 빌리게 된 값비싼 개인 별장이었다. 승수는 아버지의 기대에 항상 부응할 수 있어야 했다. 재희를 보는 승수의 눈빛에 날이 섰다. 그는 그저 재희가 현아에게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

 

재희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승수가 그를 따라 침대에서 일어나자 재희가 의아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어디가려고?”

“너랑 같이 우리 찾으러 가려고. 앞장서.”

 

재희는 발뺌을 하려면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승수의 기에 눌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는 주희에게 물어보려고 2층에 올라갔다. 승수는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주희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화장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주희가 샤워 중인 것 같아 현아의 문을 노크했다. 방심하고 문을 열어준 현아는 화들짝 놀랐다. 재희는 놀라거나 말거나 그녀를 밀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는 소리를 지르려는 현아의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하라고 몸짓을 취했다.

 

“야! 조용히 해봐. 우리, 걔 어디로 갔어? 그것만 말해.”

 

현아가 진정한 후, 잘 모르겠다고 도리질했다.

 

“빨리 말해. 승수가 알아차린 것 같단 말야.”

“나도 잘 몰라. 아까 볼 땐 주희언니가 저쪽 가리킨 것 같았어.”

 

재희는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떠는 현아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커튼에 막힌 창가를 보고 재희가 다그쳤다.

 

“저쪽이 어딘데?”

“저쪽! 거기 왜 숲 있는데…….”

“숲?”

“어. 승수오빠가 저기서 놀자고 했었잖아. 아, 오빤 그때 없었지. 그랬었어. 그때 한솔언니가 저기서 보물찾기하면 좋겠다고 그랬고. 진짜 승수오빠가 우리가 한 짓 다 알아? 어떻게 알아? 오빠가 말한 거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걔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몰라. 너는 내가 보호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지금부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알았어?”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란 눈망울에 재희의 미더운 모습이 비쳤다. 재희가 현아를 방에 남겨두고 승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승수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재희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건민이와 슬기가 아무래도 도움이 안 되어 돌려보낸 미란이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숲 쪽으로 향하는 승수와 재희를 발견했다. ‘저쪽은! 신재희, 우릴 배신한 거야?’ 미란이는 괘씸한 마음에 그들의 뒤를 쫓았다.

 

“어? 미란이…….”

 

발걸음 소리에 재희가 돌아보고 미란이가 따라오는 것을 알아챘다.

 

“왜 그쪽으로 가세요? 거기로 갔을 리가 없잖아요.”

“걱정 마. 확인만 하고 돌아올 거니까.”

 

미란이로선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희의 표정으로 보아 억지로 끌려나온 것 같았다. 그녀도 가겠다며 승수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두 사람을 따라갔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아침에 불렀던 콧노래를 부르며 숲으로 들어섰다. 초목이 우거져 달빛도 간신히 새어 들어왔으며 풀벌레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요란하게 부산을 떨었다. 고개를 들어 자기를 빤히 내려다보는 천장에 매달린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우리는 콧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박차고 달려가는 우리의 등에 대고 주희는 놀리듯이 “꽤 오래 찾아야 할 걸! 꽁꽁 숨겨뒀거든!” 하고 말했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조심히, 그리고 더 깊이 숲의 중심부를 향해갔다. 자기 발에 나뭇가지가 밟혀 우둑 부러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며 우리는 달이 구름에 가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어디엔가 그녀와 매우 닮은 고독한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길 우리는 고대하고 있었다. 가방만 찾으면 그녀는 이대로 영영 떠나버릴 심산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사람들의 농간에 휘둘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척박했다. 우리는 무사히 오늘을 보낼 수나 있을지 몰랐다. 이미 ‘무사함’에는 거리가 멀어져버렸다. 바람이 또 한 번 크게 불어 나뭇가지가 휘둘려 일렁이며 뭐라도 우수수 쏟을 듯이 위협의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에 우리는 크게 뜬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하늘을 보며 한 발을 옮겼다. 갑자기 근처에서 새가 퍼뜩 날아올랐다. 푸드득 날갯짓하는 큰소리에 놀라 우리는 발을 헛디디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두워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처지에서 그대로 내리막길로 치닫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어딘가에 처박히고 말았다. 정신이 아찔하고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르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어디에 떨어진 건지 알아보려 했지만 상황은 어느 때보다 절망의 한가운데로 치달았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패닉에 빠져 가쁘게 숨을 쉬던 우리는 그래도 아직 살아있음에, 더 이상 위험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차차 평정을 되찾아갔다. 그러자 땅을 구르다가 부딪친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파왔다. 엉덩이도 축축하게 젖은 것이 느껴졌다. 혹시 피인가 싶어 손에 묻혀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흙냄새만 풍기고 있었다. 흙이 젖어있었다. 축축한 게 기분이 나빠 우리는 다리를 쪼그리고 앉았다. 이번에는 신중을 기하려고 천장에 뭐가 없는지 손으로 더듬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에 떨어진 건지, 한줌의 빛도 없어 우리는 막막했다. 조심히 보폭을 좁혀 한 발을 내딛었다. 젖은 땅이 물렁했다. 다시 한 발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장님처럼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내밀어 휘저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풀벌레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오로지 질척한 땅을 밟는 우리의 발자국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다 조금씩 우리의 발자국소리가 메아리처럼 작게 울려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동굴 속인 것처럼 그렇게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의 휘파람소리가 멀지 않은 데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걸었을 때 우리는 작은 푸른빛이 저쪽에서 보였다가 금방 사라져버리는 환각을 보았다. ‘잘못 봤나?’ 땅을 구른 이후로 우리는 별로 겁이 나지 않았다. 살아야한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빛이 보였던 곳으로 무작정 그녀는 발을 옮겼다. ‘엇! 분명히!’ 푸르스름한 빛이 또 한 번 나타났다가 날쌔게 모습을 감췄다. 야생 짐승의 눈동자? 벌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앞을 더듬는 손이 어딘가에 닿았다. 거칠거칠한 표면이 돌로 된 벽인 것 같았다. 물에 젖었는지 촉촉했다. 벽을 짚어 한 걸음씩 조심히 움직인다. 그녀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점점이 푸른빛을 발산하며 날아다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길을 찾은 것 같다. 날아다니는 푸른빛은 우리의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붕!’ 날아올라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처음에는 자기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은, 마치 반딧불이 같은 그것들은 우리가 길을 못 찾고 다른 길로 들어설 것 같으면 다시 나타나 빛을 비췄다. 발광하는 이상한 날벌레들은 우리와 놀자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벽에 손을 떼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가 쫓아오게 만들던 반딧불이 중에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의 머리 위를 날며 작은 방울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손바닥을 펴자 반딧불이는 기꺼이 그녀의 손에 올라가 앉았다. 비로소 자기의 손이 불에 비쳐 보였다. 우리는 손에 반딧불을 올려놓고 앞에서 따라오라는 듯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쫓아갔다. 그리고 구불구불 빛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마침내 우리의 손에 앉은 한 마리 반딧불이마저 무리에게로 돌아가 길목으로 꺾어서 날아가 버렸다. 우리는 무언가가 나타날 조짐을 느껴 잔뜩 어깨에 힘을 줬다. 그리고 다시 깊게 호흡한 후 반딧불들이 인도한 그곳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놀라움에 숨을 쉴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천, 수만의 푸르게 발광하는 반딧불이의 성역에 우리는 발을 들이게 된 것이었다. 높다란 천장과 넓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공간에 푸른 보석을 촘촘히 박아놓은 듯한 동굴이었다. 우리는 저가 지나온 칠흑보다 어두운 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별세계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이상하고 무서우며 흥분되는 공간에 그녀 혼자만 모든 것을 보고 감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무섭고 외로웠다. 얼마나 깊은 곳에 갇히고 말았는지, 영영 해를 보지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고 눈물이 흘렀다. 아직도 떨어질 때 부딪친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아팠다. 이제 반딧불이 환해 자기 몸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우리는 팔을 걷어 아픈 곳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까지고 벗겨진 상처들, 다리에는 멍이 들고 피가 나고 있었다. 왼발 복숭아뼈에는 살점이 떨어져나가 공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쓰라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를 이곳까지 이끌어 온 반딧불은 짐짓 모른 척 푸른빛만 발하며 다닥다닥 벽에 붙어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주어진 임무를 다한 심부름꾼처럼 평온해보였다.

우리는 바닥에 물이 고여 파란빛이 반사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두워서 얼마나 맑은 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목마름을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잘만 걷던 우리가 상처를 보고 나서는 절뚝이며 천천히 물가로 걸어갔다. 물가 근처 바닥은 고운 모래로 되어 있었다. 상처에 묻은 모래를 물로 닦아낸 후 슬쩍 두 손으로 물을 떠보았다. 반딧불에 물을 비춰보며 얼마나 투명한지 확인해본 것이다. 그다지 탁해 보이지 않아 우리는 한 모금 물을 마셨다. 그러나 곧 뱉어버려야 했다. “음! 퉤퉤!” ‘짜잖아. 바닷물?’ 바다와 이어지는 동굴이었을까? 우리가 마신 물은 바닷물만큼이나 짜서 도저히 갈증을 해소할 만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름답고 고요하고 신비로운 미지의 동굴이었지만 그녀는 몹시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다. 또 너무나 지쳐있었고 당장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였고 아무도 곁에 없었으며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우리의 눈에서 마르지도 않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기댈 만한 벽을 찾아 물가에서 기어 나왔다. 무서워서 잘 생각은 없었지만 피곤함에 눈이 감겼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잠깐이지만 그녀의 방 침대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우리는 상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녀의 방, 창가 곁에 있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작은 어항 안에서 사색하는 작은 친구에게 말 걸던 때로 돌아갔다. 푸른색의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는 물고기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겐 참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는 한 번도 돌아서있는 경우가 없었다. 침대에 앉아있는 우리와 오래오래 눈을 맞추며 그녀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어주곤 했다. “아!” 우리는 갑자기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물고기에게 밥을 주지 않고 나온 일이 이제야 기억이 난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녀석도 굶어죽고 말 것이다. 아니면 끈질긴 생명력 덕분에 며칠은 더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오랫동안 갈아주지 않은 물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 질식사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물고기는 아무리 오래 살아봐야 겨우 며칠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처음으로 맞이한 가족이 녀석이었다.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고아원을 떠나 자립을 시작한 우리는 정붙일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녀는 룸메이트를 구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조건이 최우선이었다. 지나온 인생은 수많은 싸움터에서 생존해온 검투사와 같았다. 가진 것이라곤 목숨 하나뿐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보잘 것 없이 작은 것 하나도 뺏고 빼앗기는 불필요한 싸움과 전쟁이 우리의 가슴에 상처와 결핍으로 남아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비밀이기도 했다.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우리의 지난 인생이자 비밀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궁금해 하고 캐내고 싶어 하는 사람만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라면 자기 이야기를 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여겼다. 잊고 싶은 일들이 전부 다 떠올라버려서 우리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눈물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둘러보니 이 어둡고 축축하고 외로운 심연의 동굴은 그녀의 방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처음처럼 그녀는 혼자 남겨졌다. 그녀가 정말 바랐던 것처럼!

미어지는 심정을 못 이긴 우리가 막 소리 내어 흐느끼려는 찰나였다. ‘퐁!’ 잔잔하기 그지없는 물에서 작은 파동이 일었다. 우리는 그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눈물은 감쪽같이 말라 없어졌다. 뻣뻣한 고개를 들고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물가를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천장과 벽에 붙어있던 반딧불 몇 마리가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 곧바로 다시 벽에 붙었지만 우리는 심장이 쿵쿵 뛰며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턱에 고인 눈물이 ‘톡’ 바닥에 떨어졌다. ‘물고기?’ 한참동안 정지 상태로 있는데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건민과 함께 하천 주변을 거닐었던 그날 저녁이 말이다. 우리는 내내 건민의 말 한 마디를 기다렸었다. 그만이 알고 있는 어떤 해결책 말이다. 건민은 우리와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그라면 우리의 문제, 우리와의 문제, 또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노하우가 있을 줄 알았다. 그는 우리와 달리 사람들과 아무 문제없이 잘 지냈다. 모두가 그를 따르고 좋아했다. 그는 승수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큰 키로 이목을 끌지도 않았다. 못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람을 끄는 힘은 외모가 아닌 건민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을 대할 줄 알았다. 우리도 건민에게만큼은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특별 취급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건민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우화도 있지 않은가?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벗길 수 없던 한 사내의 코트를 태양은 단 한 번 내리쬐는 것만으로 손쉽게 벗겨냈다. 그는 우리에게 한 번도 마음을 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억지 부리며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가 곁에 왔을 때 우리는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만큼 덥게 해주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때껏 우리는 건민만큼 누군가를 믿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온 걸까? 누가 우리와 건민의 사이를 훼방한 것일까? ‘바로 나야.’ 그건 그저 그녀 자신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과 행복, 그것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언젠가 건민에게 버림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이제까지의 불행을 초월하는 사건이 될 것이었다. 한편으론 건민의 탓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어두워서 볼 수 없는 물고기의 존재유무를 단순히 없는 쪽으로 치부했다. 우리의 문제는 그처럼 쉽사리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 건민은 그것을 무시했고 무시하라고 했다. 그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건민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건민은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다.

우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눈물을 닦고 조심스럽게 물가로 다가갔다. 파동이 일었던 물은 다시 잔잔해져 있었다.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 물 안에는 뭔가가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개를 내밀어 푸르게 빛나는 물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자기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긴 머리가 흘러내려서 자기 얼굴이지만 좀 무섭게 보였다. 머리를 뒤로 모아 옷 속에 넣었다. 이렇게라도 사람 얼굴을 마주볼 수 있으니 반가워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얼룩진 눈물과 흙으로 더러워진 얼굴을 세수했다. 세수를 하니까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입술을 씰룩이며 살짝 웃어보였다. 잠깐이지만 왠지 예뻐 보인 것 같았다. ‘내가 예쁘다고?’ 혹시라도 누가 그녀의 생각을 들었으면 아주 비웃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생각이 우스워 물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며 ‘흥흥’ 콧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우리가 웃었을 때 그녀는 심하게 아름다워졌다. 새하얀 얼굴이 순간적으로 밝게 빛이 났고 검은 머리는 탐스럽게 윤기가 흘렀다. 그리고 동그란 눈동자에서는 별이 떨어지듯 별똥별보다 경이로운 반짝임으로 맑은 정기가 가득 차있었다. 가늘고 붉은 입술, 이게 정말 사람의 모습일까? 우리는 자기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점점 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촤악!’

 

물에 비친 우리의 얼굴이 튀어나와 그녀의 목을 잡고 그대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벽에 붙어있던 푸른 반딧불이 술렁이며 일어나 더 강하게 발광하면서 공중을 날았다. 사방으로 뛰노는 반딧불로 인해 그곳은 혼돈의 상태가 되었다. 날뛰는 반딧불들이 일제히 공중에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푸른 형광의 바다가 요동쳤다. 그리고 빛이 더 깊은 데로 가라앉으면서 동굴도 차차 흑색의 제 모습을 찾아갔다. 반딧불이 사라져 완전히 어두워진 것 같은 동굴 안으로 흐린 달빛이 옅게나마 새어들어 왔으나 이미 정적이 그곳을 차지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걸을 수 있을 만큼 두루 다니며 건민은 꽤 멀리까지 나갔다. 슬기가 몇 번이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건민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였다. 별이 총총히 뜨고 어둠이 짙어질 때 슬기는 더는 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이리로 갈 리가 없다며 건민에게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건민도 어렵사리 그 말에 납득했다. 정신을 차리자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까이에 해변도 있고 그리로 가방을 찾으러 갔을 수도 있는데 주희의 말만 듣고 정신없이 나온 것이 생각났다. 두 사람은 터덜터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직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별장으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현아와 주희만 남아서 TV를 틀어놓고 있었다. TV에는 홈쇼핑광고가 흘러나왔고 두 사람은 문소리에 놀란 얼굴로 막 들어온 건민과 슬기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됐어요?”

 

현아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주희는 걱정스럽게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안 돌아왔어?”

 

슬기가 묻자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민이 주희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전에 없이 싸늘한 말투로 주희에게 물었다.

 

“아까 우리한테 무슨 말했어?”

 

주희는 건민의 물음에 현아의 얼굴을 보았다. 현아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건민과 주희를 번갈아보았다. 주희가 건민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이라니? 내가 언제?”

“아까 주방 뒤에서 둘이 같이 있었잖아. 가방 찾을 때.”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란 주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아까? 우리보고 기억 좀 해보라고 그런 거야. 어디 뒀는지…….”

“왜 그런 말을 그때 해? 걔한테 다그쳐봤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다그친 거 아니야. 난 도와주려고…….”

“네 말 못 믿겠는데? 우리가 다시 되돌아갔다고 네가 말했지? 걔가 아무리 빨라봤자 여자앤데 우리가 못 따라잡을 만큼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있나?”

 

주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변명이라면 더 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건민이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나있었다. 주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차분하게 말을 뱉어낼 때마다 주변 공기가 1도씩 낮아졌다. 슬기가 뒤에서 눈치만 보다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언니 찾으러……. 근데 미란언니는?”

“집에 먼저 가라고 했는데 안 왔어?”

“네. 안 들어왔어요.”

 

건민은 걱정 말고 전화를 해보라고 말했다. 주희는 앉은 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안절부절 못 했다. 현아는 주희에게서 약간 떨어져 앉아 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승수, 재희를 따라 우리를 찾는 중이라고 전해주었다. 아직 그녀의 행방은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현아는 더 죄인이 된 기분으로 건민을 마주하고 있었다. 날은 더 깊어만 가는데 우리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슬기는 다시 밖으로 나가는 건민을 붙잡지 못 하고 집에 남았다. 사실 슬기도 많이 지쳐있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우리와 크게 친분이 없어서인지 별로 큰일처럼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보는 눈들이 많아 거실에 남았다. 자리가 불편했던지 주희는 제 방으로 올라갔다. 현아와 슬기가 거실에 단둘이 남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어디 간 거야, 진짜?”

 

슬기가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현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근심어린 얼굴로 대꾸조차 없었다. 당장 내일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닌 듯했다. 시간이 지나 별로 우리 일이 걱정스럽지 않은 슬기가 현아에게 물었다.

 

“너 신재희 찼어?”

 

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라고 말하자 슬기는 더 호기심이 생겨나서 “아직? 그럼 찰 거야?” 라고 물었다. 현아는 느낌상 슬기가 재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의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오빠 같으면 사귀겠어요?” 현아가 물었다. 슬기는 “나야 모르지. 여자가 아니라서. 그 형 그래도 생긴 건 괜찮잖아?” 떠보듯이 말했다. “별로요. 아니, 모르겠어요. 완전히 다 꼬였어. 재밌을 줄 알았는데…….” 현아가 얼굴을 푹 숙이자 단발로 짧게 친 머리가 앞에 늘어졌다. 슬기가 넌지시 말했다. “솔직히 그 형은 좀 아니야. 네가 아까워.” 현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 무슨 소리……?” 슬기가 쑥스러운지 얼굴을 긁었다. “아니, 뭐…….” “아뇨. 밖에 누구 온 소리 못 들었어요?”

건민이 상심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현아와 슬기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방으로 곧장 들어가 문을 잠갔다. 두 사람은 침통해져서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현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내일 가져갈 짐만 좀 챙겨둘까요?” “어, 그래.”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우리야! 우리 말 들리면 대답해! 우리야!”

“우리언니! 우리언니!”

 

재희는 한 걸음 떨어져서 승수와 미란이를 뒤따라갔다. 들어갈수록 생각보다 꽤 깊은 숲이었다. 여름 장마가 지난 뒤라 각종 이름 모를 풀과 나무, 덤불들이 제멋대로 자라 사람이 지나다녔을 법한 길도 다 막혀서 뒤죽박죽이었다. 울창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따라 허공을 휘저으며 길손들에게 겁을 주었다. 웅성거리며 저들끼리 무슨 모의를 하는지도 모른다. 승수가 재희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재촉했다.

 

“이 길이 맞아? 확실해?”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이쪽으로 가라고… 한 거지.”

 

재희가 미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승수는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서서 미란에게 물었다.

 

“권미란, 다시 주희한테 전화해봐. 아니면 현아나. 둘 중 잘 알고 있는 사람한테 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무도 몰라. 우리언니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넌 잘 몰라도 주희나 현아는 알지도 모르지. 그렇지, 재희야?”

“주희한테 물어봐, 미란아.”

“주희언니도 몰라! 벌써 12시가 넘었어. 우린 찾을 만큼 찾았고……. 일부러 나오기 싫어서 어디 숨어있는지도 모르잖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찰서에 전화를 하는 게 더 나아.”

 

승수가 미란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미란아.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 라고 넋두리하듯 말했다. 미란이 울컥하여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난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인데!” 라고 소리쳤다. 승수는 계속 걸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 책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결국 네 오산이지.” 재희는 승수의 뒤를 따랐다. 미란이가 원망스럽게 쳐다보았지만 재희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미란이가 외쳤다. “다 주희언니가 한 일이야. 우리언니는 주희언니 말만 믿고 이리로 갔어. 그러니까 이 이상은 정말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나도 걱정돼 죽겠어!” 승수가 몇 걸음 더 가다가 미란이를 돌아보았다.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순 없어. 우리를 찾든지 못 찾든지 우린 최선을 다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승수의 말은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처럼 알쏭달쏭했다. 두 사람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승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 승수는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졸졸 쫓아다니며 간간히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들의 사명을 다했다. 얼마나 숲을 헤치고 다녔는지 옷은 밤안개에 흠뻑 젖어버렸다. 승수는 어떻게 해야 아무에게도 불이익이 가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만약 우리의 가족들이 이번 실종사고의 책임을 자기들에게 묻는다면 얼른 사과를 해야 할까, 발뺌을 해야 할까? 사과를 했더니 상당한 액수의 돈으로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이 일로 그의 평판은 얼마나 낮게 가라앉아 버릴까? 만약 이번 일의 책임을 오로지 자기에게 덮어씌운다면? 물론 누가 벌인 일인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손쉽게 저들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큼 승수가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연을 끊는 일은 하기에는 쉬워도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가정하고 계획하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일에 크나큰 간극을 낳기도 하니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이 아닐 경우 웬만하면 모든 일원을 자기가 품고 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모든 책임을 박주희에게 돌리면 그만이다. 다들 이 일에 상관없는 사람으로 입을 맞추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승수가 걸리는 사람은, 그의 부모님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건민이었다. 오래 옆에 두고 지내며 사귀어 온 친구이지만 그의 속내는 베일에 쌓여있었다. 평범한 듯 비범하고, 특별한 듯 진부했다. 그것도 아니면 너무할 정도로 자기를 괘념치 않는 면모가 세상물정 모르는 얼간이가 아닌가도 했었다. 하지만 건민은 분명히 총명한 사람이었다. 승수의 고민은 괴롭게도 커져만 갔다. 주희를 버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건민을 구슬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줄을 그도 깨달았다. 자기를 끝까지 믿고 신뢰할 부모님에게 의지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해결책을 세우고 싶은 승수였다. 미란과 재희는 생각에 빠진 승수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부스럭. 사박사박.’ 근처 풀숲에서 뭔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승수가 목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그쪽을 향해 말했다. “우리니?” ‘사박사박’ 말없이 그것은 가까이 오며 안개 뒤에서 검은 그림자로 형체를 드러냈다. 더 가까이 다가와 달빛 아래로 나아오자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승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우리언니!”

 

미란이가 성급하게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었다. 승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우리야!”

 

우리가 고요히 미소를 머금고 서서 승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승수는 모든 고민이 일시에 해소되어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기쁨이 그의 속에서 요동쳤다. 우리의 미소가 승수의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안심을 주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껴안고 싶었다. 재희가 선수 쳐서 우리를 품에 안았다.

 

“걱정했잖아! 왜, 도대체 왜!”

 

재희가 절규하듯 소리 질렀다. 승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미란이도 재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놀랍도록 편안한 표정으로 그런 재희의 등을 토닥이며 군말 없이 안아주었다. 승수가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놓을 때까지 재희는 오래도록 우리를 껴안고 있었다. 막상 우리와 떨어지자 재희 본인도 얼떨떨해하며 앞서서 숲을 나섰다.

미란이가 우리를 부축했고 맨 뒤에서 승수가 잘 가는지 지켜보며 걸었다. 승수는 우리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무사해서 천만다행인 심정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승수는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미란이가 상냥한 어투로 우리에게 물었다.

 

“언니, 어디까지 가셨던 거예요? 얼마나 한참 찾았는지 아세요? 혹시 가다가 다친 거예요? 많이 다쳤어요?”

“아니. 걷는 게 조금 어려워.”

 

우리는 다리를 절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미란이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그녀를 동정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그녀는 우리에게서 풍기는 보드라운 향내에 피곤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적당히 따뜻한 체온도 밤공기에 식은 몸을 충분히 덥혀주고 있었다. 미란은 우리의 긴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꼬불거리며 얼굴선을 타고 내려간 모양을 보며 감탄했다. 그의 맑게 빛나는 이마와 길게 뻗은 눈썹은 위용스러웠다. 우리의 얼굴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미란이는 이미 숲을 벗어나 해안가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는 모래사장을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보다 못한 승수가 우리 앞에 쭈그려 앉아서 업히라고 말했다. 우리는 몇 번 그의 호의를 거절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 해 승수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갔다. 승수도 미란이와 같은 느낌을 가졌다. 우리의 체취와 체온, 보드라운 뺨이 그의 귀에 스쳤다. 승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까보다 훨씬 짧아진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서 앞서간 재희가 제일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는지 아무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거실을 서성거렸다. 승수가 오면 알아서 할 거란 생각에 나서지 않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곧바로 승수와 미란이가 도착했다. 승수의 등에 업힌 우리가 내려와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긴 머리를 귀에 꼽고 뒤로 넘기니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기다란 속눈썹을 앙증맞게 깜박이며 처음 보는 냥 우리는 세세하게 집안을 살펴보았다. 미란과 승수, 재희는 한동안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 하고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나중에서야 미란이가 입을 떼었다.

 

“언니, 옷이 더러워졌어요. 먼저 씻고 주무세요.”

 

미란이의 말에 우리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빙긋 웃어 보이고 천천히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우리가 화장실로 들어갈 때까지 멍청히 지켜만 보던 승수와 재희도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갔다.

승수가 방에 들어가니 건민이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소파에 쪼그리고 누워 자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니 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리를 찾느라 기운이 빠져 밤을 새우지 못 하고 곯아떨어진 듯 보였다. 승수는 돌아가 자기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깊이 묻으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듯했다. 그는 밤새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들었다. 향긋한 냄새가 그의 코끝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새벽녘, 건민이 악몽과 추위에 시달려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온몸을 심하게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바닷바람이 들이쳐 커튼이 요란하게 나부꼈다. 건민은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꼭 닫았다. 뒤돌아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승수를 내려다보니 편안한 얼굴이었다. 건민도 얼른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는 뭔가를 까마득하게 잊은 기분 때문에 얼른 잠이 들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일을 잊은 것 같았다. 아침에 타고 갈 배편을 예약하지 않았던가? 어딘가에 뭘 두고 왔던가?

그는 불현 듯 악몽처럼 지난밤에 잃어버린 우리가 떠올랐다. 건민은 승수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어제 우리를 찾으러 재희, 미란이를 데리고 숲으로 갔었는데……. 잠을 이기지 못 해 그들이 돌아온 것도 몰랐다. 건민은 방을 나가 현관을 살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신발 중에 우리의 것을 찾아보았다. 현관에 우리의 신발이 보이지 않아 신발장을 열어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건민은 방으로 돌아가 보채듯 승수를 깨웠다.

 

“김승수, 우리는! 우리 찾았어? 찾았어, 못 찾았어?”

 

승수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가늘게 눈을 떴다.

 

“왜?”

 

갈라진 목소리로 승수가 되물었다.

 

“우리 말이야! 찾았냐고!”

 

승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귀찮은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돌아누웠다.

 

“찾았다고……?”

 

‘그런데 왜 신발이 없지?’ 건민은 아직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는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새벽안개가 짙게 껴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럼 또 어디로 간 거야? 우리, 너 정말 왜 이래?’ 건민은 무작정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안개와 끈적끈적한 바람이 건민을 괴롭혔다. 시야가 좁아 건민은 해안가의 이 끝과 저 끝으로 모조리 다니며 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숲 쪽에서 다시 해안을 따라 바위가 있는 곶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새벽이 떠나며 동이 터오는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건민의 눈에 저 멀리 모래사장을 지나 곶으로 넘어가는 평평한 암반 위에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건민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움푹움푹 파고 들어가는 모래사장을 걸어가 가까이 다가갔다.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인 것은 확실했다. 그녀는 높게 하나로 묶은 머리와 새하얀 원피스를 바람에 날리며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파도가 밀려와 반듯한 암반에 부딪힐 때마다 하얀 거품이 일며 여자가 서있는 바위를 적셨다. 한동안 바다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던 여자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돌아서서 건민을 응시했다. 건민의 심장이 쿵쿵 크게 울렸다.

 

“우리?”

 

그녀가 우리인 것을 알아채고 건민은 온몸이 굳어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건민.”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건민은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오래도록 낯설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손에 신발을 들고 맨발인 채 깡충깡충 건민에게로 뛰어왔다. 뜀을 뛸 때마다 우리의 묶은 머리가 가볍게 나풀거렸다. 건민의 코앞까지 다가온 우리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건민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더욱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더니 냄새를 맡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리가 붉은 입술을 반짝이며 건민에게 “좋은 냄새.” 라고 말했다. 그녀는 토끼보다 재빠르게 건민을 제치고 모래사장으로 뛰어갔다. 건민은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자기 옷을 들어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땀 냄새가 배어서 어딘지 지린내가 나 역하기만 했다. 그는 돌아서서 모래사장으로 도망가는 우리를 잡으려고 냅다 달렸다. 우리가 건민이 쫓아오는 소리를 듣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아슬아슬하게 잡힐 듯 말 듯 뛰던 우리가 간신히 건민에게 팔목이 잡혀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지러질 듯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건민은 한 번도 그런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그란 울림에 꽃향기가 날 듯 예쁘고 시원한 웃음소리였다. 건민이 바닥에 엎어진 우리의 몸 위로 올라가 그녀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곤 건민이 들어본 적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파도가 철썩이며 노래의 흥을 돋우었다. 멀리 배 주위를 나는 갈매기들이 드넓은 바다 위에서 호위하듯 ‘끼룩끼룩’ 울음소리를 과시했다.

 

분주한 아침이 밝았다. 현아는 아직 눈을 뜨지 못 했다. 문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에 잠이 깨어 부스스 눈을 떴다. 그녀는 비어있는 옆 침대를 돌아보았다. 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아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 속에 죄책감이 무거운 납덩이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승수에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펜션에 남아 있다가 몰래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꾀가 생겨났다. ‘똑똑’ 누군가 현아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강현아, 아직 자? 나 들어간다.”

 

주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바로 뒤에 미란이도 따라 들어왔다. 현아는 자리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침 날씨가 좋아 푸르게 빛나는 하늘의 색이 창가에 비춰 이불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미란이는 뒤에서 문을 닫으며 주희를 따라 우리의 침대에 앉았다.

 

“어제 우리 찾았어. 다행이지?”

 

현아는 깜짝 놀랐지만 눈이 부어서 크게 뜨지도 못 했다.

 

“어디서요? 어떻게 찾았어요?”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어.”

“다행이네요.”

 

현아는 말과 달리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또 사라졌어. 건민오빠도 같이.”

“그래. 승수가 또 찾으러 갔긴 갔는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할래?”

 

미란과 주희가 번갈아 말했다. 현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멍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건지 현아는 알 수 없었다. 언니들이 나서야 할 일에 제일 어린 자기에게 의견을 묻다니, 아니, 의견을 묻는 것 같지는 않다. 현아는 두 사람의 분위기에 금세 물들었다.

 

“그만둬야겠죠?”

 

주희와 미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희는 현아의 어깨를 한 번 지그시 누르곤 방을 떠났다. 미란이는 할 말이 남았는지 가만히 앉아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언니에 대해서 오해한 게 많은 것 같아.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잖아. 소문 말고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들은 적이 없어. 아무튼 데려오길 잘 한 건 맞는 듯. 어서 씻어. 빨리 밥 차려서 든든히 먹고 가야 할 거야.”

 

현아는 미란이의 말에 동요했다. 그녀는 결국 두어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미란이가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 모든 일이 이렇게 끝난 것일까? 정말 다행인 건지, 현아는 답을 얻지 못 하고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갔다.

 

모두 1층 주방에 모여 아침상 차리는 일에 바빴다. 커다란 식탁에 맞는 구색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장을 봐온 것들로 최대한 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건 진짜 물건이네! 싱싱하다 못해 활기차다!”

“뭐 만드시는 거예요? 냄새 좋다.”

“고작 조개 하나에 너 너무 흥분하는 거 아냐?”

“고작이라니? 너 이렇게 큰 꼬막 봤어?”

“조개는 저녁에 구워먹자며?”

“그 정도는 남겼으니까 걱정 마!”

 

슬기는 여학생들에게 둘러 싸여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어젯밤의 일도 전부 해결되었고 그에겐 아무런 문젯거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 요리를 즐겨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는 나서서 주방을 진두지휘했다.

재희가 식탁에 일회용 수저를 놓으며 “몇 개지?” 하고 물었다. 주희가 개수대 밑 수납장에서 밥그릇을 꺼내다가 돌아보며 “아, 7개씩?”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나저나 오는 중인 거 맞아?” 그녀는 한 마디 더 했다. 마침 창가 앞에 서 있던 미란이가 창밖을 살폈다. 멀리 파란 선이 길게 그어져 보이는 수평선과 정원에 자갈밭이 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올 생각이 없는데요.”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주희에게 다가가 건네주는 밥그릇을 받아주었다. “그래? 오겠지, 뭐. 반찬 뭐 있지?” 재희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찾으러 가고 현아는 슬기의 부탁대로 양파를 썰었다. “캬! 역시 나야!” 슬기가 한 숟갈 찌개를 떠서 맛보더니 소리쳤다.

 

승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뜻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다른 길로 가려던 승수의 눈에 움푹움푹 파인 모래사장의 발자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해가 뜨겁게 내리쬐었다. 눈이 부셨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의 형형한 모습에 푹 빠져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여름바다에서 맞이하는 혼자만의 아침도 꽤나 흡족한 일이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걸음을 떼었다. 저 깊고 불투명한 물속에 거대한 아기가 자궁에서 발길질하듯 물장구를 치는 것은 아닐까? 태동하듯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파도치며 출렁이는 바다의 결이 생동감 넘치게 다가왔다. 승수는 괜히 가슴이 뛰며 설렜다. 활발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이 젊음의 상징인 것처럼 여겨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첨벙 물속에 뛰어들어도 짜릿할 텐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태연히 모른 척하며 해안가에 거의 다다랐다. 측면으로 봤을 때 곡선으로 휜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파도가 치며 깨끗한 물보라가 승수의 발목을 적시려는지 높이 튀어 올랐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밀려오는 파도를 내려다보았다. 몇 차례 파도가 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내려다보니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그는 돌아서서 도리질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승수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 손을 잡고 서있는 건민과 우리가 보였다. 두 사람도 승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맨발인 채 건민의 손을 꼭 잡고 자기를 쳐다보는 우리를 보고 승수는 일순 가슴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세 사람이 마주보는 동안 센 바람이 휭 하고 불어와 우리의 새하얀 원피스가 가볍게 날렸다. 그 밑으로 말갛게 빛나는 두 다리가 드러났다. 우리는 가랑이 사이에 한 손을 넣어 치마를 눌렀다. 올려 묶은 긴 머리와 이마에 흐트러진 잔머리가 바람 따라 흩날렸다. 건민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뒤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승수가 얼른 달려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이건민!”

 

건민은 승수의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가 살짝 돌아보며 승수를 향해 생긋 웃어주었다. 승수는 돌아가는 두 사람을 보며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오! 돌아왔나 봐요.”

 

건민과 우리가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왔다. 창가 앞에 서있던 미란이의 말에 주희와 현아, 슬기, 재희가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보았다. 그들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왔다.’

 

“어서 와! 밥 다 됐어.”

“따뜻할 때 먹어야지. 어서 여기 앉아.”

 

식탁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찌개와 몇 가지 잔반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수저는 일회용품이었지만 그릇은 사기로 만들어진 집 주인의 것이었다. 마음껏 써도 된다는 허락 하에 일행은 될 수 있는 한 조심히 사용하고 원 상태로 정리해놓기로 했다.

이미 숟갈을 들고 밥을 먹던 중간에 건민과 우리가 돌아오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온 사람들을 환영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들 멀뚱히 서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는 신기한 듯 둥그렇게 서있는 일행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하나같이 재미있는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어 그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자 몇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어, 어서 앉으세요! 여기 내 옆 자리…….”

“왜 네 옆 자리에 앉아? 거긴 현아 자리잖아.”

 

실랑이를 벌이는 재희와 슬기를 지나쳐 건민은 우리를 구석에 앉히고 그 옆에 본인이 앉았다. 여학생들은 민망해하며 자리를 바꿔 앉았다. 자기 수저를 서로 건네받는 와중에 승수가 도착했다. 승수가 돌아오자 재희와 주희가 어서 오라고 불렀다. 미란의 옆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슬기, 그 옆엔 현아, 그리고 ㄱ자로 꺾인 자리에 우리와 건민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승수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현아의 등을 치고 손짓했다. 손을 들어 가로로 휘젓는 게 옆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보였다. 현아는 군소리하지 않고 미란의 옆 자리로 수저와 밥그릇을 챙겨서 가지고 갔다. 승수는 현아에게 자기 것을 건네받고 우리의 옆에 앉았다. 식탁에 돌연 무거운 침묵이 번져갔다. 그릇과 수저의 마찰음, 입에서 음식을 씹는 소리, 삼키는 소리가 어색하게 식탁을 채웠다.

 

‘우류, 우류!’

 

정수리를 뚫고 메아리치는 소리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우리는 집밖으로 훨훨 날듯이 나가버렸다. 놀라서 일어나 붙잡을 새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건민과 승수가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식탁에 남아있던 무리는 멀뚱히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모두 제각기 앞에 놓인 자기 밥그릇을 비우는 데 열중하기로 했다. 슬기가 고개를 들고 넌지시 “이제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라도 가서 찾아와야 하는 건가?” 하고 물었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식의 말투였다. 현아가 발끈하며 끼어들었다. “오빠, 저랑 아침 설거지 당번이시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그는 기억이 난 듯 어물어물 대답했지만 엉덩이는 좀이 쑤셔 못 견디겠는지 꼰 다리를 풀었다 꼬았다 난리가 아니었다. 재희는 저가 나무라기 전에 현아가 먼저 선수를 쳐버려서 벌린 입을 그대로 닫아버렸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먼저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서 떠날 준비를 했다. 현아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재희를 조심히 불러 세웠다.

 

“오빠,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나랑 한 번만 바꿔주면 안 될까?”

“너도 당번이야?”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꿔줄게. 올라가서 좀 쉬고 있어.”

 

재희가 가던 방향에서 몸을 틀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부엌에서 먼저 설거지를 하고 있던 슬기에게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아가 2층으로 올라가면서 흘깃 부엌을 보니 슬기가 그녀를 힐끔 보더니 재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재희가 곧 개수대에 다가가 수세미를 손에 쥐었다. 현아는 안심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미란이는 주희의 눈에 스모키 화장을 해주었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는 대신 최대한 얼굴의 단점이 보이지 않도록 화장해 달라고 미란에게 부탁한 것이다. 미란이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확실히 솜씨가 있었다. 주희의 한쪽 눈은 벌써 다른 쪽 눈에 두 배는 커져있었다. 주희는 입을 가리고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야! 내 눈 좀 봐. 권미란, 와! 진짜 커졌어.”

 

주희의 감격한 말투에 미란이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실은 속으로 생각보다 촌스럽게 화장이 되어서 주희에게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주희의 반응이 긍정적이라 다행으로 여겨졌다. 평소 자기 눈을 화장하던 방식으로 주희의 눈도 비슷하게 그렸더니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그래도 본인이 마음에 든다니 미란이도 넘어가기로 했다.

얼굴 화장을 어느 정도 끝낸 후엔 고대기로 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넣어주었다. 주희는 수고해주는 미란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연신 자기 모습에 감탄을 하며 미란이의 솜씨를 추켜세웠다. 미란이는 땀이 좀 나면서도 성심성의껏 주희를 단장시켜주었다. 그러더니 끝에는 주희가 그날 입을 옷도 미란이의 조언을 받기로 했다. 미란이는 제 눈앞에 펼쳐놓는 주희의 옷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는 대차게 가로로 저으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인상을 풍겼다. 사실 이때에도 미란이는 도저히 주희가 가져온 옷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떤 것은 너무 유치하고 어떤 것은 너무 유행을 좇았다. 유행도 최신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서 지금쯤은 전국 20대 여자의 옷장에 분명 한 벌쯤은 다 갖고 있을 법할 정도로 보편화된 옷이었다. 주희가 가져온 옷들은 지나치게 솔직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흔한 20대 여자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가장 튀면서, 가장 예쁘면서, 가장 독특하면서, 가장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당연히도 각종 옷들은 서로 조화가 잘 되지도 않았고 주희에게 어울리지도 않았다. 미란이는 그런 티를 최대한 내지 않고 턱을 괴고 앉아서 무척 고심하여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겨우 티 한 장과 반바지 하나를 추려냈을 뿐인데도 꽤 많은 에너지를 쏟고 말았다. 주희는 매우 만족해하며 미란이가 골라준 대로 옷을 입고 1층으로 먼저 내려갔다. 반면에 미란이는 오늘 같은 날은 별로 치장에 힘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대충 머리를 하나로 묶고 가벼운 티셔츠와 주희와는 다른 종류의 핫팬츠를 꺼내 입었다. 들고 갈 가방에는 커다란 수건과 작은 수건 한 장씩, 선크림 따위를 챙겨 넣고 거울 앞에 올려둔 선글라스를 코 위에 얹었다. 그러곤 선글라스를 끼고 가방을 맨 자신의 모습을 앞뒤로 찬찬히 살펴본 후, 모두가 모여 있을 1층으로 내려갔다.

현아는 아프다는 핑계로 주희와 미란이가 나갈 준비를 하느라 설치는 동안 방문을 닫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퍼를 꼭 잠가 아래 내려놓은 가방처럼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층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미란이가 현아를 부르러 올라갔다.

 

“현아야, 어디 아파?”

 

미란이가 방문을 살짝 열고 현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머리가 아프다며 손으로 눌러보였다.

 

“그럼 집에서 쉴 거야?”

“모르겠어요. 저 가야하죠?”

 

현아가 립글로스를 바르지 않아 살짝 메마른 입술을 떼며 조그맣게 말했다. 미란이가 고개를 저으며 너무 아프면 쉬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우리언니는 왔어요?”

“아직.”

 

현아는 조금 초조해졌다. 빨리들 돌아오지 않아 예약한 배가 떠나기라도 한다면 다들 오늘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남을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어디서 뭘 하기에 이토록 오지 않고 있는 걸까? 미란이는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진 현아를 보고 아파서 말이 안 나오는 줄로 여기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1층으로 내려갔다. 주희가 미란이에게 눈짓하자 미란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래도 아파서 못 가겠대요.”

“많이 아프대?”

“그런가봐요.”

 

주희는 억지인상을 쓰며 걱정하는 듯 했지만 현아가 아픈 것과 별개로 기분은 날아갈 듯 좋아져갔다. 그녀는 벌써 여러 차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전신거울만큼이나 커다란 화장실 거울 앞에 제 모습을 비춰보았다. 화장실의 조명도 한 몫 했겠지만 그날따라 주희는 자신이 예뻐 보였다. 구불구불 웨이브가 진 머리에 얼굴이 반쯤은 가려져서 퉁퉁한 볼 살이 감춰졌다. 염색한 지 좀 되어서 약간 탈색이 된 머리카락도 윤기가 나게 에센스를 발라주니까 색이 달라보였다. 그런데다가 주희가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설거지를 다 끝낸 재희와 슬기가 주희를 보며 찬사를 마다하지 않아준 것이다. 주희는 난간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막 사교모임에 데뷔를 시작한 어느 유럽 귀족가문의 아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희와 슬기는 다만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의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채주는 배려를 했을 뿐이지만 그녀가 솔직하게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는 자기들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유쾌해졌다. 이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건민과 승수, 우리 세 사람이었다.

건민과 승수는 우리가 뛰쳐나가자마자 그녀를 붙잡으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로 날랐는지 막 밖에 나온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우왕좌왕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탁탁탁!’ 마음만 급해 엉뚱한 길로 가려던 승수와 건민의 귀로 누군가 달려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얼른 돌아보니 어느새 거기까지 갔는지 우리가 저만치 앞에서 숲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비상하는 새보다도 빠른 속도로 숲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건민과 승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를 좇았다. 다리가 긴 승수만큼이나 건민도 잽싸게 바짝 추격해 달렸다. 서로 경쟁적으로 달리는 건민과 승수에게는 오로지 본능과 악만이 남아있었다. 그 악이란 것은 때로 긍정적으로 해석되어 끈질김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될 때는 집착이라고 불리는 그것이었다. 그들이 어째서 달려야 하는지는 그들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건민은 승수가 뛰기에 자신도 뛰는 것이었고, 승수는 건민이 뛰기에 자신도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얀 비둘기가 되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묶었던 머리가 풀려 우리의 치렁치렁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다. 바람 따라 검무를 추듯 흩날리는 검은 긴 머리가 태양빛을 받아 때때로 섬광이 돋아났다. 건민과 승수는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그녀를 쫓았다. 곧 그들의 앞에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우리의 모습이 울창한 나무 그늘에 가려지기 직전, 긴 머리카락만이 너울거리다가 이내 빨려들어 갔다. 건민과 승수가 달려와 숲속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우리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지난 밤 사이에 일어났다. 수치를 가려줄 어두움이 찾아오지 않은 밤이었다. 어느 때보다 달은 크고 밝았으니……. 기나긴 장마가 걷히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달밤이었다. 물을 담뿍 머금은 숲은 활기차게 요동치며 기지개를 켰다. 오랜 세월 눈을 감고 비밀을 지켜온 숲이 이제 마음껏 새로운 생물을 끌어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는 날을 되찾은 것이다. 멍청히 바닷가를 바라보며 고뇌에 잠겼던 커다란 바윗덩이도 누군가의 발 디딤 판이 되어 새로이 짊어진 역할에 사명을 다하고자 다짐했다. 그러나 곧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숲은 오래간만에 떴던 눈을 다시금 감고 새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야!”

 

한 마음으로 숲은 우리를 불렀다. 새가 놀랄 정도로 숲의 외침은 매우 크고 싱그러웠다. 그러나 우리, 단 한 사람만이 선택된 것이었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숲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물론 단번에 그녀의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결국은 숲의 부름에 응하였지만, 우리의 둔감함을 탓하며 조급해한 적은 결코 없었다. 기어코 우리는 용감하게 어두운 숲 한 가운데로 나아왔다. 나무들이 웅성대며 예정대로 제때에 찾아온 우리를 반겼다. 그러나 아직 역사가 일어났다고 여기기엔 일렀다. ‘조금 더 가까이, 좀 더 이쪽으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휘파람으로 알렸다.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 이제 다 왔어.’ 비밀한 존재가 마침내 우리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도 모를 조그마한 구덩이 밑으로,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류였다. 그는 우리를 인도했다. 푸른 불빛만 따라오면 우리는 어려움 없이 우류와 만날 수 있었다. ‘아! 정말 얼마 안 남았어.’ 그러나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불행한 내면에 갇혀 자기 삶의 행복을 축내고만 있었다. 우류는 그녀가 마지막 눈물을 닦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기다림은 그의 오랜 행복이었다. 바로 이 날을 위해 그는 슬픔을 낭비하지 않았다. ‘자, 준비됐어.’ 그가 이제껏 기다려온 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우리는 비로소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직도 눈물이 맺혀있는 눈으로 우리는 우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마지막 남아있던 한 방울 눈물이 우류의 얼굴에 떨어지고 그는 처음 느낀 뜨거운 감촉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필요도 없었다. 내려다보던 우류의 얼굴이 불쑥 튀어 올라와서 우리의 코앞에 있었다. 그녀가 무어라 내지를 새도 없었다. 우류는 우리의 목을 껴안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살결이 우리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의 바닷물 속으로 우리는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우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팔에 안긴 우리를 신속하게 저 아래 세계로 데려가도록 쭉 심해를 향해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푸른 반딧불이가 날아와 둘의 앞길을 밝혀주었다. 오로지 우리와 우류의 앞길만이 밝게 빛났고 주변은 온통 어두컴컴한 흑암의 구렁텅이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이를 곳은 무저갱뿐이 아닐까 하며 우리는 이내 두려움에 혼절했다.

우리의 의식이 돌아온 것은 우류가 그의 거처에 우리를 뉘인 때였다. 우류는 우리가 잠이 깨기 전에 그녀의 코에 입을 갖다 대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먼 곳에서 다시 먼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의식을 잡아 간신히 눈을 떴다. 천장에 수놓인 푸른 반딧불을 보며 우리는 꿈에서 깬 것인가 하였다. 그렇기엔 너무나 생생한 꿈……. 떨려오는 심장까지도 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의 발치에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은 반딧불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기묘한 존재가 우리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표정, 사람에게서 본 적 없던 이상한 기운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가느다랗고 투명한 긴 끈 같은 것이 푸르게 빛나며 그것의 등과 팔에 달려서 너울거렸다.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늘고 가벼워 보이는 새하얀 솜털도 그의 머리에서 둥실둥실 떠다녔다. 그리고 허공에는 미세한 흰 점 같은 것들이 무수히 부유하였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먹먹한 고요가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전부인가 싶어 갑갑해지고 있었다. 귀가 막혀서 목구멍으로 침을 넘겼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리를 내려뜨리고 앉아서 우리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자신이 생각보다 높은 절벽에서 튀어나온 평평한 바위 위에 있다는 생각에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녀석이 우리를 지나쳐 하늘 위로 솟구쳐 날아올랐다. 우리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니,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것이 날아오른 지점에 물거품이 일어났다. ‘세상에!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우리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 등 뒤를 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수직으로 곧게 뻗은 절벽뿐이었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간신히 세 사람 정도 누울 만한 부리처럼 튀어나온 바위 위가 다였다.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헛된 소망들은 전부 일시에 날아가 버렸다. 머리 위를 비추는 반딧불을 올려다보며 이 현실감 없는 세계가 진짜 자기에게 닥친 현실이라는 것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고개를 쳐들고 있는 우리의 얼굴 앞으로 그 이상한 존재가 기척 없이 나타나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우리와 달리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자유로이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다리를 내려 우리가 서있는 땅에 발을 딛고 그녀와 같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조심스레 우리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가 손을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깨달았다. 자신의 몸을 공기방울이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녀석이 공기방울을 통과한 자기 손을 보며 우리의 얼굴에 살짝 갖다 댔다. 그러곤 우리의 귓가로 손을 옮겨 젖은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되도록 부드럽게 쓸어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만지고 있는 것의 감촉, 그 기이함에 놀라 흥분했다. 우리가 두려움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녀석의 손이 천천히 내려가 우리의 가슴에 닿았을 때 우리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대신에 몸을 움츠려 그것의 손길을 피했다. 놀란 것은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손을 공기방울에서 빼내고는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며 놀란 기색을 표했다. 우리는 여전히 너무 무서워서 질린 눈으로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았지만 한 걸음 물러서더니 더 다가오지 않고 제 손만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고 일단은 한시름을 놓았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자기에게 말을 걸거나 할 줄은 전혀 모르리라 지레짐작을 하고 있기도 했다.

 

“우리. 좋은 냄새.”

 

따뜻한 울림으로 녀석은 갑자기 소리를 내었다. 그것의 목소리는 둘 사이의 공간을 거치지 않고 곧장 우리의 귀에 닿았다. ‘말을 했어!’ 그러나 충분히 말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겼다. 다만 우리의 느낌에 저 비상한 존재가 절대로 사람일 리가 없기에, 또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였기에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낮고 은은한 목소리가 어렵지 않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우리는 그저 벽에 기대서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 하고 무방비하게 자신을 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떨리는 다리를 주체 못 하고 끝내 힘이 풀려 주저앉는 것 말고는.

 

“넌 내 이름을 몰라?”

 

그의 목소리는 순진무구하고 영롱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언제까지 갖고 놀다가 본색을 드러낼까 싶어 전전긍긍하며 우리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빙빙 꼬았다.

 

“난 아마 우류겠지.”

 

‘우류? 우류가 뭐지?’ 우리가 생각하는 동안 녀석이 한 번 더 말했다. “왜냐면 그것 밖에 모르니까.” 그는 갑자기 목에 무엇이 걸렸는지 칵칵 목을 갈며 기침을 했다. 그리곤 공기방울을 뱉어냈다. 그 안에 작은 가루 같은 게 섞여 나왔다. 우류는 기침을 하곤 한 번 더 빙그르르 공중을 돌았다.

 

“가까이 가도 될까?”

 

날쌔게 날아와 이마를 보이며 우류가 물었다. ‘이미 가까이 와있는데…….’ 우리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감정은 공포를 넘어서서 또 슬픔에로 떨어졌다. 우리의 슬픈 기색에 우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푸른 반딧불이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약간 어두워졌다. 우류는 가만히 주저앉아 있는 우리의 무릎에 턱을 기대 엎드려서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우류를 내려다보았다. 볼수록 기이한 생명체였다. ‘무엇일까? 이건 꿈이 아닌데.’ 은회색의 커다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며 우류도 우리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다가 우리는 아까 물에 비쳤던 얼굴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녀석이었구나, 우류.’ 그의 모습은 흉측하거나 괴기스러운 종류가 아니었으나 우리는 두려웠다. 투명하리만치 흰 얼굴과 길고 가는 목선을 타고 은빛의 부드러운 머리가 길게 내려왔다. 머리카락은 물에 젖어도 축 늘어지지 않고 마른 머리처럼 볼륨이 살아있었다. 동그란 콧방울과 온몸에선 광택이 나 반들반들했다. 가늘고 붉은 입술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 사과의 빛깔이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그의 얼굴에 가져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휘날리는 가벼운 머리털을 만져보려고 우리는 살짝 손끝을 갖다 대었다. ‘미끄러워.’ 우류의 몸에 달린 투명한 긴 끈이 지느러미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우류는 더욱 얼굴을 우리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그의 목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우리가 아침부터 죽 부르던 콧노래였다. 또 숲을 달리며 무섬증을 달래려고 휘파람으로 부르던 노래였다. 우류가 그녀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손길을 느꼈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구나.’ 우리는 우류의 목덜미를 덮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를 애처롭게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혼자 만들어 부르던 노래, 그 노래를 우류가 알고 있었다.

 

“이제 안심이 되니?”

 

우류가 눈을 치켜뜨고 우리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우리는 생각했다. ‘내가 널 믿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아직은 못 믿겠어.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아.’ 우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우리와 눈을 맞추었다. 우리는 힘없이 우류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널 도와주려는 거야. 너는 계속 나를 찾았잖아. 그래서 내가 너를 데려온 거야.”

‘그럼 나를 도와줘. 제발, 나를 도와줘.’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자동적으로 흘러내렸다. “저런!” 우류가 서글픈 우리의 얼굴을 딱하게 쳐다보았다.

 

“여기 누워. 너에게 휴식을 줄 거야. 다만 나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난 구제불능이야.’

“넌 휴식이 필요할 뿐이야. 그러니 단 하루만 네 몸을 빌려줘. 너의 의식은 여기에서 잠자고 있을 거야. 그동안만 내가 여기서 나오도록 말이야. 난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누군가 날 찾아주길 기다렸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생각하지 못 했어. 날 위해 잠시 여기 있어줄 수 있니? 아주 잠깐이라도 날 믿어주면 좋겠어. 알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녀는 우류가 얘기를 하는 동안 자리에 누웠고 잠자려는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류의 목소리가 점차로 멀어지며 의식은 흐릿해졌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야.’

우류는 우리의 몸을 입고 뭍으로 올라왔다. 밤바람에 실려 온 익숙한 냄새가 그의 갈 길을 일러주었다. 우리의 무의식이 저만치에서 우류를 인도했다. 우류는 안개가 짙은 숲을 조금도 헤매지 않고 승수와 미란과 재희의 체취를 따라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승수와 미란, 재희의 앞에 우리의 모습을 한 우류가 나타났다.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풍겼다. 나무 그림자에 가려있어도 흰 얼굴이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를 거스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세 사람의 속에 강하게 일었다. 우류는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것 말고는 모든 것이 그가 상상해온 이상으로 강렬한 자극을 주며 기쁨에 몸서리를 치게 했다. 몸속을 흐르는 뜨거운 피와 사람의 살결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그들이 풍기는 땀 냄새에 매료되었다. 우류는 그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또 그들의 체취가 여기저기 묻은 환한 공간에 들어섰을 때, 우류의 눈에 비친 모든 사물과 구조는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우리의 기억을 따라 조심스럽게 그녀의 냄새가 나는 방으로 몸을 옮겼다. 방안에 귀여운 아이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우류는 그녀의 이름이 현아인 것을 기억했다. 그러곤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발소리를 죽이고 우리의 침대에 앉았다. 아니, 이 포근한 감촉! 보드랍고 건조하고 포근하다. 우류는 침대의 이불을 매만져보다가 우리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에 이끌리어 갔다. 구석에 놓인 커다란 가방에서 우리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우류는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의 가방을 열어보았다.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이지만 익숙하고 낯이 익었다. 그의 손에 얇은 흰색 원피스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류는 우리의 옷 냄새를 맡으며 그녀의 기억을 추적했다. 우리가 잃어온 것들,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으며 우류는 젖은 옷을 벗고 손에 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동이 트기 전, 아직 어두운 새벽녘에 그는 슬픔을 다스리려 집을 나섰다.

파도가 철썩이며 부딪히는 바위 위에 올라서서 우류는 우리의 나쁜 기억들을 바닷물에 털어버렸다. 습관처럼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아온 우리의 심신을 말끔히 씻어주고자 검은 사슬을 풀어 바다 속 저 아래로 던졌다. 검은 사슬은 무거운 납덩이처럼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잠기게 되었다. 달이 지고 수평선 너머에 떠다니는 구름이 밝게 빛나왔다. 타오르는 해가 등허리를 펴고 있었다.

 

“우리?”

 

우류의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그는 의식 저편에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가 왔어.’

 

“건민.”

 

 

우류는 우리의 부름을 들었다.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우리에게로 돌아갔다. 건민과 승수가 그를 따라오지 못 하게 우류는 두 사람을 따돌려 숲으로 들어왔다. 건민과 승수는 서로 앞 다퉈 달려왔지만 우리를 놓치고 말았다. 우류는 바다를 향해 삐죽이 솟아있는 바위 위로 올라서서 그대로 다이빙했다. 해저로 헤엄쳐가는 그의 몸에서 비늘이 벗겨지듯 우리의 모습이 사라지고 점차로 본래 우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리야, 내가 돌아왔어.”

 

우류가 우리의 코에 입을 대고 중얼거리자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우리가 눈을 떴다. 우류는 그녀를 안고 뭍으로 데려다주었다. 마른 바위 위에 앉아 숨을 들이마신 우리는 그녀가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류가 우리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고마움의 선물이야. 너도 이제 나와 같아. 이제 그 누구보다 네가 가장 아름다워.’

 

우리의 손끝, 발끝까지 전율이 왔다.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우리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린 뒤엔 우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소중하게 여기는 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우류를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우류로 인해 변화를 얻었다. 항상 그녀의 머리를 짓누르는 골칫거리가 사라진 것을 우리는 믿을 수 없었다. 우리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뜨거운 태양을 마음껏 즐기며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건민과 승수가 우류를 쫓아 숲까지 들어간 것을 기억해냈다.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별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의 몸은 가볍디가벼운 벌새처럼 재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우리를 보고 1층에 모여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문 앞에 서서 우리는 숨을 고르느라 헉헉거리고 있었다. 미란이와 슬기가 얼른 달려가 우리를 부축해서 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랬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건민이랑 승수는?”

 

재희가 입술을 깨물며 우리에게 물었다.

 

“수, 숲에 갔어. 어서 전화해.”

“전화를 안 받아.”

 

주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주희는 길고 치렁한 머리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앉아있는 우리를 낯설게 보고 있었다. ‘너무 예쁘잖아.’ 이미 재희나 슬기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희는 미란이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얼굴을 했다. 미란이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넌 계속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야?”

 

주희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사심 없이 주희에게 대답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주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찾았잖아.”

“그래, 이젠 찾았어.”

 

우리는 주희에게 밝게 대답했다.

 

“언니, 미안해요. 다 제가 그런 거예요.”

 

갑자기 미란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우리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기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싶어 우리에게서 눈을 떼고 미란이를 보았다. 슬그머니 재희가 합석했다.

 

“진작 말하려고 했는데……. 나도 미안해, 우리야. 내가 너무 유치했어.”

“그렇지만 결국 내 잘못이야. 내가 이상하게 굴었어. 너희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게…….”

 

우리는 당황했지만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번에 해버렸다.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 것은 자괴감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다. 비로소 그녀의 세상이 바로 잡혀가는 것을 느끼는 일종의 희망적인 눈물이었다. 어느새 부터였는지 주희는 자기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한 손으로 슥 닦아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우는지도 모른 채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슬기만 이 상황을 어색하게 여겼다. 그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뜨기같이 웃는 슬기의 얼굴을 보고 미란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란이의 웃음이 신호탄이 되어 주희도 입술을 비죽거리며 웃고 말았다.

재희는 우리가 하얗고 고른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것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미란이와 주희, 슬기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형! 현아는 어쩌고!”

 

슬기가 재희에게 소리쳤다. 그러든지 말든지 재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 향기로운 소녀를 품안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아야말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재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살살 도망치며 피하고만 있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소녀라면, 그녀라면 재희를 흡족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재희는 기분이 좋은지 그는 우리를 껴안고 미소를 지었다.

밑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문틈으로 엿보고 있던 현아가 재희의 그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경악했다. 현아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녀는 아까부터 한솔이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문자로 주고받고 있었다.

 

<재희오빠가 우리언니를 껴안았어요!>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돼!>

<둘이 화해했나 봐요. 미란언니도…….>

<정말이야!? 넌 어떻게 할 거야? 건민이를 위해 우리를 이용하기로 했잖아.>

<난 그냥 짐 싸고 집에 갈 생각이에요. 건민오빠는 주희언니한테 애당초 관심도 없어요.>

<그래도 우리하고 잘 되게 내버려 둘 거야? 그러기엔 건민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별로 그렇진 않아요. 언니도 알잖아요. 건민오빠는 우리언니를 좋아해요.>

<설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걔는 여우나 다름없어.>

<아무튼 작전은 전부 실패했어요. 자세한 얘기는 가서 다시 전해줄게요.>

<이대로 와서 얘기해도 별 소용없을 거야. 거기에 계속 있어야 상황을 바꿀 수 있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바꾸고 싶어 했던 일은 제대로 됐어요. 재희오빠는 이제 날 괴롭히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건민이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언니가 오지 그랬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건 처음부터 우리가 계획했던 일이었잖아.>

<우리가 계획했는데 언니는 왜 안 왔어요?>

<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어!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 올라오는 길 조심해.>

<승수오빠랑 건민오빠 돌아온 것 같아요!>

 

“우리야!”

 

어떻게 알았는지 건민과 승수가 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땀이 비 오듯 했다.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다리에는 흙이 튄 자국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숲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우리가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며 말해주어서 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다. 승수와 건민이 서로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더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속으로 어쩌면 우류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행이 모두 모이고 현아를 제외한 일행은 이미 배를 놓친 것 같으니 스쿠버다이빙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근처 관광지에 들르기로 정했다. 미란이가 대신 현아가 아프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운전대는 전날과 같이 슬기가 잡았다. 주희는 전처럼 건민의 옆에 앉을 것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치장은 전부 허사가 되었다. 건민은 CCTV처럼 우리만 감시하듯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승수도 우리의 옆에 앉았다. 그는 지난밤의 사건에 누가 개입되어 있었는지를 잊지 않았다. 모른 척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일이 또 틀어진다면 그는 봐주지 않고 그때야말로 확실히 죗값을 톡톡히 받으리라 다부지게 마음먹고 있었다. 아마도 주희는 워낙 빠른 눈치로 그런 속내를 조금이나마 읽은 것 같았다. 그녀는 기꺼이 재희와 자리를 바꿔 슬기의 옆 조수석에 앉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건민이 창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을 시켰다.

 

“우리야, 저기 봐봐.”

 

우리가 부드럽게 고개를 돌려 건민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짙은 창해 위를 새하얀 뭉게구름이 덮고 있었다. 바다에 그늘이 지고 구름 밑바닥은 바다색이 반사되어 옅은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새카만 바위 절벽에 거칠게 몸을 내부딪는 파도를 보며 우리는 흥분과 설렘으로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냈다. 건민이 그녀의 손 위에 살포시 자기 손을 얹었다. 등받이에 기대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던 승수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현아는 일행이 다 떠나는 것을 지켜본 뒤, 콜택시를 불렀다.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요금이 더블로 붙는다는 말을 듣고도 상관없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돈 봉투와 쪽지 한 장을 내려놓으며 총무에 사퇴를 표시했다. 별장을 떠나면서 현아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재희가 끝까지 의리를 지켜주는 것, 절대로 승수에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이르지 않고 함구해주기만을 바랐다. 만약 자기가 재희라면 그리 오래가지 않아 입을 열겠지만 재희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분명 자기 입으로 맹세했다. 마음이 변한다 해도 맹세한 것이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택시기사가 틀어놓은 뽕짝이 현아의 잡념을 방해했다. 그녀는 그저 높푸른 하늘과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기분에 취했다. 누구보다 빨리 이 일에 발을 뺀 것이 기쁠 뿐이었다. 당분간 돌아가는 사태를 멀리서 지켜보았다가 일이 차차 잊어지면 그때 다시 승수에게 접근해야겠다는 게 현아의 계획이었다. 그녀의 계획은 시작부터 순조로운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한 번도 빨간불에 걸리지 않고 택시는 곧장 버스 터미널에 현아를 데려다주었다. “다음에 또 놀러와, 학생.” 택시기사가 거스름돈을 돌려주며 현아에게 인사했다. 현아가 밝게 “고맙습니다!” 하고 화답했다. 그녀는 총총 계단을 올라가 미리 봐온 시간대에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고 승차장으로 나갔다. ‘지금쯤 나는 다 잊고 신나게 놀고 있겠지?’ 어쩐지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자기 선택에 후회는 없었는지 현아는 개운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바깥 기온보다 거의 10도는 더 낮은 시원한 동굴을 구경 중인 승수의 무리는 현아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었다. 그들은 저마다 딴 생각에 빠져 이미 퇴색된 MT의 본의 따위는 버려버리고 어떻게든 새롭게 맞이한 국면에 적응하려고 아등바등했다. 더 이상 우리는 미운오리새끼가 아니었다. 그녀는 두 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어젯밤 사단을 벌인 공범들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동굴의 마지막 코스를 통과한 후, 모두 갑자기 밖에 나와 눈이 부셔했다. 다시 그늘로 옮겨가 겨우 눈을 뜨니 건민과 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나온 거야?”

 

승수가 물었다. 다들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주희는 보고 말았다. 맨 뒤에서 걸어오던 건민과 우리의 인기척이 사라져서 뒤를 돌아본 주희의 눈에 우리에게 입을 맞추는 건민이 보였다. 주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못 본 척을 했다. 그녀는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힘을 줘서 겨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려와 주희는 팔짱을 끼고 섰다. 우리가 건민의 마음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일까? 건민은 기어이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일까? 이제 더는 주희가 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진 걸까? 주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잘못 본 걸 거야. 눈에 뭐가 들어간 걸 빼주려는 것뿐이야. 정말 그뿐일 거야. 정말…….’ 주희가 겨우 마음을 다독이고 침착해질 무렵에야 건민과 우리도 눈을 찌푸리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주희는 건민 옆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에 자기 모습을 겹쳐보았다. 미란이는 차마 주희에게 다가갈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이 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승수가 건민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우리의 손을 빼앗아 잡고 성큼성큼 무리를 지나쳐 갔다. 아무도 예상치 못 한 일이었다. 재희는 질투심에 불타는 승수의 두 눈을 보고 감히 나서지 못 했다. 정말이지 이런 일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과 어울리지 않는, 유추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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