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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6)

탈고를 못 끝낸 장편소설

군중심리

 

“괜찮아, 괜찮아.”

바닥에 엎어져서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데,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민석이가 달려와 내 앞에 가까이 와서 무릎을 굽히고 달래는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높은 환호성이 잇따라 들려오고 벌써 세 번째 주자가 날카로운 모래알을 사방으로 튀기며 주저앉아 있는 나를 지나쳐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7반은 계주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음을 뚫고 “괜찮아. 이승민, 잘했어. 괜찮아.” 민석이의 변성기가 막 시작된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전신을 찌르르 훑었다.

“안 일어날 거야? 빨리 가야지. 시간 다 됐어.”

체육대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어달리기가 거의 결판이 난 모양이었다. 노란색 바통이 멀지 않은 곳에 흙투성이가 되어 떨어져 있었다. 누가 1등을 했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 뒤통수에 꽂혀 있을 원망의 눈초리가 두려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야말로 민폐, 불명예의 마스코트, 오욕의 MVP였다.

“정말 안 일어나? 버스 놓쳐도 난 모르는 일이다.”

그래, 나 같은 잡것이 어딜 수학여행에 낀다는 말인가? 자고로 학급의 명예를 드높이지는 못 해도 추락시키지는 말아야 그만한 권리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버스, 놓쳐도 난 모르는 일이지. 수학여행, 그것도 그래. 가만, 수학여행은 이미 다녀왔잖아, 민석아? 아니지, 그 일은 벌써 중학생 때 일이야. 그럼 오늘이 며칠인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언니, 진짜 늦는다고! 나 먼저 학교 간다!”

주유소 풍선 인형보다 더 빠르게 허리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 며, 며, 몇 시야!”

 

아무튼 김민석은 꿈자리에서도 도움을 주는 인간이 아니다. 하필이면 이런 날,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꾸다니, 무슨 조화인가. 치솟는 여성호르몬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리할 때가 다 돼가기는 해서 가방에 일회용 생리대도 한 묶음 챙겨왔다. 하지만 제발 수학여행 도중 생리가 터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 바란다. 아직은 특별한 징후가 보이지 않으니까 당분간은 안심이다. 이미 몇몇 애들이 어제나 그제부터 시작했다며 징징대고 있었다. 그럼 어떤 애들은 자랑하듯 ‘난 이미 지난주에 끝났어.’하는 둥 염장을 지른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혹시라도 얼마 전에 시작한 여자애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분 탓인지 대비라도 하듯 마음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적어도 원치 않는 날짜에 갑자기 터지지 않고 하루, 이틀 정도는 건너 띄고 시작하는 행운이 따를 때도 있다. 다른 친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생리라는 게 약간은 ‘조절’이 가능한 것도 같다고 말이다.

이 주부터 춘추복과 하복 자율 선택이라서 이왕에 기분도 낼 겸 장 안에 고이 넣어둔 하복을 입고 등교를 하니,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나풀대는 듯 몸이 가벼웠다. 0교시가 없는 2학년들만 학교 근처에서 한적하게 등굣길에 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하복보다 춘추복을 입고 온 친구들 비율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소운동장으로 올라갈 때까지 내가 발견한 ‘하복인자’는 6명뿐이었다. 나는 차라리 이 편을 더 즐긴다. 춘추복, 하복 자율선택이라 하여도 아이들은 슬금슬금 남의 눈치를 보며 대중의 취향을 따라서 춘추복과 하복 중 대중이 더 많이 선택한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만하면 날씨가 엔간히 따뜻해지기도 했고, 여러 겹 입어야하는 춘추복에 비해 하복이 간편하고, 사실 디자인도 하복이 더 나은 편이라 나는 수학여행 동안 여러 장 찍을 사진도 미리 고려해서 하복을 택했다. 나한테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는 부분이 1%도 없지는 않지만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내 취향이 아닌 대중의 취향에 편승하는 건, 사실 성격 상 무척 짜증나는 일이다. 누구나 다 똑같은 모습을 한 구성원들을 머리로 떠올리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아주 세밀한 부분을 콕 집어내며 ‘저 자가 나를 따라하고 있군!’하는 식의 근거 없는 오만을 품는다.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승민!”

승현이의 목소리다. 출발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시각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초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아침 시간의 학교 복도는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난간을 붙잡고 뒤돌아보니, 승현이도 나와 같은 하복차림이었다. 1학년 때도 종종 보았던 모습이지만 지금 다시 보니 정말이지 감회가 새롭다. 그때와는 어쩐지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한다. 머리를 많이 길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많이 길렀다고 해도 항상 하던 짧은 상고머리에서 좀 더 기른 정도라 하얗고 끝이 동그란 귀는 여전히 밖에 드러나 있었다.

“밑에서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나 불렀어?”

“너 저번에도 불렀는데 못 듣고 그냥 가더라.”

“언제?”

“지난주였나?”

그랬던 걸까? 세월을 축내는 데에는 내 몽상가 기질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거였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를 쫑긋 세우고 고대하던 승현이의 말을 벌써 몇 차례나 바람 따라 흘려보냈을까?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내 환상 속의 승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없이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현실의 같은 반 승현이는 좀체 알아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역시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승현이가 나와 내 친구들을 조금은 구별해서 대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승현이가 나를 제외한 내 친구들, 그러니까 율희, 지연이, 진아, 선우, 율령이에게 나한테 그러듯 스스럼없이 말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승현이는 처음 나와 말을 틀 때도 그랬듯이, 나를 원래 알던 친구처럼 대하는 구석이 없잖아 있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내 중심적으로만 생각한, 또 다른 일종의 망상이라면 빨리 소각해버려야 하겠지만 급하게 말을 꺼내 남들의 의중을 묻기에도 나에게는 예민한 문제였다. 친구들 입에서 자연히 그런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착각이 아니기만 빌고 있다. 착각만 아니라면, 승현이 진짜 속내가 어떻든 좋은 의미라고 무작정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싶다. 왜 아닐까? 이보다 좋은 징조가 또 있을 리 없다.

“우리 학교 여자 하복은 예쁜데, 남자 하복은 왜 이래?”

“왜? 남자도 난 예뻐 보이는데……. 너 머리스타일하고 잘 어울려.”

“이 머리랑 잘 어울린다고?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근데 짧았을 때가 좀 더 어울리긴 해.”

“그래? 우리 아빠가 엄해서 나 맨날 강제로 반삭 당한 거잖아. 이 머리도 간신히 길렀어. 좀 있으면 또 미용실 끌려갈 거야.”

“그런 거였어? 짧은 머리 좋아하는 줄 알았지. 넌 두상이……!”

‘헉! 미쳤나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2학년이 되고나서 하복은 오늘에야 처음 입는 건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두상이 뭐?”

“두상이…… 예뻐서 괜찮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빨갛게 익어간다. 그럼에도 벌어진 입은 더 이상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뭐야, 갑자기? 쑥스럽게…….”

승현이가 또 다시 하얗고 고른 이를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미소 짓는다. 교실에는 나와 덜 친한, 그리고 승현이도 덜 친한 애들 무리가 조금조금 떨어져 앉아있었다. 같이 계단을 올라온 김에 나는 승현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건데, 역시 말이란 하면 할수록 깊이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수렁이었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승현이를 알지만, 승현이는 나를 모르는’ 그런 부류에 껴있는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저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른다면 공평하다. 하지만 나만 너를 알고, 생각하고, 기다린다니, 그리고 모두가 너만 알고, 생각하고, 기다린다니, 생각만으로도 억울하다. 전부 다 말짱 꽝이 되어버렸다. 이로써 승현이는 내 속내를 전부 간파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작년에나 하고 있었을 인상착의를 여전히 기억하는 여자애, 결국 너도 내 수많은 팬들 중 하나였구나.’ 그나마도 없던 관심이 싹 씻어지겠지.

나는 승현이의 인사치레를 휴지통에 구겨 던지듯 뒤돌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실은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서 어서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지경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허둥지둥 화장실로 도망치는 내 뒷모습을 보며 승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러나 거울로 들여다본 얼굴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하나도 빨갛지 않았고 그저 무덤덤한 평소의 이승민이었다. 엉뚱한 쪽에서 화장실에 들어온 보람이 한 가지 생겨났다. 잠시 승현이와 노닥거리는 동안 이성의 끈을 놓음과 동시에 생리를 압박하던 정신체계가 무너져 내린 틈을 타,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이건 완전히 덜렁대는 여자애가 터진 생리 수습하러 말하던 도중에 화장실로 튀어간 모양새였다. 모처럼만에 긴 대화, 이것 하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보다.

 

대운동장에 모일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율희나 다른 친구들은 감감무소식이라 우리 반 아이들을 좇아 뒤따라갔다. 저기 앞장서서 걷는 승현이네 무리가 재진이 어깨에 팔을 얹고 헤드록을 걸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내 옆자리, 3분단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재진이는 두꺼운 뿔테 안경 속에 자그마한 눈을 숨기고 묵묵히 지내는 애였다. 1학년 때의 승재와는 분위기가 달랐지만 친구를 사귀지 않고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면은 비슷했다. 승재는 중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한 신장에 목소리도 작은, 전형적인 소극적인 남자애였다면 재진이는 겉만 보아서는 너무 멀쩡해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 애였다. 목소리도 굵직하고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혼자 뒤처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까이에 앉은 주환이가 말을 걸거나 물건을 빌려달라고 할 때는 까다롭게 굴지도 않고 무난하게 나왔는데, 어째서 친구가 없는지는 더 살펴봐야 알 것 같았다.

헌데 이번 수학여행을 위해 선생님이 이동하거나 공지를 전달하고, 또 관리해야 하는 머릿수가 많은 만큼 모든 일을 할 때 수월하고자 6명이나 최대 8명씩 조를 짜자고 의견을 내셨다. 그러시면서 선생님은 왜인지 재진이를 승현이네 무리에 일방적으로 넣으셨고, 승현이네 애들도 좋게 받아들이면서 벌써부터 재진이가 어색해하지 않게 서로들 장난을 걸고 있는 거였다. 재진이는 애들이 머리카락을 마구 부비면 표정도 하나 변하지 않고 머리를 정돈했고, 옆에서 툭툭 치면서 농담하는 말을 걸면 밀쳐지는 대로 옆으로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내 눈에 재진이가 어떤 애인지 한 꺼풀 벗겨져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수완 좋은 녀석들로 뭉친 승현이네 무리니까 어떻게든 재진이와 지내는 동안 녀석을 무장해제 시키든 사방에 쳐둔 벽을 무너뜨리든 할 게 뻔했다. 승현이네 애들 중 찬영이라고 생김새는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대체로 긴 편이라 차가운 인상인데, 그런 겉보기랑 다르게 농담을 아주 맛깔스럽게 하는 녀석이 재진이를 뒤에서 껴안듯이 걸어가며 또 뭐라 뭐라 어처구니없을 만한 농담을 던지자 재진이가 입 꼬리를 올리다가 얼른 뭉개버리고 표정 관리하는 것을 나는 얼핏 보았다. 남자애들의 살가운 스킨십을 뒤에서 엿보자니 나는 잠시잠깐이지만 남자로 태어나지 못 한 것이 아쉬워졌다. 그러나 여차저차 생각해보면 역시 나는 여자애여야 했다. 승현이를 생각하면 그랬다.

 

친구들은 운동장에 반마다 줄을 맞춰 서는 동안에야 나타나 상봉했다. 기숙사 식구인 선우와 율령이는 아침 일찍 외출해서 24시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왔다고 했다. 우리끼리 말은 안 해도 다들 남자애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율령이는 평소 쓰고 다니던 안경은 어디 두고 콘택트렌즈를 껴서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둘 다 속눈썹을 한껏 말아 올려놓고 여간 깜빡이는 게 아니었다. 얼굴은 어제보다 한 톤 밝아졌다. 나는 화장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다. 아침에도 너무 늦게 일어나서 어젯밤에 동생에게 억지춘향 시키듯 약속을 받아낸 메이크업을 하나도 받지 못 하고 말았다. 나야 바쁘지 않았지만 동생은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가야 했다. 하나 둘 등장하는 친구들이나 주변에 줄 서있는 여자애들 얼굴을 보아도 무채색의 얼굴은 나 하나뿐이었다. 율희는 버스에 타면 거기에서 간단하게라도 치장을 시켜주겠다고 나를 위로했다. 어떻게 해달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율희가 먼저 내 마음을 읽었다.

“버스 엄청 흔들거릴 텐데?”

“베이스만 해줄게. 버스 흔들려도 상관없어.”

미리 정한 대로 우리들은 차례로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채웠다. 자리를 정할 때 맨 뒷자리를 차지할 줄 알았던 승현이네 애들은 예상을 깨고 오히려 중간쯤을 요구했다. 승현이네가 맨 뒷자리를 양보하자 유리네와 병우네가 그 자리에 섞어 앉았다. 이미 병우네 애들 중에 유리네와 사귀는 커플도 벌써 몇 생겨났었다. 반장인 현아와 병우가 우리 반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2학년이 되어서 처음 알게 된 사이인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호감을 싹 틔우고 금방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현아와 병우 커플을 보면 사랑하는 사이라기보다 코드가 잘 맞는 친한 친구 사이 같아 보이고 옆에서 지켜보는 측면에서 그다지 설렐 만한 요소도 없어 보였다. 병우는 너무 폼을 재는 편이었고 현아는 목소리가 크고 심각하게 밝은 성격이 반장이라는 완장을 차게까지 했다. 나 역시 현아에게 투표를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현이가 반장 후보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내 친구들도 어느 정도 권력욕을 언뜻 내비칠 때가 있어서 상당히 골칫거리가 될 것도 유념해야 했다. 승현이는 생각보다 나서는 일은 별로 좋아하질 않았고, 승현이네 애들 중에서는 찬영이가 거의 행동대장 역할이었다. 다만 요번에 버스 자리를 따질 때에는 승현이가 자기 친구들을 주도해서 중간쯤으로 맡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승현이가 수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와 율희 뒷자리가 재진이와 건희의 자리였다. 그 옆이 승현이와 태민의 자리였고 그 앞에 지연이와 진아가 앉아있었다.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마치 우리가 승현이네 무리와 같은 급이 된 것 같았다. 내 앞에는 교실에서처럼 주환이와 그와 가장 친한 사이인 성준이가 앉아서 새로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율희가 바삐 손을 놀리며 창가에 앉아있는 내 얼굴에 슥슥 크림을 바르고 콤팩트를 꺼내 이마와 볼과 코에 부지런히 솜을 두드려대는 동안 나는 성준이와 주환이의 대화를 엿들었다.

“눈 감아 봐. 아니, 너무 꽉 감지 말고, 봐봐, 이렇게 살짝.”

율희가 시키는 대로 나는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살짝 떴다.

“너네 뭐하냐?”

성준이의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떠 확인을 해보니 성준이가 의자 위에 올라가 뒤돌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 주환이도 싱글거리며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승민, 눈 감아야지!”

“야, 얘네 찍어봐.”

“어, 그럼 성능 시험 차 한 번?”

성준이가 카메라를 들이댔는지 율희가 내 얼굴에 분을 칠하다 말고 “꺅!” 소리 지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능숙하게 카메라 앞에 브이를 그려주었다.

“건희도 찍혔다. 야, 반율희, 너 안 찍어줄 거야. 오버하지 마라.”

“봐봐!”

뒤에 있던 건희가 불쑥 일어나 팔을 율희 등받이에 기대 올리며 성준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몸을 일으켜 성준이가 건네준 카메라를 들고 건희와 찍힌 사진을 구경했다. 성준이의 카메라 속 내 얼굴이 낯설어보였다. 작년 종업식 때 서둘러 찍었던 단체사진 속의 내가 아니었다.

“오! 이승민, 사진발 잘 받는다.”

“진짜? 나도 볼래.”

율희가 일어나 사진을 구경하더니 다시 성준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다시 찍어줘. 아까는 준비가 안 됐었잖아.”

카메라를 돌려받으며 성준이가 혓바닥으로 ‘딱!’ 소리를 냈다. 율희가 최대한 내 얼굴 뒤로 목을 빼며 팔짱을 꼈다. 예뻐 보이려 표정을 꾸미는 율희의 옆모습을 보다가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망해서 율희는 나를 툭 밀쳤다.

“나도, 나도!”

우리가 웃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옆자리 지연이와 진아도 재빨리 카메라 앞에 쪼그려 앉았다. 건희가 승현이와 태민이를 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고 그 애들까지 이쪽으로 다가왔다. 성준이는 점점 더 몸을 뒤로 빼 렌즈 안에 사람들 얼굴이 다 들어가게 조절했다. 마지막으로 주환이가 “준이, 잠깐만!” 하며 진아와 지연이 앞에 주저앉았다. 주환이가 ‘준이’라 부른 성준이가 말도 없이 셔터를 눌러버렸고 남자애들은 성준이의 카메라를 빼앗다시피 가져가서 사진을 돌려보았다. 사각형 액정 안에 8명의 얼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좀 웃기게 보이기도 했다.

“김성준! 우리도 찍어줘!”

맨 뒷자리에 현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시험 삼아 찍으려던 사진 한 장 때문에 성준이는 우리 반 전담 찍사(사진사)가 되고 말았다. 버스운전 기사 바로 뒤에 앉아 계시던 담임선생님까지 성준이를 호출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 하셨다. 한바탕 이 사람, 저 사람 주문대로 사진을 찍어주고 자리로 돌아온 성준이는 한숨을 내뱉으며 “나 괜히 산 것 같지 않냐?” 라고 주환이에게 말했다. 성준이는 어땠는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출발부터 아주 순조로운 기운을 느꼈다. 이대로 버스가 오래오래 달리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희는 내 입술에 마저 색을 칠해주고 그것 하나로 벌써 지쳤다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땡큐.”

“뭐 했다고 벌써 힘드냐? 우리 가려면 아직 멀었지?”

“당연하지. 야, 의자 좀 조금만 올려라.”

뒤에 앉은 건희가 덤덤하게 율희에게 대답했다.

“너한테 안 물었거든?”

“그래도 의자는 올리셔야지.”

“드르렁 드르렁 쿨쿨!”

“에효! 됐다! 이승민, 이런 애랑 놀지마.”

“이런 애? 내가 뭘?”

 

율희와 건희가 툭탁거리거나 말거나 나는 주환이에게 mp3를 빌려서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로 바깥에 자그마한 논과 농가가 산줄기 밑에 갈라진 길을 사이에 두고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지나는 산마다 잎사귀의 초록물이 짙어져가는 나무들이 바람이 불면 기분 좋게 가지를 흔들며 치어리더의 수술처럼 부서지듯 빛깔을 달리했다. 수학여행을 위해 준비한 건지 전부 다 새로운 노래로 mp3 음악 목록을 업데이트한 주환이의 센스가 느껴졌다. 율희는 아예 몸을 돌려 앉아 승현이네와 노닥거리기를 시작했고, 지연이와 진아도 고개를 쭉 빼고 그들 놀이에 동참하는 것이 곁눈으로 보였다. 선우와 율령이는 챙겨온 먹을거리를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먹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간혹 이어폰을 뚫고 여자애들의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와 음악 감상을 방해하곤 했지만 나는 겉돌 때도 늘 그랬던 것처럼 들뜬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기에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율희가 자리를 비우고 돌아다니며 남자애들과 노느라 나를 완전히 잊은 듯이 보여도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기엔 주환이의 선곡이 너무 좋았고, 나는 차창 밖 풍경과 분위기에 단단히 취해버려서 옆에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뭐 들어?”

왼쪽 이어폰이 쑥 빠져버렸다. 나는 순간 흠칫 놀라서 떨어진 이어폰을 주우려고 했지만 한쪽 이어폰은 내 옆에 앉은 승현이의 손에 들려 있었다. 희한하다. 이렇게 가까이에 앉아있는 승현이의 얼굴을 보는 일이 너무나 희한했다. 나는 그저 흐흐 웃으며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들킬까봐 팔짱을 껴서 손을 감췄다. 승현이가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고 하다가 끈이 너무 짧아서 내 오른쪽 귀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얼른 이어폰을 바꿔주었다. 승현이와 한 쪽씩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들었지만 아까와 같은 흥은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기만 했다.

“이 노래 좋다. 누구 노래야?”

나는 mp3를 들어 액정 화면에서 왼쪽 방향으로 흘러가는 글자를 승현이에게 보여주었다. 승현이가 그것을 눈으로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다리를 꼬더니 더 편한 자세로 바꿔 앉았다. 나는 그제야 승현이가 금방 다른 자리로 가지 않으리란 걸 느꼈다. 율희의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뒤에서 방정맞게 들렸고, 더 뒤쪽에서 유리네도 만만치 않게 소란을 떠는 소리가 들렸다. 앞자리는 거의 조용한 편이라 선생님의 곤히 잠든 얼굴이 기사 자리에 달린 거울에 반사되어 보였다.

“아, 맞아.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

잠자코 노래를 듣는 줄 알았던 승현이가 운을 떼었다. 내게 특별히 할 말이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나는 의아해서 승현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런 승현이의 눈이 일순 흔들리더니 광대를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너 나 몰라?”

승현이의 이 말은 나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했다. ‘모르다니, 넌 한승현이잖아. 우리 학교에 너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니?’ 내 표정이 그렇게나 우스운지 승현이가 개구쟁이처럼 키득거렸다.

“나 너랑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정말 기억 안 나?”

“초등학교 4학년?”

“하긴, 내가 그때 전학 와서 좀 조용하긴 했지. 그래도 우리 같이 장난도 잘 치고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논 적도 많은데…….”

우리가 이미 알던 사이였다는 말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랬다면 승현이를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승현이는 다른 아이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승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증언들은 빼도 박도 못 하게 바로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을 그대로 반추하고 있었다.

“네가 기억 못 하는 것 같긴 했어. 좀 섭하다.”

승현이의 입에서 ‘섭하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율희가 자기 본래 자리에 돌아왔다. 승현이의 팔을 잡아끌고 자리에서 일으키며 “내 자리 내놔!”하고 소리쳐댔다. 부랴부랴 귀에서 한쪽 이어폰을 빼며 승현이는 자기 자리로 쫓겨났다. 율희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아 컵 걸이에 걸어둔 음료수를 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 아직도 멀었어?”

율희가 내게 물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다 와가.”

 

어릴 때 가족여행 이후로 두 번째 와보는 동해바다가 우리들 첫 번째 여정이었다. 아직 바닷물이 차가울 때이지만 아침나절 내리쬐던 태양 볕이 백사장을 달궈놓아서 발바닥에 고운 모래가 부드럽고 따뜻하게 밟혔다. 신발 속에 양말을 구겨 넣어놓고 우리는 맨발로 천천히 백사장을 거닐었다. 움푹움푹 발이 모래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 걷기가 어려웠다. 어느새 바닷가에 가까이 간 유리네 애들이 병우네와 함께 모여서 성준이 이름을 크게 불러댔다. 유리네 애들 사진을 찍어주러 터덜터덜 걸어가는 성준이 뒤로 주환이와 그의 친구들 두 명이 따라갔고, 조 편성을 위해 억지로 짝을 맞춘 여자애 두 명도 쪼르르 쫓아갔다. 다른 반 애들도 해변을 따라 죽 둘러서서 물장구를 치고 밀려오는 파도에 맞춰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학생들, 여기 좀 보고 서볼래요?”

졸업앨범에 넣을 사진을 찍어주실 사진사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얼결에 우리는 아저씨의 삼각대 앞에 대열을 갖춰 쭈뼛거렸다.

“표정 더 밝게! 더더더! 옳지!”

볼따구에 경련이 일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사진을 다 찍고 우리는 마구 볼을 주물러 딱딱해진 얼굴을 풀어주었다. 선우와 율령이가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금방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더니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가 율령이가 불러주는 메일 주소와 학번, 이름을 적어가셨다.

 

이제 우리도 발이라도 적시자며 물가로 가는 길이었다. 민경이가 자기 반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멀리서 우리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율희에게 곧장 다가오더니 하이파이브를 하며 사진사 아저씨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았다. 율희는 친절하게 손을 뻗어 아저씨가 있을 법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콕 짚어주었다. 민경이 친구들은 우악스러운 말투가 민경이와 아주 비슷했다. 우리 반에는 저런 애들이 없는데, 어떻게 비슷한 애들이 한 반에 모여 있는지 신기했다. 아님 민경이와 놀다가 물이 들었을 것도 같았다. 작년에 율희만 해도 민경이와 비슷해보였는데, 지금 보니 영 똑같은 데라곤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었다. 민경이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가다 말고 다시 율희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우리 혀니는 잘 있어? 좀 친해져봐. 이제 맨날 보는 사인데, 안 그래? 친해지면 나한테도 꼭 소개시켜주기! 알지, 반율희?”

율희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율희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혀 어색한 사이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 같았다. 단지 반이 갈렸을 뿐인데, 율희는 3월 초반까지만 가끔 민경이를 보러 갔었다. 나는 그저 같은 반 친구들과의 친목이 더 중요해서 율희가 민경이를 보러 가는 횟수가 조금 줄은 줄 생각했다. 지금 보니 내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율희 입에 맴돌고 있었음이 보였다. 계속 내 머리와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승현이의 ‘할 말’이 비로소 떠나며 율희의 ‘비밀’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민경이가 친구들을 이끌고 사진사를 찾으러 율희가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바닷가 근처까지 갔지만 율희는 발을 적시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모래사장에 앉아 있겠다고 말했다. 선우와 율령이, 진아, 지연이는 민경이와 율희 사이를 별로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율희를 혼자 남겨두었다. 율희도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내가 옆에 있겠다고 했지만 율희는 한사코 말리며 친구들에게로 등을 떠밀었다.

 

율희를 남겨두고 먼저 발을 담근 친구들을 따라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발목까지 붕대를 감아놓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발가락을 자연스럽게 구부릴 수가 없었다.

“읏! 츠거!”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차갑기는 해도 물이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여름의 해수욕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풍덩!’ 저쪽에서 병우, 형주, 이런 애들이 유리네 애들 중 만만한 지혜를 물속에 빠트려버렸다. 지혜의 긴 머리가 미역줄기처럼 얼굴에 들러붙었다. 울상을 지으며 일어나더니 지혜는 깔깔거리며 포복절도하는 아영이를 끌어다 물에 빠트렸다. 얼굴을 못생기게 일그러뜨리며 아영이도 밀어닥치는 파도에 온몸이 적셔졌다. 그 다음 차례로 서로 엎치락뒤치락 차가운 물속에 교복을 적시며 몸을 처박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저지하러 뛰어온 선생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남자애들의 힘을 만만히 보고 달려온 고병권 선생님은 아예 머리부터 거꾸로 짜디짜고 차디찬 바닷물에 고꾸라졌다. 옷을 적신 친구들이 자기들만 손해를 볼 수는 없다며 나처럼 마른 옷을 입은 애들을 보면 달려와서 젖은 몸으로 꽉 껴안아 웬만한 애들 옷이 다 걸레짝마냥 너덜너덜 젖어버리고 말았다.

광란의 해수욕이 끝나고 선생님의 분부대로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여자애들은 버스로 돌아가 커튼을 치고 겉옷만 갈아입었다. 속옷이 젖어서 찝찝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별 수 없었다. 물에 완전히 몸을 담근 지혜나 몇몇 여자애들만 속옷까지 옷을 적셨고, 흠뻑 젖은 몸으로 껴안은 현아 때문에 나는 겉에 교복만 젖었을 뿐이었다. 남자애들은 옷가방을 들고 밖에 나가서 버스와 버스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 갈아입고 여자애들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고작 해수욕장 한 군데만 들렀다 오는데 우리 반 애들은 노곤해져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다들 곯아떨어졌다. 쌩쌩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담임선생님과 운전기사 아저씨뿐이었다. 선생님들 말씀이 바다에서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 계획이 아니었는데, 숙소에 도착하면 아마 해가 다 질 때라 일정을 바꿔야겠다고 하셨다. 해가 산등성이 뒤로 저물며 저녁노을이 하늘에 붉게 번져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앞과 뒤, 옆에서 코고는 소리와 깊이 내쉬는 숨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고 몸을 자꾸 뒤척거리던 율희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나는 노을과 마지막까지 눈부시게 빛을 쏘는 해를 바라보았다. 민소매로 갈아입은 드러난 내 팔뚝에 율희가 숨 쉴 때마다 콧김을 불어대서 가벼운 닭살이 돋아났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버스가 족히 10개는 넘는 터널을 지나갔다. 도무지 지겹지를 않았다. 음악 때문은 아니었다. mp3는 이미 아까 버스 출발 전에 주환이에게 돌려주었다. 지금은 주환이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조는 중이었다. 터널을 들락거리는 중에는 시야를 덮는 어둠과 광속으로 달리는 듯 귓가를 울리는 바람의 저항이, 모순되게도 버스 안을 아늑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리저리 몸이 쏠리며 오르던 도로의 경사가 조금씩 낮아지며 길도 직선에 가까워져서 숙소가 멀지 않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도로변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담장으로 둘러친 수목에 가려 보이지 않던 리조트가 높은 언덕 위에 풍채 좋게 드러났다. 버스가 줄줄이 입구로 들어와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정차했고, 선생님이 미리 잠을 깨워놓은 애들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지시하셨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부터 짐을 들고 차 밖으로 빠져나갔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뒷사람에게 밀려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 나가고들 있었다.

방 배정을 받기 위해 우리는 여자, 남자 따로 모여서 선생님이 객실 번호를 일러주길 기다렸다. 성별로 나뉘어 각각 두 방씩 주어졌다. 선생님이 숙소에서 받아온 키를 지금 금방 뽑은 방장에게 건네주시며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한다고 당부하셨다. 우리 방의 방장은 진아가 하기로 했다. 조용히 주환이네와 한 조로 다니던 여자애 두 명과 그 외에 셋씩 무리 짓는 여자애들이 다른 세 명 무리와 한 조였다가 방을 나눌 때에는 다시 셋으로 돌아와 우리와 한 방을 쓰게 되었고 나머지 세 명은 유리네 중 청명이가 방장을 하기로 한 방으로 가게 되었다. 남자애들은 작년이랑 비슷하게 중앙계단을 분단선으로 하여 A동 복도에 방이 있었고, 여자는 당연히 B동을 쓰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아예 분리된 별동으로 펜션에서 머문다고 하셨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구경할 겨를도 없이 짐만 내려놓고 식사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어야 해서 우르르 식당에 몰려갔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각자 떠다 먹게 되어 있었다. 넓은 접시와 포크, 숟가락, 나이프를 들고 다른 반 아이들 뒤에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서 음식을 퍼 담았다. 밝은 주황불빛의 은은한 조명과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도취되어 우리는 괜히 더 들떠 올랐다. 시끄러운 말소리에 음악 소리가 거반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아도 분위기는 이만하면 끝내줬다.

입가에 크림소스를 묻혀가며 친구들과의 허물없는 저녁식사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복을 입고 우리는 자매라도 되는 것처럼 편안한 차림새로 음식과 수다를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 입가와 눈가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동그란 테이블에 그다지 친하지 않던 같은 반 여자애 두 명이 합석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 중에 서형이는 웃음이 많았다. 나의 변변찮은 흰소리를 들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애의 웃음 때문에 전염이 되어서 나도 전에 없이 자꾸만 웃음을 흘렸다.

“반율희, 또 출동해 보실까?”

“너네 또 가게? 난 이제 포기야!”

“어허, 고작……. 이런 식으로 언제 본전 뽑는가? 일어나라, 제군들! 푸드 파이터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나는 장엄한 클래식 곡에 맞게 한껏 무게를 잡고 일어나 음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율령이는 포기를 선언했지만 내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응원을 하며 ‘행진’이라는 오래된 가요를 불러주었다. 율희가 충실한 부하라도 되는 것처럼 나와 동행했다. 슬리퍼 바닥에 닿는 푹신한 카펫의 감촉을 느끼며 행진하는 찰나, 히죽거리며 타이밍 그럴듯하게 민석이가 내 앞에 등장했다. 운동화가 아니라 슬리퍼를 신고 올려다보는 민석이가 전보다 크게 느껴졌다. 나를 내리누르는 그의 큰 코를 올려다보며 민석이를 가볍게 피해 몸을 옆으로 돌렸다. 가만히 있을 김민석이 아니었다.

“너 내가 다 봤어. 지금 여섯 번째지? 조금 먹는 척하더니 완전 대식가!”

“김민석, 너 뭐야? 웬 친한 척?”

나처럼 대꾸도 해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율희가 민석이를 더욱 거들어주었다. 날카로운 덧니를 슥 드러내며 민석이는 내 뒤를 졸랑졸랑 쫓아왔다. 내가 뭘 풀 때마다 생중계를 하며 도통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밤, 나는 녀석에게 괜한 감정을 소비하여 즐거운 하루를 망치지 않을 셈이었다. 혼자 백 마디를 떠들라면 떠들라지! 정말이지 내 방법이 먹혔는지 민석이는 어느새 옆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율희가 내게 바짝 붙으며 소곤거렸다. “쟤 왜 저래?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했지만, 그냥 입만 삐죽 내밀고 말 뿐 나는 큰 모션은 삼갔다. 이게 내 나름의 삶의 지혜였다.

“우리 근데 진짜 여섯 번째냐?”

율희에게 물은 것은 그게 다였다.

“나도 모르겠는데?”

율희와 나는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리조트에서 준비한 레크리에이션을 보러 2학년 모두 지하에 있는 대연회장으로 내려갔다. 소문으로 듣자니 장기자랑을 준비해 온 친구들도 있다고 했고, 복도 끝에는 댄스 동아리 애들이 옷을 단체로 맞춰 입고 모여 있었다. 일이 잘못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제 막 쇼가 시작되어서 나는 하루 종일 끌어 모았던 흥분을 토해내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열렬히 고함을 지르며 무대를 향해 환호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증폭된 음악소리, 눈을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이 켜지고, 어깨동무를 하고 소리를 질러댈 친구들이 벌떡벌떡 몸을 세우며 내 손을 잡아끌고 일으켰다. 입을 크게 벌리고 환호성을 지르려는 순간, 배를 짓누르는 복통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어디에서 찬바람이 부는지 이마가 싸하게 식어갔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나는 진아를 제일 먼저 찾아다녔다. 이미 지연이, 율령이 손을 잡고 방방 뛰는 진아를 다급하게 돌려세우며 “방 열쇠 줘…….” 간신히 말을 짜내었다. 애들이 걱정스럽게 나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별 일 아냐. 나 배 좀 아파서 방에 가있을게. 따라 오지 마.” 내 말에 지연이가 장난스럽게 비웃으며 “아, 뭐야. 난 또 어디 아픈 줄 알았네. 빨랑 가서 똥 싸!” 말을 내뱉고 휙 돌아섰다. 율령이도 웃음을 터뜨렸다. “너 아까 여섯 그릇 먹을 때 알아봤다! 빨리 해치우고 오셔.” 나는 웃을 기력이 없어 열쇠를 가지고 방으로 올라갔다. 율희만 나를 부축해주러 따라 올라왔다가 간호를 해주겠다고 해서 그것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도로 내려 보냈다. 친구들 말처럼 화장실 볼일 문제인가 싶어서 좌변기에 오래 앉아보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듯 했다. ‘결국 터졌네.’

아직 쇼의 오프닝도 끝나지 않았을 시점에 나는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몸져누워야 했다. 모로 누워서 한참을 뒤척여도 아랫배의 싸한 통증이 쉬 가시질 않아 나는 속으로 끙끙대던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신음했다. ‘똑똑똑’ 세 차례의 노크소리가 이 방을 울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좀 덜 아플 것 같았다. 애들이 아무래도 걱정되어서 올라온 듯 싶어 아픈 몸을 일으켜 문가로 다가갔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자, 문 앞에 생각지도 못 한 사람이 서있었다.

“네가 왜 왔어?”

나는 아파서 찡그린 얼굴로 민석이에게 물었다. 민석이는 문 앞에 멀뚱히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왠지 아무 말 없이 서있는 녀석이 무섭게 느껴져 나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민석이가 닫으려는 문을 한 손으로 잡아 세웠다. 아까와 다른 식은땀이 등에 맺혔다. 무표정한 얼굴에 빛을 잃은 작고 검은 두 눈동자. 뭐하는 짓이냐고 말하고 싶은데 힘이 빠진다. 현기증이 나려는 것 같았다. 쓰러지면 안 되는데, 그냥 무조건 안 되는데,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눈을 다시 뜬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후였다. 겨우 1, 2분 정도 흘렀을까 싶었다. 정신이 차차 돌아오며 아직 눈을 뜨기 전부터 나는 상황이 파악되었다.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 이부자리에 눕혀 놓은 민석이가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고 옆에 앉아서 간호사 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민석이에게 말했다.

“네가 왜 왔냐니까……?”

목이 잠겨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나는 헛기침을 했다. 민석이가 말없이 내 이마에 얹은 물수건을 반대쪽으로 바꿔서 다시 얹어주었다.

“야, 나 열 안 나. 열 날 때나 물수건 올리는 거지……. 축축하니까 좀 치워라.”

“넌 사람이 걱정이 돼서 도와주는데 고맙다는 말은 안 하고…….”

“나는 네가 제일 무서워. 아픈 건 어떻게 알았는데?”

“너 얼굴 새하얗게 변해서 올라가는 거 봤다, 어쩔래?”

“넌 나만 쳐다보고 있냐?”

“…….”

아뿔싸! 이런 해서는 안 될 말을, 정신이 없는 와중이라 어쩔 수 없다 셈치고 나는 다시 쥐죽은 듯 침묵했다. 10초 정도 적막이 흐르자 녀석이 어색함을 못 참고 입을 뗐다. 하지만 역시나 허튼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너 사귀는 애 생겼지? 같은 반에…….”

“저번부터 뭐라는 거야, 진짜?”

“3층에서 같이 다니는 거 여러 번 봤거든, 내가!”

“그니까 누구 말하는 건데?”

“몰라! 명찰 보니까 ‘박주환’이라고 써져있었어. 맞지, 걔?”

머리가 띵 해진다. 아랫배 아프던 것은 어쩐 일인지 아까보다 덜 아파서 참을만해졌다. 문제는 내 옆에서 계속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터뜨리며 사람 골 아프게 만드는 김민석이었다. 같이 몇 번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나와 주환이를 엮어버리다니, 정말 초등학생보다 못한 발상이 아닌가! 나는 기가 차서 웃음이고 말이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그냥 한숨만 허탈하게 ‘허’하고 새어나왔다.

“암튼 이제 나가. 너 땜에 더 아파져.”

“부정도 안 하는 거 보니 맞네. 너 그런 스타일 좋아해? 남자가 보기엔 그렇게 좋아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난 쫌 실망이다. 그런 흔한 얼굴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푸하하하!”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서 나는 그 반동으로 일어나 앉았다. 민석이가 웃고 있는 나를 어벙벙하게 쳐다보았다. 주환이를 흔한 얼굴이라고 명명한 민석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욱 웃음이 나와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왜 웃어?”

민석이가 겁먹은 떠돌이 개처럼 눈을 뜨고 물었다. 나는 덕분에 기사회생해서 아픔이 싹 가셔버렸다.

“아니, 왜 네가 실망을 해? 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얼마나 웃긴 줄 알아? 난 너처럼 그렇게 말 못 해.”

“그냥 내 생각이니까 말하는 건데 뭐가 어때?”

“넌 하나도 안 이상해? 안 불편해?”

“뭐가 이상해? 이런 걸 이상하게 보는 네가 더 이상하지.”

“그러냐? 근데 주환이가 어디가 흔한 얼굴이라는 거야? 걔 너보다 훨씬 괜찮게 생겼어.”

“그건 네 기준이겠지. 남자들은 그렇게 이도저도 아니게 생기면 별로 존재감이 없다 해.”

“말도 안 돼! 네 말은 하나도 못 믿겠어.”

“걔 나보다 키도 작더만.”

“키가 뭐가 중요해? 주환이가 얼마나 착한데.”

“뭐? 착하다고? 나보다 착해? 나야말로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겨우 1년, 아니지, 겨우 몇 달 잘해준 걔가 나보다 착하다고?”

나는 다시 슬슬 겁이 나고 있었다. 민석이의 대화에 말려들어가기 전에 그만두어야 했다. 가서 친구들이랑 파티나 즐길 것이지 여기 앉아서 왜 나하고 만담을 늘어놓고 있는 건가?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김민석이라지만 이렇게 늦은 저녁에 남자애와 단둘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불을 덮고는 있었지만 나는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에다가 엄마 몰래 산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점점 벌거벗은 기분이 들며 부끄러워졌다. 민석이가 나를 어떻게 들어서 여기에 눕혔는지 궁금했다. 정신을 잃은 동안 감히 내 몸에 손을 대기라도 했다면 아주 곤죽을 내주고 싶었다.

“암튼 나 걔랑 안 사귀거든. 남자친구는 무슨 남자친구야? 혼자 이상한 오해 좀 그만하고, 내가 방에서 나가라고 몇 번 말했지?”

“그럼 왜 같이 다녀?”

“친구니까! 그만하고 나가라고. 너 이거 엄청 실례야.”

“그럼 나는 왜 피해? 난 친구 아냐?”

“네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갈 거야. 빨리 나가. 진짜 걱정 돼서 온 거 맞아?”

“그럼 나 말고 누가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또 있겠냐?”

“알겠으니까 그만 좀 나가라고.”

“그럼 나랑 사귈래?”

‘뭐?’

“야, 장난이야! 나 빨리 갈게. 또 아프면 오빠 불러라!”

어느 때보다 빠르게 민석이가 자리를 피했다. 흡사 놀라서 달아나는 똥개 한 마리 같았다. 나는 순간적이나마 얼음장보다 차가워졌던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 민석이의 표정을 곱씹었다. 녀석의 허튼소리는 적응이 안 된다. 아까의 것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다. 망치고 싶지 않은 하루였는데, 아까웠다. 민석이의 사심이 내 속에서 확신으로 돌아설까봐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니다. 민석이는 장난이라고 했다. 그 애가 장난이라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장난에 불과하다. 민석이가 더없이 싫어지고 미워지면 안 된다. 민석이는 그냥 김민석이어야 한다. 만약 이 애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고 말 것이다. 절대로 녀석이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에 들어서는 끔찍한 결말을 가져올 수야 없다. 전부 다 거짓말, 전부 다 장난일 뿐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로써 결국 오늘은 망쳐지고 말았다. 승현이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기엔 내가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너무 많은 좋은 일들이 오늘 하루 동안 있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그래, 오늘을 잊자. 잊어야겠다.

 

바싹 마른 모래가 발길질을 당할 때마다 풀썩이며 먼지를 일으킨다. 학교 담벼락 부근에 심겨진 나무에는 매미가 붙어 사이렌 울리듯 울어댄다. 볕이 너무 뜨겁다며 허약 체질이라는 여자애 두엇은 그늘막이 쳐진 스탠드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나마 덜 더울 것이다. 체육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맞춰 골대에 공을 차 넣는다. 더위에 긴장까지 겹쳐 상당히 피로했다. 앞에 선 아이가 찬 공이 ‘푸르르’ 힘없는 소리를 내며 골대 근처에도 못 가고 멈춰버렸다. 내 순서가 되었다. 골대는 그늘 아래 있었지만 나는 직사광선을 마주보고 있어서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발 앞에 공이 어디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해야 했다. 선생님이 준비가 되었느냐고 소리쳤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삑!’ 호각소리에 놀란 짐승처럼 나는 공을 향해 돌진했다. 힘껏 오른발을 휘둘러 정확히 공의 정중앙을 맞추려고 했다. ‘쿵!’ 그러나 헛발질이었다. 온 힘을 다하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대차게 찧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매미 소리보다 크게 들려온다. 제대로 웃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체육 선생님까지 목젖을 떨며 “껄껄껄!” 큰 소리로 웃는다. 어떤 실패는 시도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데, 이런 실패에는 딱 한 가지만 남는다. ‘수치심.’ 웃음소리가 그치자 다시 매미 울음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그보다 해를 받은 검은 머리카락이 뜨겁게 달아올라 두피가 따끔거렸다.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음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해도 해도 너무 더운 날씨였다. 한여름의 실외 체육 수업은 아무리 생각해도 심했다.

방과 후 4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데 남자애들은 좀체 일찍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무리의 1학년 남자애들이 책가방을 스탠드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그러기엔 여전히 심하게 더웠는데도 말이다. 벌써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까맣게 탈 조짐이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교문 쪽 골대를 향해 반대편 공격수와 이쪽 편 수비수가 우르르 몰려온다. 요리조리 공을 드리블해가며 옆에서 불이 난 패스 주문도 무시하더니, 공격수 녀석의 눈이 날카롭게 변해 ‘슛!’ 공을 세게 찼다. 공은 직선이 아니라 부메랑처럼 휘어져 날아왔다. 운동장의 한 무리 소년들과 나의 눈이 동시에 천천히 회전하며 공중 부양하는 공에 박혔다. ‘퍽!’ 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진 회색 축구공이 내 품에 들어왔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중한 아기라도 되는 냥 공을 두 팔로 안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공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축구 소년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도 말 한 마디 꺼내지 않고 어리둥절 눈만 맞추었다. 가만히 있다가 드디어 이 굉장한 슛을 날린 장본인이 소리를 쳤다.

“공 좀 던져줘!”

그제야 까끌거리는 공의 감촉과 뜨거운 열기가 팔에 느껴졌다. 소리를 지른 남자애 옆에 다른 녀석이 냅다 내게로 뛰어왔다. 짧게 친 앞머리가 땀에 젖어 마구잡이로 죽죽 잡아 뜯은 잡초 같이 뾰족했다. 얼굴 옆선을 타고 흐르는 구슬땀, 달려오자마자 땀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보기만 해도 끈적거려 보이는 팔을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더니 남자애가 덧니를 드러내며 내게 물었다.

“너 배 괜찮아?”

나는 잠깐 배를 내려다 본 뒤 대답했다.

“응. 아무렇지도 않아.”

남자애가 ‘푸핫!’ 웃음을 터뜨리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그래도 겨우 내 눈썹정도 오는 키에 뒤통수에는 한쪽으로 쏠린 소용돌이 가마가 비스듬히 내려다보였다.

“초인이야?”

농담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나는 웃음기 없이 공만 건네주었다.

“어쨌든 미안! 내가 대표로 사과한 거다.”

“괜찮아.”

나는 빈손을 착착 털고 교문을 나섰다. 그러다 문득, 그냥 그러고 싶어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다. 교문을 지나서 언덕길을 내려가는 나를 남자애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야! 민석이, 뭐 하냐고! 빨리 공 가져와!”

운동장에서 그를 부르며 재촉하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지 남자애는 고스란히 남겨진 민들레 꽃씨처럼 가만히 서서 한 손을 들곤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녀석에게 고개를 가로 저어 인사해주고 차도를 지나 건너편 인도로 넘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다음에?”

“난리 났지. 다들 미쳐버렸어. 일어나서 물 뿌리고 빈병 던지고, 어떤 애는 너무 머리를 흔들어서 토할 것 같다고 밖에 나가고, 아까 누가 그랬지? 걔 진짜 토했다며?”

나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평소에 구경 못 할 희한한 구경들을 했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는 결국 전해 듣는 신세라니, 정말 내 인생은 변함없이 단출하다. 누구 하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줄 만한 일화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무서운 괴담 몇 가지만 가지고도 친구들을 놀라게 할 수 있었는데, 지금 그런 걸 하자고 말했다가는 유치해서 못 놀아주겠다며 방 밖으로 쫓아낼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연이가 마지막으로 씻고 나와서 턱 거울 앞에 앉아 능숙하게 얼굴에 크림을 발랐다. 헤어밴드까지 차고서 세수를 하다니,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 걸까? 그래도 지연이는 정말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갖가지 멋을 내고 세수를 하는 모양이 아주 그럴듯하고 익숙해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지연이 곁으로 다가가 크림 바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생리통은 좀 괜찮아?”

“그냥 참을만해. 너 로션 진짜 잘 바른다.”

“아, 이승민 촌스러워~”

촌스럽다는 말을 들으니까 나는 더 재미있어졌다. 그래, 넌 도시적이라는 거지? 도시적으로 구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유리네와 다른 방을 쓰는 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유리네 애들 사이에 껴서 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나는 정말 그랬다. 그 방 방장인 청명이만 해도 나는 그 애들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꿰고 있었고, 내 친구들이나 유리네나 사실 별다를 게 없었다.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차이 때문에 다르다고 착각하는 거였다. 아무도 자기를 촌스러운 짓으로 촌스럽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촌스러움과 도회적임은 한 끗 차이였다. 도회적으로 보이려는 촌스러움이 더 가당치가 않았다. 촌스러운 사람에게 촌스러움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게 또 있을까? 나는 내가 촌스러워도 당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도회적이고자 노력하는 저쪽 방 방장 청명이는 같은 중학교에다가 졸업학년인 3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었다.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한 친구가 다리를 놓고 있어서 어쩌다 한 번쯤은 친밀하게 대할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어울렸던 드센 친구들이 사실상 청명이네 무리와 평화 협정을 맺고 지낸 것이었다. 물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심하지 않은 정도로 서로가 견제도 하고 기 싸움을 했다고 한다. 기세가 너무 팽팽한 나머지 일찌감치 관두고, 서로 존중해주기로 태도를 바꿨다는데, 이 역시 나는 자세히 모르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러한 과거가 있어서 청명이는 지금도 나를 그때와 비슷하게, 혹은 그때보다 더 낫게 대해주었다. ‘더 낫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나의 평범함을 이제는 알아준다고 표현할 수 있다. 나로선 청명이의 조심스러움보다 지연이나 지금의 친구들이 아무런 잔머리도 굴리지 않고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청명이의 태도는 확실히 ‘비즈니스’스럽고 외교적이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외교에 능하지 않은 소인이었다.

 

지연이가 자기 얼굴에 바를 것을 다 바르더니 마지막에 바르던 크림을 내 눈가에 찍어주었다.

“이렇게 발라야 돼. 눈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지연이가 보여주는 대로 눈가에 크림을 문질러 발랐다.

“이게 무슨 크림인데?”

“아이크림. 눈가 주름 개선하고 노화 방지해주는 거야.”

“아~”

수학여행지까지 만화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선우가 베개를 배에 깔고 엎드려서 심각한 얼굴로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무슨 홈쇼핑 광고 찍어? 우리 나이에 웬 아이크림이야.”

“넌 수학여행 와서 웬 만화책인데?”

조금만 건드려도 발끈하는 성미의 지연이를 우리는 이제 슬슬 이해하고 파악해야 했다. 나와 선우는 눈을 맞추며 ‘히’하고 웃었다. 진아가 선우의 허벅다리를 베고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 심심해!” 절규하듯 한숨 섞인 소리를 질렀다. 방에는 내 친구들만 남아서 뒹굴며 나머지 다섯이 오기를 기다렸다. 서형이와 미나는 매점에 간다고 나가서 여태 들어오지 않았고, 나머지 세 여자애들은 레크리에이션 시간 이후로 보지 못 했다고 그랬다.

“A동 가서 기웃거리고 있는 거 아냐?”

내가 중얼거렸다. 한쪽 벽에 기대앉아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문자를 보내던 율희가 곧바로 반응했다.

“선생님들이 중앙계단에서 지키고 있을 텐데?”

“가봤자 뭐 할 것도 없는데…….”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지연이가 몸을 쌩 돌려 앉아 율희를 보며 말했다.

“걔네 좀 티 나지 않아?”

“뭐가?”

방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 같던 애들이 전부 지연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보나마나 진경이네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방을 쓰는 그 여자애들 세 명 말이다. 다들 알아들은 눈치였다. 짐짓 모른 체하며 진아가 반문했지만, 실은 그 얘기를 더 심도 깊게 나눠보자는 뜻이었다. 지연이가 방문을 흘깃 보다가 “제이 케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들 탄식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반 애들 다 알 걸? 심지어 남자애들도.”

“내 생각엔 당사자도 알 것 같더라.”

“무슨 얘기야? 누구 말하는 건데?”

제일 먼저 알아들었을 줄 알았던 율희가 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율희 옆에 옮겨 앉아 그 애 손바닥에 검지로 글자를 적어주었다. ‘한승현.’ 율희는 깜짝 놀라서 손을 뺐다. “왜 그래?” 율희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간지럽잖아.” 나는 또 ‘푸흐흐’ 웃어넘겼다. 지연이가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서 한쪽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솔직히 소문으로 들었을 때에나 ‘한승현, 한승현’ 했지, 가까이에서 맨날 보니까 그냥 그렇다.”

지연이의 눈은 자주 율희를 보며 얘기했다. 항상 잘 동조해주는 율희라서, 그건 지연이의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우가 가장 먼저 맞장구쳤다. “맞아. 나도 그래.” 선우는 일본 소년 만화책에 나오는 무게감 있는 중후한 캐릭터를 선호했다. 선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자기 취향이 너무 희소해서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이해한다고 선수 치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내가 봐도 멋있다.”하고 대답했다. 그게 선우와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선우는 한편으로 약간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미소년이나 만화책의 주인공 캐릭터에는 무관심했다. 내실이 없고 가볍다는 게 선우의 의견이었다. 편견을 편견으로 깨는 독특한 사고방식이 나에겐 인상이 깊게 남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에는 소극적이 되는 율령이와 진아는 입을 무겁게 지켰다. 대신에 진아가 다른 말을 꺼냈다. 율령이를 향해서 “넌 좋아하는 애 없어?”하고 다소 파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도 아니고, 지연이도 아니고, 율령이라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진아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율령이가 순간적으로 입이 굳어 대꾸를 못 하다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너무 심하게 어색해서 내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보아하니 율령이는 좋아하는 애가 있는 모양이었다. 공부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율령이가 누구를 좋아한다니, 그녀와 어울리지가 않았다. 율령이가 어떤 애를 좋아할지 궁금했지만 나는 율령이가 불편해하는 것을 느꼈고, 더 추궁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러나 지연이가 눈을 반짝 빛냈다. 선우도 읽던 만화책을 뒤집어놓고 율령이의 새빨개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놀라움의 웃음과 탄성이 함께 터져 나왔다.

“이거 너희들 정말 비밀이야!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시시한 결론이었다. 고작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과외해주는 대학생 오빠라니, 나만 빼고 다들 신나서 나이가 몇인지, 학교가 어딘지, 잘생겼는지, 키는 얼마나 큰지 신상 정보를 뜯느라 율령이의 혼을 빼놓았다. 그럼 그렇지, 율령이가 또래 동급생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율령이 눈에는 다들 수준 차이 나는 애들로만 보였을 것이었다. 율령이도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얘들은 그냥 동생 같애.” 선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제 이승민, 너 차례! 너 말해봐. 있어, 없어?”

갑자기 화살촉이 옮겨와 나를 겨누었다. 율희가 반달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당연히 지연이가 가만히 있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며 어딜 물어뜯을까 군침을 삼켰다. 아예 누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아 진아는 내 앞까지 가까이 와서 “어디 한 번 파헤쳐 보실까나?” 앙칼진 살쾡이 눈을 했다. 나는 율령이처럼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없어, 나는.”

“어? 그럼 걔는? 걔하고는 무슨 사인데?”

율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율령이가 “박주환 있잖아, 우리 승민이는.”라더니 혼자 한 말에 까르르 웃어댔다. 진아가 율희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누구?”하고 물었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율희는 내게 물었다.

“말해도 돼?”

나는 율희와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율희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내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았었다. 나의 대나무 숲은 오직 하나, 내 동생뿐이었다. 나야말로 율희가 말하는 ‘걔’가 누군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내 그런 얼굴을 해독했는지 율희가 조그맣게 이름 석 자를 끄집어냈다.

“김민석.”

율희의 말에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행인지 다른 애들은 민석이를 전혀 알지 못 했다.

“아! 나 걔 알아. 같이 영어 0교시 듣는 앤데, 안경 안 쓰고 키 이따 만한 애 말하는 거지?”

“어? 우리 같이 수업 듣는 걔? 7반인가, 6반인가?”
아니, 내 예상이 빗나갔다. 선우와 진아가 민석이를 알고 있을 줄이야. 그러나 어찌됐건 문제될 일은 없었다. 사실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오래된 친구라고 설명해주면 넘어갈 일이었다. 내가 막 사실을 정정해주려고 입을 떼려는데 율희가 내 말을 막고 다시 물었다.

“아까 둘이 뭐 했어? 방에서 단둘이.”

“뭐어?! 단둘이?”

나만큼이나 친구들이 놀라서 펄쩍 뛰었다. 율희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율희는 나를 방에다 부축해주고 곧바로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민석이는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내 방문을 두드렸다. 미리 음흉하게 숨어서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율희가 그럴 애가 아니었다. 콧잔등에 땀이 살짝 배어나왔다.

“헤! 이승민 얼굴 빨개졌어. 이게 진짜 무슨 일이래?”

“빨리 말해봐, 이승민! 궁금하잖아.”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회로가 꼬여버려서 혓바닥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게 우선이었다. 헌데 율희의 난데없는 질문 폭격이 전부 이해가 되질 않아서 여전히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버벅대느라 타이밍을 놓치는 동안 율희가 대변인이 되어 궁금증을 쏟아내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는데 이승민한테 유독 잘해준 애야, 걔가. 둘이 우리 반에서 제일 사이좋았어. 근데 이번에 반이 갈렸잖아. 그런데도 아직도 둘이 친하더라. 아까도 우리 밥 푸는데…….”

“어, 나도 봤어. 걔랑 승민이 얘기하는 거.”

점입가경이었다. 율희의 말을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었다. 사실 율희가 우리의 작년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그저 나 혼자 추측하기로, 율희 나름대로 민경이와 합심해서 나를 따돌렸던 일을 미안해하고 있을 것 같아 오히려 내 쪽이 조심하며 1학년 때 얘기는 삼가고 있었다. 물론 나로선 더더욱 꺼내기 싫은 얘기이기도 했다. 율희가 작년에 있었던 일 중에서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은 쏙 빼고 민석이와의 일만 얘기를 해줄 때, 나는 무기력해져 버렸다. 그것은 사실 그 자체였지만 율희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율희는 그렇게 해버리고 있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고민해봤지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팠다. 나쁜 뜻이 아닐 거라고 여기며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율희가 친구들에게 “다시 내려가는 길에 마주쳤는데, 승민이 어디 아프냐고 묻더라고…….”까지 말해주는 틈을 끼어들어 내가 말했다.

“율희는 모르는데 걔랑 나랑 벌써 5년 친구야. 솔직히 말하면 난 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걔가 계속 친한 척한다. 간신히 반 떨어져서 좋아했더니 아직도 가끔 그러는 거야.”

율희가 깜짝 놀랐다는 시늉을 하며 “5년?”하고 반문했다. 친구들이 “진짜 오래됐네.”하며 감탄했다. 질문은 그런다고 쉽게 사그라지진 않았다. 그럼 방에 걔를 진짜 들였냐?, “어.”, 왜 그랬냐?, “잠깐 기절했었어.” 모두의 궁금증을 풀어주자 친구들이 도리어 놀라서 위로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걔 착하네. 근데 왜 싫어해?”

“5년 동안 친한 척하는 걸 너네가 직접 당해봐야 알지.”

그제야 몇은 수긍하는 고갯짓을 해보였다. 삐거덕 문이 열렸다. 노크가 없어서 서형이네나 진경이네가, 아니면 그 둘이 다 돌아온 줄 알고 무심결에 문을 바라보았다. 열린 문으로 탈색된 갈색머리가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오늘 여러 번 예상외의 인물이 저 문 앞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하얗고 긴 얼굴의 찬영이었다. 엎드려 있던 선우가 벌떡 일어나 가지런히 아빠다리를 하고 찬영이를 보았다. 찬영이가 코밑을 검지로 슥슥 비비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너네 뭐해? 안 심심하냐?”

“어떻게 왔어? 선생님 중앙계단에 안 계셔?”

지연이가 되물었다. 찬영이는 손바닥을 포개 옆얼굴에 갖다 대며 자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고 있는 찬영이 밑으로 얼굴이 하나 더 나타났다.

“나태민! 너네 다 왔어?”

놀라서 진아가 묻자 문이 벌컥 열리며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녀석들이 방으로 들이닥쳤다. 승현이네 애들이었다. 무려, 승현이네 애들이었다! 아니, 그 뒤로 따라 들어서는 서형이, 미나 그리고 진경이네 애들과 주환이네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마치 유리네와 병우네를 반 전체가 따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애들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애들이 우리 방에 그득그득 모여 들긴 했지만 각자들 무어라 떠드느라 무엇을 할지 정하지도 못 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가고 있었다. 나는 율희와 구석진 자리에 무릎을 올리고 앉아서 방에 온 친구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TV장 앞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세운 무릎을 흔들던 찬영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D중학교 나온 사람, 손!”

율희가 슬쩍 손을 들었다. 선우와 몇몇 남자애들, 여자애들 거의 3분의 1이 손을 들어보였다. 그 중에 승현이도 껴있었다. 나는 율희 귀에 대고 작게 “너 한승현이랑 같은 학교 나왔어?”하고 묻자 율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D중학교 출신 친구들이 손을 내리자 태민이가 질 새라 두 손을 높이 들고 “나랑 같이 O중학교 나온 사람! O중학교! 이승민, 너 손들어!”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put your hands up!”하면서 두 손을 들었다. 내 말에 다들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었고 분위기가 한층 유연해졌다. 나 말고도 서형이, 미나와 남자애들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여중, 남중을 나온 애들이었다. 주환이가 남중을 나온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야, 솔직히 O중학교가 물 제일 좋다! 맞지, 얘들아?”

태민이가 큰소리로 동의를 구했다. 서형이, 미나는 수줍게 웃으며 친구들 뒤에 몸을 숨겼다. 물이 제일 좋은지 어쩐지 몰라도, 내성적인 애들이 많은 것은 분명해보였다.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남자애들도 하나마나하게 반응을 하자 태민이는 민망한 듯 뒷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우가 “딱 봐도 D중학교지.”라고 말하자 찬영이가 “너 D중학교야?”하며 딴소리를 해댔다. “방금 나 손들었잖아!” 선우가 따지듯 말했다. 찬영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도 D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 유선우가 D라니……!”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선우의 만화책이 찬영이를 향해 날아갔다. 아수라장이 되기 일보직전, 뭔가 익숙한데, 기분이 그리 좋지가 않아진다. 다행히도 찬영이는 잽싸게 한 손으로 날아오는 만화책을 잡아챘다. 순간이지만 찬영이의 운동신경을 보고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로 봐서 다른 여자애들도 잠깐이지만 소리 없이 술렁인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아가 또 당돌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그거 할래? 진실게임.” 진실게임이라니!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유치해서 감히 못 하던 게임을, 게다가 이 말은 도도하게 눈을 치켜 뜬 진아에게서 나온 발언이었다. 성준이가 “윽! 그 악마의 게임?”하고 이상한 말을 꺼냈다. ‘악마의 게임’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지만, 하긴 그럴 만도 하다고 금방 동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녀석들 반응이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나타났다. 나만 혼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나머지 남자애들이나 여자애들은 슬슬 발동을 걸려는 것처럼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더니 “빽뮤직!”하고 말했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기 위해 나는 전에 없이 머리를 팽팽 돌렸다. 진아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지금 그거 하는 중이었거든.” 우리? 그러니까 나하고 너희들이 진실게임 중이었다고? 역시 부정할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진실게임이랑 비슷하기도 했다. 나는 반대편에 마주보이는 승현이가 재진이 어깨에 기대어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다.

사람 수가 워낙 많아서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정하기엔 벅찼다. 찬영이가 총대를 메고 제일 먼저 술래를 할 테니 다음 주자를 정하는 권한을 달라고 했다. 룰(rule)은 빠르게 정해졌다. 한 사람 당 한 명이 단 한 개의 질문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질문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만약 진실 대신 비밀을 선택하면 질문한 사람이 요구하는 벌칙을 수행해야 했다. 아마도 ‘쪽팔린’ 짓을 시킬 게 뻔했다.

눈치를 보느라 선뜻 찬영이에게 질문하는 사람은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찬영이는 한껏 여유로워진 자세로 긴장하고 있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괜히 태민이 귀에 속닥거리며 자기들끼리 키들거리기까지 했다.

제일 먼저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던 만큼 진아가 나서는 게 어울려보였다.

“처음이니까 센 거 말고 약한 걸로 해줄게. 정확히 키 몇 cm야?”

모두가 진아의 질문에 야유를 던졌다. 너무 몸을 사린다며 뭉친 휴지를 던지는 애들도 있었다. 진아가 웃음을 꾹 참고 찬영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찬영이가 한시름 놓는다는 듯 ‘휴’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텐 그닥 약하지 않은데, 다들 난리네? 나 171.7cm. 진짜 맹세코!”

불신의 눈빛이 찬영이 주위를 오고갔지만 ‘진실게임’이니까 진실만 말했으리라 대충 수긍해주고 넘어갔다. 너무 심하게 야유를 하는 것도 유의해야 했다. 자기 차례가 언제,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가슴을 콩닥거리며 찬영이의 입만 바라보았다. 찬영이가 입을 벌벌 떨며 모두를 더욱 긴장시켰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이름을 미리 알아챘다.

“유선우!”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찬영이는 그때까지 손에 쥐고 있던 만화책을 선우에게 던져주며 크게 이름을 불렀다. 선우가 짜증 가득한 탄식을 뱉어냈다. 그런데도 내심 찬영이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불린 것을 즐기는 것도 같았다. 내 눈에는 그랬다. 선우가 질문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누가 그녀에게 질문을 할지, 사실 찬영이 때보다 긴장감이 확 줄어버렸다. 나도 그렇지만 선우에게 딱히 질문하고 싶은 내용이 없는 것 같았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침묵이 흘렀다. 율령이가 선심 쓰듯 선우에게 물었다. 질문자가 율령이라는 사실은 선우에게도 별로 새롭지 않은 듯 보였다.

“좋아하는 사람!”

“오! 세다!”

누군가 거들었지만 관심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예의상 궁금해 하며 선우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우르키오라.”

“뭐? 누구래?”

“외국 사람이야?”

“우르, 뭐라고?”

선우는 쏟아지는 질문을 무시하고 “심지연, 너 차례.”하고 시한폭탄을 넘겼다. 지연이는 얼결에 긴장이 풀린 상태로 순서를 넘겨받고 “나? 나?”하고 되묻기만 했다. 지연이 차례에도 주저주저하며 아무데서도 질문이 빨리 안 나오자 찬영이가 버럭 성질을 내며 “밤새겠다!” 라고 했다. 주환이와 어울려 다니는 규성이가 쭈뼛거리며 질문했다.

“이상형, 어떻게 돼?”

“오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규성이를 놀리느라 한 마음으로 호응하는 소리를 내었다. 지연이는 되레 새침한 척 표정을 바꾸더니 유명 남자 배우 이름을 네 사람이나 술술 불었다. 이렇게 되니까 진실게임을 하는 목적이 상실되어가고 있었다. 태민이가 조건을 추가했다. 이제부터 사람에 대한 질문 나올 때 정말 아는 사람 아니면 대답으로 치지 않는다고, 무조건 벌칙을 감수해야 한다고 제약을 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연이가 나와 율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랬지만 “이번에는 남자가 질문 받아. 박주환!”이라고 말해주어 율희와 나는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기 차례를 당하고도 주환이는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태민이가 “이성만 질문할 수 있어!”라고 급하게 또 제약을 두려 했지만 그 건은 모두의 야유를 받으며 폐기처분 당했다. 나는 왠지 주환이라면 질문을 해도 여기 앉아있는 어떤 사람에게보다 편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주기는 좀 어려웠고, 저렇게 천진하게 웃는 주환이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

내 질문에 주환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이만하면 주환이에게는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주환이는 성품이 누구를 싫어하고 미워할 만한 애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고작 여기 일대에서 유명한 변태 아저씨나 누구나 다 싫어하는 특정 과목 선생님일 것이었다.

“난 벌칙 받을게.”

주환이의 대답에 나는 충격 받은 사람처럼 “뭐?”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애들은 첫 벌칙 당첨자가 생기자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애들은 주환이를 가운데 세워놓고 잘하는 장기 하나만 해보라고 시켰다.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주환이는 목을 큼큼 풀더니 아주 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환이의 목소리는 당장에 모든 여자애들을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오히려 벌칙을 시킨 남자애들이 자리에서 끌어내며 저지시켰다. 이건 벌칙이 아니라 상이라며 못 하는 걸 시켰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주환이는 헤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주환이가 지목할 차례였다. 나는 긴장을 풀고 있었다. 설마 주환이가 내게 복수할 애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환이를 두고 걸었던 예상이 세 번째 깨지고 말았다.

“전설의 리벤지 매치, 이승민! 너야.”

“나라고?”

나는 큰 소리로 의심하는 말을 주환이에게 던졌다. 그러나 사람 좋게 실실 웃는 주환이는 내게 차례를 돌리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나만 배신감에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친구들의 주저하는 눈치가 느껴져서 나는 불안했다. 너무 어려운 질문만 아니기를, 왜냐하면 난 솔직한 편이니까 웬만하면 어렵지 않겠지, 동공을 굴리며 누가 나와 눈을 맞추려 하는지 지켜보았다. 찬영이와 태민이가 귓속말을 하며 또다시 키득거렸다. 진경이네 애들은 따분한 표정이었고 내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당해보라는 얼굴을 했다. 그때였다. 재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는가 싶더니 천천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재진이가 나한테 질문을 하려 하다니, 세상 참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나는 재진이라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애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선 6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아침잠이 많은 나보다 늦게 일어난 사람은 율희였다. 밤에 배고프다며 과자를 연신 주워 먹더니 눈이 퉁퉁 부어서 율희는 눈도 잘 못 뜨고 비틀비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일찍 일어난 친구들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환기를 해서 잠이 덜 깬 나는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율희가 화장실에 전세를 냈는지 오랫동안 나오지를 않아서 나는 대충 개수대에서 얼굴에 물을 찍어 발랐다. 거울 앞에 앉아 막 로션을 바르는 도중 율희가 나와서 나는 율희에게 다시 내 얼굴을 맡겼다. 다음은 내가 율희의 머리를 고대기로 말아주었다. 율희의 머리를 꼬불꼬불 말아주는데 수학여행 전날 함께 갔던 유명 상가에서 쇼핑해온 옷을 꺼내 입으며 나머지 애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고 있었다. 내 눈에는 넷 다 너무 비슷한 옷을 사와서 구분이 잘 안 갔다. 자기 취향이 굳건한 선우 같은 애도 옷을 고를 때는 다른 애들의 의견을 심하게 따랐다. 결국은 그나마 옷을 볼 줄 아는 지연이가 골라주는 대로 나머지 친구들이 맞춘 듯이 입고 있었다. 율희는 전에 미리 자기 엄마, 친언니랑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었다. 허리가 짧고 다리가 길게 뻗은 율희는 백화점 옷이 아니라 해도 은근히 귀티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대단히 예쁘지도 않은 옷을 몇 십만 원씩 주고 사왔다. 옷마다 박혀있는 브랜드 로고가 디자인을 보다 예뻐 보이게 하는 효과는 분명 있었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어제도 입었던, 겨우 엄마 몰래 산 반바지가 이번에 사온 유일한 새 옷이었다. 천이 얼마나 들어간다고 이렇게 비싼 건지, 이것 하나도 거의 3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다. 별 수 없이 동생이 소풍갈 때 샀던 저지와 반팔 티셔츠, 어제 입은 반바지를 입고 두 번째 여정을 떠나야 했다.

 

누가 말도 안 했는데, 모두 어제와는 다른 자리에 앉아서 떠들며 지난 밤 함께 진실게임을 하다가 더 친밀해진 사이를 과시했다. 내 느낌일 뿐인지, 그 날도 맨 뒷자리를 차지한 유리, 병우네가 오늘따라 의기소침해보였다. 말수도 줄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았다. 왁자한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어제 다 먹다 만 과자를 이 손, 저 손 옮기고 나르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승현이네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병우가 감히 “시끄러워!”하고 고함을 지를 수도 없었다.

아직 버스가 주차장에 남아서 담임선생님이 타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기다리던 선생님 얼굴이 불쑥 올라왔다. 선생님이 시끄럽게 구는 애들을 조용히 시키며 버스가 바뀌었다고 다 내리라고 하셨다. 애들이 투덜거리며 챙겨온 짐을 다시 가지고 버스에서 내렸다. 이번에 가는 곳은 이과와 문과가 목적지가 달라서 따로 가기로 했다며 한꺼번에 출발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이과가 먼저 버스를 옮겨 타고 우리와 다른 목적지로 이동했다. 율희는 버스가 우리 앞에 정차하는 동안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그 사이 유리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이 근처로 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승민아, 너 옷 어디서 샀어? 옷 좀 잘 입네.”

유리의 뜻밖의 칭찬을 듣고 나는 얼른 상가 이름을 읊어주었다. 유리네 애들이 계속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아서 나도 한 번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새 옷이 아니라는 자괴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유리에게 “너도 예뻐. 그 치마 잘 어울려.”하고 예의상 칭찬의 말을 건넸다. 이미 유리 귓속에 ‘예쁘다’가 못 박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가 민망해서 건넨 말이었다. 유리가 그렇게나 기뻐할 줄 알았다면 더 진심을 담아 말할 걸 그랬다. 그 애는 그 예쁜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대며 내 입술을 유심히 보더니 “입술에는 뭐 바른 거야? 색깔 좀 예쁜데?”하고 물었다. 나는 옆에 가만히 서있는 율희를 가리켰다. “율희 거라서 잘 모르겠어.” 유리가 친한 척하며 “아, 반율! 성만 똑같았어도 더 헷갈릴 뻔!” 하는 말에 율희는 꾸미는 미소를 지으며 “맞아.”하고 맞장구쳤다.

아까 잠깐 다른 버스를 탔을 때는 율희가 지연이와 앉고 나는 율령이 옆에 복도 쪽 자리엘 앉았었다. 아까와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율희는 팔짱을 풀어도 내 팔을 놓지 않고 뒤따라 버스에 올라타더니 기어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율희가 왜 이러는지 느껴져서 나는 괜히 싫어졌다. 마음이 상한 사람은 율령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연이도 율희에게 “배신자!”하고 장난인 것처럼 말했지만 일부러 마음이 상한 것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예전 같지 않으려고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예전처럼 율희와의 사이가 어색하게 금가지 않기만을 바랐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간장, 된장, 쌈장, 춘장’ 중에 하나라고 말이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타고 그 뒤에 맨 마지막으로 승현이네 애들이 올라탔다. 태민이가 내 머리카락을 죽 잡아당기며 “이승민, 오늘 벌칙 잊지 마라!”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민이와 함께 중간에 한 칸 떨어진 내 뒤에 앉은 승현이도 진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기대할게!” 여자애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최신 가요를 틀어놓은 버스가 들썩이며 두 번째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도로의 중앙 분리대가 춤추듯 일렁였다. 복도 쪽에 앉은 율희가 거의 내게 몸을 눕다시피 기대서 어제의 일들을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규성이가 지연이에게 이상형을 물은 게 아주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다. 좋아하는 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거의 단정을 지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일일이 의심하면 다시는 아무도 ‘진실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에 율희는 더 의심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 하다 만 ‘진실게임’을 오늘 다시 어제 멤버 그대로 이어하자고 간신히 입을 맞춘 뒤 모임은 해산 당했다. 그 유명한 이과의 ‘사이코’ 감독 선생님에 의해서. 방문 밖에서 된통 혼을 내며 욕설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감독 선생님의 격앙된 목소리가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30여분이나 복도에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고 남자애들은 전해주었다. 다른 반 애들이 자기들 혼나는 모습을 몰래 문틈으로 엿보기도 했다며 건희가 위협이라도 하듯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건희는 이과와 문과가 목적지가 달라서 잘 됐다는 말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그 말에는 전부 동의했다. 나는 속으로 이왕이면 이과, 문과로 가르지 말고 그냥 전체 12반을 반으로 갈라 이동했으면 더 좋을 뻔했다고 따져보았다. 그랬으면 영락없이 7반은 똑 떨어져 나가는데, 아쉽게 되었다.

 

바다, 산, 강 그리고 유적지가 우리의 목적지라 해서 그 자체가 내 마음을 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를 가나 쏟아지는 볕과 그 아래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이 그저 손으로 챙을 만들고 그 아래 찌푸린 눈을 가리고 선 채로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이런 장소들은 평소에 보게 되는 풍경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고, 매일 살다시피 하는 학교보다야 속이 트여 옆 친구와도 마음껏 떠들어댈 수는 있었다. 우리가 유적지의 입구에 있는 매표소 앞 광장에서 꽤나 지체를 하는 동안 나는 목구멍을 넘나들던 말을 율희에게 꺼내놓았다. 율희는 아직도 내게 팔짱을 끼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애들이 나 무슨 벌칙 시킬까?”

지루함을 깨준 것이 반가웠는지 율희가 냉큼 대답을 했다.

“어제 박주환은 노래 불렀잖아. 너한테는 춤추라고 하지 않을까?”

“춤? 말도 안 돼.”

얼굴을 찌푸리며 앞 사람 어깨 너머 저 앞에 친구들과 서있는 승현이의 머리통을 흘깃 살펴보았다. 춤이라니, 내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춘다면 아마 볼만은 하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춤을 추는 나보다 관객들이 민망해지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것만 같았다. 율희는 손뼉을 치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나는 꿈 깨라는 듯 혀를 차며 율희의 팔을 빼버렸다.

그러는 동안 드디어 선생님이 각 방 방장을 호명하셨다. 진아가 선생님께 방의 인원에 맞춰서 표를 받아왔고 조별로 움직이라는 지시에 따라 웅성대며 서로들 조원의 얼굴을 찾아 헤맸다. 반 별로 차례대로 매표소를 통과해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느냐고 선생님께 물으니 “오늘 안에 도착해.” 라는 대답 밖에 듣지 못 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반바지를 입고 와서 맨 다리가 벌레들에게 그냥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저지를 벗어서 허리춤에 묶어두었다. 뒤따라 올라오는 남자애들이 의식되기도 했다. 일부러 율희를 중간에 세워두고 “보이나 안 보이나 봐봐.” 하고 먼저 몇 걸음 올라갔다. 율희가 괜찮다고 오케이 사인을 줬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전날 밤처럼 갑자기 생리통이 나서 또 기절이라도 할까봐 미리 진통제를 먹고 오기까지 했다. 나는 산길을 오르느라 힘이 들어서 숨을 몰아쉬며 율희 귀에 속삭였다. “그래도 나 생리 중인데 춤은 좀…….” “아, 맞다!” 율희가 얼른 뒤돌아서 지연이를 향해 내 사정을 전해주었다. 지연이와 진아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뭐가?” 하면서 뒤돌아 묻는 선우에게 나는 아랫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우에게서 얘기를 전해들은 율령이가 돌아보며 “등산해도 괜찮겠어? 안 힘들어?”하고 물어주었다. 이로써 ‘춤’과 관련된 벌칙은 아쉽게도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을 것 같아졌다.

 

도착지까지 꽤 오래 걸어야 했다. 저 위에서부터 파도를 타듯 “아!” 하는 탄성이 밀려 내려왔다. 사람들이 뭘 보는지 올려보니 고개가 다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 옆은 아직 나무가 울창해서 시야가 가려져 옆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쌩쌩한 율희가 박차를 가하며 먼저 저 위에까지 올라가더니 “우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율희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멀리서 갈매기가 하늘을 아우르며 울고 있었다. 거의 다 와갔을 때 율희는 손을 뻗어 나를 잡아 올려 주었다. 무릎에 힘을 꽉 주고 “끙!” 하면서 율희가 선 자리에 올라가 나무가 가리지 않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해에서 떨어져 내려온 빛이 가루처럼 바다에 퍼져 반짝이고 있었다. 들리지 않아도 ‘쏴’하고 시원하게 나부끼는 소리가 보인다.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어.”

“그러게…….”

우리는 말을 흐렸다. 풍경에 넋을 잃고, 말은 필요치 않았다. 말이 오히려 감동을 절감하게 해서 우리는 입을 꽉 다물었다. 나는 율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날리다가 벌린 입 안에 들어갔다. 머리카락을 다시 귀에 꽂아주니 율희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전날 나를 사로잡은 근심거리가 바람 따라 날아가 버리고 나는 다시 율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빨리!” “그래!”

 

작년, 나나 다른 친구들이나 아직 중학생 때의 못된 습성을 다 버리지 못 하고 얼결에 고등학생이 된 게 분명했다. 아무도 고등학생이 어떤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준 적 없었다. 막연하게 좀 더 성숙해야 하고 좀 더 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도 정의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등학생은 나이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않은 갈등이 우리에게 있어도 여전히 그 해결방법은 고등학생이기 전에 했던 행동 그대로가 다였다. 그러니까 고등학생이라면 이런 것이다. 좀 더 서로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나와 다르다고 무작정 미워하거나 편협하게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우리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여 그게 안 된다 하여도 싸움을 만들어선 안 된다. 농담하듯 놀릴 수는 있겠지만 친한 사이여야만 농담도 가능하다는 전제가 우리에게 있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다른 녀석의 이상한 특징을 꼬투리 잡는다면 눈치만 살피던 중학생 때와 달리 이제 어떤 이는 무심하게 동조해주지 않거나, 꼬투리 잡는 녀석을 증오하거나 역겹게 생각할 것이었다. 누구나 서로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모습들을 한 가지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나도 어딘가 다른 친구에겐 이상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기는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곧 자제이다. 절대 친구를 오해하지 않도록 자제하고 또 자제해야 한다. 어제, 나는 자제의 밤을 보내었다. 율희는 분명 내게 이상하게 굴었고, 나는 율희에게 석연찮은 뭔가가 찜찜하게 남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녀석과 틀어지는 것보다 불편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중학생 때 나는 친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즉각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해서 넘어가지 않고 한 마디, 두 마디 하다 보니 나중에는 결국 그 친구가 싫어지고 미워지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의 그 이상한 점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으면 분했다. 함께 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자주 껄끄러운 순간들을 맞이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친구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나는 그 애의 사소한 잘잘못도 놓치지 않고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내뱉어야 직성이 풀렸다. 얼마 동안 그렇게 지냈고 친구는 가정적 사유로 전학을 갔다. 그 친구가 전학을 가서 내 눈 앞에 안 보여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한참이 지나도 그때의 진짜 문제를 나는 놓치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 했다. 그리고 겨우 얼마 전에 깨달은 점이다. 모든 문제의 제공자는 사실 나였다고 말이다.

자제의 밤을 보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율희는 나와 민석이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그다지 큰 관심도 없다. 단순한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따져보니 딱히 율희가 내게 이상하게 군 것 같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율희의 태도에서 방향을 바꿔 그때의 내 말과 표정, 태도를 떠올려보았다. 율희가 오해할만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는지, 기분이 상할만한 말투로 내 감정을 내세우지는 않았는지, 곰곰 떠올렸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러니까 율희도 아무 일 없는 듯 담담하게 나를 대하는 것 같이 보였다. 우리는 정말로 친한 사이인데, 잠깐이지만 오늘따라 내게 친한 척을 하는 율희를 밉게 보아서, 살짝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비로소 여러 채의 고풍스러운 기와가 얹어진 사찰 앞까지 도달했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 나오는 앞 반 아이들이 내리막길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슬쩍 뒤를 돌아보니 경사진 나무 계단을 오르는 끊임없는 발길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줄줄이 밀려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내가 “헤!” 하고 놀랍다는 소리를 내자 몇몇 아이들이 덩달아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마침 절 안에 어디에선가 종을 연달아 울리며 이 환상적인 풍경에 걸맞은 음악적 효과를 주었다.

나는 야트막한 돌담에 올라가서 뒷짐을 지고 이 조그마한 안마당을 발 디딜 틈 없이 꽉 채운 인파를 구경했다. 전부 우리 학교 애들이거나 관광하러 온 나이든 사람들이 몇 명 섞여 있었다. 각기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무어라고 떠들고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웃으며 제멋대로 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자기들을 내려다보며 한 눈에 꿰고 있을 줄 눈치라도 채고 있을까 싶었다. “흐흥.” 괜히 웃음이 피어올랐다. 괜히 흘깃 뒤돌아보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고 건물에 퍽 관심이나 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좀 더 편안하게 허리를 뒤로 꺾고 다릴 척 벌린 다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확실히 공기가 좋았다.

“이승민, 뭐하냐?”

나는 여유롭게 고개를 돌렸다. 승현이네 애들 중에 태민이가 근처로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어느새 선생님 몰래 귀에 피어싱을 박아놓고 잘 안 보이도록 구레나룻 머리로 덮어놓고 있었다.

“벌칙 받을 준비 됐어?”

“지금?”

모자를 거꾸로 써놓고서 선글라스를 낀 찬영이가 지령을 내릴 때가 됐다며 가까이 다가왔다. 사찰 건물에서 기둥의 비밀을 찾았는지 어쨌는지 율령이와 친구들이 이쪽으로 왔다. 율령이가 얼른 나서며 “춤이나 그런 건 얘 지금은 안 돼.” 하고 티를 냈다. 그렇게 말하면 남자애들이 이유를 금방 알아챌 것 같아서 나는 좀 불편해졌다.

“춤? 이제 그런 거 안 시킬 건데, 뭘.”

“그럼 뭐 해?”

벌칙 얘기를 하는 동안 건희는 어슬렁거리며 율희에게 거기에서 뭐하고 있었냐고 묻고 있었다. 율희가 건희를 사찰 기둥으로 데려가며 희한한 무늬가 새겨진 걸 보여주겠다고 했고 율령이도 따라 갔다. 자문이라도 해줄 참인 듯 보였다. 잠깐 딴 데 정신이 팔린 사이 태민이가 내 이마를 손가락을 퉁겨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저기 밑에 봐보라고, 어벙아!”

‘어벙아?’ 나는 귀를 의심했다가 순순히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여전히 개미떼가 일렬로 기어가듯 줄을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며 우리 학교 애들이 야트막한 산과 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쪽에서 구경하는 애들 보여? 회색 교복 입은 애들 보이지? 가서 쟤네 중에 한 명 번호 따와. got it?”

“그건 좀 심했다!”

선우가 나 대신 항변했다. 하지만 내 생각하고는 달랐다. 춤을 추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단 몇 초만 창피를 무릅쓰면 끝날 것 같아 나는 가볍게 승낙했다. 내가 “좋아!” 하자마자 승현이네 애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시끄럽게 웃어대는 남자애들을 지나쳐 성큼성큼 돌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헐렁한 회색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은 우리 학교 애들이 드문 반대편 구역에서 몰려다니며 얌전히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 학교 남자애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을 살펴가며 슬슬 그들의 경계선 안으로 침투해갔다. 괜찮은 녀석을 물색할 생각도 없었다. 낯선 남자애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각보다 심장이 빨리 뛰고 긴장이 되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서 빨리 아무나…….’ 나는 아무 녀석이든 시도를 해볼까 하다가 가까이서 보니 아무나라는 것은 뭔가 좀 아닌 듯해서 약간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애를 골랐다. 마치 우리 반 재진이처럼 하는 행동이 비슷한 남자애가 자기네 무리와는 동떨어져서 건축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카메라를 꽉 쥐고 있는 폼이 어딘가 어설프고 모양새가 빠져보였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남자애의 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렸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애는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떻게 생겼고 간에 나는 미리 준비해 간 대사를 읊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내기를 했거든요. 번호 한 번만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얼굴에 훅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머리카락 사이로 가려진 검은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냥 거절해, 빨리!’ 남자애가 내가 내민 휴대폰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하다가 다시 거두어 자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팔을 올리자 겨드랑이에 비어져 나온 땀까지 보였다. 근처에 있던 회색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애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겨우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아노……. 소리. 소오리.”

거친 목소리로 하는 말을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개가 저절로 갸웃 돌아갔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째지게 들려왔다. ‘소리?’ 남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져갔다. 어딘가 겁먹은 것처럼 보이는 눈빛이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휴대폰을 든 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발에 힘을 꽉 주고 있으니까 점점 땅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만하면 벌칙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얼굴도 들지 못 하고 돌담 위에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회색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 중 한 명이 내 등 뒤에다 뭐라고 고함을 쳤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목소리에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지만 엉덩이에 불붙은 사람보다 빨리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째지는 웃음소리는 역시나 승현이네 애들이었다. 그러나 지연이나 진아도 한데 섞여서 나를 비웃어대고 있었다. 나는 원망의 눈초리로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지연이가 입을 턱 막고 웃음을 참는 시늉을 했다.

“이승민, 번호는?”

“걔가 뭐래? 너한테 욕했지?”

급하게 들어오는 질문에 정신이 몽롱해져갔다.

“몰라. 좀 이상해. 소리라고 했나?”

내 말에 또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뭐? 진짜? 소리래!”

“‘쏘리’겠지!”

“아, 그 sorry?”

머릿속이 하얘져서 도무지 남자애들이 뭐라고 떠드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번호는 받아오지 못 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들이 재미있어하니까 조금 뿌듯해지기도 해서 그만하고 율희를 찾으러 가려는데 승현이의 말이 나를 세웠다.

“너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무슨 이상한 거?”

나를 둘러싼 승현이와 남자애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는 눈으로 숨죽였다. 놀림감이 된 기분, 뿌듯함은 간데없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사람을 장난감이라도 된 듯이 주무르고 갖고 놀다니, 못된 자식들!

“네가 말 건 사람, 일본사람이야.”

승현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소리로 웃는 아이들,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회색 교복을 입고 무리지어 다니는 남학교 학생들을 살폈다. 어딘지 낯선 머리 모양과 생김새, 헐렁하게 입은 교복도 어색하다. 어째서 알아채지 못 했을까? 타국에서 온 이방의 학생들이었다. 급격하게 올라가는 체온에 뜨거워지는 살갗, 눈 둘 데가 없는 이 상황, 모든 것이 싫어져서 나는 모두를 등지고 내달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승민아!”

“이승민! 어디 가?”

산토끼처럼 재빠르게 뜀뛰어 나무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아직 우리 반 차례가 다 끝나지 않아서 지금 밑으로 내려가는 2반 학생은 나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전망이 좋았던 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잠깐 다리를 멈추고 경치를 감상했다. 끝없는 하늘과 바다가 잡생각을 그만두기에는 제격인 풍경이었다. 마침 7반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뒤에 두고 선두에서 계단을 오르고 계셨다. 그렇다면 내려가는 길에 ‘그 녀석’을 마주칠 확률이 거의 100%였다. 7반 애들이 아까 우리 반이 했던 불평을 똑같이 쏟아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툴툴거리는 얼굴 사이사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내 눈에 드디어 적합한 먹잇감이 포착되었다. 저쪽에서 민석이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같은 반 여자애에게 눈치 없이 장난을 거는 게 보였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민석이를 봐서 어쩌겠다는 걸까? 딱히 저런 어리숙한 녀석을 데리고 어쩌려는 마음은 들지도 않지만 그래도 녀석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

터벅터벅 다리에 힘을 빼고 한 계단씩 내려갔다. 민석이와 눈이 마주쳐서 녀석이 또 내게로 달려들면 뭐라고 할까? 건드리지 말고 꺼지라고 할까, 아님 아픈 척이라도 하면서 주의를 끌어볼까? 조금씩 격차가 줄어들며 가까워져 간다.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내려오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 금방 눈에 띌 줄로 안다. 여자애와 시시덕대느라 아직 이쪽은 보지 못 하고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기어코 위에 뭐가 있나 보려고 고개를 들던 민석이의 눈이 곧장 내 눈동자에 박혔다. 나도 모르게 설핏 미소를 지어보였다. 민석이가 그런 내 눈을 멍청히 보고만 있다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 아래에서 어쩔 줄 모르고 주저하는가 싶더니 먼 쪽의 가장자리로 옮겨가서 나를 지나쳐갔다. 예상과 다른 민석이의 태도에 무안해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입구까지 뛰었다. 민석이가 나를 피하다니, 축포를 터뜨리고도 남을 순간이었다.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 위로 따위, 누구에게고, 위로를 기대할만한 인간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또 잊어버린 걸까? 분노와 실망, 민망과 무안, 믹서기에 갈려 혼합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다 내팽개쳐두고 결국 입구 앞 매표소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

굵직한 목소리로 재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또 능수능란하게 거짓말하면 아무 문제없을 질문이었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걸고넘어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말까지 심하게 더듬으면서 간신히 “어, 업, 없지, 나야. 없어.” 이런 식으로 대답해버렸다. 대답을 듣고 하나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승민이 너무 티 난다.” 진경이 목소리가 저쪽 구석에서 들렸다. 그렇게나 웃지 않던 재진이까지 입을 가리며 실소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거짓말하면 벌칙이야.” 태민이가 또 나서서 잔소리를 해댄다. ‘나보고 어쩌라고…….’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면서 율희에게 눈을 돌렸다. 율희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입을 벌려 ‘그냥 말해.’하고 남의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아직도 내가 민석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율희가 뭔가를 아는 눈치라고 입에서 입을 타고 소문이 벌써 한 바퀴를 쫙 돌았다. 다들 한 마음으로 “누군데?” “빨리 말해!”하고 고성을 지르며 아우성이었다. 엉덩이 밑에 손바닥을 깔고 앉아있어서 손바닥이 저려왔음에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도 말해줄 셈이라고 오해하게 만들 수가 없어서였다. 뻣뻣하게 앉아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조그마한 두 귀로 전부 튕겨내고만 있었다. 입에서 차마 ‘벌칙 받을게.’ 같은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딱히 자랑할 장기도 없고 무엇을 시키든 얼마나 내가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걱정이 되어서 차마 그 말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한줄기 빛이 방안에 길게 비춰졌다. 마치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과의 사이코 선생 한덕만이 갑자기 우리 방으로 들이닥쳤다. 학교에서 늘 휘두르고 다니며 위협용으로 쓰는 기다란 나무 막대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몇몇 남자애들은 화들짝 놀란 꼴이 골목길을 싸돌아다니는 버려진 똥개가 돌멩이에 맞은 것 같이 짧은 비명과 함께 펄쩍 뛰기까지 했다. 선생님이 방에서 놀고 있는 남자애들을 전부 복도로 집합시키고 우리도 한차례 무릎을 꿇게 하고 언성을 높인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사이코 선생이 문을 하도 세게 닫아서 ‘꽝!’하고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남자애들을 A동으로 끌고 가는 소리가 멀어진 후에야 선생님이 끄고 가버린 형광등을 다시 켜고 이불을 깔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는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제일 유리하게 되어버린 내가 특히 한시름을 놓았다. 남자애들이 불려나가는 와중에도 “내일 이승민 벌칙 한다. 다시 모여.”하고 중대사를 논하듯 속닥거리기는 했지만 당장은 악몽 같은 순간을 면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여자애들이, 특히 진경이네가 운이 좋았다며 아부를 하는 건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았다. 내 두 손등에는 바지 뒷주머니의 무늬가 판화처럼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동생과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 우리 반 애들 얼굴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땅바닥에 놓여있는 시멘트 돌덩이 위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서너 명의 조용한 여자애들 뒤를 이어 내려오신 선생님이 그 애들을 앞질러 주차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향하셨다. 나는 별 일 없던 사람처럼 선생님의 뒤를 쫓아갔다.

“구경 잘 했어?”

“네. 멋있었어요.”

“신라시대 때부터 대략 천여 년을 짓고 고치고 했다는 거 알고 있어?”

“몰랐어요. 저는 사실 딴 것보다도 전망이 멋있었어요. 풍경이 장난 아니던데요.”

“그치? 사실 나도 그래.”

선생님이 둥글게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선생님의 팔에 팔짱을 끼고 주차장까지 따라갔다가 버스에 먼저 타있으라는 말을 듣고 텅 빈 버스로 들어가 혼자 앉아있었다. 창문에 달린 커튼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옆 반 버스로 가로막힌 틈새를 구경했다. 먼저 내려온 1반 애들이 버스에 올라타거나 아직 타지 않고 주변에서 떠들며 놀고 있었다. 창문에 기대어 바깥을 보고 있으니 인기척이 느껴져 목을 길게 빼보았다. 아까 먼저 내려온 같은 반 여자애들이 음료수를 하나씩 사들고 와서 버스에 올라타 앞자리를 채우며 그네들끼리 중얼중얼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직은 율희네나 승현이네 애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생각만 해도 겸연쩍어져서 얼굴이 자꾸만 달아올랐다.

저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반율희’가 찍혀있는 게 보여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이승민, 너 어디 갔어!”

율희가 나무라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끝머리에서 힘을 빼는 게 미안해서 괜히 더 목소리에 힘을 준 게 티가 났다.

“나 벌써 버스 탔어.”

“남자애들이 너 삐진 거냐고 자꾸 물어봐.”

율희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도 이미 수화기 저편에서 남자애들의 이죽거리는 말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삐졌으면 뭘 어쩔 건데?’ 나는 삐딱하게 나오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며 조금이라도 밝은 말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거 아니야. 괜찮다고 그래.”

“승민이, 괜찮대. 우리 지금 내려가는 길이야. 조금만 기다려.”

“어, 알았어.”

남자애들에게 먼저 내 상태를 말해주고 율희는 용건이 끝났는지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질 참에 회색 교복을 입은 일본인 남학생들이 저쪽에서 질서정연하게 줄서서 관광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여 나는 재빨리 커튼을 쳐 창문을 가렸다. ‘진실게임’과 ‘쪽팔려 게임’은 이렇듯 한 끗 차이가 날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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