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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는 대화의 종착지

동생과 나의 또 다른 성장기

  사남매 중 둘째인 나는 두살 터울의 셋째 딸인 여동생과 막역한 사이이다. 혼기가 지날 정도로 나이들이 찼지만 출가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커오던 모습 그대로 한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좋아할 나이가 되었을 즈음부터 머리와 꼬리가 되어 하나로 붙어다니던 나와 여동생은 갈수록 더욱 더 비슷해져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인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우리는 서로를 '샴'이라고 불렀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붙어있는 '샴 쌍둥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서로의 성향은 아주 다른 편이었다. 명랑, 쾌활한 겉보기와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은 여동생은 보이는 그대로의 감정표현에 익숙하고 솔직한 대신 그다지 섬세한 사려 깊음이 없는 아이이다. 말하자면 감정을 전달할 때 재고 따지는 과정이 없는 종족이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너무나 잘 웃고 잘 울고, 화도 잘 내지만 돌아가는 길에 자기 행동이 모났거나 못나진 않았는지 후회하고 근심을 갖곤 했다. 반대로 나는 동생처럼 감정표현에 공을 들이지 않고, 마음에 가진 순간 곧바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종족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얌전하고 차분해 보인다. 한 번도 내가 아주 웃기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걸 첫인상으로 맞힌 사람이 없었다. 물론 여동생의 말재간도 지금은 굉장히 좋아져서 이미 나를 추월해버렸지만 말보다도 모션이나 상황으로 웃기는 걸 좋아했던 내가 웃긴 짓을 하기만 하면 아직 서먹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겉보기와 다른 구석이 많았다. 여동생과는 정반대의 속사정을 가진 캐릭터였다. 나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고 사람들의 중심에 서기를 좋아해왔다. 중심이라기 보다 리더 쪽에 더 가깝긴 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적어도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외면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캐릭터가 정해졌기에 '리더'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거라고 스스로도 여기게 되었다.

  감정 드러내기를 난이도로 따진다면 여동생에게 이 일은 중하 정도로 쉽지만 아주 쉽지는 않은 정도이고, 나에게는 상상이었다. 상상보다 더 높은 난이도인 사람은 웃음조차 어려워하는 걸 보았다. 나는 웃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별로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짜증나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할 때마저도 적절한 감정표시를 못하고 모두 웃음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감정표현에 무력한 아이였다. 대체로 감정표현에 솔직한 사람은 평소에도 정직한 편인 것 같다. 속에 감추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남을 속일 수 있는 꺼리가 많아진다. 처음부터 속일 요량으로 감정을 절제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 절제를 잘해온 탓에 사람들에게 별로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면 결정적으로 불리한 순간에 얼마든지 거짓말로 넘기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든다.

  여동생과 나는 서로가 가진 성격이나 그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함께 공유하고 분석하는 대화의 시간을 자주 보낸다. 이야기하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로 인해 솔직하게 자기 속얘기를 꺼내는 걸 어색해하는 여동생도 완전히 물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편이고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르는 바가 없지만 이처럼 자주 대화를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 세월동안 정말 많은 대화를 해왔지만 우리는 너무나 서로를 모르며,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자기 모습이 끝이 없어서 대화는 마를 새가 없었다. 이미 맨 첫 단락에서 말한 여동생의 성향은 어떻고, 내 성향은 어떻다고 말한 내용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으로봐선 나의 최대 장점으로 사려깊음을, 여동생은 순수하고 솔직함을 꼽게 되지만 우리의 분석이 틀렸다고 얘기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생각이 다시금 변하는 경우가 그동안에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분야와 모양새가 다를 뿐 인간이 가진 특질을 모두 갖고 있다.'고 여기기로 했는데, 하지만 분명히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고, 진정 자기 모습이 어떤지 똑바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멈추지 않기에 여전히 '성격 분석'은 흥미로운 대화 주제이다.

  우리는 주로 잠자리, 직장에서는 카톡, 때때로 시간이 맞을 때는 욕실에서 샤워를 함께 하며 더없이 심오한 인간탐구를 목표로 긴긴 대화를 나눴다. 최근에는 '낯가림'에 대해서 얘기했다. 동생은 내가 낯을 많이 가린다는 말에 반문했다. 나의 낯가림을 전혀 모르고 하는 반문은 아니었다. 다만 이 대화를 하기 며칠 전에 서로가 보인 반대의 행동 때문에 '과연 그럴까?'하고 짚어보자는 의미였다. 여동생은 가족모임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영 불편하고 어색해서 다른 데로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모난 행동을 하지 않기도 했고 또 내 모습에서 그런 어색해하는 모습을 조금도 못 봐서 가만히 있었다고 말이다. 언니는 또래와의 자리가 더 편한가 보다며 자기는 차라리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어른들과의 자리가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동생에게 사실은 이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 다 너와 같은 맘이었어. 그러니까 더더욱 사교를 하면서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한 거야. 그리고 나도 어른들이 훨씬 편해. 편한 사람이랑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을 거야. 그게 내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상태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이 가장 좋고 편해. 난 불편하면 가만히 못 있겠어. 뭐라도 자꾸 해야 할 것 같거든. 내가 아주아주 불편하고 힘든 분위기라는 뜻이야. 그래서 뒷심이 약해. 첨에는 엄청 웃겨주다가 시간이 갈수록 편한 사이가 되면 가만히 편하게 있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언니, 나는 별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

  "그치만 너하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이미 생각을 똑같이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점점 대화를 안 하고 텔레파시에만 의존했더니 오해가 많이 쌓이고 좋지 않았던 것 같아."

  "맞아. 말로 안 하고 알기를 바라니까. 대화가 필요한데."

  동생은 그순간에도 자기의 부족함을 미안해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자기를 부끄러워하며, 내 모습에서 상대에게 부족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좀 미안해하면 좋으련만, 미운 얼굴이 저절로 그려졌다.

  어쩌면 우리 둘은 이다지도 다른 얼굴을 가졌을까? 나는 동생의 따뜻한 마음과 솔직한 내면, 그리고 순수한 감정을 사랑한다. 여동생은 나의 포커페이스를 사랑하나? 그건 잘 모르겠다. 여동생도 가끔 내가 가진 어떤 면을 동경하고 자기도 그러기를 바라는 말을 종종 해왔지만 자기혐오를 다 벗지 못한 나에게는 그리 물려줄 만한 좋은 성향이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우린 태어난 그대로 살다 갈 테니 여동생이 나같이 될 리는 없을 거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성격 파악하기' 대화는 유익하다. 내가 늘 속으로는 자기를 혐오하면서 말로는 자기자랑만 일삼지 않는다면 더 재미있는 대화가 될 것이다.

  동생은 나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만큼 동생도 잘 알고 있다. 단지 상처 주기 싫어서 싫은 소리를 안 하려고 한다. 그러다 한 번 뚜껑이라도 열리는 날엔 속에 담고 있던 인신공격을 되바라지게 터뜨린다. 충격을 먹고 어버버, 하는 것도 잠시 나란 인간이 그 모양인 줄 알아서 반박할 말을 잊고 만다. 다시 사이가 좋아진 후에 동생이 내게 상처 주지 않는 타이밍에 나를 두둔하고 변호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지금은 내 흠결을 거의 인정한다. 기나긴 대화가 요즈음에야 결실을 맺는 게 아닐까? 이 시간을 위해서 동생과 나, 오래도록 했던 이야기를 곱씹고 곱씹어 새로운 이야기 꺼내듯 매번 새로운 관점에서 '인간탐구'를 다뤄온 게 아녔을까? 결국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 매우 먼 길을 돌아 종착지를 향해 험한 여정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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