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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버려진 사람


요새 너는 뭐하며 지내니? 나는 솔직히 말하면 형편없어.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내 나이에는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내 말은 내 나이에서 이룰 만한 것도 하나 이루지 못 했다는 말이야. 사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게을러서 그렇고 시간을 쉽게 탕진해서 그래. 하지만 넌 나와 다르겠지? 그렇게 기대해도 될까? 너는 처음부터 나와 달랐으니까 그러니까 아마 지금도 너는 나와 다르지 않을까?

네 생각을 요새도 종종 하고 있어. 그냥 어쩌다 한 번 날 때면. 이제 네 목소리나 생김새도 가물가물해. 거의 다 잊었지. 네가 해준 이야기들도 잘 기억이 안 나.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넌 흥미로운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고 기억해. 그리고 너와 함께 있어서 좋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내 얘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준 거 말이야. 나는 잊지 못 할 거야. 그것만큼은 잊을 수 없을 거야. 네가 아니었다면, 네가 없었다면 나는 2%의 조각을 영영 찾지 못 했을 거야. 2%의 조각이 없는 그림은 98% 조각더미에 불과하지 않겠니? 그래서 요새도 가끔씩 네가 생각나.

그러다가 문득 너를 꼭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사실은 거짓말이야. 나는 전부터 계속 널 찾고 있었어. 내 이런 집착을 넌 이해 못 하겠지? 그렇지만 들어봐. 처음으로 내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나타났어. 너라면 그런 사람을 옆에 붙잡아두고 싶지 않았겠니? 물론 너는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았는지도 몰라. 그래서 나처럼 한 사람에게 오래 집착하는 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혹시 널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니면 날 거부하는 이유가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많이 고민했어. 분명 그렇겠지. 그래서 나도 이젠 널 놔줘야 하고, 널 잊어야 하는데, 사실 내가 찾는 건 네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 아마도 나는 나의 세계를 온전히 도로 찾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너라면 날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럴듯하지 않니? 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편이 아닌데, 이 정도로 널 잊지 못 하는 걸 보면 정말로 내가 찾는 건 네가 아니라 진정한 나다움이겠지. 넌 나를 가장 나답도록 만들어주었으니까.

정말이야. 넌 그렇게 해주었어. 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만의 특별한 세상으로 여길 수 있게 의미를 부여했어. 온통 ‘나’라는 의미를 부여한 나의 세상이 차츰차츰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르고 지붕이 얹어졌지. 그러나 이제 막 창문을 덧대고 바깥으로 출입이 가능한 대문을 달려고 하는 즈음에 우리는 작별해야 했어. 나에겐 아직 사방이 꽉 막힌 집 한 채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창문과 문을 만들 재료가 내게는 없는데 너는 영영 나와의 소통의 창구를 막아버리고 말았어.

왜 그래야 했을까? 수백 번의 질문. 단 한 번만 답해주었어도 나는 그만둘 동기가 생겨날 텐데, 이제 너는 예전처럼 날 도와주지 않네. 그런 면에서 너는 예전과 같지 않고 변해버렸어. 나는 더 이상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아직도 내게 그대로의 너인데, 나는 아니야.

자존심이 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상실감의 문제야. 네가 내 집착의 이유나 집착하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한다 해도 내 상실감에 대해서는 어떠니?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겠니? 난 토해지고 내쳐지고 버려졌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교집합이 아니야. 전체집합 안에 합집합도 아니야. 너는 A집합에 속해있고 나는 B집합에 속해있어. 심지어 부분집합도 아니다.

하지만 나도 이해할 수 없어. 이 이별을, 이 작별을, 이 안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잡히질 않아. 그냥 멀어지면 그뿐인가? 아,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우리는 사이가 좋았잖아. 알아, 나도. 둘 중에 하나는 연기였겠지. 그게 나는 아니니까, 그래, 너이겠구나. 나 그렇게 받아들여야 해?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슬픔이 잦아드는 건 아니야. 상실도 슬픔도 그대로야. 메아리로라도 한 마디 해주는 게 어때? 이대로 우리 사이를 내버려두지는 말자. 제발 나를 잊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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