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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았다

bgm 추천 : 1974 way home - mondo grosso


  우리가 아파트 4층에 살았을 때 나는 그게 뭘 의미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계단으로 올라가기도,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기도 애매한 위치라는 정도가 다였다. 그 이상 뭘 더 따질 게 남아있었을까? 아빠는 자조적으로 “4층이 똥값이라서 우리가 산 거야.”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했다. 아빠는 우리 어린 남매들이 얼마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놓여있는지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게 분명했다. 우습게도 내 기억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우리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빠가 강요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우리에게서 무언의 중압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다. 우리는 아빠에게 물질적인 풍요나 아니면 동전 한 닢도 쉽게 기대를 걸지 않았었다. 아빠 스스로의 중압감을 혼자 짊어지기 힘들어 우리에게 나눠주려 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상관없었다. 이미 그 짐은 내 등에 버거우리만치 지워져 있었으니까. 나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 또 나의 어린 남매들의 등에도 한가득인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파트 4층에 산다고 했을 때의 의미라 하면, 그건 모순, 또 허영이었다. 아무리 똥값이라도 우리에겐 똥을 살 만한 돈도 없었다. 아파트는 우리가 이사 간 해에 지은 신축건물이었다. 막 분양권이 돌던 시점에 아빠는 그나마 우리가 적당한 가격을 주고 살 수 있는 구식 아파트는 거들떠도 안 보고 신축 아파트를 한 채 분양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엄마가 얼마나 근심과 시름에 앓고 있는지는 보지 못 하고 들뜬 밤을 보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뭘 설명해주는 자상함은 없는 분들이었다. 이사를 간다는 사실도 하루 전에야 알았다. 전학을 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친구를 잃는다는 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작별인사야말로 한 번 때를 놓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도, 미처 고민하기도 전에 점점이 사라져갔다.

  아파트 4층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딱히 볼 게 없었다. 사람이 개미처럼 작아보이지도 않았고 조금만 큰 소리로 말하면 밖에 서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했다. 아파트는 양면 색종이처럼 딱 두 가지 시야만 허락했다. 앞 아니면 뒤. 그런데다가 앞뒤로 아파트 건물이 세워져있어서 창문에 기대어 서도 뭘 보려고 서있는 건지 모르기가 다반사였다. 엄마 몰래 TV를 보다가 앞뒤로 뛰어다니며 엄마가 오고 있지는 않은지 망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우리가 아파트 4층에 사는 게 왠지 불편하고 창피했다. 승강기를 탄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갈 때나 아니면 이래도 되나 노파심에 차서 살짝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가 고작 3초 후에 다시 내려야할 때, 나는 자존심이 팍 상했다. 열쇠가 없어서 잠긴 문 앞에 쭈그려 앉아 누군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웃집 사람이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번호를 누르다가 “집에 아무도 안 계시니?”하고 말 걸 때는 정말 끔찍했다. 우리 집은 앞집과 다른 모양의 초인종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 집과도 다르고 내가 가본 어느 집의 초인종보다도 성능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금방 고장이 나서 나중에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려야 했다. 초인종이 고장 나도 아빠는 수리기사를 부르지 않았다.

  결국 그 아파트는 아무리 4층이라도, 아무리 똥값이라도 우리 집이 되지 못 했다. 돈을 지불하고 사서 아빠의 명의로 우리의 소유가 되기는 했지만 나는 항상 그 집에 얹혀사는, 아니, 그 아파트에 우리가 빌붙어 사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울 재개발 지역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10살 생일을 보낸 지 일주일 조금 지나서였다. 새로 지은 깨끗하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는 생전 꿈에도 없던 뜬구름이었다. 고급 아파트만이 뜬구름은 아니었다. 웃음, 평화, 고요한 일상 같은 것도 쉽게 가지지 못했다. 밤마다 꿈속에서 집을 찾아 헤매며 방황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눈앞에 그려지듯 훤한데, 가야 할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길로 가면 집인데, 이 언덕 너머에 분명히 있는데, 이 문 뒤에 날 기다릴 엄마가 있는데,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눌러야 할 버튼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이사오기 전에 살던 서울의 집으로 하늘이 다 깜깜해져서야 돌아가보았다. 그곳에라도 가면 가족을,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삿짐을 다 싸서 새 아파트에 보내버렸기에 어둡고 텅빈 방과 찢겨진 벽지뿐이었고, 고즈넉한 집 마당에는 나만 홀로 남아있었다. 밝게 불을 밝히고서 정겨운 웃음으로 날 맞이해줄 엄마와 우리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아 헤매고 번번이 놓치는 꿈을 언제까지나 꾸게 될 것 같았다. 집을 찾는 꿈을 꾸기 시작하고 정말 오랜 세월을 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집을 찾아도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안에서는 섬뜩한 기운만이 느껴지고 곧 귀신이나 괴물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공포심에 놀라 잠을 깼다.

찾으려 한 건 집이 아니라,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잠에서 깨면 사실은 방에 누워있었단 걸 알아차려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꿈에서 찾지 못했고, 현실에서는 더더욱 없을 단란한 집의 모양을 잘 알기에, 아련해서 더욱 짙게 증폭된 꿈의 상실감만이 마음속에 한뼘씩 더 넓게 확장되었다.

나이가 꽤 들고서야 집을 찾는 꿈을 드물게 꾸게 되었다. 아빠의 횡포가 줄고부터 엄마와 우리 남매들은 조금쯤 제자리를 찾는 것 같다. 정서도 안정을 되찾고. 나 이제 집에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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