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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11)

탈고를 못 끝낸 장편소설

축제

 

거의 대부분 우리 학년 애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번 축제가 열렸다. 이과인 데다가 나와는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잘 모르는 학생회장과 부회장인 우리 반 찬영이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번 축제를 역대에 남기도록 만들어보자고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신관 앞 소운동장에서는 배드민턴 매트를 치우고 장판이 벌어졌다. 야심차게 준비한 각종 기름진 먹거리와 미술반에서 틈틈이 수작업을 한 악세사리, 공예품, 그리고 소소한 오락거리를 한 판에 500원 또는 1000원씩 값을 매겨 팔고 있었다. 지정된 1층 교실마다 실내 스포츠, 보드게임, 분장체험, 카페나 타로카드 점집 따위도 운영 중이었다.

따로 부 활동이 없는 지연이와 나만 이리저리 구경하러 다녔다. 우스꽝스럽게도 지연이와 내 옆에는 시인이도 함께 했다. 이렇게 구색이 갖춰지게 된 연유는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축제를 즈음하여 나는 혼자 방황하던 짓을 최대한 자제하며 친구들 사이에 끼어 있으려고 어지간히 노력해보았다. 율희의 화해 전화 한 통도 내 마음을 선회하게 만드는 데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너무 이상하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이상한 행동이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사춘기 여자애들의 전형적인 행태와 뭐가 다를까 싶었다. 아무튼 자꾸 겉도는 모습을 보여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사실 자체가 싫었고 묘하게 오기를 자극했다. 물론 아직도 명확한 소속감이 생기지 않아 친구들과의 유대감을 깊이 느끼고 있지는 못 했다. 이렇게라도 하면 덜 불편해할 것 같아서 나름대로 신경을 써본 모양새였다.

아침에만 해도 일찌감치 부 활동 때문에 자리마다 곳곳이 빈 공간에서 허전감을 느끼며 지연이 자리 근처에 앉아 언제부터 축제가 제대로 진행될지 지루해하고 있었다. 중간에 진아가 잠깐 교실을 들러서 서랍에 두고 간 영어로 된 게임 진행 책자를 챙겨 갔다. 지연이가 진아를 놀리느라 “야, 누가 축제 때 영어공부를 해? 말도 안 돼!” 라며 괜히 건드렸다. “진짜 재밌거든! 세상에 이렇게 학구열 샘솟는 건전한 게임 봤어? 나 먼저 간다.” 이미 자리를 떠난 진아의 말에 지연이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한승현과 여시인이 등장했다. 지연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도 약간 긴장이 됐다.

승현이도 율희와 비슷한 리더십 동아리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그 동아리는 남자애들, 그 중에서도 성적이 아주 상위권에 있는 사람만 선별적으로 받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총동문회를 매년 열 정도로 좀 유명하면서도 특이한 동아리였다. 헌데 시인이는 중간에 전학을 와서 사람이 다 차지 않은 고전음악 감상반에 반강제적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승현이는 곧 다른 반에서 찾아온 같은 동아리 부원 남자애를 따라 갔고 시인이는 별 일 아닌 듯 그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그러는 동안에 지연이와 나는 갑자기 머릿속 회로가 정지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못 하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보려 쥐어짜는 중이었다.

본격적인 축제 진행까지는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자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시인이가 곁눈으로 보이면서도 지연이와 나는 내색하지 않고 쓸데없는 잡소리를 하며 시간을 축냈다. 교실에는 재진이를 비롯해 몇 애들이 자유롭게 교실을 오가며 날씨가 좀 흐리다는 둥, 비라도 올까봐 걱정이 된다며 자질구레한 잡담을 나누었다. 자유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시간은 더디게 가고 지루함은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지연이와 서로의 손톱을 검사하며 무료함을 떨치고 있던 도중, 방송실에서 시그널 음악에 이어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이 교내 곳곳에 전파되었다. 어떤 애들은 부랴부랴 당장 무슨 짓이라도 덤벼들려는 품새로 뛰쳐나갔고 어떤 애들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어디를 먼저 가볼지 주절주절 상의하며 복도로 나섰다. 자리에 붙박인 듯 앉아있는 건 재진이와 시인이 뿐이었다. 나는 지연이와 눈짓으로 무언의 말을 주고받았다. 지연이가 앞장서서 시인이 쪽으로 다가갔다. 먼저 알아채고 시인이가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시인이 같이 갈래?”

지연이가 사뭇 담담하게 물었다. 시인이가 나와 지연이를 번갈아 보더니 되물었다.

“그래도 돼?”

이번엔 내가 말했다.

“혹시 아침 먹고 왔어? 우리 먼저 뭐 사먹을 건데…….”

“아, 사실 먹고 오긴 했는데 난 괜찮아.”

“그럼 지금 나가자.”

지연이가 조심스럽게 시인이 책을 대신 덮어주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인이는 약간 들뜬 얼굴로 책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우리가 막 나가려고 할 때 선생님이 교실 문을 잠그려고 오셨다. 나에게 종이에다가 ‘열쇠는 교무실에’라고 적어서 교실 앞문에 붙여두라고 하셨다. 공책 한 장을 북 찢어서 글자를 적는 동안 지연이가 테이프를 이로 뜯으며 옆에서 대기했다. 선생님이 문을 잠갔고 지연이는 문에 종이를 단단히 붙여두었다. 계단을 갈래로 선생님과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연이와 시인이가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쫓겨나온 재진이는 우리 뒤를 밟다가 어느 갈래에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와 지연이 둘뿐이었으면 혼자 남은 재진이나 시인이의 처지에 대해 무슨 말이든 나눴을 테지만 시인이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의 재진이가 불쌍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사이에는 피치 못 할 어색함이 계속 따라붙었다. 큰 호의를 베푼 지연이와 나는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야 했고 시인이는 우리 눈 밖에 날 것을 특히 조심하면서 말 한 마디도 신중하게 꺼냈기에 이 어색함은 웬만해서는 쉽게 풀어지지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갖고 있는 곤란이 다 달랐다. 나와 지연이의 속마음은 금방 유추가 되었다. 시인이가 처한 상황에서 가질 만한 마음가짐도 아주 알아내기 어려운 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인이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만큼 도무지 드러나지 않았다. 나와 서먹해진 상태에서 다니는 게 정말 아무렇지 않은지, 아니면 진짜로 나 같은 건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인간관계 중 하나였을 따름인지, 그래서 오늘 하루 정도는 자존심 같은 건 내팽개쳐도 별로 상관이 없는지, 그도 아니면 사실 진짜 속마음은 다시 나와 예전처럼 친해지길 바라는지, 하늘이 반쪽이 나도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날을 끝으로 시인이와는 더 말을 섞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축제는 나한테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학교가 빨리 끝나는 날이라는 게 다였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동창이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건 정오를 지나 오후 서너 시쯤이나 되었을 때였다. 그동안에는 정처 없이 둥지 없는 뻐꾸기 신세로 이 교실, 저 교실을 전전하다가 마지막 피난처인 도서실에 들어가 종일 책만 읽었었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재진이를 보아서 그의 피난처가 어디일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동생이 수업시간에 나와 문자를 하다가 선생님께 들키고 휴대폰을 빼앗겨서 동창 친구가 오기 전까지 나는 완벽한 외톨이였다. 교정에서 들려오는 축제장의 음악소리와 내가 있는 도서실 사이의 괴리감은 점차 더 커지고 멀어졌다. 만약 지연이와 내가 시인이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시인이도 나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을 뻔했다. 그 당시 혼자 남은 나를 버려두고 휑하니 교실을 떠난 민경이네 애들이 준 모멸감 역시 마찬가지다. 차마 똑같은 짓을 시인이에게 할 수 없었던 건 단순히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그때 그 날의 나를 이렇게나마 스스로 위로해주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민경이네가 설령 어색한 분위기일지라도 나를 홀로된 비참한 처지에서 거두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시인이와 우리는 하루 종일 어색해하며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승현이가 속한 동아리에서 벌인 좌판이 성황리에 끝마쳐지고 나서는, 엇비슷하게 율희도 할 일이 더 이상 없다며 지연이와 나를 찾아왔고 그때는 이미 시인이가 무슨 바쁜 일이 생긴 것처럼 우리들을 떠난 이후였다. 시인이가 종일 우리와 있을 동안에는 별로 말이 없는 대신 자주 문자를 주고받더니 갑자기 어떤 교실에 볼일이 있는데 구태여 혼자만 가야겠다고 해서 지연이와 나는 얼떨떨하게 그녀를 보내주었다. 율희와 만나고, 다시 연락이 닿은 진아까지 합세해서 저녁에 강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는 길, 몰려있는 인파 사이에서 승현이네 애들 뒤로 승현이와 시인이가 손을 잡고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 그때 나는 율희가 자기네 부원들 몰래 종이컵에 챙겨온 부침개를 손에 들고 지연이와 나눠 먹으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저녁 대용으로 온갖 주전부리로만 배를 채우느라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참인데, 이상한 일이지, 입맛이 뚝 떨어져서 나는 종이컵을 지연이 손에 쥐어주고 말았다. 지연이는 쓰레기를 자길 줬다며 근거 없는 오해로 짜증을 부려 가뜩이나 불편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럼 다 먹고 쓰레기 나 주든가.” “장난친 거잖아. 왜 정색을 해?” 진아가 중재하려고 지연이 옆에서 무어라 농담을 던졌다. 나는 지연이와 싸우기 싫어서 무슨 소린지 듣지도 못 했지만 웃어넘겼다.

 

작년에는 제대로 보지 못 해서 다른 학교 애들보다 잘 모르는 우리 학교 공연을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가까운 대학교의 응원부가 와서 치어리딩을 하질 않나 밴드부, 합창부 –선우는 소프라노 솔로를 맡기까지 했다-, 아카펠라, 댄스부, 무용부, 일단 축제 공연에 합목적인 동아리라면 죄다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예상하지 못 한 인물은 거의 끝이 다가올 쯤에 홀로 독무대에 선 주환이었다. 공연 중간에야 동아리 활동이 끝난 율령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직까지도 주환이와 나를 엮으려는 장난을 치는 사람은 율령이 하나뿐이었다. 주환이의 노래실력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수학여행 첫날밤에 우리 방으로 몰려온 애들은 더욱 그랬다. 가창력이 웬만큼 좋지 않고서는 부르지 못 한다는 김연우의 노래를 어렵지 않게 쭉 뽑아내더니 기어이 함성과 엇비슷한 앵콜 요청을 받아 미리 준비했음직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까지 불러주었다. 강당에서 종종 행사를 할 때마다 느꼈던 후진 음향시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환이가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여운이 남은 우리들은 안절부절못하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축제가 끝나고서는 1학년 애들 중에 주환이 팬클럽까지 생겼다. 그렇게까지 주목 받아본 적 없이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던 주환이는 새로운 활력과 자신감이 찬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에 진도를 다 나간 과목 수업 중에 선생님들이 “이 반에 가수 있다며?” 하면서 물꼬를 열면 여지없이 교실 앞으로 끌려 나가 한 소절이라도 불러야만 했다. 그러면 옆 반에서 소리를 듣고 다음 시간에 들어온 옆 반에서 수업하셨던 선생님이 한 번만 더 불러보라고 시키고, 또 시키고, 학기 초에 성준이가 사진기 트라우마를 겪었다면 주환이는 성대 트라우마가 생겨버릴 것 같던 나날이었다.

축제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가져다준 건 아니었다. 시인이와 나의 관계는 선으로 그어놓기라도 한 마냥 이제 완전히 남남인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애는 이제 승현이 아니면 자기하고 어울릴만한 급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과만 말을 섞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은 애들은 다가올 수도 없게 자기만의 딱딱한 껍데기를 뒤집어썼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아니, 하다못해 개라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강철 같은 방어막으로 자기를 감쌌다. 처음부터 시인이에게 쉽게 다가간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더욱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승현이가 없이 혼자 있을 때에는 돌연 석고처럼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자기 자리에만 붙어 있었다. 원래도 시인이는 자기만의 세계와 공간에 다른 사람이 함부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시인이가 들어줄 수 없는 열 몇 가지 부탁’ 같은 건 아무 여자애나 다 갖고 있는 원칙일 리가 없었다. 친했을 때에는 그나마 마음이 통하던 것들도 어쨌거나 필요한 만큼 주고받는, 매우 계산적이고 원칙적인 시인이 특유의 사람 사귀기 기술이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우정’이 아니었고, 승현이와 나 둘 중에서 승현이를 선택한 시인이에게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명백한 문제였다. 무엇이 더 그녀에게 끌리는지, 무엇이 더 그녀에게 이로운지, 무엇이 더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지, 철저한 계산 하에 나는 탈락되었다. 마치 나와 승현, 시인 세 사람의 사슬과 같은 관계에서 나 역시 능동적인 뭔가를 시도했던 사람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보면 내게 벌어진 일들과 그 마지막 결과는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고, 내가 자초하지 않았어도 겪게 될 일이었다. 나의 불행과 실패는 어찌 보면 불가피했다. 그 얇은 사슬을 끊은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인이와 틀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너무 짧은 시일 내에 이루어진 데 비해서 내가 거기서 소모하게 되는 감정은 지나치리만큼 커지고 커져갔다. 첫째, 시인이는 너무 예뻤고, 둘째, 나도 그 외모를 좋아했고 심지어 탐했으며, 셋째, 결코 나는 시인이가 될 수 없지만, 넷째, 시인이는 이미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 다섯째, 승현이까지도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이 다섯 가지 사실들은 곱씹을수록 내 속을 끔찍하고 황폐하게 헤집어놓았다.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인생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때에도 어김없이 받아온 저급한 성적표를 보고선 처음으로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이즈음에는 거울마저 보기 싫어졌었다. 3학년이 되고서는 좀 나아졌지만 정말 말로 설명 못 할 나에 대한 혐오감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는, 나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심하게 찾아왔었다. 친구들을 대할 때에도 힘들었다. 도저히 나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과 내 말과 행동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눈뜨고 차마 못 볼 광경일지 상상이 되었다. 그냥 나는 구제불능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시인이는 나를 멀리한 것이고, 아마도 그래서 나는 시인이를 멀리하게 된 것 같다. 이토록 선명하고 날카로운 아픔이 가슴 속을 저미듯 헤엄을 쳤다.

 

여기까지가 나의 고등학교 2학년 시기 중에 벌어진 큰 사건들이었다. 이후로 집에서도 밖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단지 정체되었을 뿐이었지만 정체기가 길어진 탓에 나는 모든 일이 이대로 아무 변화 없이 계속되어질 거란 착각에 빠진 채 새 학년을 맞이했다. 예상한 대로 정민이가 우리 학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했고, 나는 고등학교 마지막 시절이 될 3학년이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마음을 달리 먹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더욱 아무 것에도 미련 갖지 않았고 아무 것에도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내 몸과 마음은 불안정했지만 이제는 겨우 1년이 남았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동등한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모두들 이 시기를 가장 잘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어찌됐든 아웅다웅 지내는 틈에 서로에게 익숙해졌고 이 장소와 이 시간들과 이 사람들에게 듬뿍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비록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눌 이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해도, 내가 여기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이런 순간들조차 버텨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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