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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17)

첫 인상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끼친 건 아무래도 민석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는 바로 옆 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각 지역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14살들은 서로의 얼굴을 익힐 새도 없이 낯선 학교생활에 발맞추는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간 수학 문제와 다양한 종류의 시험, 배로 불어난 하루 일과표에 적응해가는 한편 성격도 잔뜩 까칠해져버렸다. 고목나무처럼 밋밋하던 몸매에 조금씩 곡선이 더해지는 여자애들은 빠르게 성숙해져갔고 남자애들의 성적 관심도는 무서울 정도로 치솟았다. 남녀가 서로 다른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체육수업이 있는 날은 훨씬 더 민감하고 예민해졌다. 아직 초경이 오지 않은 나는 머리만 긴 남자애나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들의 수줍음을 공감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여름이 되자 더위를 핑계로 스탠드에 앉아서 체육수업을 받지 않는 여자애들이 그저 눈엣가시였다. 고작 한 주만에 그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서야 나 또한 때때로 스탠드를 빌리게 되었다.

그 즈음에 얼굴을 익히게 된 민석이란 아이는 좀 특이했다. 가끔씩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낯이 익었는데, 모르고 찬 공이 내 품에 들어왔던 날 이후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던 나를 세워놓고 이름을 물었다. 나는 친구와 팔짱을 끼고 화장실을 가던 길이었다. 친구가 대신 내 이름을 민석이에게 말해주자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닌데?”라고 했다. 우리는 별 웃기는 애 다 봤다며 깔깔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런 이후로 민석이는 나를 볼 때마다 수시로 아는 척했다. “이승민! 배는 이제 괜찮냐?” 아니면 “이승민, 안녕! 집에 가냐?” 그도 아니면 “어! 이승민이다! 너 혹시 100원 있어?”라는 식으로. 민석이와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만 해도 녀석의 관심은 풋풋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재미없거나 우울한 일이 있는 날에도 민석이만 만나면 기분이 확 풀렸다. 항상 나를 웃겨주었고,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민석이를 보고 인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때는 민석이의 코도 오뚝하고 턱은 갸름했다. 눈은 원래부터 가늘고 작았지만 반짝이는 눈빛에는 순수함이 빛났다. 순수함이 민석이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다른 남자애들과 달랐고, 그게 좀 특이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14살이라서 그런 모습도 어울렸던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 해부터 생겨났다. 우리가 한 반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민석이는 여전히 순수한 아이답게 기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느라 들뜬 채로 몇날 며칠을 보냈다. 나는 민석이같지 않았다. 내가 정한 적정선의 경계를 넘어가는 건 부담스러워서 견디질 못 한다. 그 정도면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우리의 만남을 충분히 축하한 것 같은데도 민석이는 날마다 똑같은 대사를 우려먹고 또 우려먹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민석이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하지만 내가 질려서 민석이를 멀리하려하면 할수록 그 애는 자석처럼 더 강하게 이끌려왔다. 내가 똑같이 동조해줬다면 그만뒀을지 몰라도 더는 정상적인 기쁨의 표시가 아니라 집착에 가까웠다. 15살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팽팽한 갈등과 긴장이 매일 새롭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시기가 아니었다. 더불어 민석이의 끈질긴 구애까지 견디려니 하루가 깡그리 스트레스로 뒤범벅되었다. 어서 이 해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라던 끝에 새해가 다가왔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끝까지 민석이의 덫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 게 내 소망의 결말이었다.

모르는 사이 민석이의 모습이 많이 변해갔다. 오뚝하던 코가 점점 더 크게 자라고, 턱도 커졌다. 갑자기 쑥 커진 키와 비례하게 몸집도 1학년 때의 날렵하던 몸매에서 배는 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연락하던 중학교 동창들이 가끔 민석이의 안부를 물어서 사진이라도 보여주면 박장대소를 하며 놀라워했다. 나는 줄곧 같이 생활을 해서 민석이가 얼마나 변했는지 몰랐는데 친구들의 반응을 보니 알만했다. 하기는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는 처음 만났던 날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예전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민석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또 한 번 자리를 바꾸는 날이 찾아왔다. 요번에는 하나와 좀 떨어져 앉아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앞뒤로 앉으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 말이 교훈으로 남았다. 수능에서 적정 수준의 성적만 필요로 하는 하나의 여유로움에 하마터면 나까지 전염이 될 뻔했다. 이제는 진짜 벼락치기로라도 수능에 진중히 임해야 했다. 수업시간에 딴 생각하는 버릇까지 잠시만이라도 참고 버텨보고자 창가 맨 앞자리로 이동했다. 희주가 내 뒷자리로 옮겼다. 여름방학 내내 붙어 다니면서 우리는 서로의 속사정을 꽤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이 지시하지는 않으셨지만 우리 반 애들이 자발적으로 남녀 갈라서 앉기로 규칙을 세웠다. 남자애들은 복도 쪽 자리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여자보다 명수가 적은 남자애들을 구석에 몰아넣으니까 훨씬 수가 적고 초라해보였다. 자기들도 그걸 느꼈는지 요새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질문을 하시면 최대한 큰 목소리로 대답해 어떻게든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하며 보여주는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누구라도 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또 축 처진 시간들을 붕 띄울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줘야 마땅했다. 나를 위해서 해준 일은 아니지만 나는 가끔씩 그런 식으로 웃겨주는 남자애들이 고마웠다. 이제는 다 커버린, 소년티를 때 밀듯 벗겨내는 남자애들이었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저애들도 아직 나처럼 속은 한없이 여린 풋내기들일 터였다.

 

주환이가 교실에 남은 책상 하나를 복도로 옮겨놓았다. 야자시간에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다들 이리저리 조용한 자기만의 장소들을 물색하며 떠돌곤 했다. 승현이는 이번에도 창가 맨 뒷자리를 맡았다. 정말로 그 자리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지난번 ‘사이코’ 사건 이후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동안에는 내 감정이나 경험을 토대로 사람을 알아갔는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지 결국에는 친했던 친구에게 ‘사이코’ 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정민이와 화장실에서 싸운 일은 화해하지 않고 버틴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어색하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화해는 했는데 정민이는 아직 조금은 꽁해있는 상황이라 동생과 긴히 상담하고 싶은 고민거리가 수두룩해도 그런 얘기를 꺼내기는 이른 시점이었다. 아무튼 승현이를 조금은 파악한 것 같아서 정민이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뿐이었다. 승현이가 다른 남자애들과 분명히 차별화된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그게 뭔지 살짝 감을 잡은 것 같다. 내가 만약 ‘사이코’라면, 누구에게나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병이 조금씩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 번도 내 정신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다들 자기만 모르는 정신적인 질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몇 가지 일화들과 승현이가 직접 말한 내용들을 두루 살피고 추론한 끝에 그는 어쩌면 완벽주의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감정만을 앞세웠을 때 내가 보던 승현이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완벽 그 자체였다. 공부, 외모, 운동신경에 섬세한 성격까지, 그의 친구들이 반농담조로 ‘진국’이라고 하는 표현마저 그랬다. 세상 어디를 가도 저런 남자애가 또 있을까?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그런 애와 한 교실을 두 번이나, 아니 기억에 없는 과거까지 포함해서 세 번이나 공유했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당연한 자연의 순리처럼 그에게 마음이 이끌렸고, 그도 내게 그러길 바랐다. 그리고 대다수 여자애들이 진지하게 아니면 가볍게 승현이를 좋아했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심각한 비관주의자만 아니라면 승현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 지역 간판이었다. 그런 승현이를 오래도록 조용히 바라만 보다가 뭔가 색다른 장면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마치 몰래 코를 파다가 걸린 그가 민망해 할까봐 내가 더 민망해지는 상황처럼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승현이의 눈에 거슬리는 장애물이었던 것 같다. 자기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서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잘 판단하면 그에게 인생은 게임처럼 재미있고 쉽게 풀렸다. 엄격한 아버지와도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았고, 누구보다 잘난 사람이지만 친구들 앞에서 나서는 대신 존중해주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자제심에 존경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동안 그가 내게 보인 행동들에 많은 의미부여를 해왔다. 특별한 신호를 잡아내기 위한 레이더처럼 늘 그의 주위를 떠돌며 관찰하고 뭐라도 잡아내면 마음은 한순간에 어지러워졌다.

정민이는 매번 달랐다. 승현이와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면 어쩔 때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용케 알고 해주었고 또 어떤 날은 영 가망이 없다는 식으로 조언했다.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누구라도 나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면 내가 그 마음을 조금도 모를 리 없다는 걸 말이다. 뭐, 아주 마음을 꽁꽁 숨기고 있으면 알 턱이 없지만 승현이는 가타부타할 것도 없이 시인이를 좋아했다. 어쩌면 내 속마음을 어렴풋이 눈치 챈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 뜻 없이, 호감의 신호가 아니라 단지 껄끄러운 사이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심지어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 된 애와 이왕이면 좋게 지내고 싶어서 어르고 달랬던 게 아닌가 싶다. 가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과 편 가르기를 할 때면 하는 말이 있다. 여자들은 행동거지 하나,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둔다고 한다. 그럼 여자애들은 그런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생각하는 수준이 유치하고 철부지 같다고 말이다.

어차피 나와 승현이가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웠다. 그를 아는 것만으로도 족한 수많은 여자애들과 내가 동급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좀만 더 빨리 인정했더라면 나는 시인이 덕을 보아 승현이와 친한 친구라도 될 수 있을 뻔했다.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시간은 건조하게 흘러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벌써 샛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이 대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창 밖 풍경은 벽걸이 액자 속에 담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생활과 과학’을 가르치는 이과반 선생님은 저 은행잎이 다 떨어지는 날 우리에게 임할 수능을 항상 상기하라며 종말을 예언하는 예언자처럼 무섭게 다그쳤다. 그럼 다들 앓는 소리를 하며 애꿎은 은행나무를 원망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 있는 창문에서 은행나무가 가장 잘 보였기 때문에 꼭 나를 향해 퍼붓는 것 같아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잠자코 야유가 가시기만을 기다리며 나는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황금색 꽃다발’이 다 지면 나와 우리가 여기서 함께 하게 될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기는 먹었는지 이별 앞에서 해맑았던 나조차 갈수록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야자시간에 뿔뿔이 흩어져 자기 공부를 하는 반 친구들을 볼 때도 예전 같지 않았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희주가 내 마음에 가장 공감을 잘 했다.

수시 합격자 발표가 연달아 일어났다. 전형에 따라 서류나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고 면접을 봐야하기도 해서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붕 떠있었다. 수시를 낙방한 애들이나 합격한 애들이나 아니면 정시를 준비하는 사람까지도 저 밑으로 가라앉아가는 교실의 기압을 견뎌내질 못 했다. 나도 조금은 의욕이 줄어들었다. 입맛이 없어도 허기가 지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공부를 꾸역꾸역 해가자니 욕구불만이 치밀었다. 희주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을 자주 늘어놓았다. 뭣 땜에 우리가 이 좁은 닭장 안에 갇혀서 가장 예쁘고 좋은 시절을 이딴 식으로 갖다 버려야만 하냐고 욕까지 섞어가며 불퉁하게 내뱉었다. 이팔청춘은 다 얼어 죽었다고, 사회가 다 병들었다고 석식시간 벤치에 앉아서 떠드는 폼이 언뜻 운동가를 연상시켰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악!”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운동장에는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애들이 나와서 저녁바람을 쐬고 있었다. 나를 붙잡아 일으키며 얼른 너도 소리 지르라고 막무가내였다. 나는 소심하게 “와!”하고 목소리를 키웠다. “그게 아니라 네 속에 불같은 분노를 내뿜어야지!” 수능이 나를 화나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춥다!”

목에 머플러를 두르고 종종걸음 걷는 하나가 말했다.

“진짜 너무 추워. 빨리 사가지고 가자.”

아침을 못 먹어서 매점에 빵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층계참에서 영어선생님을 맞닥뜨렸다. 나는 꾸벅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바로 지나가려고 했다. 헌데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승민아, 너 두 군데 붙었다며? 그 중에 한 군데에서 장학금도 나온다던데?”

“네? 장학금이요?”

“그래. 네가 1등인가 2등이라고 그러시더라, 담임선생님께서. 교무실에서 반전 소녀라고 소문 다 났어.”

하나가 제법이라는 눈빛을 보냈다. 아직 하나는 합격 소식을 못 들은 상황이라 나는 좀 조바심이 났다. 실기시험이 가장 늦게까지 있기 때문에 예체능에 지원한 친구들은 여전히 긴장 상태였다. 선생님이 나한테 잘못된 정보를 줄 리는 없지만 내 수준을 잘 알고 있어서 미심쩍기만 한 소식이었다. 하나는 잘했다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12시 반쯤 먼저 하교해서 학원에 틀어박혀 내내 실기시험 준비를 하는 하나야말로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한테 수능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신 점수가 형편없던 터라 모든 걸 수능에 걸어야 했는데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만 치중해서 성적을 유지시켜 나중에 내가 지원서를 들이밀 수 있을 만한 대학만 잘 찾아보면 그만이었다. 고3이랍시고 요란을 떨고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엄살 피우던 거에 비해 수능이란 게 너무 별 볼일 없어서 괜히 아쉬웠다.

희주는 시험이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보자 대성통곡을 했다. 머리가 북슬북슬하고 키가 땅딸만한 희주의 엄마도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두 얼굴의 묻은 눈물을 닦아주면서 애달픈 장면을 연출했다. 나는 두 사람을 그대로 지나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금방 어둑하니 어둠이 내리깔린 11월의 추운 길을 홀로 걸으며 빠르게 지나간 세월을 하나씩 떠올렸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하교하던 날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데, 이 날이 진짜 마지막 하굣길인 것처럼 모든 쓸쓸함이 그 길 마디마디에 사무쳤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와 동생이 삼겹살을 구우며 축하파티를 열어주었다. 종일 머리를 쓰느라 정말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짐을 현관 앞에 내팽개치고 교복도 채 벗지 않고 상 앞에 주저앉았다. 엄마가 살갑게 어깨를 주물러주며 수고했다고 위로해주었다. 정민이는 아침부터 제가 더 떨린다며 언니 얼굴 못 보겠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여태도 긴장이 되어서 시험은 잘 봤는지 물어보지도 못 했다.

“야, 수능 별 거 없더만! 모의고사를 하도 봐서 그런지 그냥 모의고사 보는 거랑 똑같던데?”

“언니는 외유내강이라 그래! 오늘 뉴스 보면서 걱정 돼서 난 죽는 줄 알았어.”

“왜? 뉴스에 뭐 나왔는데?”

“아, 막 누구는 지각해서 경찰차 타고 간신히 도착하고, 누구는 시험 보다가 배탈 나서 나머지 다 망치고, 어떤 학교는 스피커가 고장 나서 영어듣기 문제 하나도 못 풀고 난리 났었어!”

“진짜? 하긴 내 친구도 오늘 갑자기 아파서 컨디션 극악이라고 그러더라. 시험 끝나고 울면서 집에 갔어.”

“그래서 언니는? 무사했다는 거지?”

“난 원래 그러잖아. 옆에서 난리 치면 더 침착해지는 거….”

어느새 가위와 집게도 내가 들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정민이는 굽는 족족 집어먹다가 엄마한테 핀잔을 들었다.

“정민아, 고생한 언니 좀 먹이자.”

나는 금방 배가 불렀다. 모르긴 몰라도 나 역시 꽤 긴장을 했었나 보다. 아까의 허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잘 하지도 않던 트림이 연신 나왔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이 다 소화된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언니도 좀 긴장했네, 뭐.”

“마음은 안 그런데 몸은 그랬나봐.”

“아냐. 마음도 그렇지만 언니가 참은 거야.”

“네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좀 있으면 집 근처 마트에서라도 일을 할 거라고 했다. 정민이도 더 독서실을 다녀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짐 빼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민이는 징징거리며 독서실에서 훨씬 공부가 잘 된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넘어가줄 듯 말 듯 애만 태우다가 엄마는 기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엄마의 눈에서 미안함을 읽어내고 정민이가 먼저 체념했다. 우리에게 해주고 싶어도 그것을 해주지 못 할 때 엄마는 꼭 그런 표정을 지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가채점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틀었다. 발 빠른 입시학원에서 수능시험 답안지를 임시로 만들어서 수험생들이 열람할 수 있게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정민이는 요번에도 도저히 언니의 성적을 확인할 엄두가 안 난다고 손톱을 깨물며 거실로 내뺐다. 나는 문을 닫고 침착하게 수험표 뒤에 적어온 답안을 꺼내어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정답과 비교해 채점해보았다. 조심스럽게 채점한 과목의 점수를 계산하고 두어 번 더 확인해본 뒤 수험표를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자 선생님은 가채점한 점수를 써서 내도록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셨다. 종이에 자신 있게 점수를 써서 선생님께 낸 후에는 또 한 사람씩 교무실로 불려갔다. 지망하는 학교와 학과 중에서 자기 수준보다 상향인 학교에 지원하거나 하향인 학교에 지원하도록 선생님이 조언도 하고 지도해주셨다. 벌써 몇 명은 잠을 설쳤는지 누렇게 뜬 얼굴로 재수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대부분 그토록 끝나기만 바라던 시험을 뒤로 하고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시로 이미 대학에 합격한 친구들은 감히 말 한 마디 보탤 형편이 안 되었다. 전보다 더 경거망동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따로 정해진 주인공은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차례로 주목을 받았다. 주목을 받는 이유도 각자가 다 달랐다. 시험 치러 가는 도중에 누군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기도 했다. 의외로 당사자는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담담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전혀 듣지를 못 했다. 그 당사자인 영진이가 훗날 내게 직접 말하게 될 때까지도 모르고 살았다. 희주는 평소 실력과 큰 차이 없이 무난한 결과를 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승현이는 최고 명문대의 문턱을 이미 밟은 셈이었다. 그가 완벽주의자인지, 정말 완벽한 건지는 미지의 숲이었다. 고등학교의 막바지로 가면서 불확실했던 미래가 희미하게 걷히며 각자의 앞길이 조금은 열리고 있었다. 결국에는 승현이와 나와의 공통분모는 독서취향 달랑 하나였다. 그를 처음 만났던 17살 초여름의 도서실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승현이를 알게 되고 꿈꾸는 동안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독보적인 주인공이었다. 그가 알지 못 하는 세계 속에서 나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승현이와 진짜 승현이가 많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나는 그를 정말 좋아했다. 여전히 그는 우리들의 주인공이다.

 

수능이 끝나버리자 성수기 지난 여행지처럼 교실은 더없이 적막하고 쓸쓸했다. 계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관심도 가진 적 없는데, 밖은 황량한 바람만이 떠돌았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다 끝마쳐진 건 아니었다. 지루한 시간 끝에 방학이 되어 몇 사람씩 대입 상담을 받으러 학교에 들렀다. 오전 중 선생님과 약속한 시간에 느지막이 교문을 지나 언덕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갔다. 1, 2학년들도 전부 방학인 기간이라 학교가 영 썰렁했다. 불이 꺼진 교실 앞에 서서 혹시나 하고 문을 당기자 의외로 문은 열려 있었다. 온풍기만 혼자 돌아가며 교실 안을 소음으로 꽉 채웠다. 온풍기 소리가 상당히 시끄러웠다. 고장이 났는가 싶었다. 손이 시려서 곧장 그 앞으로 가 손부터 녹였다. 그러다 금방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내 다음 번호인 정은이였다. 3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인데 워낙 조용해서 말도 얼마 섞어본 적이 없는 애였다. 나는 손짓하며 불렀다. “이리와. 여기 따뜻해.” 찬바람을 쐬고 온 정은이의 두 볼이 새빨갛게 얼어있었다. “우리 언제쯤 올라가면 돼?” 정은이가 조심스런 어투로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부르러 오시지 않을까?” 내 말에 정은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입을 다물었다. “너 가고 싶은 학과 정했어?” 이번에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보통은 상대한테 되물을 텐데 그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둘이서 조용히 있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나도 더 무슨 말이 하고 싶지는 않아 묵묵히 따뜻한 바람만 쐬었다.

나와 정은이가 따뜻한 온기에 취해 침묵을 즐기고 있는 참에 또 한 명의 상담자가 교실에 들어섰다. 정은이 다음 번호인 보라였다. 보라는 우리 둘을 보더니 뻣뻣하게 “안녕.”하고 인사했다. 나는 인사는 둘째 치고 “너 인‧적성 본다지 않았어?”하고 급하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젓기만 했다. 보라의 태도에 나는 당장 기분이 상해졌다. 보라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보라가 율령이와 친하다는 사실을 얼른 기억해내고 관심을 껐다. 하지만 방금 들어온 보라 역시 몸을 녹이려고 온풍기 앞에 섰고 우리 셋은 아까완 달리 좀 불편해졌다. 보라는 팔 하나는 온풍기가 바람을 뿜는 쪽으로 올리고 한쪽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연신 문자만 보냈다. 정은이는 친하지 않은 친구 두 사람이 어색한 관계인 것을 눈치 챘는지 아니면 내 기분 탓인지 괜히 곤란해 하는 것 같았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실 문이 열렸다. 담임선생님이었고 맨 첫 번째 순서인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에 가니 여기저기 자기 반 학생을 옆에 끼고 대입 상담에 열을 올리는 풍경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황막하던 교실과 달리 교무실에는 훈훈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나 역시 선생님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내 성적과 원하는 학과에 적합한 학교를 찾아보며 지원하는 방법을 설명 들었다. 컴퓨터에 서툰 선생님과 나는 주객이 전도되어 나중에는 내가 선생님께 방법을 가르쳐드려야 했고 선생님은 그러셨다. “역시 우리 반 반전 소녀!”

내 차례가 끝나고 정은이를 부르러 내려갔다. 보라와 정은이는 그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은아, 선생님이 올라오래.” 보라는 정은이에게 살갑게 두 손으로 인사를 해보였다. 나는 정은이를 따라 교무실에 같이 올라갔다. 보라와 단 둘이 교실에 있기가 싫었다. 정은이가 선생님과 함께 학교와 학과를 성적에 매치시키는 동안 나는 서투른 선생님의 보조 역할을 했다.

“승민이, 많이 변했어.”

대각선으로 마주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영어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제가요? 똑같은데….” “1학년 때 제가 승민이 담임이었거든요, 선생님.” 담임선생님이 듣고 흘깃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승민이가 변했어요?” “예! 그때는 그냥 예쁘고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승민이 지금도 예쁘고 착한대요?” “에이! 지금 아니라는 게 아니라, 승민아, 나한테는 그렇게 살갑게 안 하더니 왜 너희 담임선생님하고는 꼭 부녀지간처럼 사이가 좋냐?” 나는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 뭘 질투를 하고 그러세요? 사제지간이 좋으면 좋은 거죠옹!” 뒷자리에 앉아계신 이과 수학선생님이 콧소리를 내셨다. “아, 승민이 너무 변했어. 나한테는 장난도 안 치더니 순 내숭덩어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영어선생님은 계속 너스레를 부렸다. 담임선생님과 나는 그저 이를 드러내고 웃기만 했다.

나의 역할이 끝나고 정은이와 함께 교무실을 나가려다가 흠칫 놀랐다. 교무실 구석진 자리에 강민경이 자기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민경이가 한 공간에 있었다는 점에서도 물론 놀랐지만 내가 더 놀란 이유는 그 애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앉은 민경이 담임선생님도 암담한 얼굴을 하고서 무뚝뚝하게 휴지 몇 장을 뽑아 민경이 앞에 올려두었다. 민경이는 눈물을 흘리다 말고 휴지에 코를 풀었다. 그녀 성격대로 코를 풀 때도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세게 풀었다. 정은이와 나는 놀란 얼굴로 몇 초간 쳐다보다가 더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보라에게 인수인계를 하러 서둘러 교실로 내려갔다. 우리가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보라는 미리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올라가보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생님이 바로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셔서 정은이와 같이 밖으로 나섰다.

“정은아, 집에 갈 거야?” “어, 왜?” “아니, 그냥. 우리 떡볶이 먹고 갈래?”

정은이와 시장에 있는 매운 떡볶이 집에 가서 이것저것 배불리 먹으며 앞으로 가게 될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 먹어갈 쯤에 정은이가 말을 꺼냈다.

“나 승민이한테 궁금한 거 하나 있어.”

“진짜? 뭔데?”

“승민이 맨날 밖에 보면서 무슨 생각하는지….”

동그란 안경알 너머로 정은이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대화하기가 불편했지만 그만큼 대화에 집중되었다. 또 의외의 상대가 꺼내는 말도 아주 신선했다.

“항상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는지 궁금했어. 승민이는 좀 독특하기도 하고 신비로운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는 그런 사람 보면 몽상가 같다고 하는데….”

“난 그냥…. 모르겠어. 근데 내가 독특해? 난 몰랐어. 내가 그랬어?”

정은이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용하고 다부진 분위기에 나도 조금 물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티도 안 나는 조용한 애라고만 여기던 정은이와 친구가 될 수도 있다니, 그것도 다 끝나가는 시기에. 인생은 알 수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나는 나를 떠올렸다. 어떤 색인지, 모양인지도 모르고 공중을 부유하던 수많은 생각들에도 내가 있었다. 비록 어디에 쌓이지도, 흔적을 남기지도 않지만 그 생각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럼 나라는 건 끝이 없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져서 한숨을 깊이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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