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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18)

푸른 냄새

 

정민이의 짐을 같이 챙겨주러 함께 독서실에 왔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낯익은 풍경이 반가웠다. 동갑인 고3 수험생들은 죄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좀 더 구경을 하려고 식당도 둘러보고 내가 앉았던 칸에 커튼도 슬쩍 젖혀보았다. 방바닥이 약간 미지근해서인지 고시생 언니들은 담요를 어깨 위에 걸치고 다녔다. 정민이는 언니들과 헤어지며 아쉬워서 눈물을 글썽였다. 독서실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더니 빈 말은 아닌가 보았다. 정민이에게 군것질 거리도 챙겨주며 가는 길에 배웅도 받았다. 나는 박스를 안은 채로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가로수의 빈 나뭇가지가 허공으로 손을 벌린 채 서있고 전깃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도로에는 차가 가끔씩 오가며 찬바람을 일으켰다. 정민이가 작별인사를 마치고 먼저 앞서가던 나와 발을 맞췄다.

“언니들이 나 진짜 잘해줬는데, 힝! 아쉽다.”

나는 박스를 추켜올렸다. 한약재 냄새가 점점 가시며 시장 특유의 비린내와 고무냄새, 새 물건 냄새 같은 게 났다. 머리카락이 날려서 코가 간지러웠지만 두 팔이 묶여있어 긁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시장을 지나 모서리에 있는 카페 앞을 걸으니 짙은 커피향이 풍겼다. 정민이는 내내 독서실에서의 좋았던 일들을 조잘조잘 읊어주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문을 죄다 닫은 분식집들을 지나 교문 앞 버스정류장에 당도했다. 교문 옆으로 둘러쳐진 담벼락과 그 위로 삐죽이 솟은 잣나무가 위엄 있게 올려다보였다. 박스를 버스정류장 의자에 잠깐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걸어온 길을 원근법으로 사진 찍어두었다. 정민이가 자기도 한 장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몇 분 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나는 버스 맨 뒷자리로 가서 뒤돌아 앉아 멀어지는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연 학교 앞 현수막에는 납득이 갈 만한 이름 석 자가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한 나라의 인재들을 추앙하듯 사지가 빳빳하게 당겨진 현수막이 안간힘을 다해 팔락거렸다. 좁은 간격을 두고 촘촘히 적힌 이름 중에 내가 섞여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하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수차례 오르고 내리던 길이 그날따라 낯설었다. 낯선 상인들이 교문 앞에 진을 치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겨울에 볼 수 없는 싱싱한 꽃들이 예쁘게 다발로 포장되어 있는 광경이 낯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한승현!” 나는 마지막이라는 빌미로 용기를 내어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빙긋 웃으며 돌아보는 승현이의 머리가 많이 자라있었다. “현수막 봤어?” “아니. 민망해서 못 보겠어.” “안 보려고 해도 보이더라. 네 이름 엄청 크게 붙여놔서.” “아, 그러니까!”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승현이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아무튼 축하해.” 승현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축하는 뭘. 넌 어디 붙었어?” 친근감 있게 그는 내게도 물어보았다. 내가 막 대답하려던 찰나, 승현이 친구들이 복도 끝에서 그를 발견하고 이름을 크게 부르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밝은 목소리로 자기 친구들과 아는 척을 하기에 나는 이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거라고 벌써 단념하고 있었다. “넌 장학생 됐다고 하지 않았냐? 너도 축하한다!”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더니 승현이는 친구들이 부르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고마워.’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교실은 어느 때보다 난장판이었다. 일인용 책상은 아무렇게나 붙어있거나 떼어놓았고 칠판에 온갖 낙서를 해놔서 사방에 분필가루가 지저분하게 흩어져있었다. 게시판에 붙여놓은 모집전형은 누가 다 치워버렸는지 초록색 부직포만 휑뎅그렁해서 허전했다. 책상과 사물함, 창가마다 쌓여있던 책들도 다 치워졌다. 남은 거라곤 사람뿐인데도 수능보기 전보다 더 정돈되어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들 제멋대로 왁자지껄 떠들어서 더 정신이 없기도 했다. 하나는 가고 싶어 하던 대학보다는 조금 못한 곳에 붙어서 약간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실기시험 보는 동안은 남친이랑 연락도 안 했는데….”하고 혼자 변명을 했다. 내가 하나보다 대단히 좋은 학교에 붙은 것도 아닌데 굳이 부러워하는 소리를 해서 난감하기도 했다. 평소 성적에 비하면 엄두도 못 낼 학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나 나는 도진개진이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나와 하나의 목소리는 가까이에 앉아서도 잘 들리지가 않았다. 우리는 어차피 더 할 대화도 없는 것을 포기하고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승현이 자리에는 많은 애들이 몰려가서 떠들고 있었다. 어떤 남자애들은 단체로 머리를 염색해왔고 여자애들은 펌을 하고 와서 자기들끼리 누구 머리가 잘 됐네, 누구 머리가 예쁘네 하는 식의 이야기를 했고, 그 중에 연정이는 대놓고 승현이가 대학가면 인기가 장난 아닐 거라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여자애들도 동조하며 거리낌 없이 마음을 드러냈다. 오래 갈 줄 알았던 시인이와 언젠가부터 멀어진 것 같았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다시 혼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중 누구에게 그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못해도 시인이 정도는 되어야 그와 어울리는 짝이 되니까 말이다.

유명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최종 합격했다는 주환이도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면접 보고 온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문득 교실 뒷문에 덩그러니 놓인 빈 책상에 눈길이 갔다. 우리는 각자 막연한 미래에 대해 아무렇게나 떠들며 머리 위에 붕 떠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잠시 기억에서 지워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쯤 넌 뭘 하고 있을까?

 

“영영 못 만날 사람처럼 말하네. 아직 살 날 많거든?” 그를 떠나보내며 내가 했던 말이었다. 떠나는 직전까지도 평소랑 일거수일투족 변함이 없었다. 잘난 척하며, 언제나 한 수 위인 냥 고개를 쳐들고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나랑 헤어질 줄 알았어?”라고 뻗대는 녀석을 뭐라고 더 나무라지도 못 하고 말았다. 이미 다른 친구 손에 이끌려 내 앞을 떠난 뒤였다. 나는 가만히 눈을 뜨고 반 친구들과 희희낙락 작별을 고하는 민석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교실을 나왔다. 중앙현관으로 나와서 소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벤치 중 맨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 머리를 하나로 잡아 올리며 목덜미에 손부채질을 했다. 날씨가 점점 더 선선해지고 있었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잣나무 가지를 흔들며 불어왔다. 벤치 주위에 떨어진 삐죽삐죽한 가지가 오독오독 밟혀서 슬리퍼 바닥으로 긁어 의자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후끈했던 목덜미가 식혀져서 들어 올렸던 머리를 손에서 떨어뜨려 죄다 뒤로 홱 넘겨버리고 생각에 잠겼다.

미국이 얼마나 먼 나라인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도 한 번은 전학을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한 서너 번 정도는 그전 학교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도 같다. 아니면 한 두어 번이었을 수도 있고,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아무튼 한국 안에서만 집을 옮긴다고 해도 원래 살던 곳의 이웃이나 친구는 미련 없이 다 두고 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미국이 과연 얼마나 멀지, 그게 뭐 대수인지, 아주 멀리 보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멀거나 가깝거나 떠나는 건 똑같았다. 민석이는 이제 곧 떠날 사람이었고, 나는 서운하지도 시원하지도 않고 그냥 ‘가는구나.’ 하고 말았다.

나는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벌써 고 3이 반이나 지났는데, 뭐 하러 지금 가? 더 일찍 가거나 더 있다 가거나 하는 게 낫잖아.”하고 퍽 관심이나 있는 듯이 떠벌렸었다. 누구나 민석이에게 인사치레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머잖아 수능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이 와중에 이민을 간다니, 얼핏 선생님들 하는 얘기를 들으면 분위기를 망쳐도 이렇게 망쳐놓을 수가 있냐고 민석이 부모님을 못마땅해 하는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 민석이네 부모님은 아마도 둘 중 하나의 부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매우 용의주도하거나 그저 자유분방하거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장 큰 풍랑을 눈앞에 두고 배를 떠나려 작별인사를 하는 민석이가 조금은 부러웠다. 어차피 내게는 가망이 없는 일이라 안달이 날 정도로 부럽지는 않았지만 잠깐이라도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서 ‘만약 나였다면…….’ 목전에 둔 수능이고 자시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그래서 모두의 관심의 중심에서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면, 나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하고 홀가분해지는 마음이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와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나는 다시 머리를 하나로 모아놓고 가느다란 핀을 가슴팍 주머니에서 꺼내어 이마 위에 비스듬히 꽂아두었다. 창을 통해 우리 반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떠나는 건 과연 민석이만일까? 우리는 전부 19살, 고등학교 마지막 과정, 3학년이었다. 수능 모의고사를 겨우 두 번 남겨놓았고, 소운동장 가장자리에 키가 큰 은행나무는 햇살에 차츰 나뭇잎이 마르게 하고 있었다. 하늘은 전보다 높아졌고, 너무 푸르러서 동그란 두 눈에 새파랗게 눈물이 맺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 자리에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정문을 기준으로 끝에서 두 번째에 놓인 벤치가 바로 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시인이와 동시에 나무의 향긋한 냄새로 샤워하는 기분을 느끼던 바로 그 자리 말이다.

점심을 먹고 5교시가 가까워질 즈음 소운동장으로 흰색의 중형 승용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창가에서 보이자 민석이는 미리 챙겨둔 가방을 주섬주섬 어깨에 둘러메며 머리를 긁듯이 삭삭 쓸어 넘겼다. 5교시 수업 준비를 하느라 왁자해진 복도에는 이를 닦는다고 화장실과 수돗가로 왔다갔다 싸돌아다니는 애들로 붐볐다. 교실은 보다 한적한 분위기였다. 나는 아까부터 내 자리인 창가 맨 앞자리에서 바깥구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승용차가 주차장이 아닌 소운동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민석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실 중앙쯤에서 친구 하나와 중얼중얼 저음으로 대화를 하고 있던 민석이는 내가 반짝 고개를 돌리자 흘깃 나를 쳐다보더니 곧바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예상대로 민석이를 태우러 온 부모님의 승용차가 맞았다. 자리에 앉아서 주환이는 민석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석이가 주환이와 악수를 하더니 손을 잡아당겨 자리에서 일으켰다. “엄마, 왔다.” “벌써 오셨어?”

검게 코팅이 된 승용차의 유리는 강렬하게 해를 반사시키며 엔진을 켠 채로 소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운전석에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을 민석이의 엄마는 가만히 차안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나는 내심 민석이의 엄마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서 차문을 열고 나오길 바랐다. 민석이의 작은 눈과 구부러진 큰 코가 누구에게서 온 것일지, 그리고 유난히 넓은 턱이 과연 모전자전이었을지, 부전자전이었을지 상상하고 있었다. 귀로는 민석이가 의자를 밀어 넣고 터벅터벅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눈은 창밖에 박아두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을 민석이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

“이승민! 나, 간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승민!” 재차 부르는 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승용차의 유연하게 잘빠진 몸체를 구경했다. 민석이는 주환이만 데리고 교실에서 빠져나갔다. 복도에서 “민석이, 진짜 가냐? 잘 살아라!” “김민석, 잘 가!” 하고 인사해주는 우리 반 애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틈에 얼른 마른 손바닥으로 눈 밑을 슥 훔쳤다. 이런, 이건 내 것이 아니야. 얼굴이 더 축축하게 젖기 전에 나는 수학공식을 머리에 떠올리며 감정을 건조하게 유지시키려 애썼다. 갑자기 창문 바로 앞에서 민석이 머리통이 물에 뜬 수박처럼 불쑥 떠올랐다.

“끝까지 차갑게 굴래? 편지 꼭 해. 알겠지?”

놀라서 눈물이 쏙 들어가 다행이었다. 민석이는 말하며 긴 팔을 쑥 내밀어 내 앞에 두툼한 손을 건네고 있었다. 이걸 어째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 애의 손을 잡으면, 내가 기억하기로 민석이 손은 따뜻하니까 나는 잡자마자 격한 감정에 휩싸일 것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며 정신을 가다듬고,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선심 쓰듯 내 손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맞잡은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잘……” “간다.” 내 입이 막 떨어지려 할 때 민석이는 황급히 손을 빼내고 승용차로 달려가 버렸다. “……지내.” 그가 이미 떠난 뒤에 나 혼자 중얼거림을 마쳤다. 흰색 승용차 뒤꽁무니에서 빨간불이 찰칵 켜지고 드디어 코팅된 차창이 스르륵 밑으로 내려갔다. 누르스름한 민석이 얼굴이 나오자 주환이가 그의 목을 헤드록 걸 듯 끌어안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번쩍거리는 흰색 승용차는 올라왔던 길을 따라 스르륵 미끄러지듯 내려가 교문을 빠져나갔다.

민석이가 그렇게 가버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주환이는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시점에 학교를 떠난 민석이 때문에 한동안 교내가 술렁였었다.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이민을 미루다가 이제 와서 가버렸는지 알고 싶었지만 우리의 추측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강당으로 모이기 전에 선생님이 오셔서 식순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대표로 상을 받게 된 사람을 호명해서 미리 연습한 대로 잘 해주길 당부했다. 식이 끝나면 다시 교실로 돌아와 나머지를 진행할 것인데 그 전에 밀가루나 계란을 숨겨온 사람이 있으면 마지막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을 테니 순순히 자수하라고 하셨다. 능청스럽게도 “유치하게 누가 그래요? 그게 얼만데!” 하며 아무도 자백에 나서질 않았다.

하나와 은경이, 영진이까지 넷이서 둘씩 팔짱을 끼고 강당으로 향했다. 학교 축제 때와 버금가게 소란스러웠다. 옆 학교와 달리 가운이나 학사모 같은 겉치레는 안 했다. “우리 그냥 조회하러 가는 것 같지 않냐?” “맞아. 평상시랑 똑같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건 두렵고 설렌다. 해서 지금까지 지내왔던 일상을 떠올리며 서로 위안을 갖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돌아보니 그동안의 나날들이 순탄치만은 않았어도 나름의 즐거운 면면들이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나 보다. 선생님들이 항상 우리에게 ‘좋은 때’라고 하던 말도 이제야 살짝 실감이 난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야 좋을지 고민했다. 덤덤하게 앉아만 있는 게 나다운 거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끌어 모아 갑자기 눈물이라도 터뜨리면 다들 날 이상하게 볼까? 옆 자리에 앉아있는 하나는 주먹을 꼭 쥐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어떻게든 추위가 가시게 하려고 부산을 떨었다. 얼굴은 조금 붉게 상기되어 있었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제 2학년으로 올라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 텐데도 초연해보였다.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가게 될지 궁금했지만 잠자코 넘어갔다.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하나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울까봐 그래?”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턱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콧구멍이 갑자기 크게 벌어졌다. 그러더니 진짜로 눈이 벌게져버렸다. “누가 운다고?” 앞에 앉아있던 은경이가 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야, 앞에나 봐!” 하나가 코를 훔치며 은경이와 그새 돌아앉은 영진이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하나와 눈이 마주친 영진이마저 울컥하더니 커다란 두 눈이 흔들렸다. 우리는 좀 중간쯤에 앉아있었다. 울음이 조금씩 전염이 되어갔다.

강당 무대에는 빔 프로젝터에서 쏘아낸 영상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왔다. 우리들이 고등학교에서 지낸 3년간의 행적이 담긴 사진을 모아 학생회와 방송부 애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영화였다. 수학여행지에서 남자애들에게 들려 물에 빠지는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고병권 선생님의 사진이 나오자 높은 천장을 울리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질펀한 엉덩이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모습도 있었다. 학교에서 날 잡고 대청소를 하는 날 다들 체육복을 튜닝해서 입고 찍힌 사진들도 재미있었다.

사진이 한 장씩 어울리는 음악에 따라 넘어가다가 친한 친구 모습이 보이면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가 섞인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여자애들도 등장했다. 옆에서 하나는 줄줄 흘러나오는 콧물을 수습하느라 영상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 했다. “어, 어! 승민아, 너, 너 나와!” 하나가 내 팔뚝을 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휴지를 마저 뽑아주다 말고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몇 초도 안 되어 금방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내 자리와 우리 반 뒷자리에서 동시에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한승현과 내가 나란히 서서 ‘다음부터는 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교무실에서 벌을 서는 모습이었다. 그때 분명히 누군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누구였는지가 가물가물하다. 한승현이 벌을 서고 있는 사진은 파급력이 컸다. 우리 반에서만이 아니라 전교가 선생님들 사진이 나올 때와 맞먹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가 명실상부 우리학교 유명인사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못 박는 것 같았다.

모두가 승현이에게만 주목했다.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사진 속에서 한승현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종이 뒤로 반만 보이는 얼굴은, 눈은 찡그리면서 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나 역시 내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저런 사진이 있었다니, 어떻게 하면 출처를 알 수 있을까?

공동 졸업식 순서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 나는 저 앞에서 한 무리와 떠들며 정신을 팔고 있는 승현이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한승현. “너 아까 그거 봤지?” “뭐?” “그 사진.” “사진?” “아까 나랑 너랑…. 누가 찍었는지 알아?” 승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넋이 나가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 와중에, 나 왜 이러는 거지? 너무 들떠서 주체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냥 너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진 거겠지. 이렇게라도… 이렇게라도….

“찬영이 아닌가? 아닌가? 성준이였나?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 그래?”

한승현은 피식 웃더니 또 멀어져만 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멀어지더니 내가 잡았던 어깨를 툭 털고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뒤따라 온 하나가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묻는다. 아무것도, 아무 일도.

담임선생님이 남자애들 두엇과 함께 꾸러미를 잔뜩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속속들이 도착한 졸업생의 가족들이 복도를 그득그득 채워갔고 온통 시끄럽고 분주해서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고함을 지르다시피 졸업생 이름을 호명하며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나눠주셨다. 그 다음엔 아까 학교대표로 상을 탔던 승현이를 위한 박수 세례가 있었고, 또 근면성실하게 수업일수를 채운 학생들은 차례차례 개근상장을 탔다. 나는 무려 3년 개근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교탁 앞에 똑바로 서서 모서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절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뒤돌아보고 친구와 떠들거나 부모님과 재잘거리던 애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모두들 이번 1년뿐만 아니라 3년 동안 고생 많았어요. 가장 예쁘고 좋을 시절에 사방이 꽉 막힌 교실에 틀어박혀서 대학 문턱 하나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달려온다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사고치지 않고 무사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저 여러분에게 이정표 역할을 해줬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활기차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살기만 바랍니다. 여러분을 제자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제 더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항상 행복하십시오.”

“선생님, 사랑해요!”

목소리 큰 희주가 크게 소리 질렀다. 복도에 창문을 열어놓고 듣고 있던 어머니들이 손가락으로 눈 주위에 물기를 닦아내었다. 우리 반 여자애들도 몇은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이미 울음을 터뜨렸다.

“이승민, 좀 울어라!”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가 복도 밖에서 까랑까랑하게 들렸다. 정민이였다. 그 말에 코를 훌쩍이던 선생님까지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다시 왁자하게 활기가 돌았다. 정민이는 그 틈에 엄마한테 군밤을 맞았다. 두 사람 때문에 허물어지듯 웃고야 말았다. 목 언저리가 화끈거리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덤덤하게 유지하던 감정이 무너질까봐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선생님은 이것으로 졸업식을 마치겠노라 선언했다. 동시에 남자애들이 주머니에서 밀가루와 계란을 꺼내 책상 위로 올라가 선생님을 향해 던졌다. 여자애들이 높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선생님의 고함소리와 밖에서 구경 중이던 가족들의 야유소리가 뒤엉켜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교실에는 흩날리는 뿌연 가루와 파삭파삭 깨지는 계란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벌써 날계란과 밀가루에 교복이 뒤범벅되어 튀김옷을 입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녀석들이 있었다. 정민이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피신하라고 소리쳤다. 복도로 뛰어나가 정민이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중앙현관을 향해 무작정 뛰어나갔다.

“어디 가, 이승민!”

희주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크게 들렸다. ‘퍽!’ 등을 뭔가에 맞은 느낌이 났다. 소운동장으로 나오니 금방 눈이라도 쏟아 부을 것처럼 찌뿌듯이 흐린 하늘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눈송이가 펄펄 내려왔으면 좋겠다. 소복소복 이 세상을 하얗게 지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다음 오늘은 졸업식이 아니라 3년 전의 입학식을 치른 그 날로 돌아간다. 깨끗하게 다림질한 교복을 입고 긴장감에 얼어붙어서 낯선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면 나랑 똑같은 표정을 한 우리들이 여기 모여서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시기를 마냥 두려워만하고 있겠지. 매일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 위에서 가엽게도 한숨을 쉬겠지. 그때는 이렇게 금방 오늘이 올지도 모르고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고 제멋대로 중얼거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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