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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完)

빙산의 일각

 

언제부터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했을까? 골똘히 생각해본 결과, ‘빛과 그림자’를 알아버리게 된 뒤인 것 같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눈에 보이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남자애들은 예쁜 여자애들에게 환장하고, 예쁜 여자애들은 세상에 큰 빚이라도 갚아준 냥 콧대를 높였다. 그리고 다시 남자들은 콧대 높은 여자들을 욕한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어디선가 튀어나와 동조해준다. 그러나 아무도 콧대 낮은 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네들은 그저 네들 주제나 알라는 말만이 돌아온다. 콧대 낮은 여자들은 큰 착각에 빠진 것이다. 남자들은 콧대 높은 여자들에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환장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외모로만 보면 시인이도 분명히 그렇고 그런 남자들이 환장하는 여자의 한 부류였지만 막상 그 실체는 별 볼 일 없었다는 게 기정사실이었나 보다. 오히려 동생 정민이가 남자들의 환심을 사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아빠와 더 돈독하게 지냈던 때문일까? 아직도 남자애들이 영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인 듯 대하기가 어려운 건 내 남다른 성장 환경의 영향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이런 저런 애들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통찰력이 생겼다. 아빠와 사이가 좋은 여자애들은 학교에서 만난 남자애들과도 어렵지 않게 친구가 되었다. 시인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본인이 하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엄마, 아빠를 둔 게 티가 났다. 심지어 형제도 없는 외동이었다. 그녀가 선택해서 그런 가정에서 자라온 건 아니지만, 그래서 시인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어도 스스로가 얼마나 별종인지는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시인이는 나와 한승현, 둘 중 하나는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지루했던 만큼 그녀 자신도 꽤나 지루한 사람이라는 정체가 드러났다. 그러니까 시인이가 이제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진짜 친구를 사귈 기회를, 결국은 겉으로 봤을 때 훨씬 값어치 나가는 쪽에 탐욕이 생기는 바람에 날려버렸다는 말이다. 뭐, 과연 내가 시인이의 진짜 친구가 되기는 했을까 싶다.

 

엄마는 근처 대형 마트 사원으로 취직했다. 노란색 유니폼에 검정 바지를 입고 물건을 진열하는 엄마를 보러 종종 찾아갔었다. 엄마는 나를 모퉁이 끝에서 앞치마를 입고 작은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건네는 아줌마에게 자랑하듯 소개했다. 나는 받아든 아이스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좀 싹싹해 보이려고 넙죽 인사를 했다.

“언니, 이렇게 큰 딸이 있었어?”

“응. 얘가 우리 집 장녀!”

“어머! 저번에 온 애가 그럼 둘째야? 걔는 완전 엄마 판박이던데.”

“얘는 아빠 판박이야.”

“딸들이 다 예쁘네. 언니 좋겠다. 벌써 애들 다 키워놨어.”

엄마는 그만 들어가 봐야 한다며 내 등을 떠다밀었다. 오후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나도 걸음을 재촉해야했다.

밖으로 나오니 곧 비라도 올 듯 하늘이 새까맸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마트로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여 재빨리 잡아탔다. 급하게 출발하는 버스에서 중심을 잡으며 비틀비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앉을 만한 자리가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어?”하는 소리로 시선을 끌었다.

낯이 익는 것도 같으면서 생경한 얼굴의 여자가 내 눈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아! 하필이면 이 시간, 이 방향, 이 버스였을까? 어색해하는 나와 달리 율희가 묘하게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아는 체를 해버린 게 민망해서 저러는 거라고 짐작했다. 바로 앞에 빈자리를 두고도 앉지 못 하고 바닥과 천장에 이어진 초록색 기둥을 붙잡고 섰다.

“학교 가는 거야?”

“응. 마지막 교시 수업이라.”

“나는 오늘 공강인데 갑자기 과모임 생겨서….”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에 빨갛게 칠한 입술, 짧은 치마와 검정색의 긴 레인코트까지,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 교복 차림에서 풍기던 이미지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아…. 학교 어디 붙었는데?”

“이 버스 종점에. 넌 다른 데 붙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내려서 다시 갈아타야 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

목구멍에서 자동으로 ‘나도.’라며 동조를 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꿀꺽 삼켰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반가움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진심이야?”

말을 뱉자마자 율희가 금세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그녀에게 완전 개똥같은 소리로 들린다 해도 어떻게 가만히 참고 넘어갈 수가 있을까? 율희가 날 대하는 꼴을 봐.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우리가 한 반으로 만났던 고등학교 2학년 개학식을 기억나게 하고 있었다. 정말 미치겠다! 율희의 눈은 ‘여전하구나, 너.’라고 말하는 듯 은근한 조소가 깔렸다. 그런 율희의 얼굴이 내 눈에 투영되어 똑같은 표정을 율희에게 지어주었다. ‘나나 너나 다 똑같은 인간이야. 나는 그걸 아는데, 넌 아직도 그런 진부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한 것 같아 오히려 안쓰럽다.’ 경쾌하게 차창 옆에 달려있는 벨을 눌렀다.

“야, 이승민, 너 아직도 날 그렇게 생각해?”

“뭘?”

“너 혹시 그 소문도 내가 퍼뜨린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문?”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오해 받는 것 같아서 나 굉장히 억울하거든. 솔직히 말하면 그거 다 보라한테 전해 들은 거야.”

“보라? 임보라? 걔한테 뭘 전해 들어?”

좀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야 할 판국인데 율희는 속 시원히 해명하기는커녕 찔끔찔끔 한 방울씩 물을 떨어뜨리며 목마른 사람이 생수 찾는 법인 냥 목구멍을 바짝 쪼들리게 했다.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보라도 전해 들은 거라고 했어, 박주환한테. 난 거기까지밖에 몰라. 박주환이 또 누구한테 듣고 말해준 건지는 모른다고. 그러니까 네가 더 걔랑 친하잖아, 박주환. 걔한테 물어보든지.”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리기 위해 돌아설 때까지도 율희의 눈은 세모꼴이었지만 얼굴은 한결 개운해보였다. 묵은 체증이 다 가신 뒤에 평온을 되찾은 사람 같았다. 반대로 내 속은 부대끼고 답답함이 얹혀졌다. 그 상황에서 뜬금없이 주환이가 왜 나오는 걸까? 율희와 내가 똑같은 모양의 감정의 골을 사이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초점이 어긋나버린 듯한 이 느낌은 뭐지? 난데없이 주환이는 왜?

상가 사이에 난 샛길을 통해 노선이 다른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하늘로 보아 징조가 별로 좋지 않다고 느꼈다. 예전처럼 아침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주는 사람이 집에 없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었다. 장대비가 와도 맨몸으로 맞거나 주변 편의점에서 점심 한 끼를 포기하고 우산을 사야 했다.

정류장에 다다르기도 전에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져 정수리 정중앙에 내리꽂혔다. 몇 분 뒤에 학교 후문으로 가는 버스가 한 대 들어왔다. 어중간한 시간대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타서 간신히 손잡이 하나만 잡고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운전기사가 험악하게 차를 모는 바람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측면에 난 유리창 밖 거리에 시선을 못 박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차창을 덩어리가 큼직한 빗방울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거센 비바람이 불어와 횡포를 부리듯 땅바닥을 사정없이 쪼아대는 게 금방 그칠 것 같은 비가 아니었다. 또 괜히 옆구리가 허전해졌다.

 

미대에 들어간 하나와 인문대에 입학한 나의 대학생활은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럼에도 생전 처음 보는 동기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해본 적도 없는 ‘사회생활’과 ‘인맥 쌓기’ 기술을 한 단계씩 배워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통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을 가급적 빨리 사귀려고 매일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도록 미소를 짓고 다니다 보면 문득 허탈한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그럴 때 쓰라고 있는 휴대폰이었다.

“잘 지내고 있냐?”

하나가 다니는 학과 분위기는 우리보다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선후배 타령이니 기합이니 뭐니 하는 부조리는 없는 편이었다. 대신에 아주 까다롭고 예민하게 구는 교수들이 미움의 대상이자 말썽거리였다. 이런 걸 바라고 대학에 목을 맨 건 아니지 않느냐고 뒤늦게 설움을 토해내며 한 마디 끝나기 무섭게 “맞아! 진짜!” 서로의 말에 공감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학생활이 아니야. 좋아하는 수업만 들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4학년인 것 같아.”

“그러니까 내 말이!”

하지만 통화 내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술만 달싹이다 말뿐이었다. 하나와는 그런 얘기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스스로 선을 그어두었기 때문이다. 주환이 연락처를 묻고는 싶은데 막상 자연스럽게 물어볼만한 사람이 주변에는 없었다. 나도 모르는데 하기는 하나가 알 리가 없었다. 발이 넓은 영진이라면 모를까, 하나라면 2살 연하 남자친구 말고는 친한 남자애가 전무할 터였다.

“영진이는 뭐 하고 지내지?”

“네가 더 친하잖아. 난 잘 몰라. 2학년 언니들이랑 하는 공모전 동아리 때문에 바빠서 너하고만 가끔 연락하지 다른 애들 소식은 나도 전해만 들어.”

“아, 혹시 야작인지 뭔지 그런 거?”

“야작은 밤샘 과제 같은 거 하는 거야. 말만 들어도 토 나온다. 웩!”

그런 뒤 또 한 차례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나서 “화이팅!”이라는 말로 각자의 처지를 다독여주며 통화를 끝맺었다. 말로는 연거푸 힘들다고 하면서도 미대생 특유의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남다른 고충’을 소상히 일러주는 하나에게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애써 모른 척하고 휴대폰 연락처를 뒤졌다.

오후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빗줄기가 가늘어져서 잠시만 입구에서 기다리면 그칠 것 같았다. 시간도 때우고 오래간만에 연락도 해보고자 영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지막 교시까지 다 마친 후라 건물 안이나 밖이나 스산한 바람만 쓸쓸하게 몸을 스쳐갔다. 워낙 복도가 울림이 큰 건물이라 어쩌다 한 두 사람 나타났다가도 조심스럽고 재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인문대 앞에 빈 공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갔다. 영진이의 답장이 더디게 오는 것만 같다. 이 정도 비는 맞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크나큰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쩌지?’를 한 오십 번 정도 되뇌었나 보다.

 

“오! 너 안경 벗었네?”

“좀 됐어. 수능 끝나고 실기 보러 다닐 때쯤?”

“그랬다고? 왜 몰랐지? 안경 벗은 게 훨씬 낫다.”

주환이는 이번에도 멋쩍게 웃었다. 나는 자꾸만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게 싫어서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오버를 했다. 가만 보면 그게 더 우리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대학교에서는 이 방법으로 꽤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니 아무렴 어떨까? 솔직하게 얼굴로 가수하는 거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게 더 나았으려나? 그렇게 말해도 주환이가 내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면 말짱 꽝이었다.

어디부터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시간을 버렸다. 주환이도 주환이 나름의 ‘남다른 고충’을 자기 식으로 설명해주었다. 장르로 따지면 나의 대학생활은 ‘드라마’였고 주환이는 ‘뮤지컬’ 정도가 어울렸다. 그래, 거기에는 다재다능하고 끼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애들만 모아둔 데니까 ‘연예인 지망생’이라 불린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겠지.

아무튼 돌려 말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너 율희 알지? 반율희.”

음료를 한 모금 쭉 들이키며 주환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율희가 그러는데 작년에 학교에서 돌았던 소문, 너한테서 전해 들었다고 그러더라. 정확히 말하면 율희는 보라한테 들었고 보라가 너한테 들은 거라고….”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주환이가 그답지 않게 한쪽 입 꼬리만 올려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난 또 무슨 얘기인가 하고 괜히 쫄았잖아.”

다정하면서도 분명히 무언가 아는 게 틀림없는 말투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왜일까?

“그거 좀 와전된 거야. 루머가 그래서 무서운 게 아닐까? 처음에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어. 그냥 우리 대놓고 말할까? 너랑 민석이랑 사귀지 않은 거 나도 알고 있어. 물론 걔네 귀에 들어가게 말한 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절대로 너희 둘이 사귄다고 말한 적은 없어. 맹세코!”

“그럼 왜 그런 소문이 돈 거야? 네가 뭐라고 한 건데?”

“너희 집에서 놀았던 날 알지? 네가 그만 가겠다고 해서 헤어졌잖아. 나 그때 심부름 때문에 집에 바로 안 갔거든. 아빠가 뭘 사오라고 했었나? 그래서 그거 사서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집 근처 하천 따라 꽃구경하면서 가고 있었지. 근데 반대편에 낯익은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주환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날 그의 시선으로 본 풍경이 머리에 그려졌다. 조금씩 윤곽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너랑 민석이랑 솜사탕 같은 거 먹으면서 놀고 있는 거야. 맞지?”

나는 고개만 끄덕여주고 계속 듣고만 있을 심산으로 입은 꾹 다물었다.

“학교에서 그 일이 생각나서 민석이한테 물어본 거지. 그걸 앞에서 다른 여자애들이 들어가지고, 근데 그게 임보라였는지는 전혀 기억도 안 났어. 거기서 김민석이 가만히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그때 민석이가 너랑 데이트했다고 그랬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말한 게….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을 걔네가 곧이곧대로 듣고 다른 애한테까지 전할 줄은 몰랐다.”

고작 그게 다라고? 그렇게 말하면 주환이의 잘못도 아닌데, 굳이 여기까지 나오게 해서 들을 얘기도 아니었다.

“그게 뭐야…….”

주환이가 눈을 창가로 돌렸다.

“비 또 오네.”

혼잣말처럼 말하더니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발라드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근데 그게 그렇게,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는 거야?”

흘끔 눈을 들어 나를 보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왠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 맞기는 맞는데 듣고 보니 비하인드 스토리치고 시시껄렁하기만 했다. 영진이한테 알아낸 번호로 연락을 걸어 약속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꽤 멋드러진 한 편의 시나리오 같았는데 말이다. 모든 오해와 갈등이 단숨에 풀리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내가 기대한 모양새는 이게 아닌데….

주환이 얼굴이 몽실몽실 흐려지며 율희로 변했다.

“넌 그냥 남한테 탓하고 싶었던 거지? 네가 이상한 애라는 거, 칠칠치 못 하고,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다는 거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지? 네가 그렇게 된 건 다 남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 아니야? 너 겉으로는 싫은 척했지만 결국 그게 네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거잖아. 너만 보면 좋아서 달려드는 김민석, 그거 하나!”

나도 모르게 턱이 파르르 떨렸다. 주환이는 콧노래 삼매경이었다. 나와 왜 마주보고 앉아있는 건지, 우리가 지금 한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얘기하던 사이가 맞는 걸까? 나는 무너져내려가고 있는데 이 와중에 콧노래라니?

“아, 얼마 전에 민석이랑 컴퓨터로 영상통화 했거든. 너 어떻게 지내냐고 묻더라. 너네 맨날 투닥거려도 엄청 친했지? 김민석이 너 못살게 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그랬었잖아.”

콧노래를 멈추고 주환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냥 못살게 군 거였어? 자기 재미 때문에?”

“어…? 아니…….”

주환이의 말을 잘라먹고 따지기를 계속했다.

“진짜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거네? 그럼 내가 들은 소문이 맞는 거야? 유리 좋아했다는 거, 그거 진짜였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남자애들 원래 그러냐? 결국 얼굴만 보고 좋아하는 거지? 솔직히 김민석이 유리 좋아한다는 말 듣고 좀 어이없었어. 자기 주제에 맞게 놀아야지. 자기랑 어울리지도 않는 무리에 어떻게든 끼려 그러고, 그러면서 나한테는….”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해?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얼굴만 보고 좋아했잖아.”

나만큼이나 빈정거리는 말투로 주환이가 말했다. 나는 놀라서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주환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두 뺨이 점점 붉게 상기되었다.

“네가 예전에 물어봤었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난 위선 떨고 가식적인 인간들이 제일 싫어. 너네야 잘 모르니까 겉모습만 보고 좋아했겠지. 근데 난 걔 진짜 왜 인기 많은지 모르겠더라. 너는 좀 더 섬세하고 똑똑하니까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누굴 좋아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한 박자 반 정도 뜸을 들이더니 눈을 다시 아래로 내리깔고 그가 말했다.

“거기 옥상이 내 아지트였으니까.”

그러곤 스스로 한 말이 좀 웃겼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내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도 하나 더 들려주었다. 틈날 때마다 노래를 부르러 mp3를 가지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곤 하던 주환이는 그곳에서 벌어진 온갖 은밀한 일들을 의도치 않게 엿보아온 거였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자기보다 먼저 옥상의 구석진 명당자리를 차지한 녀석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께름칙한 눈으로 자기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녀석들은 중요한 볼일이 있으니 교실로 돌아가라고 건방지게 명령까지 했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당연하단 듯이 명령하는 행동대장보다 그 뒤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비웃고 있던 녀석이 특히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순순히 물러가주었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소란을 피우는 건 그의 체질에 맞지가 않았으니까.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옥상 출입문으로 다가섰을 때 그의 앞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또 나타났다. 막 옥상으로 올라온 여자애는 눈이 부셔서인지 자기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해서 당장은 기분도 뭣 같고 구태여 아는 체하지 않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도어체크가 고장 났는지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혀서 깜짝 놀랐다. 곧 멀리서 행동대장이 여자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주환이는 슬쩍 교실의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일 이후 그 여자애는 한동안 친구들을 멀리하고 교실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민석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벼운 애 아니야. 애가 워낙 때 묻지 않아서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남자로서나 친구로서나 진짜 괜찮은 애야. 이런 말까지는 나도 하고 싶지가 않은데…. 네가 겉으로만 보고 좋아하는 한승현 같은 애들이 얼마나 뒤에서 너네 얘기 많이 했는지 모르지? 남자끼리만 있으면 여자애들 얘기하면서 평가하고 점수 매기고…. 충격 받을까봐 이 이상은 말 못 하겠다.”

“이미 충격 받았어.”

“그래, 그렇겠지.”

주환이는 다 마신 컵을 만지작거렸다.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죄책감이 어린 눈으로 슬며시 쳐다보았다.

“원래 남자들 다 그래. 안 그런 애들이 특이한 거지. 근데 여자라고 뭐 다르냐?”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야.”

내 말에 또 다시 입 가장자리를 위로 쭉 당겨 올렸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저런 웃음을 짓는다. 나는 말을 뱉자마자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도 똑같은 건가? 민석이를 얕잡아보고 승현이를 추켜세웠던 나 역시 똑같은 짓거리를 했던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들락거리다가 침묵의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갑자기 어색하고 묵직한 공기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주환이는 그저 오랜만에 고교 동창을 만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을 텐데,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좀 보자는 말에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설레는 맘을 품었을 수도 있다. 막상 내 질문을 듣고 ‘뭐야? 겨우 그거였어. 정말 별 거 아니네.’하고 시큰둥하면서도 또 마냥 즐거운 기분에 사로잡혀 흥얼흥얼 콧노래도 불렀을 것이다.

“너 또 무슨 생각하느라 눈알을 굴려?”

“어?”

“생각만 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네가 무슨 말 해도 난 화 같은 거 잘 안내니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내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싶다는 듯이, 평소의 그 다정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김민석은 잘 지낸대?”

“아, 민석이?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는데 요샌 많이 밝아졌어. 궁금하면 민석이 메일 주소 알려줄까? 메신저 들어가서 영상통화도 할 수 있어.”

주환이에게 메일 주소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휴대폰 메모장에 민석이의 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저장을 눌렀다. 아무렇지 않게 또 따뜻한 음색으로 콧노래를 부르는 주환이였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억지로 말을 이어가지 않아도, 맘에 없는 미소를 짓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기분은 꽤 오랜만이었다. 나는 나의 비밀을 모조리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티내지 않고 지내온 주환이가 매우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누구보다도 가장 비밀스런 사람이었다. 조용히 자신의 할 일만 하고 유난을 떨지 않는, 아! 그러니까 전에 고병권 선생님을 떠올릴 때 들던 그 느낌에 가장 잘 부합했다. 주환이는 정말 어른스러웠다.

“내가 너한테 문자했던 날 되게 재미있는 일 있었어.”

주환이가 길고 가는 눈을 빛내며 내 눈에 초점을 맞추었다.

“얘기가 조금 길지도 모르는데, 시간 많이 있어?”

그는 손을 들어 어서 얘기해보라며 들썩거렸다.

나는 입술에 침을 묻히며 그 날을 떠올렸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방울과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인문대학 본관에는 울림이 큰 발자국 소리만 가끔 들려왔다. 누가 옆에 다가왔는지 인기척도 못 느낀 참인데 불쑥 중저음의 목소리로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는 자기를 같은 과 동기라고 소개했다. 오리엔테이션 때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 했더니 지금껏 친구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렇잖아도 선택 교양 과목마저 수업시간표가 전부 똑같아 매일 보다시피 했던 나를 한동안 눈여겨봤다고 했다. 내 눈에서 경계와 의심을 읽었는지 그는 “너는 나를 몰랐겠지만 나는 출석 부를 때 들어서 네 이름도 알아.”라고 한 다음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친하게 지내자며 휴대폰 번호를 묻더니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빈말인지 몰라도 “너 인기 많더라.”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사실 여부를 묻는 건 영 촌스러워 보여서 웃기만 했다.

“그래서? 걔가 너한테 관심 있대?”

“글쎄……. 그건 잘 몰라.”

“그게 다야?”

주환이가 싱겁다는 듯 되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사실은 그런 일이 있었거든.”

“무슨 일?”

“나는 그 사람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나를 모르고 있었던 거.”

주환이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한테만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시작해버린 이상 끝을 맺어야겠다. 주환이는 내 비밀을 다 안다고 생각할 테지만 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있고,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엉덩이가 배길 정도로 앉아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 듣고 나서도 ‘그게 뭐야! 별 얘기도 아니잖아!’하고 실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 그냥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나서 ‘뭐라고? 내 인생이 별 게 아니란 소리야?’하고 도리어 성질을 부려볼까? 그래도 내 작은 바람으로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한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특별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만 재미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라도,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감상적인 시간, 그 어설픈 시기의 이야기들 말이다.

“나는 사실 원래부터 승현이를 알고 있었다. 다른 애들보다 조금 늦게 알았다 뿐이지 결국 나도 ‘승현이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승현이를 알고 있는’ 여자애들 부류 중에 하나였어.”

 

‘뻥!’ 콜라 병뚜껑이 막고 있던 주둥이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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