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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다가

스티븐 킹을 사랑하게 되었다.

  ‘생각’은 굉장히 근사한 놈이다. 생각을 막상 글이나 말로 옮기면 ‘생각’보다 멋지지 않다. 생각을 글로 적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구려진다. ‘이게, 아니야. 이것보다 생각이 훨씬 나았어.’ 훨씬 나은 생각의 모양이 머릿속에 있을 때만큼만이라도 멋지게 써졌으면 좋겠다. 글은 ‘생각’보다 구차한 형태이다. 상대적으로 생각은 근사한 게 되고 글은 구차하게 된다. 머릿속에 박힌 생각들보다 그 생각들을 정리한 글을 더 사랑하려면 내 글의 구차함이 지금보다 덜 해야 한다. 필요 없는 말들은 거침없이 잘라내고 하고 싶은 말의 요점만 뽑아내면 된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반절 읽었다. ‘창작론’을 가르치는 책 주제에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덮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열정적으로 읽기에 심각하게 몰입해서는 안 된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스티븐 킹은 작가 지망생에게 인공심장을 이식해준다. 스티븐 킹이 가진 작가용 심장을 본 떠 만든 인공심장을 말이다. ‘창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주의할 사항이 있다. 고작해야 아마추어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올림픽 챔피언의 심장을 이식받을 경우, 챔피언의 활력을 따라가지 못해 심장마비로 즉사해버리는 위험과 맞먹는다. 자기 수준을 잘 감지하고 있기에 나는 이 책을 천천히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력서’는 비교적 가볍게 읽었다. ‘연장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이력서’가 조금 묵직하게 끝맺었지만 그래도 숨이 가쁘지는 않았다. ‘연장통’은 짤막하게 끝났고 단 몇 분 만에 읽어버려서 깜짝 놀랐다. 짧은 꿈을 꾸고도 그 여운 때문에 멍한 기분으로 오전 시간을 보낸 경험으로 나의 놀라움을 설명할 수 있다.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뱃속이 울렁거리는 흥분 때문에 숨이 가빴다. ‘연장통’을 읽고 다음을 읽기 전에 책갈피를 껴놓고 책을 덮었다. 책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다시 책을 펼치지 않으려는 결연한 태도를 나 자신이 느꼈다. 자아가 분리되는 흥분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읽기를 잠시라도 쉬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단순 책일 뿐이었다. 인생의 대단한 경험과 비교하는 건 과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랬다. 대바늘이 명치를 뚫고 들어왔다. 막힌 혈과 기가 죄다 뚫리고 손끝, 발끝에 짜릿한 전기가 통했다.

  ‘생각’은 늘 근사했다. 연장통이 없는 내 글은 늘 조악했다. 지금에야 비로소 복잡한 감정과 함께 글이 ‘생각’보다 근사해질 가능성을 보았다. 이제 글을 쓸 때는 35~55kg짜리의 연장통을 챙겨와야 하고, 손힘을 길러야 한다. 아마 책갈피 뒤쪽부터는 손힘 기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이 책에 있을 것이다.

  잠시만 스티븐 킹의 인공심장을 빌리겠다. 그의 심장으로 창작을 대해본 뒤에 나만의 작가 심장을 단련시키려 한다. ‘정신 감응’을 약간 초월한 체험을 하게 되어서 당황스럽다. 이 책이 왜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다. 우리는 <유혹하는 글쓰기>로 공감 이상의 배움, 배움 이상의 발견, 발견 이상의 위대함을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좀 더 집요하고 진지하게 대할 필요를 느꼈다. 내가 이미 알던 이상으로 글은 매력적이고도 매혹적이었다. 모든 게 다 생각 이상이었다. 글, 근사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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