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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를 깨무는 짓이야

자기비하,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대해서

   이미 잘못된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이 이미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났고 더 이상 내가 고를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어야 한다. 보통은 억울해서 잊지 못하고 집착한다. '더 똑부러지게 말해서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어야 했다. 상대가 감히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려주고 일을 마무리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심란하다. 그리고 보통은 이미 잘못된 일을 그대로 매듭짓지 않고 집착하고 발광하다가 더욱 일을 그르친다. 그런 일을 더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더는.

  나는 대체로 일반적인, 사회 전반적인, 대동소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소리만 골라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당연한 소리를 자주 까먹기 때문이다. 나도 너무 당연한 이치를 놓치는 바람에, 그러니까 '내 경우는 특별하게' 여기는 인간들 특유의 실수를 곧잘 하다 보니까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 그게 멍청한 생각에서 나온 멍청한 언행이었다는 사실도 아주 뒤늦게 깨닫는다.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은 별로 멍청해 보이지 않는다. 본인도 자기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매일 똑똑하게 말하고 잘난 척한다. 그러나 이 엉망진창인 사회를 보면 인간이 그 똑똑한 머리로 얼마나 멍청한 짓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키보드 워리어'라는 사람들도 추천을 많게는 만 개도 넘게 받는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 자기 인생도 그렇게 똑똑하게 잘 경영하고 있을까? 그렇게나 똑똑한 양반들이 많은데도 왜 우리는 공자 맹자가 꿈꾸는 대동사회 근처에도 못 갈까? 사람은 다 똑똑하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멍청할 뿐이지.

  내가 주로 저지르는 멍청한 짓은 '내 경우는 다를 거야. 나는 특별하니까.' 말고도 더 있다. 자기비하, 열등의식, 피해의식이 없는 나는, 그것들이 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타인의 감정에 대단히 깊은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면 나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또한 알아야 했다. 사람은 자기를 벗어난 범위까지 사랑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랑하는 범위는 아주 좁다. '나.' 자기 자신만으로도 사람은 벅차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도 그 중 하나이고, 태반이 그런 사람들이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면 자기를 비하하고, 사람들의 작은 언행에도 크게 상처 받는다. 마치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확인사살 당하는 것 같으니까. 나도 내가 못난 줄 알지만 남이 확인시켜주면 작은 불안의 씨는 확신으로 꽃 피운다. 극단적으로는 발악하면서 공격적으로 자기방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도 내 모습이 불안스러운데 남도 나를 그런 인간으로 대하면 훨씬 위태로워지게 된다는 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일부러 이런 말을 넌지시 던지기도 한다. "나 진짜 멍청한 것 같아." 그럼 상대가 "맞아. 너 멍청해."라고 대답할까? 상대가 뭐라 대답하든 그런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자기비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너무 깊이 골몰할 때도 발병한다. 발병, 자기비하는 정말 병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상대에게서 부정적인 언행이나 신호를 감지했다면 최대한 단순하고 짧게 생각하는 게 좋다.

 생각 외로 사람은 단순하다. 그런데 그게 잠깐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이치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사람은 독백으로는 어떤 깊고 오묘하고 어려운 말들을 해도 전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개개인의 사유의 우물은 매우 깊다. 1인칭이니까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라는 건 엄청나게 복잡한 개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대하며 서로를 공유하기 시작하면 최대한 단순한 방식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끝을 알 수 없는 속깊은 우물을 꺼내 보이기는 어렵다. 언어나 표정, 태도, 거리, 웃음, 감정표현 등 이런 것들도 사실 속내용을 모두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소통 방식이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서로의 속을 다 보여야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대할 때는 우리가 다 알 만한 범위에서 서로를 본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우호적인 관계에서는 우호적인 신호가 오고 가고, 중립적인 관계에서는 중립적인 신호,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적대적인 신호가 오고 간다. 문제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에 사람이 잘 속는 걸 보면 '나는 특별해'병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놈의 '나는 특별해'병 때문에 심한 곤욕을 치렀다.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적대적인 사람이 갑자기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갑자기 변한 관계는 거짓말이다. 우호적인 사람이 점점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나 아니면 상대,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있던) 것이다. 우호적이었다가 적대적이었다가 제멋대로라고? 수시로 거짓말에 속고 있는 중이다. 생각하면 쉽다. 나를 괜찮게 보는 사람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내게 우호적이겠지. 차라리 변함없이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이유 없이 태도가 변했을 때는 경계해야 한다. 이유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이 천착하지 말고 초등학생도 알 만한 수준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보면 답은 너무나 쉽게 나온다. 그런 다음에는 거기에 더 연연하지 않고 계속 가던 길 가고, 하던 일 마저 하면 된다. 정말 깔끔하다. 깊이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보통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혀 깨무는 짓만 일삼게 되니까 그런 생각은 일찍 접는 게 좋다는 말이다. 기어코 상대가 나를 만만히 보고, 무시하고, 헐뜯고, 욕하고, 오해하는 생각들을 해야만 속이 시원해지나? 자근자근 밤새도록 씹은 내 혀만 헐고 피 볼 게 뻔하다.

  어젯밤, 기분 좋지 않았던 하루일과를 밤새 떠올리며 세상의 모든 불행과 근심을 다 끌어안느라 아침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개운치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나는 사람들마다 다 내게 적대적인 관계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모두가 내 불행을 축복해주려고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기적이고 한없이 멍청한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못된 인간들.' 모두에게서 떠나야 비로소 행복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생각이 하나 들자마자 일시에 '후'하고 입바람을 불어 날려보낸 듯이 스트레스가 날아가버렸다.

  '나는 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었을까? 내가 인정받기 위해 인정해주고, 존중받기 위해 존중해준 거라면 당연히 속이 상할 수밖에. 뭔가를 바라지 말고 단지 주고 싶어 주고,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했다면 내 속이 문드러지지는 않았을 텐데. 나도 별로 남을 신경 쓰는 건 아니잖아. 내가 나를 신경 쓰는 만큼은 절대 아니잖아.'

  밤새 잠이 안 들 정도로 설치게 했던 잡념과 스트레스가 '자멸 시스템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나를 못살게 구는 건 바보 같은 열등감, 그 열등감이 키운 자존심, 자존심을 좀 먹는 자기비하, 자기비하를 개미지옥처럼 구덩이 파놓고 기다리는 피해의식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순환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정도로 내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구제불능, 불행의 근원,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절망의 밑구녕 냄새만 흠뻑 맡고 있었다. 이것도 '나는 특별해'병의 일부 증상이랄 수 있다.

  나는 특별하다. 나 혼자 그렇게 아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남에게는 남의 특별함이 있을 테니 그건 건들지 말고, 굳이 자기 혀를 깨물어서 혼자 피 보지도 말고.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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