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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수

싫은 사람 경험담1

  대학 졸업을 위한 필수 관문이 논문 제출이라고 해서 안심을 했었다. 시험공부는 죽어도 안 하니까 시험이 아니어서 좋았고 면접형식으로 주제를 잡고 수업하듯 발표하지 않아도 되어서 부담이 덜 되었다. 학습한 내용을 그대로 읊는 것보다 창작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논문도 나름대로 창작의 범주에 속해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제는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어서 빨리 냈는데 아우트라인을 잡는 법을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주 늦게서야 담당교수님을 찾아갔다. 이미 논문을 거의 완성한 뒤에였다. 교수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된통 혼을 내셨다. 아우트라인을 잡을 줄을 몰라서 언제 찾아뵈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고 대답했다. 다른 교수님들도 대다수 그렇지만 특히 담당으로 정해진 교수님과는 더욱 친분이 없어서 나는 변명하는 와중에도 속으론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듣겠구나,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하게 교수님은 성질을 내셨다. 신경질을 부릴 줄은 몰랐다. 내가 느낄 때는 "너 잘 만났다! 벼르고 있었다!"하는 식이었다. 나이가 꽤 있는 여자 교수님이었고 나는 여학생이었다. 이 교수님이 남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대하는지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여타의 대다수 남자 교수님들은 내게 우호적인 반면에 한 분밖에 안 계신 이 여자교수님은 어쩐지 벽을 세운 듯이 딱딱하고 적대적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느낌'일 뿐, 개인의 사변이라고 우습게 치부 당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그 '느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지고 있고, 비물질이라고 해서 아예 없는 개념이 아니니 이 '느낌'이 완전히 가짜라고 믿지는 않는다. 아무튼 전에는 불과 느낌이었을 여자교수님의 태도가 본모습으로 확연히 드러났고 '느낌'은 진짜가 되었다. 그리고 실망스러웠다. 내가 여학생이고, 선생님은 여자 교수님이고, 그것말고는 달리 서로에 대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관계, 아니, 오히려 사제 간에 정다운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의 관계가 된 경우라서, 아무튼 부정적인 관계가 사람에게 행복한 감정을 주진 않아서, 이유 모를 선생님의 반감이 실망스러웠다. 혼을 낼 수도 있다. 우선은 평범한 단계를 밟지 않았던 내 잘못이 있다. 내 잘못은 처음 겪는 일이 서툴면 흔히 벌일 수 있는 정도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사실 대학 교수님들은 무슨 일이든 크게 부풀려서 혼을 내셨다. '정식 교수님'들은 보통 그랬다.

  교수님이 온갖 꼬투리를 다 잡으며 혼을 내고는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교수실에 찾아오라 하셔서 일단 방에서 퇴장했다. 단지 '지금 시간이 되시느냐, 논문을 가져왔는데 봐주실 수 있느냐'였다만 '지금은 안 된다. 다음에 오거라.'를 하려니 교수의 권위가 안 섰던가 싶다. 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책상에 앉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논문을 다시 살폈다.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교수님께 문자를 보내놓았다. 밑으로 기어 들어가 살살거리길 바란다면 그렇게 해주고 말리라, 하는 뾰족한 심리를 감추고 눈물 쭉쭉 뽑은 뒤에 하는 진심어린 말인 냥 죄송하다는 사과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은 다음부턴 그리하지 말라며 간결하게 답장을 보내왔다.

  두 번째 만남은 정식으로 약속을 잡은 후에 교수실에서 이뤄졌다. 교수님은 논문을 앞에 두고 몇 가지 인상에 남을 말을 하셨다. 정리하면 자기자랑과 모욕, 두 가지였다. 나는 그 전부터 마음에 들던 어떤 시를 쓴 현대시인을 논문주제로 올려놓았다. 달리 연구해보고 싶은 논문거리가 있지도 않았으며 시를 담당한 지도교수님 중 한 분과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에 대해 배울 점이 많아서 한 남자 교수님을 존경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인품도 좋으셨고 내 글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더 애착이 가는 선생님이었다. 세상만사 좋을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고 제일 원하지 않았던 교수님이 배정되고야 말았다. 선생님은 내가 건드리려 하는 시인과 시의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불렀다. '네까짓 게 뭘 아냐?'는 투로 "어차피 이거 다 논문 짜깁기잖니? 어디서 보고 그대로 베껴 왔겠지."라고 말했다. 자신을 '전문가'라고 칭할 때의 말투를 듣고 나는 선생님이  더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이야! 이거 내가 전문가인데 너 운 좋다! 이 주제의 접근법을 이 몸이 소상히 가르쳐주마."라는 말을 하려고 자기가 전문가임을 내세운 게 아니었다. '너 아주 제대로 걸렸어. 토씨 하나 틀렸단 봐라.' 이런 식이었다. 고작 학사논문 따위로 아무런 친분도 없는 교수님과 갈등으로 얽혀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대단하신 분을 몰라 뵈었노라며 치켜세우고 고분고분 하라는 대로 해서 제목과 글자 몇 개 수정하는 것으로 논문을 끝내었다. 대학생에게는 졸업이 목적이지 학사논문으로 연구상을 받으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별일도 아니었다. 와중에 교수님은 내 논문을 허섭스레기 취급함과 동시에 성격까지도 타박을 주었다. 사과문자를 한 건 나였는데 본인이 인자하게 나를 먼저 용서했다는 식으로 말하기에 '그래라.'하고 말고 "너 성격이 원래 그렇게 급하니?"하고 몰아가기에 세상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지만 "네, 제가 좀 급해요."하고 마니까 "그럼 그 성격 좀 고쳐라.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살려고 하니? 나는 아주 깜짝 놀랐다. 그렇게 안 봤는데 어쩜 성격이 그렇게 급하니?"라고 계속해서 뭐라 뭐라 하기에 "네, 고칠게요."라고 얼른 대답했다. 교수님과 몇 마디 해보지 않았어도 필수전공과목이라든가 세미나식 수업이 아니라 강의식 수업이라 듣기 편해서 자주 듣다 보니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대강 알고 있었다. 엮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직관적으로 판단했다.

  강의시간에 자주 쓰는 말이 있었다. "참 싸(사)는 것이란 어떻게 사는 것인가?" 늘 앞에 '사'자를 '싸'로 발음해서 친구랑 그런 얘기도 자주 주고받았다. "맨날 배변타령이야. 변비 있나?" 교수님은 '참 싸(사)는 것'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고 남들이 제발 '참 쌀(살)았으면'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사람에게 많이 치였던가 원래 염세적이거나 부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나 보다고 생각했다. 줄곧 취직을 못해서 밥 사먹을 돈도 없게 되면 자기를 찾아오라며, 자기가 돈은 없어서 못 줘도 쌀은 얼마든지 줄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과연 저 교수의 집 대문을 두드려 "선생님, 쌀 좀 얻으러 왔어요. 배고파서 못 살겠어요."할 이가 있으리란 말인가? 정말 그 정도로 힘들어서 찾아간다면 자기자랑과 인신공격에 가까운 모욕적 언사도 참아 들어야만 한다. 상상만으로도 으스스하고 아찔해진다. 살다 보면 종종 굶어 죽어도 엮이기 싫은 인간들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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