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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견디는 힘

희극적으로 생각하기

  친구가 장난기를 못 참고 등을 확 떠밀었을 때에도, 내 몸을 훑어보더니 절벽이라고 놀릴 때에도 나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 뭐, 별 대수라고. 친구의 치마를 들추고 숱 없는 머리를 보며 골룸이라고 맞대응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맞대응하지 않고 다른 식의 반응을 보였다. 더 재미있으라고 한층 더 과장된 몸짓이나 말을 했다. "절벽? 무슨 소리야, 블랙홀이지. 브라자가 몸속으로 빨려들어가는데. 나 지금 앞으로 걷고 있니, 뒤로 걷고 있니?" 친구들이 미친듯이 웃어주면 이 저질스런 친구 비하 게임은 나름 해피엔딩이었다.

  나는 친구의 외모나 겉모습을 놀려본 적이 없다. 외모 콤플렉스가 강한 사람들이나 그런 말을 농담인 척 꺼내어서라도 자기가 남보다 나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도 내 외모를 농담 따먹기용으로 비하할 때 써먹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는데 한 번도 감정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건 외모에 그만큼이나 큰 관심이 없어서였다. 일단은 외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다. 가정의 불화란 그런 것이다. 하루의 평화 유지도 쉽지 않아서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게 된다.

  차라리 외모에 관심이 없을 때가 행복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서 나는 모르던 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어도 미인에 준하는 정도는 되는 구나, 하는 사실을 새로 사귄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가정의 불화와 경제적 빈곤이 머릿속을 채운 고민거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구질구질한 생활과 외모 가꾸기는 절대로 병행이 안 되었다. 하나로 묶은 머리, 눈이 콩알만 해지는 안경, 립밤만 바른 맨얼굴, 아니면 로션도 바르지 않고 세수만 하고 나온 얼굴, 오래된 청바지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입던 코트. 이런 삶을 견디기 위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가 가장 중요했다. 나는 못생겨도 괜찮고, 옷을 못 입어도 괜찮고, 차비가 없어서 자체휴강을 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서 남자들의 관심은 부담스럽고 무섭기까지 했다.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으면, 나를 좋아하지 말았으면, 힐끗거리고 쳐다보지 말았으면. 대학 4년간 시선공포증에 시달렸지만 '시선공포증 따위 없어. 날 쳐다본 게 아니니까. 내가 착각한 거야.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긴장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평범해 보이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항상 타던 버스를 타고 매일 걷는 길을 또 걸으면서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돌아 보면 한 순간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라지 못했다. 학교를 가고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사귀고 어려운 공부를 하며 시험 성적을 받고 자꾸 나이를 먹고 사춘기가 오고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중학교, 고등학교, 계속해서 많은 인연을 쌓고 만들고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을 가고 대학생이 된다는 색다름을 만끽하고 대학교 로망을 갖고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졸업까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갖고 세상에 나가 나만의 일을 찾고, 다 커버린 주변 사람들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나는 그저 내일이 오늘이 되니까 살았다. 주어진 모든 일들을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갈 수 있는 길로만 가야 한다고 믿고 살아갔다. 또 내게는 모태신앙이라는 오래된 유물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받았다. 나는 먼저 이 오래된 유물을 잘 지켜야 할 사명이 있었고 가정의 불화를 견뎌야 했다. 이 우울한 인생에 짓눌려서 죽어버리지 않으려고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버티고 버텨왔다. 내 인생도 참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걸로 불행은 가리고 덮었다. 나 스스로 붕괴되지 않으려고.

  정말로 내 인생은 어땠을까? 객관적으로 본다면 정말로 '괜찮은 인생'이었을까? 지금도 내 기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싫다. 누가 나를 놀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고, 누가 나를 비난해도, 빈정대도,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하고 깨부숴도 '신경 하나도 안 쓰여.'하는 태도를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고 싶다. 평화롭고 행복하고 싶다. 남이 뭐라든 말든 다 괜찮다고, 멋대로 하는 말이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니,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모르겠다. 이 글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불행은 표나지 않게 껍질 속에 감추고 오래오래 아무렇지 않게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요새 잘 안 되고 있다. 껍질에 금이 가고 알맹이가 솔솔 새어나간다. 남을 비하해서 조금이라도 자기가 나아져야 안심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이제 그럴 나이는 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대수롭지 않은 척을 못 멈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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