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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디스트를 위하여

13년도 단편소설

나는 이 와중에 내 심경을 알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사실적으로 내 모습을 그리려는 자들이 혐오스럽다. 역겨운 관음증 환자들. 사디스트나 마찬가지다. 그래, 얼마든지 보아도 좋다. 내 살갗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아픔보다 더한 두려움에 떠는 가련한 육신을.

그리고 저들도 역겹기가 다르지 않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너울거리며 천천히 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재해 앞에서는 귀족도 노비도 창녀도 상인도 제 몸뚱이 하나도 지켜낼 수 없기란 다 똑같았다.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봉오리 살짝 솟은 내 가슴을 제 어미의 젖을 빨 듯 빨아대며 탐닉하던 제사장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서 상다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아있다. 또 내 입술을 적실 한 모금의 물도 허락하지 않았던 주인 과부 여자도 웃통이 다 벗겨진 줄 알지 못 하고 젖가슴을 출렁이며 짐승처럼 포효한다. 그 모든 광기와 분노와 불안과 공포, 절망과 허망이 이 도시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한 번도 나의 도시인 적 없던 이곳 폼페이에 저주가, 재앙이, 심판의 날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도 등을 돌린 날, 시커먼 하늘과 그 아래 암흑만이 우리의 앞날을 예언해주고 있다. 더 이상 희망을 지껄이지 말고 인생에 남은 한 가지를 받아들이라고 엄숙하게 경고하고 있다. 갓난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마저도 덮어버리는 굉음이 온 도시를 삽시간에 귀신 소굴로 만들어버린다. 지옥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정녕 이 자들은 몰랐단 말인가! 먹구름과 눈처럼 흩날리는 재로 나의 눈과 귀가 멀고 점차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것을 느끼며 실은 내 짧은 생애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 이 순간이 별로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린다. 나는 차라리 이미 더럽혀진 몸을 불에 태워 정화시키는 것으로, 그렇다, 하나의 의식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리고 여전히 두려움이란 몹쓸 감정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 하나는 끝까지 지키려는 저 고집스런 남녀들도 이제 동요를 그만하고 화형의 엄벌에 고개를 숙이라 고한다. 나는 이제 채 5000일도 살지 못 하고 버러지처럼 스러지고 말지만 저들은 욕심껏 내가 산 날보다 서너 배는 더 살고도 남았을 텐데 어쩌면 저리 추하게도 끈질기게 살아남고자 하는 것인가? 그토록 사람들 눈에 덕망 높고 명예롭기를 바라던 저 귀족들이나 권세와 부 앞에서라면 설설 기던 수많은 남녀노소들이 하나같이 이제 와서는 남들 눈 아랑곳 않고 제 목숨만을 위해서 용을 쓰다니!

패악을 일삼던 이 도시는 진작 예견된 대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로 말려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름없는 버림받고 짓밟혀진 꽃들이 함께 어깨를 떨며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존중 받은 적 없는 우리 생명이 죽음 앞에서는 동등하게 받아들여짐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기는 것은 죽음을 기만하기 위함이 아니다. 저들의 지옥은 우리에게는 실로 축복이었다. 뜨거운 기운과 재가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껴안는다. 지금에서야 나는 받아들인다. 의미 없고 헛되게만 느껴졌던 나의 인생이, 결국은 정화되기 위해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었음을, 썩은 것을 태울 때에 느낄 수 있는 환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제껏 무슨 일을 겪어도 운 적 없던 한 소년이 눈물에 얼룩진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빼낼 때보다 들여보낼 때 더 많이 열렸을 항문이 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소년은 자신의 변을 엉덩이로 뭉개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영혼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멀지 않은 곳에서 악에 받친 비명을 질러대는 베수비오가 마지막 일격에 박차를 가할 때 나는 그 영혼을 꽉 껴안아 주었다. 그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완전한 혼연일체가 되도록 서로의 몸을 단단히 밀착시켰다. 풍요로움 속에 목마름과 굶주림을 앓아야 했던 너와 내가 이렇듯 폼페이 최후의 날, 최고의 안식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아무도 우리를 아프게 할 수 없으리라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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