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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

  친구에게 시원하게 뺨 한 대를 얻어맞고 와서 책상에 엎드려 울고만 있었다. 뺨을 맞을 정도로 미움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미웠을까? 종이 치고 수업시간 직전에 울음을 멈추었다.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계속 엎드려 울고 있으면 친구가 내 뺨을 때린 사실이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 친구는 속으로 겁이 났을 텐데도 곁으로 와서 웃으며 울지 말라고 달래는 시늉을 했다. 사실 계속 우는 게 더 어려웠다. 친구가 크게 혼나길 바라며 선생님께 들리도록 우는 애들도 있겠지만 나는 연기 같은 걸로 사람을 속여먹는 재주가 없었다. 수업종과 함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 일이 있고 나서야 늘 찝찝한 관계에 있던 친구와 완전히 단절을 하고 지냈다. 한 학기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친구였다.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아도 같은 무리에 속해 있어서 아주 끊어낼 도리가 없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자연히 관계가 끊어졌다. 그런 뒤부터 친구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매일 나를 방해했다. 따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른 무리의 아이들과 친분을 쌓고 있으면 그 사이로 들어와서 새 친구를 데리고 갔다. 보란듯이 그런 연기를 펼쳤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종족의 인간이었다. 내게 새로운 시야가 생겼다.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나의 인생을 바라보듯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도 바라보았다. '거슬리게 하는 인간' 같은 건 없었다. 나와 맞지 않는 정도로만 여겼다. 왜냐하면 실제로 '거슬린다'는 건 자기중심적이라서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을 향해 '내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위치를 스스로 알아서 그런 류의 생각을 못했던 것도 같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최말단에 속한 줄을 본능적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관심이 안 간다. 초식동물의 세계가 이렇다. 약자끼리는 관심이 없고 강자를 보면 멀리서부터 경계하고 몸부터 굳는다.

 그러면 단지 내가 약자이고 초식동물이어서 미움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마음껏 미워하고 상처내도 자기를 향해 반격하지 않는, 반격이래봤자 전혀 위협적이지 않기에 얼마든지 함부로 미워할 수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일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미운 면은 존재하나 강자의 콧털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의 콧털도 흠집내지 못할 만큼 내게는 나보다 약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내 형제들 중에는 나처럼 약한 인물이 없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몇 번 당해보았고 뺨도 얻어맞아봤고 나를 지 꼬붕인 냥 여기고 평생 끼고 살려고 집착하는 친구도 있었던 나와는 다른 인생들을 산다. 나도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 내게 어울리는 역할이 아닌지 그럴 때마다 트러블이 배로 늘어난다. 드넓은 초원에서 경계를 한시도 풀지 않는 한 마리 사슴같이 사는 것이 내가 살아갈 유일한 방식인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턱과 강인한 근육으로 보기만 해도 설설 기게 만드는 육식동물을 동경하면서. 이 세계는 강한 자의 세계이다. 약한 자들을 돌아보라는 말은 동굴에 두고 온 양심이나 떠벌리는 소리이다. 소리 없는 소문이다. 약자들도 관심 없는 약자의 세계, 모두가 외면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기피하고 쥐뿔도 없는 인간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나는 그런 인간 중에 하나다. 나 같은 인간은 감히 세상을 미워하지도 못하고 세상에 욕도 못 한다. 다 내가 못나빠진 인간이어서, 그렇게 태어난 내 잘못이다.

  뺨을 얻어맞고 엎드려 누워서 울고만 있었다. 왜 맞아야 하는지, 왜 울어야 하는지도 몰라서 눈물도 안 나온다. 왜 미움 받는지도 모른다. 따져야 하는 줄도 모른다.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 보니 나는 초식동물이었고 드넓은 초원에는 맹수들이 들끓었다. 호시탐탐 물어뜯을 틈만 찾는 맹수의 샛노란 눈깔이 무서워서 엄마를 찾아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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