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상경

  소년은 논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었습니다. 자전거 뒷바퀴에 채인 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땀에 젖은 옷이 소년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볕은 달군 프라이팬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내리쬐었습니다. 초록색의 기다란 잡초가 길가에 늘어선 모습은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언뜻 보면 평온한 듯 보이지만 지루하기만 한 시골 풍경이 소년의 눈에 애정 없이 비쳤습니다. 소년은 얼른 자라서 이곳을 떠나고만 싶었습니다. 서울로 가서 바쁜 도심의 텁텁한 공기를 마시며 매일 색다른 풍경을 구경할 기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작은 단칸방이라도 좋고 고급스러운 직업이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짜릿해지는 세련된 여성들과 말이라도 한 마디 섞어봤으면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공상을 이어갔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 보낼 여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소년도 학교에 그다지 미련이 가지 않아서 그러마고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줄 거라고는 밭뙈기 조금과 스무 마리쯤 되는 돼지농장이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해풍이 부는 밭고랑을 돌며 감자를 심고 고추를 심고 마늘을 심었습니다. 새벽에는 돼지 여물과 사료를 먹이고 물을 갈고 바닥에 까맣게 진흙같이 쌓인 돼지 분뇨를 치워주었습니다. 새끼를 친 돼지는 빈 우리로 몰아주고 시끄럽게 싸우는 녀석들은 서로 섞이지 않게 다른 우리에 집어넣었습니다.

  소년은 묵묵히 하던 그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지긋지긋해진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5시에 차려준 저녁 밥상에서 소년은 아버지에게 상경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할일이 많은데 이 일을 나 혼자 어찌 다 하라고 철없는 소릴 하느냐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집 구석에 틀어박혀 땅만 보고 돼지 밥이나 먹이면서 살기가 여간 답답하리라는 사실도 내심 아셨습니다. 소년은 속이 상해 밥도 다 먹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제 풀에 지치거나 말으라고 아버지는 내색도 하지 않고 소년을 내버려두었습니다. 얼마 뒤에 소년은 서울에 올라 갈 채비를 다 하고 아버지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아버지는 뒤돌아 담배만 빨아 드셨습니다. 멀리 길 밖으로 가서야 아래 여동생이 뛰쳐나와 소년의 손에 여비 얼마를 쥐어주었습니다. 오라비, 무사히 지내시고 편지 하세요,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소년은 조그맣게 보이는 허름한 집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착각인지 아버지도 손을 흔들어주는 듯이 보였습니다. 여동생이 보고 있어서 소년은 어깨를 당기고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어떻게 하여도 쓸쓸하며 그늘져 보이는 것을 그때의 소년은 알지 못했습니다.

  높은 산을 타고 내려오는 아침 바람이 소년의 옷을 휘감고 지나갔습니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오가던 지루한 논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는 산뜻하기만 했습니다. 길가마다 늘어선 길쭉한 잡초들이 서울로 부름 받은 귀한 인재에게 머리 숙여 금의환향을 바라나이다, 고 예를 갖춰 배웅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공기를 듬뿍 허파에 채워넣고 길게 내뱉었습니다. 다시 이 길을 걸을 날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스에 앉아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고향 마을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꼭 그러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미색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우리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