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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학교 복도와 운동장

  데몬과 노아는 비어있는 학교 복도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 걸음을 옮기며 창문 너머 가지런히 정돈된 교실을 눈여겨보았다. 교실마다 늦은 오후의 주황빛 햇살이 들어와 나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때로 주인에게 잊힌 책가방이 책상 위에 버려져있거나 장난꾸러기들이 청소를 대충 해놓고 도망을 가버려서 아이들이 뛰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야.”

  노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은 더 흐르지도 당겨지지도 않으며, 세상을 붉게 물들인 태양도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까무룩 해가 지고 달이 떠야 할 테지만 노아는 이성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바깥 운동장에서 작지만 높게 들리는 하교하지 않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마냥 반가울 뿐이었다. 노아는 끊임없이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지 않을 거야. 해 져가는 시간만이 그들에겐 유일해.’라고 되뇌었다. 시간과 공간을 사로잡은 노아의 힘 앞에 굴복 당하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각은 그렇게 된 바로 직후에 가장 또렷한 정신력을 갖게 했다.

  노아와 데몬은 끝이 없는 복도를 계속해서 거닐었다. 어느 순간 복도와 교실에 붙어있는 창가마다 영상이 나타났다. 노아는 계속해서 걸었고 데몬은 때때로 멈춰 서서 창가에서 같은 장면이 연속으로 재생되는 영상을 보았다. 앞만 보고 걷고 있는 노아의 얼굴은 아까처럼 담담했다. 아까보다 조금 흐려 보인다면 그것은 노아가 그늘이 진 자리를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데몬이 어느 한 자리에 전보다 더 오래 멈춰있었다. 그리고 노아를 불러 세우며 손가락으로 영상을 가리켜 물었다.

   “이건 언제로 보여?”

  노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13살 때 내 생일.”

  13살의 노아는 검정색 투피스로 된 치마와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상을 닦고 있었다. 영상은 노아가 상을 닦는 모습만 반복적으로 재생했다. 잠옷 차림이던 노아의 옷이 13살 노아가 입고 있는 투피스로 바뀌었다. 노아는 자신의 몸을 보고 싶어 앞을 지나가던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사물함 옆 벽에 붙어있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비추었다. 그러나 거울은 틀만 남아있고 반사시켜줄 유리는 누가 떼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노아는 짙은 녹색의 틀을 보며 중얼거렸다.

   “언제 또 이런 예쁜 옷을 입게 될까?”

   “그 옷이 맘에 들어?”

  데몬이 노아의 등 뒤에서 물었다.

  대답이라도 하듯이 노아는 다시 잠옷 차림이 되어있었다.

   “응. 이 옷 정말 편해. 그날 차라리 잠이나 실컷 잘 걸.”

  노아가 담담하게 말해, 데몬은 노아 대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노아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복도가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어버릴 것 같아 노아는 겁이 났다. 바깥에서 들리던 아이들의 목소리도 희미해져 갔다. 노아는 데몬의 손을 잡아끌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끝도 없던 복도에서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나타난 계단을 노아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두 개씩 한꺼번에 건너뛰며 한참을 내려갔다. 노아는 나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우리가 가장 꼭대기 층에 올라갔던 모양이야. 학교 건물치고 좀 높은 건물 인가봐.’

  노아의 예상대로라면 대부분의 학교 건물이 그렇듯이 입구가 총 6개는 될 것이다. 서쪽에 앞문과 뒷문, 중앙에 앞문과 뒷문, 동쪽에 앞문과 뒷문. 더 좋은 학교라면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도 입구가 있을 것이고 측면에 문이 있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입구가 없는 건물은 불가능하다! 어둠이 내리깔린 학교 안을 한참동안 종횡무진 달리던 노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드디어 1층에 도달해 입구에 도달했다. 비록 불이 꺼진 지 한참이나 된 학교지만 수위 아저씨가 깜박 잊고 문단속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가정하며 노아는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입구에 다다른 순간, 노아 뒤를 좇아 달리기만 하던 데몬이 먼저 손을 뻗어 입구를 열어젖혔다. 노아는 놀란 눈으로 데몬을 보며 학교에서 빠져나왔다.

   “있지, 왜 밤에 학교에 있으면 무서운 생각이 들까? 모든 입구가 다 잠겨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영영 갇혀버릴 것만 같아.”

   “그러니까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데몬의 환한 목소리를 듣고 노아는 불길한 느낌을 단번에 지워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떠난 빈 운동장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검푸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학교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인 듯했다. 널찍한 땅의 고요가 낯설지 않다고 여기며 노아는 운동장 한편 시멘트로 된 스탠드에 데몬과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이곳에 앉으면 늘 드는 생각이 있어.”

  노아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거기엔 데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노아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고, 데몬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았으면. 날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데몬은 노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게 다는 아니었지.”

  바람이 불며 운동장 건너편 담벼락 앞에 교목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구름이 하늘을 가로 지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숨죽이고 있던 생명체들이 일시에 일어나 자기들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노아는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 앉아있는 자리, 언제나 너의 자리였구나.”

  데몬이 상냥하게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자지러지게 울고 싶었지만 필요 이상의 행동이 많은 걸 낭비할 뿐임을 노아는 알고 있었다. 상냥한 데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고, 긴긴 밤을 짧게 만들 것이고, 단벌신사인 노아의 잠옷이 눈물과 콧물로 축축해져 버릴 것이다. 노아의 눈물이 더욱 굵어져 무릎으로 뚝뚝 떨어졌다. 데몬이 말을 이었다.

   “때론 다른 곳에 앉고 싶었지? 너 혼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했겠지. 가끔은 촘촘히 앉아서 누군가를 흉보는 한 무리의 아이들 가운데에 있고 싶었을 거야. 비록 그 아이들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노아는 굵은 눈물을 내리깐 눈꺼풀 밑으로 연신 밀어냈다. 깜박이는 눈에 기다란 속눈썹이 푹 젖어 꼭 낙타의 젖은 눈과 같았다. 노아는 운동장 한복판에 느릿느릿 걷는 낙타를 불러냈다. 낙타발굽이 운동장 모래 위를 부드럽게 밟으며 걸어갔다. 한낮에 뜨겁게 달궈졌을 낙타들의 발굽이 조금씩 식혀지고 있었다. 낙타는 천천히 걸었다. 등허리에 혹을 흔들면서 달밤에 춤을 추듯이 운동장 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미워했던 것 같진 않아. 난 그냥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아. 전에는 좋은 사이였거든. 처음에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사이였던 것처럼 나중에도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된 거야.”

  노아의 말을 데몬이 이어갔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저 낙타발굽처럼 네 두 볼은 빨갛게 달궈졌지.”

  노아가 다시 대꾸했다.

   “하지만 사막의 모래를 뜨겁게 데우는 건 태양이야.”

  노아가 아무 것도 탓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데몬은 알았지만 그녀가 그럴수록 마음이 저며 왔다. 데몬은 노아를 위해 달콤한 냄새가 나는 휘파람을 불러주었다. 데몬이 부르는 노래는 오히려 노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복도에 걸린 창문에서 재생되던 영상들이 한꺼번에 바깥으로 날아와 이번에는 운동장 바닥을 가득 메웠다. 15살의 노아가 군데군데 뜯겨진 머리카락을 제 손으로 가위질하고 있는 장면, 책상에 앉아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종이쪽지를 들고 손을 떨고 있는 장면, 학교 건물 뒤편 소각장에 낯익은 친구 한 명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죽 서서 노아를 보며 웃는 장면들은 몇 십 편씩 겹치기도 했다. 노아는 혼자 음식을 시켜먹고 상을 치웠던 13번째 생일 때의 자기 모습 위로 차츰차츰 걸어갔다. 그 옆에 14살 때의 노아가 얼굴을 붉히며 누군가의 얼굴을 힐끔거리고 있었고, 그 위에 16살의 노아는 승현이와 시내버스를 타고 가며 바람을 맞는 장면이 보였다. 노아가 흘린 눈물 때문에 운동장의 모래가 군데군데 젖어서 영상이 일그러진 부분도 있었다. 노아는 운동장의 맨 끝으로 가서 영상의 끝 부분을 손으로 잡고 카펫처럼 돌돌 말기 시작했다. 데몬이 달려와서 노아를 거들었다. 노아가 말을 꺼냈다.

   “별로 대단한 사건도 아니었는데, 난 자기애가 강한가봐!”

  데몬은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노아는 데몬의 태도에 조바심이 났다.

   “내가 하는 일이 맘에 안 드는 거야?”

  데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표정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울상이었다. 노아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데몬을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이 기억의 영상은 다 말아져서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거의 피리만큼 작아졌다. 노아는 그것을 막대기처럼 공중에서 휘둘렀다. 영상 몇 가지가 하늘 위로 던져지듯 날아가 버렸다.

   “슬픈 노래를 일부러 틀어놓지 않을 거야. 일부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도 않을 거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떠올리지도 않을 거야. 일부러 슬퍼지는 건 정말 못할 짓이야.”

  데몬이 여전히 울상인 얼굴로 노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노아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 그에게 다가가 데몬의 손을 잡았다.

   “데몬,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데몬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힘겹게 대답했다.

   “다 좋아. 잘 되고 있어. 다만 너의 슬픔을 대신할 뿐이야. 한 번만 더 생각해봐. 네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게 뭔지.”

   “데몬, 무슨 말인지 잘 알아. 이게 내 꿈이라는 거지?”

   “그래, 맞아. 잘 했어.”

   “이제 가자. 교문으로 나가야겠어.”

  데몬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노아가 이끄는 대로 함께 따라 걸었다. 노아는 손에 들고 있던 피리 모양의 기억들을 운동장 어딘가에 떨어뜨려놓았다. 그냥 거기에 버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리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교문으로 향했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돋아났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노아의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었다. 활짝 열린 교문으로 노아와 데몬이 나서면서 자욱한 안개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른 장소로 가기 전, 노아는 찰나의 순간 이곳이 ‘메론 중학교’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노아가 다녔던 중학교 건물이었다. 기억이 이지러지는가하더니 마지막에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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