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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빌딩

  넓은 원형 로비 중앙에 나선형의 계단이 보인다. 양 옆으론 에스컬레이터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오른쪽과 왼쪽 벽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한 뭉텅이로 서서 숫자가 1로 변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는 띄엄띄엄 사람들이 서있었다. 로비를 가로질러 오고가는 사람들과 손님을 맞는 데스크 앞에 줄 선 사람들, 노란 조명과 건물 냄새 등이 이곳의 분위기를 유추시킨다.

  노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곧장 앞으로 걸어가 데스크 앞에 서서 몸을 기대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입을 벌리는데 데스크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체크인 하시겠습니까, 손님?”

  종업원의 말에 노아는 입만 벌리고 가만히 생각했다. 쇼핑센터나 백화점 정도로 보이는 외관과 달리 호텔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노아는 눈을 굴려보다가 순전히 룸을 구경하고 싶어서 체크인하기로 결정했다. 고개를 사뭇 진지하게 끄덕이며 노아가 대답했다.

   “네.”

   “어떤 방을 원하세요? 1인실, 2인실, 4인실, 스위트룸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기 사진을 보여드릴 테니 골라보시겠어요?”

   “네.”

  노아는 긴장한 듯 짧게 대답하고 종업원이 건넨 책자를 열어 사진을 살펴보았다. 1인실은 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좁아보였다. 들어서자마자 침대가 하나 있고 발치에 손바닥만 한 TV가 있었다. 이런 데서 자다간 숨통이 트이질 않아 정말 죽은 것처럼 여겨지는 게 아닌가, 노아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

   “1인실에는 화장실이 없나요?”

   “네, 없습니다. 복도 끝에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손님.”

  노아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가 다시 사진에 눈을 돌렸다. 2인실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 노란색의 푹신한 이불과 베개, 새하얀 시트가 깔린 1인용 침대 두 개가 따로 떨어져있고 책상과 의자, 20인치 TV가 있었고 화장실도 내부에 있었다. 또 샤워 후에 갈아입을 목욕가운과 실내화가 있다는 점도 확실히 1인실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여전히 노아의 성에 차지 않는지 계속해서 사진을 넘겨 4인실 방을 살폈다. 퀸 사이즈 침대 두 개, 작은 테라스, 40인치 대형TV, 욕조가 딸린 화장실, 부엌에는 조리시설이 갖춰있고 목욕가운과 실내화,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도 있었다. 책자를 넘겨보는 노아에게 종업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4인실을 빌리시는 고객에게는 전기렌지 사용과 생수 두 병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욕실에 비치된 비누와 치약, 바디로션 등도 모두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십니다. 미리 말씀드리는 건 가끔씩 4인실 이상을 사용하시는 손님 중에 전화로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또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종업원은 인공입술을 붙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시종일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노아는 종업원의 빠른 입놀림을 보며 마치 현실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자 노아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현실을 꿈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과 반대로 꿈을 현실처럼 인식하는 건 자각된 상황에서는 좀 새롭다. 자각되지 않았을 때에는 꿈을 완전히 현실로 인식하게 된다. 노아는 쓸데없이 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맨 꼭대기 로열층에 있을 스위트룸 따위를 구경하고 싶었다.

   “스위트룸은 맨 꼭대기에 있네요. 몇 층이 가장 높은 층이죠?”

   “399층입니다, 손님.”

   ‘399층이라….’

   “왜 400층이 없는지 궁금하시죠?”

   “네. 궁금하네요. 그렇지만 알려주지 마세요.”

   “정말요?”

  종업원이 드디어 색다른 표정을 지었다. 장난스럽게 눈알을 번뜩이며 미심쩍은 말투로 되물었다. 노아는 갑자기 그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이제 조금 그와 가까워진 기분이 든 것이다. 그가 기계처럼 굴 때에는 도저히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도 기계화된 말투에서 탈출하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진 것 같은 태도로 변했다.

   “네. 제가 맞춰보고 싶어요.”

   “손님이라면 맞출 것도 같네요.”

   “그렇죠?”

  노아와 종업원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 순간 노아는 자신이 지나왔던 성을 떠올렸다. 그 성을 잊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노아는 성에 가기 위해 추위와 살갗을 베는 얼음과 또 연약한 육체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모든 걸 이겨낸 순간 노아는 그토록 원했던 데몬을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데몬은 노아를 한 번도 노아라고 불러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데몬이 부르는 ‘이소’ 안에 진짜 노아가 들어있는 것 같아 편안하게 들렸다. 노아는 종업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낯선 사람이었다. 노아는 데몬이 보고 싶어졌다. 그가 어디로 떠난 건지, 왜 자기를 버린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두 노아가 일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데몬이 자각하게 도와주었지만 노아는 통제 불능, 제멋대로 굴었고 데몬이 하려던 일을 모두 망친 것이다. 노아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데몬이 하려던 게 뭐였을까?’

  노아는 데몬을 다시 찾아야 할지, 아니면 그가 하려던 일을 찾아야 할지 뭐가 옳은지 확실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전히 종업원의 눈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아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제게 묻는 건가요? 대답은 손님만이 해주실 줄 알았는데요.”

   “역시 그렇죠?”

  종업원이 카드키를 카운터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여기 스위트룸 키 있습니다.”

  노아는 꿈속에 들어와 처음으로 뭔가를 소유했다. 카드키라니, 대단히 멋진 물건이 노아의 손에 들어왔다. 노아는 손에 카드를 들고 유심히 살폈다.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필기체로 된 스위트룸이라는 글자는 은으로 새겨놓았다. 네 모서리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 카드키가 이 정도라면 실제 이 방의 호화로움은 안 봐도 뻔했다. 노아는 호텔의 주인이라도 된 양, 종업원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거만하게 굴었다.

   “안내해요.”

  종업원은 싱긋 웃으며 카운터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앞장섰다.

   “그 쪽이 아니잖아요. 난 새 옷이 필요해요.”

   “아! 그렇죠. 실례했습니다. 그럼 다시 이쪽으로.”

  노아의 말에 종업원은 미소를 지으며 에스컬레이터로 노아를 안내했다. 노아가 먼저 타자, 종업원이 뒤따라 탔다. 에스컬레이터가 점차 위로 오르며 조명이 더욱 눈부시게 환해졌다. 중앙에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환한 조명을 밝힌 상점이 양쪽에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상점마다 수많은 옷들이 마네킹과 옷걸이에 가득했고, 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손님을 기다리는 점원들이 각 상점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줄맞춰 서있었다. 갑자기 볼 것이 너무도 많아지자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산란해져 노아는 잠시 휘청했다. 노아는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어느 쪽으로 먼저 들어선 건지 알 수도 없이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대충 훑어보며 다녔다. 상점을 지날 때마다 점원들은 새소리처럼 높은 목소리로 상냥하게 노아를 불렀다.

  노아는 어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가게가 다 같은 물건을 파는 것만 같았다. 다 같은 물건인데 이름만 달리해서 파는 것만 같았다. 그러려면 뭣 하러 이렇게 많은 가게가 한 장소에 함께 있어야 하는지 노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전히 정신은 산란하고 종업원을 쫓아다니는 것도 힘에 부쳤다.

   “맘에 들지 않네요. 그만 올라가요.”

   “아닙니다, 손님. 아직 최고를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종업원은 노아를 제일 끝에 있는 상점으로 인도했다. 상점의 크기는 확실히 아까보다 몇 배는 컸다. 상점 안에 점원들의 수도 가장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물건들은 지금까지 본 것들을 전부 합쳐놓은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노아는 실망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어 볼멘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 별로예요.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최고라고 하는 이 물건도 바로 전 가게, 그 전 가게, 그 전에 전 가게에서 다 팔고 있었어요. 게다가…!”

  노아는 차마 말을 다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노아는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종업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미소 지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있는 점원 대여섯 명도 노아와 함께 웃었다.

   “게다가 이건…!”

  간신히 웃음을 참고 말을 이으려던 노아는 다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우스운 일이었다. 노아는 배를 잡고 떼굴떼굴 바닥을 굴렀다. 눈물이 흘러나와서 귓바퀴에 고이기까지 했다. 종업원도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노아는 배를 잡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상점에 진열된 옷들을 양손으로 집어 올려 공중에 뿌렸다.

   “이게 최고라니! 이게 최고라고요? 정말 제정신들이세요?”

  점원들도 노아처럼 옷들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공중에 날리며 함께 난리를 피웠다. 아무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거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시끄럽게 웃어댔다. 호흡이 달려올 때에야 조금씩 진정을 하며 다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 서로의 웃는 눈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을 보라고요. 다 내 잠옷이잖아요. 다들 이것만 팔고 있잖아요. 근데 이곳은 특별히 최고라니요. 당신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노아는 종업원을 돌아보며 손가락질했다. 종업원은 미소 띤 얼굴로 다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종업원의 그런 행동에 노아는 얼굴이 굳었다. 다시 데몬이 떠오른 것이다. 노아가 얼굴을 굳히자 모두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노아는 그에게 뭔가 묻고 싶은 게 생겼지만 그가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아서 꾹 참았다.

   “가요. 나의 스위트룸에.”

  노아와 종업원은 걸리적거리는 노아의 잠옷들을 발로 치우며 상점을 떠났다.

  노아는 실컷 웃기는 했지만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좋은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 같은 것은 손에 넣지 못했다. 한편으론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데몬이 좋아하지 않는 일들을 계속해서 벌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데몬이 그녀를 위로해줄 때가 그 둘의 사이가 가장 좋았을 때이다. 데몬의 기분은 그의 머리색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뜨거운 마음을 대변해주던 빨간 머리가 떠올라 노아는 잠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노아의 미소를 느낀 것인지 종업원이 노아를 흘끔 쳐다보았다. 노아는 미소를 거두고 태연하게 섰다. 두 사람은 내부를 금으로 장식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손님.”

   “벌써요? 399층이라면서요?”

   “예, 물론이죠. 400층이 없는 399층입니다.”

  종업원은 마치 뭔가를 종용하듯이 대답했다.

   “이제 그만 이유를 가르쳐주세요.”

   “맞춰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손님은 맞추실 수 있을 텐데요?”

  종업원이 빈정대는 건지 정말 확신에 찬 건지 구분이 안 가기도 하고, 그럴듯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노아는 짜증이 났다.

   “내가 못 맞출 걸 아시는 거죠?”

   “못 맞추시겠습니까?”

   “네!”

   “아녜요. 지금은 그럴지 몰라도 이따가는 알 수도 있잖아요.”

  노아는 그가 말장난을 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그를 쥐어박기 위해 폴짝 뛰어오르자 엘리베이터가 ‘딩동!’ 하고 벨을 울리며 문이 열렸다. 노아는 열린 문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종업원이 노아의 볼에 입을 맞추고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들어 올려서 엘리베이터 바깥에 내려놓았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손님!”

  미소를 짓고 있는 종업원은 그대로 문을 닫고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노아는 그저 주먹을 쥔 손을 그대로 하고 서서 멍하니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 문 위에 금장식으로 ‘399층’이라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삼백… 구십… 구층….”

  엘리베이터는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399층은 스위트룸 한 방 밖에 없었다.

   “마치 펜트하우스처럼….”

  노아는 전면이 유리로 된 거실의 한 쪽 벽을 보았다. 거실의 천장은 유리가 비스듬히 깎여있었다. 새하얀 소파가 둥그렇게 움푹 파인 거실 한복판 중앙에 디귿자로 놓여있고 마주보는 벽면은 새까만 스크린이 차지하고 있었다. 노아는 엘리베이터 옆에 전동 휠체어 세 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 중 하나에 올라타 본격적으로 방을 구경했다. 노아의 입에서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야, 일어나. 벌써 해가 중천이야.”

   “나 깨우지 마.”

   “그럼 오늘 안 갈 거야?”

   “어딜……?”

  노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옷이 이불 속에서 다 말려 올라가 있어 어쩐지 자는 내내 불편했다. 대충 물 찍어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서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는데, 엄마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너 또 밥 안 먹으면 못 갈 줄 알아!”

   “엄마, 우리 늦었어!”

   “또 쟤 때문에 우리만 늦잖아!”

  노아는 볼멘소리를 들으며 운동화를 구겨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네 밥은 네가 차려 먹어라. 맨날 차려주면 뭐해.”

  닫히는 현관문 안쪽에서 엄마가 구시렁댔다. 노아의 언니와 여동생은 이미 뒷좌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노아가 조수석에 앉고 맨 마지막에 아빠가 나와 운전석에 앉았다. 노아는 괜스레 긴장하며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찼다.

   “어제 그 여자모델 17살이래.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거야.”

   “뭐어? 안 그렇게 보여.”

  노아가 뒷좌석을 향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언니가 반응하고 여동생이 토를 달았다.

   “걔보다 더 어린 애도 있어. 15살인데 키가 벌써 백칠십, 이랬나?”

   “걔는 그냥 한국에서 잡지 좀 찍은 거 아냐? 어제 그 모델은 세계에서 몇 위라고 하더라.”

   “음, 아냐. 얘도 비슷해. 외국에서 잘 나간대.”

   “확실해? 아닐걸. 내가 알기론 얘가 최연소야.”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볼게.”

  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휘휘 저었다.

   “아무튼 내 말이 맞아.”

  여동생이 못 박듯 말했다.

   “비슷한 거겠지. 세계적인 순위에는 못 들고. 그렇게 어린 애가 어떻게?”

   “맞대도!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야, 모델도 다 나이 상관있어.”

   “지가 모델도 아니면서 어떻게 안데?”

   “뭐, 지?”

   “못 찾겠다. 잘 안 나오는데? 둘 다 별로인 거 아냐?”

   “아냐. 어제 봤잖아. 그런 프로그램에 아무나 왜 나와?”

   “걔 편들어서 뭐하려고 그렇게 따져.”

   “무슨 편을 들어 내가? 그냥 그렇다는 거지.”

  세 사람의 실랑이는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중단되었다. 여동생이 차에서 내리면서 은근히 욕을 한 것을 노아가 들었다.

   “너 뭐라 그랬냐?”

   “너 뭐라 그랬냐?”

  언니는 노아의 말을 과장되게 흉내 냈다. 언니와 여동생은 뒤도 보지 않고 매표소로 향했다. 노아는 차를 타고 좀 더 가야 했다. 아빠가 그녀에게 쓸데없는 일로 다투지 좀 말라고 말했다. “아빠나 그러지 마세요.” 차에서 내리면서 노아가 말했다. 아빠가 차에서 내려 노아를 따라와 고함을 질렀다. 그곳은 학교 앞 광장 한복판이었다. 노아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아빠의 화난 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어?”

  아빠의 커다랗고 두터운 손바닥이 노아의 뺨을 갈겼다. 노아는 몸이 휘청할 정도로 흔들렸고 이내 볼이 화끈거려왔다. 아빠는 눈물을 떨어뜨리는 노아를 거리에 세워두고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노아는 뺨을 어루만지며 정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다른 학생들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껴 부끄러웠지만 무엇보다 매일 아침 보는 수위 아저씨가 노아의 얼굴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그를 내일도 봐야할 것이 걱정되었다. 수위 아저씨는 바깥을 어슬렁거리다가 옆을 지나치는 노아에게 얼른 말을 걸었다.

   “학생, 괜찮아?”

  노아는 재빨리 고개만 끄덕이고 인도를 따라 강의동으로 향했다. 강의동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노아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다행히 화장실 안에 사람이 없었다. 노아는 세면대 위에 붙은 거울에 얼굴을 최대한 가까이 들이밀어 맞은 데를 살펴보았다. 다른 쪽 뺨보다 조금 더 부어보였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덩어리진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 노아는 입을 꾹 다물고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다 갑자기 수위 아저씨가 ‘학생, 괜찮아?’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을 조절하려던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 안에 이렇게나 많은 물이 언제부터 고여 있었는지 눈물이 하염없이 길게 흘러 나왔다. 화장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노아는 재빨리 좌변기 있는 곳으로 들어가 문을 걸었다.

   “야, 발표 준비 했냐?”

   “했겠냐? 그냥 때우는 거지.”

  생각해보니 평소와 달리 이번은 발표수업이라 사람들의 시선이 노아에게 필연적으로 쏠리게 되어있었다. 점수에 들어가지 않는 전체 발표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다들 불평하고 있었다. 노아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였다.

   <몸이 안 좋아서 자체 휴강한다. 미안.>

  노아는 점점 더 상황이 불리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빠에게 뺨 맞은 사실을 친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위로를 받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는데 친구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발표수업에서 빠지려고 했다. 화장실에 온 김에 노아는 볼일을 보고 나왔다. 계단을 오르다가 휴지통 위에 휴대폰을 그냥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도로 내려왔다. 화장실 앞에 다 왔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여자 얼굴 봤어?”

   “어, 뺨 맞았나봐. 울었던데.”

   “아침부터 어디서 뺨을 맞고 다녀? 불쌍해.”

   “내 말이.”

  노아는 못 들은 척 화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나왔다. 두 여학생도 아무 일도 없던 냥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도저히 강의를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강의실 문 앞까지 왔던 노아는 홱 건물에서 나와 버렸다.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구석진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노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참을 있었다.

   “거기서 뭐해?”

  전과를 한 복학생 오빠가 지나가다가 노아를 발견했다. 노아는 멍한 표정으로 대꾸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노아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온 그에게서 술 냄새가 독하게 풍겼다.

 

  아일랜드 식 조리시설이 갖춰진 주방에서 노아는 전동 휠체어를 세워두고 찬장을 뒤졌다. 초콜릿과 와인, 양주, 유제품, 과일이 서랍처럼 생긴 각각의 냉장고 안에 가득했다. 노아는 와인과 코르크마개 따개, 초콜릿, 유제품을 한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퀸 사이즈에 두 배는 될 커다란 침대가 비단으로 된 푹신한 이불보에 싸여있었다. 노아는 그 위에 갖고 온 음식을 내려놓고 몸을 던졌다. 온몸이 푹신한 이불 속으로 깊숙이 파묻혔다가 다시 위로 떠올랐다. 생전 이보다 더한 사치, 이보다 더한 안락함은 없었다.

  노아는 다시 잠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들면 좋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옅은 잠이 문제인 것이다. 노아는 코르크 마개에 따개를 깊이 박아 힘껏 돌렸다. 손잡이를 잡고 꽉 누르자 마개가 병에서 빠져나오며 살짝 부풀어 올랐다. 노아는 다시 등받이에 몸을 약간 기대고 병속 음료를 목구멍 너머로 욕심껏 넘겼다. 갈증은 사나운 식탐으로 변해버렸고 와인은 단숨에 노아의 뱃속으로 들어가 출렁였다. 초콜릿 껍데기를 북북 찢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끈적이고 단 것이 녹아 침에 엉겨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노아는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 사실은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놀랐지만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임의로 떨려왔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들어왔다.

   ‘일부러 그런 게 아냐. 처음부터 이러려던 게 아니었을 거야. 내가 잘못한 거야. 사람이 없는 곳에 온 내 잘못이야.’

  노아의 떨림을 느낀 복학생이 노아에게서 손을 거두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벤치를 떠났다. 노아는 이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을 하나하나 상기하느라 그가 이미 만지고 떠난 것을 느낄 수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노아는 벤치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을 꾸는 게 아닐까?’

 

  노아는 눈을 부릅떴다. 잠 같은 것은 오지도 않았다. 널브러진 술병과 포장 껍데기들을 손으로 밀치며 침실에서 나왔다.

   “거의 현실과 비슷하네. 구분이 안 가.”

  노아는 벌써 꽤 오래 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맑아 시공간이 함부로 뒤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분도 꽤 좋았다. 아무런 불안감이나 속박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대로 영원할 것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노아는 생각해냈다.

   ‘400층을 짓지 않았으니까 399층이지. 어려울 게 뭐 있담.’

  노아는 자신이 생각했지만 그도 답은 아니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별로 흥미에 없었다.

   ‘늘 엉뚱한 데 매달린단 말이야. 그보다 중요한 건 잘 잊고.’

  생각이 들자마자 역시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았다. 노아는 생각을 되짚어보고자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침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갔다. 싱크대 앞에서 허리를 살짝 뒤에 기대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식탁을 돌아서 주방을 나와 탁자 위에 조각 장식품이 올려져있는 벽 앞에 잠깐 섰다. 장식을 손으로 살짝 만져보고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섰다. 소파를 향해 곧장 걸어가다가 탁 트인 뭔가를 보면 기억이 날 것도 같아 더 나아가 창가로 다가갔다. 햇빛은 미세한 입자가 되어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하늘이 노아와 일직선상에 있었다. 구름도 한 점 없어 노아는 바깥을 보고 있는 건지 푸른색 색지로 도배된 벽 앞에 서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노아는 눈길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저 아래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으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불안감에 노아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노아가 너무 심하게 떨었던 모양이다. 손바닥으로 짚고 있던 창이 후드득 떨리는가 싶더니 발밑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위기가 오려는지, 노아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노아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건물은 지렁이가 온몸을 꿀렁이듯이 휘청거리며 몸 안에 들어있는 알갱이들을 바깥으로 털어냈다. 층층이 건물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아비규환이 되어 사방에서 비명과 괴성이 난무했다. 기우뚱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찰나, 노아의 몸이 깨진 유리 밖으로 튕겨져 나가 상공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노아가 온 힘을 다해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질렀다. 공포에 질린 소리를 왁 질러대다가 노아는 눈을 크게 떴다. 먼지를 털어내듯이 휘청대는 건물 밖으로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천천히 재생되듯 아득하게 보였다. 노아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노아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노아가 눈을 감아버렸을 때, 달콤한 냄새가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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