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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플랫폼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려 노아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꼭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기분으로 노아는 기다란 대리석 벤치 위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주변에 혹시나 사람이 있을까 의식하며 두리번거렸지만 노아 말고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노아는 사람을 찾는 것은 포기하고 마음을 푹 놓았다. 한숨을 길게 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눈을 옮겼다. 밝은 회색의 뾰족한 자갈과 틈바구니에 듬성듬성 자란 풀들, 하얀 모래알이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해 아래서 볕을 쬐고 있었다. 따분하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선로 너머에 작은 역 건물이 있었다. 허름한 듯 하면서 흰색 페인트로 전면을 깔끔하게 칠해놓은 걸 보아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안 된 오래된 건물인 듯했다. 멀리 앉아 있어서인지 역 건물 안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노아는 건물을 수상하게만 쳐다보고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노아는 여기에 왔을 때부터 반가움에 안도를 하고 있었다. 바닥에 부딪히기 일보 직전에 노아를 각성시켰던 달콤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저 어딘가에서부터 흘러오고 있었다. 바람은 일부러 노아를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날리게 하고 헝클어지게 했다.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으려고 손을 들다가 노아는 오른손에 딱딱한 뭔가를 쥐고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한때는 호텔 스위트룸의 카드키였을 그것은 네모나고 하얀 직사각형의 기차표로 변해 노아의 손에 쥐어져있었다. 그녀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선로 앞에 섰다. 달콤한 냄새는 아마도 동쪽에서부터 오는 모양이었다. 노란선 앞에 서서 노아는 가지고 있는 기차표를 두 손으로 가만히 쥐고 살펴보다가 기차가 들어온다는 신호의 종소리를 듣고 서쪽을 바라보았다. 흑요석과 같이 번쩍이는 검은 기차가 멀리서 선로를 따라 구불구불 기어오고 있었다. 기차가 들어온다는 종소리가 울리고, 언제부터 있었는지 플랫폼에는 기차에 올라타려는 승객들이 주춤주춤 노란선 앞으로 다가왔다. 승객들은 모두 노아와 같이 혈혈단신에 일행이 따로 있어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 기차를 타는 것 말고는 모두 무관심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기차가 역에 정차하고 각 열차마다 동시에 문이 덜커덩 열리며 승객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노아도 그들의 뒤를 좇아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다 올라서기도 전에 왠지 뒤에 남겨진 기차역의 모습이 궁금해 노아는 문 옆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뒤돌아섰다. 역에는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허름한 듯 새하얀 작은 역 건물만 동그라니 남아서 승객들을 실어가는 기차를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아는 건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육중한 몸을 한 번 크게 털어내듯 떨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린 박자로 구르던 열차가 점차 보통의 빠르기, 조금 더 빠르기, 점점 더 빠르기의 박자로 속도를 높였다. 그럴수록 노아는 더욱 세차게 팔을 흔들었다. 건물이 멀어져 작아지며 하얀 점이 될 때까지 까치발을 하고 크게 흔들었다.

   “잘 있어, 다들! 잘 있어!”

  희망 조의 높은 목소리로 노아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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