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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환승역

  노아는 이름표를 확인하지 않은 객실을 몇 차례 건너왔다. 곧 눈앞에 기관실 문이 나타났다. 문을 두드려야 할지, 조용히 열어서 기관사를 불러야 할지 짧게 고민하다가 조심히 문을 여는 단추를 눌렀다. 자동문이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덜커덩’ 열렸다. 각종 계기판과 단추, 레버와 경고등 따위가 눈을 어지럽혔다. 그 앞에 제복을 입은 사람이 서서 앞 유리를 통해 비치는 노아를 보았다. 마침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기관사가 돌아보며 노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노아는 쭈뼛거리며 기관실로 들어섰다.

   ‘저 내리고 싶어요.’

  노아는 속으로만 그렇게 되뇌었다. 그의 굳은 얼굴을 보자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푹 눌러쓴 모자 밑에 그늘이 져서 그의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분위기는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노아를 내쫓아버릴지도 모른다. 노아는 신중하게 말을 꺼내야 했다. 그녀는 손에 쥔 표를 기관사에게 내밀었다.

   “표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노아는 아무 계획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 기관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굳게 다문 입을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노아가 내민 표를 내려다보았다.

   “어디가 잘못되었죠?”

  기관사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 표는, 제가 봤을 때, 표가…”

  기관사는 참을성이 좋은 사람인지, 노아가 횡설수설 말을 이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노아는 적당한 말이 떠올랐다.

   “이 표는 제 것이 아니에요.”

  여전히 기관사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깊이 생각에 잠긴 것처럼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노아는 혹시 대답을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안절부절 했다. 임기응변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좋은 아이디어가 새삼 떠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계기판에 핑계를 대며 노아는 기관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차는 여전히 오래도록 터널을 헤치고 있었다.

   “의미가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더 분명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해주셔야겠습니다. 이 표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죠?”

  기관사의 질문이 너무 많아 노아는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제 말은, 제 물건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고요. 아시겠지만 이 기차는 한 번도 안 쉬고 계속 달렸잖아요.”

  기관사는 노아의 말에 몰아붙이듯이 답했다.

   “그야 당연한 것입니다, 손님. 우리 ‘자기연민 호’는 종점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직행열차니까요.”

  기관사는 그렇게 말하고 더 볼일 없다는 태도로 뒤돌아섰다. 노아가 앞 유리로 바깥을 보자 어느새 어둡던 터널이 밝아오며 지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노아의 모교가 뿌연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갔다. 이제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노아는 기관사에게 감히 더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의 말에 멋쩍어지기도 했고 지금까지 말한 것도 꽤나 용을 써본 것이었다. 노아는 뒤돌아서서 기관실 문을 여는 단추를 눌렀다. 기관사가 떠나려는 노아의 등 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다음 역은 없습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환승역에서 내려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 역에서 내리시기 전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기관사가 노아의 말을 잘라먹고 더욱 딱딱하게 말했다.

   “돌아다니시면 위험하니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기관실의 문이 닫혔고 자동문을 열었던 단추는 사라졌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몸의 중심을 잡으며 ‘몽상가 칸’으로 돌아왔다. ‘몽상가 칸’에 승객들은 대부분 수면 중이었다. 노아는 노인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노인은 눈만 감은 채 자고 있지는 않았다. 노아가 돌아온 것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요?”

  노아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역에서 내릴 거예요.”

  노인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 여정의 끝을 보지 않겠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이제 와서 돌아간다면 돌아갈 수 있겠어요?”

  노아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것 말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인생의 행로를 되짚는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에요.”

  노인이 말을 이었기에 노아는 대꾸했다.

   “맞아요. 하지만 전 더 이어가야할 길이 멀어요. 되짚어보기엔 제 인생은 너무 짧아요.”

  노인이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역’에서 내리겠단 소리네요. 모두들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거요. 곧 도착하겠는데, 내릴 준비해요.”

  노아가 가뿐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봬요.”

  노인이 처음으로 호탕하게 몸을 젖히며 웃었다.

   “나더러 두 번 죽으란 소리요? 아무튼 만나서 즐거웠어요. 부디 오늘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만을 바라겠어요. 내가 할 소린 아니지요?”

  노아는 노인에게 기관사의 말을 인용하여 말했다.

   “의미가 너무 많은 말씀이시네요. 사실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노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건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네요. 그럼 내가 충고 하나 해줄게요.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해요.”

  노아가 되물었다.

   “하지만 아까는 전부 다 잊으라고 하셨잖아요?”

  노인은 긴 말이 필요한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아직 역’의 플랫폼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더니 노아의 등을 황급히 떠밀며 소리쳤다.

   “말대꾸는 그만하고 어서 가요!”

  기차에서 내리려는 노아를 보고 승객들이 아까처럼 동시에 외쳤다.

   “힘내요!”

  노인이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장식했다.

   “포기하지 마요!”

  노아는 재빨리 기차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창문이 전부 새까맣게 선팅이 되어 있어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노아는 그저 노인이 그쯤 앉았으려니 여기고 대충 손을 흔들었다. ‘아직 역’에서 내린 승객은 노아 한 사람뿐이었다. 종착역이 어디인지, 다들 왜 그리 바쁜지, 누구에게는 아주 길고 누구에게는 아주 짧은, 하지만 도착하고 나면 모두에게 과거가 되어버릴 짧은 여행을 저들은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중도하차한 것은 노아뿐이었다. 노아는 왠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의지박약이라는 딱지를 제 스스로 붙인 것 같아 기운이 쭉 빠졌다. 그녀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잘못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고 있었다. 그러다 노인이 해준 말을 상기했다.

   ‘모두들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거요.’

  노아는 단번에 힘을 얻고 주먹에 힘을 딱 주었다. 눈을 부릅뜨고 먼저 주변을 살폈다. 과연 벽면에 기차의 운행노선이 그려져 있었다. 선로의 양쪽 끝은 다 안개와 흐린 그림자에 잠겨있어 어디쯤에 와있는 건지 헤아릴 수 없었다. 노아의 기억으로는 기차가 ‘메론 중학교’까지 그녀를 되돌려놨었다. 기억을 최대한 되살리려 노력하며 노아는 운행노선을 손으로 짚어보았다. 그림을 살피던 노아가 눈을 희미하게 떴다.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디서 많이 봤어. 낯이 익어.’

  노아는 손을 들어 노선이 그려진 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골똘히 생각해보니 노아는 이 그림을 자주 봤었다. 가장 처음 봤던 때는 성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다리 난간에 그려져 있던 해독하기 어려운 그림과 아주 비슷하다. 다음으로 본 것은 데몬이 노아를 떠나버렸던 경기장에서였다.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마다 그림간판이 위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지금 보아하니 노아가 멈춘 곳은 종착역으로 가기 바로 전 지점이었다. 노인의 말이 이곳을 ‘아직 역’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깨달았다. 노아를 이끌었던 달콤한 냄새가 어디에서도 나고 있지 않았다. ‘아직 역’은 금방 타고 온 기차가 지나간 방향의 선로 하나뿐이었다. 노아가 지나온 여정에 지나지 않는 노선을 보고 있어도 되돌아갈 방법은 묘연했다. 아득하기만 한 안개 속 좁은 역 안에서 노아는 오래도록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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