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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족

  아파트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울림이 문 앞에서 멈추고 곧 문을 난타하는 소리가 집안으로 침투했다. 여원은 소매로 눈가를 깨끗이 닦아내고 주방에 가서 쌀 씻는 바가지를 챙겼다. 그러는 동안 대문을 두드리는 박자가 빨라졌다.

   “꼬맹이 왔어?”

  여원이 문을 빼꼼 열어주자 지원은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 문도 닫지 않고 급하게 바지를 내려 참았던 물줄기를 쏟아내는 소리에 듣는 사람마저 안도감이 들었다.

   “화장실 급했구나. 미안해.”

   “아슬아슬했어!”

  턱에 가끔 수염까지 나는 녀석이 여태도 소변 타이밍을 못 맞춘다니, 여원은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웃었다. 지원이 화장실 문을 닫으며 잠금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맞춰 여원도 진즉 하고 있던 냥 밥을 지었다.

  여원의 가장 평범한 시간이었다. 지원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그 애가 좋아할 만한 반찬거리를 이거저거 시도해보았다. 늘 먹는 찬 위주로 부식재료가 남아있어서 입에 익은 음식을 먹는 게 보통이지만 어떤 날은 같은 재료로 색다른 요리를 올리기도 했다. 지원은 무엇이든 잘 먹었다. “누나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이 말이 빠지면 어쩐지 허전해서 반찬이 하나 줄어들었나 싶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원이 방으로 들어갔다. 여원은 잠자코 거실에 펴놓은 밥상 앞에 앉아 창밖에 눈을 두었다. 평범한 시간을 통해 보는 주변 풍경은 편안하게 눈으로 흡수되었다. 사물, 사물이 온전하게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변화의 씨앗은 어디에 뿌려져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걸까? 갑자기 한꺼번에 덤벼들어 사방을 엉망진창 헤집어놓은 뒤에는 또 흔적없이 사라져버린다. 변화란 비밀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예기치 않은 순간 튀어나오고, 막상 바라고 기다릴 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일상이란 게 주어지면 권태로움이 슬슬 기어오곤 하지만, 매번 변화의 과도기를 거쳐야만 얻어지는 시간이었고, 그리는 대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상도, 변화도 그날 입고 싶은 옷 고르듯 골라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여원은 지금이 소중했다. 지원과 함께 매일 저녁밥을 같이 먹는 요즘이 비할 데 없이 감사했다.

  옷을 다 입고 나올 시간이 됐는데도 지원이 들어간 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지원아, 밥 먹어야지.”

   “어. 나갈게.”

  그제야 옷을 입는지 부스럭거리며 천천히 나왔다. 그러곤 밥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늦게 열어줘서 아직도 삐쳤어, 농담을 걸어도 지원은 고개만 흔들었다. 이름 모를 존재가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침묵으로 밥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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