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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선생님, 저예요. 여원이요. 저 기억하세요?”

  오래 지나지 않아 퇴근길에 여원은 고3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의 높은 목소리와 호들갑이 여원의 걱정을 유쾌하게 발로 걷어차 주었다. 여원이 얼마나 용기가 가상한지 칭찬하던 선생님은 헛기침을 잦게 하더니 곧 울음을 터뜨렸다. 여원을 위로하는 슬픔이 아니라 제자를 잃은 선생님 본인의 슬픔이었다. 눈물에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처럼 둘은 격한 감정을 마구 나누었다. 임대아파트로 꺾이는 골목길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여원은 펑펑 울었다. 여원의 슬픔은 그녀 자신보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감에 최대한 참고 깊숙한 곳에 욱여넣었던 눈물을 세차게 쏟아냈다.

  정작 용건은 전화를 끊기 직전에 짤막하게 전했다. 선생은 가타부타하지 않고 무조건 학교로 오라 했다. 그렇게 따뜻한 호들갑, 그렇게 마음에 안심을 주는 초대는 처음이었다. 여원은 보일 리 없는 전화 상대에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거렸다.

  전화를 막 끊은 직후에는 일시적인 허무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 걸음 옮기자마자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마구잡이로 밀려왔다. 정말 잘 해낼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제일 컸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헛된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나 다 가는 대학이라고 합리화하기엔 처지가 영 걸맞지 않았다. 지원이나 선생님이 사정도 모르면서 막연한 희망을 던져주며 부추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썩히기 아까운 재능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주고 싶은 게 그들의 진심과 가까워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다 녹아 없어진 줄 알았던 미래를 향한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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