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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끝날

Take me home, country road

  똑바로 살아왔다고 자신하다가도 그런 생각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해요. 단순한 실수를 했을 때,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도 더러 자책하며 작아지기도 하죠. 그런데 그보다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건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에요. 오늘은 그동안 나의 두 번째 보금자리가 되어준 작은 학원을 떠나는 날이거든요.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결국 그 끝은 내 예상보다 더 빨리 오거나, 아니면 내가 아무리 예상해도 언제나 끝이 온 순간은 '벌써' 끝이라는 걸 깨닫게 합니다. 어쨌든 결국 끝은 옵니다. 오고 맙니다. 정확한 날에, 오리라 약속한 그 날에 와요. 빨리 와 달라고 울고불고 떼써도 오지 않더니, 아직 오지 말라 사정하고 애원하면 성큼성큼 황소걸음을 하고 제때 맞춰 오죠.

  마지막 20대를 보내던 해도 마찬가지였어요. 마지막 10대를 보냈을 때도 그랬고요.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빨리 크고 싶다, 내일이 빨리 오면 좋겠다 같은 바람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에요. 왜인지 모르게 지금이 좋고, 마냥 지금이고 싶고, 어제가 그리웠어요. 미래는 내 것이 아니지만, 과거는 내가 다 경험해서 알 거든요. 그날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뻤는지 행복했는지를요. 그날 함께 웃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우리를 웃게 했던 평범한 일상들이 사무치는 잔상으로 남아있어요. 언제나 보잘것없던 나와 그럼에도 나를 자랑스럽게 해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어요.

  돌아보면 일상은 제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소중한 한폭의 풍경이에요. 저기엔 은색의 미니 냉장고가 우두커니 서 있고, 저쪽엔 비스듬히 꽂힌 색색의 책, 언제든 손 닿는 곳에 대각선으로 놓인 탁상달력……. 그곳에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운 아이들이죠. 변함없는 사물이 상징하는 건 그곳에 나의 하루가 있었다는 거예요. 나의 하루, 그리고 우리의 하루, 사물과 사람과 매일의 날씨가 만든 매일의 일과와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이에요. 나의 고유의 이야기가 무심한 무생물의 사물에 깃들어 있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것들은 유물이 됩니다. 사람은 죽고 없지만, 썩지 않은 무생물의 사물을 보며 후대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을 상기하고 사물에 묻은 손때를 보며 죽은 이의 영혼을 봅니다. 사물에는 온통 나의 생활습관과 영혼이 투영되는 거죠. 그래서 어릴 적부터 손때 탄 물건을 버리기가 싫었나 봐요. 영원히 그때의 나와는 이별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때의 나와 이별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을 만들어준 어릴 적의 아직 젊었던 엄마도 잃고, 함께 소꿉장난하던 어린시절의 내 남매들을 잃고, 동네 친구도 다 거기 두고 가게 되는 것 같았어요. 향수병을 앓으며 아려오는 슬픔을 견디기가 얼마나 힘든 건데요.

  12평의 작은 교습소, 몇 발자국이면 한 바퀴를 빙 돌아 구경하기도 쉬워요.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매가 홀몸인 자매로서는 마지막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네요. 시간은 돈만큼이나 써버리기가 쉬운 놈이죠. 본격적인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12월부터는 낯선 곳에서 터를 잡게 되었어요. 이제 정드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인생이 뭐냐고요? 인생은 정드는 거예요. 낯선 세상에 태어나 적응을 하고 언제인지 모르게 어머니, 고향이라는 단어가 모호하게 사람 마음을 간질여요.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마음에는 오롯하게 붙잡히는 무언가가 떠오르죠. 그건 정확히 어머니, 또는 고향 그 자체를 가리키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같은 맥락이자 떠나고 나면 거기에서 터져나오는 향수병이 있어요. 장소에 물들고, 사람에 물들고, 시간 지나면 그 사람, 그곳이 애틋하게 여겨져요. 처음의 의미에서 변질된 거예요. 이곳은 달리 직장 이상이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달리 이 사람일 뿐인데, 정들고부터는 예전과 같지 않아요. 바로 그게 인생이에요.

  얼마 전 외할머니의 언니인 큰할머니께서 급성 신부전증으로 여든 넷에 돌아가셨어요. 올해 외할머니는 팔순을 맞으셔서 읍내 큰 식당에서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을 불러 모아서 잔치를 했어요. 그 전날 밤에는 외할머니와 큰할머니, 셋째 작은할머니 이렇게 세 자매와 우리 외할아버지가 술상을 가운데 놓고 달이 진 새벽까지 노래하며 이야기 나누며 밤새도록 노셨다나 봐요. 그리고 그것이 세 자매가 오래도록 노신 마지막이라셨어요. 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해미의 같은 동네에서 평생 이웃하고 지낸 작은할머니가 식사도 물리시고 그리움에 병이 나셨어요. 외할머니는 아직 일흔 셋밖에 안 된 작은할머니가 걱정스러워서 자주 안부전화를 돌렸는데, 작은할머니는 전화하지 말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했어요. "언니, 나한테 자꾸 정주지 말어. 정주지 말어."

  인생은 정들고, 정든 것을 잃어버리는 날들의 연속이에요. 상실의 슬픔은 누구도 달랠 수 없고, 새로이 정들어야만 잊어지죠.

  10대의 끝에는 다시는 만질 수 없고 밟을 수 없는 교실을 둘러보았었어요. 내가 앉았던 책상, 그 자리에서 바라보던 창밖 풍경, 교실을 채우던 친구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평범한 일상이 그려졌고, 두려웠어요.

  20대의 끝에는 방황의 역습이 나를 거칠게 다루었어요. 멀쩡해보이나 속은 그렇지 않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맹랑하게 내 길을 내가 만들던 모든 어리석음이 후회되었어요. 속은 뒤틀리고 썩은 나무둥치였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별일 아닌 척, 척박한 앞날에 희망의 씨앗을 보태고 싶었어요. 이제 방황은 그만하리. 올곧게 한길을 걸으리. 이제와서는 무색한 다짐이고, 각오가 되었네요.

  자, 미련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아니, 사실 지나친 게 맞아요. 선교원 창살 밖을 내다 보며 지척에 있는 집이 그리워서 감상에 젖는 7살짜리를 본 적 있나요? 그게 바로 나예요. 나는 오늘이 그리울 거예요. 바깥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언니의 강의소리, 수다에 빠져 진도를 못 나가는 아이들의 장난, 고요히 모든 것이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오늘의 오늘 풍경이 모두 그리울 거예요. 나를 상실감에 괴롭게 하는 숱한 과거의 기록 중 하나가 되겠죠. 그게 인생이라면, 그렇게 살아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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