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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과 지구인

너는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내성적이어서 먼저 말 걸 줄 모르는 내가 먼저 말 걸고 싶었던 몇 사람 중 하나.

그 몇 사람 중에서 가장 알고 싶었던 사람이 너였다.

결국은 난 말 걸지 못했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안면이 좀 트기는 했는데 네가 내 얼굴을 알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조금 더 인상을 잘 살핀다고 생각한다. 네 얼굴을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네 옷차림이나 태도도 내가 느낀 인상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거반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럽게 걷는 모양새가 너의 면면을 보여준다.

나는 수업 중에 귀기울이고 있다가 너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이름이란 것은 아주 중요한 개인정보이다. 알고 있으면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말을 걸어볼 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난 사람 사귀는 것에 소극적이다. 약간의 피로한 불필요한 어색함과 돌발상황이 예측되어서 쉽게 나서질 못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귄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도 나의 소극적인 태도때문인지 본인의 사정때문인지 연락이 불가능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블로그를 닫지 않는 이유 중에는 그 친구를 의식한 부분도 크다.

사실 너에게 말 걸지 못한 연유로는 동성이 아닌 것이 컸다. 동성이라면 좀 더 복잡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관심이 간 것에는 네가 이성이었다는 것이 컸다. 크나큰 모순. 가벼운 모순.

나는 너의 글을 보았다. 감상과 감성이 난무하여 유치하지만 복잡하고 사색적이며 민감한 감정 사이를 오간다. 물론 누구나와 다름없이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비상하다. 그것이 나와의 공통점이었고 그것이 나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너와 같거나 비슷하거나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내내 안타까웠지만 별 수 있을까.

그냥 생각이 난 것뿐이다. 괴상한 꿈을 꾸기도 했고.

알고 보면 우리의 공통점은 이것뿐일 것이다.

'지구인과 지구인'



대학교 3학년, 한문학강독 수업을 듣던 강의실에서 처음 본 남학생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를 사귀게 될 거란 로망이 있던 대학시절, 의외로 문학에는 별로 관심조차 없는 동기들뿐이라 실망스럽던 차에 마주친 한 학생이었다.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그런 만남은 없을까?

30대인 지금도 그런 만남을 기대하는 내가 바보 같은 걸까?

바보 같더라도 감수성을 잃기는 싫다.

판타지가 없는 감수성은 꿀 없는 꽃이야.

무엇이든 맛이 있어야지. 맛없는 걸 왜 먹겠어.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아직도 내게는 문학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거야.

아이고! 재미없어. 맛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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