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기도

2012년 9월 14일 네이버 블로그

엄마가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던 때가 있었지.

나는 늘 즐거운 척하던 때가 있었어.

그리고 우리는 정말 가족사진이 찍기 싫었어.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쉬는 것조차, 한 컷에 함께 담기는 것조차 싫을 때가 있었어.

지금 그 우리 중에 하나는 따로 떨어져 아주 먼 데서 혼자 지내고 있지.

매일 듣던 목소리와 매일 보던 얼굴인데, 이제는 누가 허락하지 않으면 목소리 듣는 것이나 얼굴 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잠시 우리와 떨어진 적이 있었지.

자주 보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거처하는 곳이 잠시 달랐어.

나도 그 곳에서 따로 지내기도 했었고.

우리는 떨어졌다, 붙었다 반복을 하며 얼음처럼 녹았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했지.

그런데 문득 오늘 ‘나는 왜 이렇게 기억을 못하는 게 많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진 않았지만 항상 충실히 기억하고 의미부여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생각나지 않는 일 투성이인 거야.

언니와 함께 청주에서 언니의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지.

그곳에서 살 집도 구하고 있었나?

한 세 번 정도 청주를 들락거렸었어.

그 날 날씨가 꽤 더웠어.

한창 여름방학 기간이었거든.

그 날 언니와 어렵사리 학원 위치를 찾아내서 순조롭게 면접을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지나는데 그 위 전봇대 사이로 자그마한 무지개가 떠있었어.

작지만 예쁘고 선명한 무지개를 본 거야.

그 무지개는 아주 잠깐 보였어.

갈수록 색이 흐릿해지더니 몇 분 만에 도로 말끔한 청색 하늘이 되어버렸지.

언니랑 나는 덥고 땀도 나고 너무 한참 만에 학원 위치를 찾아서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거든.

그런 상황에 무지개를 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뭐든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꼭 무지개 때문은 아니야.

언니가 날 불렀어.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질질 끌 듯이 걸으면서 대충 대꾸했지.

언니는 하늘을 보라고 소리쳤어.

무지개가 떴다고.

아, 정말 무지개가 떠있더라고.

언니가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기에 나도 옆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어.

흐릿하지만 카메라 안에 무지개가 담겼어.

언니랑 나는 좀 더 힘내보자고 하면서 터미널로 돌아갔지.

그렇게 우리는 좋은 집과 언니의 괜찮은 직장을 구했어.

하지만 1년 6개월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냐.

아,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그 작은 무지개를 떠올렸으면 좀 덜 싸웠을 텐데.

떠올려보면, 좋았던 날도 흐릿했던 날도 다 옛일일 뿐이야.

그때의 기억이 비디오처럼 재생되다가도 금방 흐릿해지지.

이상한 일이야.

추억은 날 울게 만드니까.

그냥 별 일도 아니야.

언니랑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함께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던 기억, 간식으로 과자나 닭꼬치, 이런저런 야식, 음료수를 나눠 먹던 기억, 언니와 함께 청소를 하던 기억,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버리고 빨래를 널던 기억, 함께 등교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언니를 마중 가서 함께 돌아오던 기억, 언니가 퇴근을 하고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주던 기억, 함께 밥 먹던 일, 그리고도 많은데 다 쓸 필욘 없겠지.

이렇다 말 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지, 뭘.

그런데 이런 일들이 왜 날 울게 만드느냐고?

글쎄, 왜 일까?

우리는 그때 다툰 적도 많았어.

사소한 일이지만 이건 기 싸움이라기보다 손해 보기 싫어서 생기는 싸움?

서로에게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지.

대부분의 싸움이 거의 다 말로 하는 인신공격이었어.

못된 말을 서로에게 떠밀 듯이, 가슴팍에 찌르고, 박고, 상처를 내고.

조그만 우리 안에서 죽일 듯이 싸우는 햄스터들처럼.

아웅다웅.

날이 맑고 청명한 날에도, 비가 오고 습한 날에도, 눈이 오는 조용한 아침에도, 손이 얼어버릴 것 같이 추운 겨울의 어느 밤에도 우린 함께 있었고 함께 먹었고 함께 싸웠고 함께 이겨나갔지.

나는 한때 내 고향 서울을 나의 역사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

이것도 마찬가지야.

청주 원룸 촌 한구석에 자리했던 언니와 나의 보금자리 역시 나의 역사이지.

언니의 역사이고, 우리의 역사란 말이지.

거기서 지냈던 날들이 그리워.

추억 그 자체로 그리움이지.

묽은 풀을 허공에 문대고 나의 추억을 도배질하고 싶어.

낡은 냄새가 폴폴 풍겨오는 것 같아.

애달픈 향기가 전해져오는 것도 같아.

또 거기 낯익은 자취와 손때 묻은 익숙함이 영원처럼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어.

엄마는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던 때가 있었고, 나는 늘 즐거운 척하던 때가 있었으며, 우리는 모두 가족사진 같은 것은 찍기도, 찍히기도 싫었던 때가 있었지.

그랬던 우리가 조금씩 흩어질 것만 같은 윤곽을 보이고 있어.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되지 못했는데, 이제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자꾸만 불어와서 휘어지고 부러지게 되지.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기만하고 있던 만큼 자꾸만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불어오고 날아가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x축과 y축처럼 미지의 미래로 수직을 그리기만 하는 걸까?

결국 우리는 오늘로도, 어제로도 돌아갈 수 없는 때가 올 것인데, 아직도 뭘 더 바라고 기다리는 걸까?

우리가 바라는 건 환상이나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알고 있어.

아무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 아무도 나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도 다르지 않아.

우리가 변하려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변하게 할 수 없어.

그저 시간만 허송세월로 낭비할 뿐이지.

먼 곳 그곳에 홀로 있는 너와 우리는 2년이란 시간을 떨어져 보내게 되었어.

2년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2년은 어떤 의미가 될까?

혹여 긴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에게 잊혀질, 지워질 조각난 하나의 파편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별로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 흔한, 흔해서 있었던 줄도 모른 채 바닷물에 씻기는 모래 위 글자처럼 사라지게 될까?

우리의 작은, 너무나 초라한 일상들이 이다음에 빛발하며 다시 기억나는 순간,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것이 두려운 게 아니야.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을 쉽게 변화시키려 하는 것은 잘못이야.

우리는 어제처럼 오늘을, 또 오늘처럼 내일을 이 작은 몸뚱이로 살아가는 거지.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해서 오늘마저 버릴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지나가버린 그 시절보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할 수 있는 바로 지금 그대들을 사랑하려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질릴 정도로 깊이, 더 많이.

초라한 그대들의 익숙한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며 깊은 잠을 청한다.

그대들과 함께일 수 있었던 오늘을 내일 또 주시기를 바라며.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동고동락의 한 길을 함께 걸어온 우리들에게 바치는 글.




미색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봄날 어느 아침
#17
짧게 써 본 우울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