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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써 본 우울한 일상

막연한 기다림으로 허비하던 시간에 대해서

  가을은 물러가고 올해는 12월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남았다. 얼마 전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어째 겨울에 여름비처럼 비가 다 올까?”하고 알다가도 모를 자연 현상이 우려스러운 말투로 대화 도중에 오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도 특별하지 않게, 새삼스러움이 신선할 뿐인 모양으로 날마다, 달마다 다가왔다. 맛있어야만 할 점심과 저녁 메뉴, 틈바구니는 한가한 구속감과 무기력증으로 채우며 찌뿌듯한 주말도 형편없는 시간들로 꿰어졌다. 흐린 회색의 허공도 연한 노을을 흘리며 밤이 오기 전은 조금 생기 있어 보이려 했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는 걸 노엽게 생각해도 될지, 말지를, 미스터리를 풀 듯 생각하는 건 가여운 걸까, 그저 쓰잘데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까? 사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도 사람이 문제였다. 모든 문제마다 사람이 상 위를 거닐며 어지르고 걷어차고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겨울이었고, 그러니까 아주 추워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다가 어지럽고 무기력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사람마다 골칫덩어리였고, 마다마다 간여하고 싶지 않은, 희뿌연 날씨와 엉터리인 기분이 섞여들었다. 녹은 셰이크가 컵 속에서 찐득하게 엉기고 섞이듯이 일들은 꼬이고 나빠졌다. 악화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결과를 예상하기는 아직 어려웠다. 그냥 나빠졌다고 말하는 게 현재로선 충분했다.

  만약 밤에 꿈조차 꾸지 못했다면 하루하루의 일상은 악몽이 될 뻔했다. 다행히도 현실을 도피할 은둔의 도피처가 딱 한군데 남아있었다. 날아들다 착지하듯 비몽사몽인 순간에 얼른 꿈의 방향을 잡아 하늘 높이 상상의 비행기를 날렸다. 이륙에만 성공하면 그날 밤의 꿈은 원하던 상공을 마음껏 날며 행복을 좇을 수 있었다. 원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 하고 싶은 게 실현된다는 것, 꿈에도 못 꿀 일이라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게 차라리 나았겠지만 그만큼은 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모두들 돌아갔다. 기억을 향해, 기억을 지키려고.

  “이젠 그만하고 싶어.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 찾는 거. 그런 거라도 그만하고 싶어.”

  수확기가 지난 텅 빈 논두렁에는 마른 지푸라기와 흙이 식은 파이처럼 굳어있고 석양은 논길에 세운 벽걸이 액자처럼 하늘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넜다. 다리 건너편에는 겨울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벌써 냄새부터 달랐다. 이 모든 허물어질, 잊히고 말, 순간적일 순간들. 다른 냄새와 새로운 풍경은 새삼스러울 뿐이었다. 순간은 지나갔다. 몸은 여기 있지만 희미해지고 있었다. 보내온 날들이 그랬고 지나쳐간 사람들과 들이마셨던 공기는 현재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어제는 오늘이었고, 어제는 내일이었다. 어제는 내년이었고, 어제는 꿈에도 몰랐던 ‘그 날’이었다. 투명인간이 되는 법은 사실 쉬웠다. 구태여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렇게 유별나게 굴고 싶지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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