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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유산

  8월 초로 잡은 이번 여름 휴가는 오래간만에 오신 할머니와 보냈다. 10년 가까이 발길을 끊으셨던 할머니가 피서를 오셨다. 두고두고 회자될 대단한 여름날씨 덕분이었다. 작년에 장만한 에어컨이 사람 대신 효자노릇을 해준 것이다.

  3박 4일 간 우리 가족은 최대한 할머니를 위해 드리려 노력했다. 이불을 덮고 주무셔야 할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그동안 생각만 나고 드시지 못해 병이 났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입맛에 맞는 요리도 해드리고 처음 드셔볼 법한 간식도 사다 드렸다. 대신에 할머니는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다. 앉아서, 아니면 누워서 재미있어하는 좌중을 둘러보며 적당한 순간에 이야기를 시작하시고 정확한 순간에 끝맺으셨다. 끝까지 들어봐야 맥락이 잡히는 할머니의 수사법이 한시도 딴 생각을 못하게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도 않고 처음 듣는 어휘도 딱 한 번만 말씀하셔서 -되물어야 다시 알려주시는데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서 다시 들어도 안 들린다- 자연히 주의를 집중해야 했다.

  함께 식탁에 앉아있을 동안 처음으로 할머니의 고향을 여쭈었다. 이북에서 오셨으니까 으레 '평안도'나 '함경도' 같은 지명이 나올 줄 예상했는데 의외로 남한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라고 하셨다. 남북전쟁이 나기 전에 이미 남한에 내려오셨고 혼인도 이땅에 와서 올리셨다고 했다. 띄엄띄엄 들어온 내력인지라 하시는 말씀마다 예상 외의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는 고향 이야기를 해주다가 어머니를 떠올리셨다. 흔한 일인 듯 무덤덤한 어투로 열두 아이를 배고 여덟 아이가 태어나거나 자라는 중에 죽었다고 하셨다. 그중에 할머니는 살아남은 세 아들 밑에 막내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셨다. 손에 물 한 방울, 먼지 한 톨 안 묻히고 옥같이 예쁘게 키워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제일은 엄마뿐이고 세상에 엄마는 단 하나뿐이니까 너희들도 엄마에게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시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고작 십대일 때 어머니와 영영 헤어져 생이별을 하게 된 할머니가 가엾어서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어머니라고도 안 하고 엄마라고 불렀다. 읍에서 식당을 하셨던 할머니의 엄마는 여름에는 증편떡을 쑤고 겨울에는 만두를 쪄서 파셨다. 기억에는 항상 고생만 하던 엄마 모습만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하셨다. 일본인들은 말을 귀하게 여겨서 죽으면 크게 제사를 지내었는데 학생들을 불러다가 둥그렇게 세워서 함께 기리게 한 날에는 돌아가는 길에 눈깔사탕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할머니는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집에 달려와 항상 못 먹고 고생만 하는 부모님 입에 넣어드려야 속이 편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가 사는 동네에서는 최초로 여자로서 직업을 갖고 봉급을 타게 되었다. 면에 취직이 되어 그 당시 한달에 12만 원이라는 큰 돈을 벌어다 드려 어머니께 효녀노릇을 했다. 받아온 월급으로 흰 쌀밥도 가끔 지어먹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효도를 해서 다행이라셨다. 그전까지는 강냉이, 감자가 주식이었고 쌀밥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요즘처럼 말로만 주식이 아니라 매끼마다 감자 아니면 옥수수로 때웠던 것이다. 그마저도 먹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옛 입이라고 지겹도록 매일 먹는 음식에 물리지 않는 법은 없었다. 시집 가고 나서는 한동안 감자, 옥수수는 입에도 안 대실 정도였다. 본인 입도 질리는 걸 어머니라고 달랐을까? 어머니께 쌀 사다 드린 일이 스스로도 대견했다. 겨울에는 할머니를 예뻐해주던 서기한테 숯탄을 얻어다 집에서 따뜻하게 군불을 때고 지냈다. 집에 예쁨 받을 짓만 하고 사랑만 받으면서 살았던 아름다운 고향 이야기였다.

  낮잠을 주무시려고 소파에 누운 할머니는 한참을 안 자고 눈을 끔뻑거리셨다. 나는 거실에 놓인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다. 할머니가 어디 불편하신가 궁금해서 성경을 보다 말다 했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져 작은 종이와 펜을 꺼내셨다. 종이에 뭘 끄적이더니 내게 건네주셨다. 한자말을 세로로 길게 쓴 글자를 유심히 보니 할머니가 살던 고향집 주소였다. 살아생전 그 땅을 못 밟을지도 몰라 나라도 혹여 찾아갈 수 있을까 하고 종이를 잘 간수하라고 이르셨다. 할머니의 필체가 담긴 글자를 감히 버릴 수야 있을까? 전날에 할머니가 주신 용돈 봉투에 나란히 주소가 적힌 종이를 포개어 넣고 일기장 사이에 껴두었다. 이번에는 마치 명절처럼 용돈까지 준비해오셨다. 그 연세에 손주들 챙겨줄 금일봉까지 채비를 하셨다니, 면목이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받은 선물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외할머니가 중국여행에서 안 쓰고 남겨둔 위안화를 선물해주셨는데 돈이 궁했던 때인지라 생각없이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와 필요한 곳에 써버렸다. 나중에 외할머니는 중국돈이 잘 있는지 몇 번 물으셨다. 나는 속없이 다 갖다 써버렸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일부러 안 쓰고 나눠준 걸 잘 두지 않고 곧장 써버렸느냐고 실망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런 후에 또 한 번 남은 위안을 다 주셨는데 그때도 외할머니의 속을 모르고 돈이 급할 때 얼른 환전했다. 이제와서야 외할머니 뜻을 알고서 후회가 되었다. 외할머니 생각하며 잘 간수해줄 줄 기대하신 것을 눈치도 없이 맹추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올해 팔순이 되셨다. 일흔 후반즈음부터 가끔 뵐 때마다 서랍에 넣어둔 사진을 꺼내서 돌려주셨다. 우리 어릴 적 모습이나 엄마의 소싯적 사진이었다.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신 모양이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감수성을 못 따라가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나의 일이라면 크게 의미를 두면서 남의 행동에는 의미부여를 못 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아무튼 같은 잘못을 두 번은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할머니가 주신 5만 원은 까맣게 잊어버릴 셈이다.

  자그마한 옷 보따리 하나만 가지고 오셨던 할머니를 떠나 보내며 엄마는 손수 만든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보내셨다. 나는 할머니가 맘에 들어하신 '감동란' 네 개를 보내드렸다. 할머니 입맛을 꼭 닮아서 분명히 그걸 좋아하실 줄 알았다. 성한 이가 없어서 잇몸으로 씹어 드시니 '감동란'은 딱 알맞은 간식거리였다.

  할머니가 다녀가시고 그간 해주신 옛날 이야기를 키워드로 메모해두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 둘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옛 이야기라는 게 항상 중요한 건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걸 알고서 언젠가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는 말을 듣고도 자주 찾아뵙지를 못했다. 사실 할머니 말고도 자기 얘기를 써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할머니는 요즘은 사라진 옛말을 잘 쓴다는 장점이 있어서 다른 누구의 이야기보다 흥미 있었다. 눈으로 본 적도, 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를 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아직 이 이야기의 의미와 본질을 모르겠다. 현재로선 할머니가 남기신 선물이라는 게 전부이다. 가치는 높으나 세공하지 못한 옥돌 같은 이야기들이다. 나는 아직 배울 게 많았다. 1년을 접었다 펴면 그래도 아직은 중간에 가까운 8월, 수명으로 따지면 절반에도 걸치지 못한 내 나이, 이미 지나간 인생을 다시 펼쳐보기엔 정리되지 못한 수많은 빛과 진리들. 그에 닿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견디고, 지나면 돌이켜보며 깨달을 날을 기다린다. 그때쯤에 한 번 꺼내어 볼 참이다. 이미 까먹기로 했던 할머니의 5만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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