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소규모 기독교학교에서 독서수업을 한다. 그리고 그 학교 근방에 언니가 살고 있어 수업이 끝나면 언니 집에서 점심을 먹고 조카를 놀아주었다. 지난주도 같은 일정으로 움직였다. 30대 중반의, 아무리 끌어와도 부족한 체력을 최대한 당겨 쓰며 조카의 손에 잡혀 이리저리 굴려지다 보니 어느덧 낮잠시간이었다. 그냥 눕힌다고 재울 수 있지 않다는 걸 아기 ...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많고 많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에 걸맞은 영화는 단연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에이리언> 시리즈이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좋아하는 영화 팬들은 알다시피 <에이리언>의 1~4편까지는 전부 감독이 다르다. 때문에 네 편 모두 시고니 위버라는 여배우가 작중 주인공 역을 맡았음에도 작품의 지향점이나 세계관이 동일...
배는 항구를 떠났다. 기다란 자취마저 뒷걸음질하듯 너울너울 소리 없이 떠나갔다. 뒷짐을 지고 선 영수의 머리털이 방향 없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점퍼의 어깨선이 축 내려와 있어 좁은 어깨가 더욱 가냘파 보였다. 다시 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까지 영수는 오갈 데 없는 사람처럼 한참을 그 앞에서 머나먼 수평선을 바라만 보았다. 입맛도 나지 않는데 시장기가 채신...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요즘도 이 책, 저 책 손가는 대로, 혹은 의무감으로 수집하거나 읽는 시늉을 하던 와중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절반 넘게 읽었고, 아이들과 독서 수업 중인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과 주제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학습 준비를 위해 여러 번 읽어보는 중이...
경북 문경은 추운 도시였다. 외투도 걸치지 않고 안감에 기모만 덧댄 모자 달린 웃도리와 청바지 차림으로는 산기슭을 타고 내려온 시린 공기를 이기기 힘들었다. 서울서부터 본가까지 2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무끈한 짐 가방 이고 갈 자신이 없어 경상도는 따뜻하니 이만하면 됐다고 자기암시를 걸고서 털레털레 떠나온 길이었다. 문경은 사방이 산이었고, 산 바람은 무...
자취를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언니였다. 자취라니, 생각만 해도 멋졌다.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내 집이 생긴다는 소리였다.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벌써부터 자취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언니와 나의 책상은 길게 이어져 있었고 방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나란히 옆 자리에 앉아있던 언...
윤독 멤버는 새롭게 다시 꾸려졌다. 남녀 혼성으로 시작된 모임은 남자 멤버가 모두 떨어져 나가 여자 멤버 다섯 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올해 봄부터 그렇게 됐다. 참여율이 좋던 남자 멤버 한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여러 사람의 사정과 상황이 조금 복잡하게 얽히면서 나는 모임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조금도 진척이 안 ...
여자의 꿈 여자와 남자는 오랜 연인 관계였다. 여자는 남자의 익숙한 체취를 맡으며 팔짱을 끼고 걸었다. 두 사람은 작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우유를 하나씩 사러 갔다. 여자는 남자의 팔에 매달리는 장난을 쳤고 남자도 장난을 받아주며 팔에 힘을 주어 버티기를 했다. 한동안 장난만 치다가 맘에 드는 우유를 못 고르고 남자의 손에 이끌려 두 사람은 거리로...
나는 아직 어리다면 어리다고 볼 수 있는 나이이지만 꽤나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평생 받을 충격과 자극을 다 받은 것 같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너무 무감각한 사람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 사람들이 놀랄 만한 일에도, 기뻐할 만한 일에도, 화낼 만한 일에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때가 많다. 그 때문...
엄마는 요즘 유튜브에 빠져 산다. 유튜브를 보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보다 유튜브를 통해서 무엇을 보느냐 하는 고민이 더 친숙한 시대이다. 엄마도 유튜브를 여러 번 끊어 보려고 했지만 지난주 토요일 "엄마, 요즘 바쁜가 봐. 내가 카스에 글 올리는 것도 모르고 있지? 전혀 안 봤지?" 라고 물으니 "아휴! 요즘 너무 바빴어. 유튜브 보느라 바빴지, 뭘." 이라...
대충 생각해서 지금이 한 세 번째라고 친다. 아무 감흥 없이 남자의 눈을 바라본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사무적으로 내 눈을 본다. 참 인상 얕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흐린 인상을 가졌다니, 다음날이면 잊고 말 것이다. 남자가 소개해주는 집을 휘 둘러본다. 지금껏 돌아본 여느 집과 다를 것이 없다. 그냥 조건이 괜찮다. 값이 싸고 난방비도 적게 든다. ...
볼링부 OT가 끝난 지 만 하루째,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일자 도리어 주저하기가 싫어졌다. 미적지근하게 구는 건 영 내 타입이 아니고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을 신봉하기도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늦으면 늦을수록 나쁜 법이었다. 그날 본 것들이 미심쩍게 마음속에서 자갈 구르는 소리를 내며 거슬리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다는 보장도 없으니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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