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이도 저도 내 마음이 아닌 것 같다. 답답한 속이 시원하게 풀리도록 하소연하고는 싶은데 하소연할 말이 내 말이 아닌 것 같아 섣불리 입을 떼기가 어렵다. 직장을 관둔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수입이 없이 모아둔 돈을 축내는 중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생각하기 나름일지도 모르지만 34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모아둔 돈도 적은데 그걸 또 축내고...
“1학년 3반 정유진이라고 합니다. 볼링은 처음이라 잘 못 합니다. 그래도 놀리지는 말아주세요. 저 상처 잘 받아요.” 분위기를 풀어주는 유진이의 소개 인사에 좌중은 가벼이 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다음 차례로 내게 몰린 시선에 얼굴이 경직되었다. “1학년 3반 이혜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볼링 처음이에요.” 어중간하게 마무리한 탓인지 2, 3초간...
언젠가 내게도 황금 같은 토요일이 온 적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 바깥 도로에 길게 늘어선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해가 내리쬐는 여름날의 오후였고,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거기에 도달했다. 오래지 않아 기다리던 버스가 정차해 문을 열어주었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수금 통에 집어넣고 기사 아저씨가 거슬러준 동전을...
2주간 이사에 시간을 쏟다가 습작하며 길들이던 글쓰기 흐름이 완벽히 깨어지고 말았다. 종종 자리를 만들어 습작하던 글을 불러내지만 글에 담아온 정서는 그리 간단히 불러와지지가 않는다. 그러다 잠시 내 오랜 숙명과도 같은 소재인 '집'을 가지고 또 한 번 산문 쓰기를 시도한다. 본가는 경기도 이천의 농촌마을, 사는 곳은 서울 마포의 어느 아파트 숲이다. 아파...
결핵은 유전이 된다. 여동생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결핵에 걸려 몸이 반토막이 났었다. 한창 성장기라 살이 부쩍 빠져도 병을 의심하지 않고 가벼이 여겼다가 뒤늦게 찾은 큰 병원에서 동생은 한달 정도 집중 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퇴원했다. 결핵은 가난한 질병이었다. 엄마는 여동생보다 먼저 이 병을 앓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
마이클 영의 <The Rise of The Meritocracy>는 능력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디스토피아 미래 사회를 예견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 책의 출간년도는 무려 1958년이었다.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마이클 영의 책이 읽혔고 (그 수많은 자기해석의 오류가 심하게 치대는 바람에) 미국은 ...
나는 다만 모든 것을 잊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 번잡스런 도시였다. 끝없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세속의 향기가 사념과 사색을 침해하는 첨단 우림지대였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심지어는 사고까지 내게 조용한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에서, 번영과 몰락이 존립하고 또 매일 새로운 역사를 낙서해대는 무감각한 동네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때때로 달라진다. 배가 고플 때면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먹고 싶은 것이 항상 같지는 않다. 느끼한 치즈 스파게티를 배부르게 먹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고 밤새 수다 떨며 고기를 굽고 싶은 날도 있다. 정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면 그냥 맨밥에 찬물 말아 깍두기 반찬과 들이켜도 그 맛이 어떤 기름진 음식보다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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