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 유행이 변한다는 건 사람들의 생각이 언젠가는 바뀐다는 뜻이다. 어제는 여럿이 먹는 식사가 즐거웠는데 오늘부터는 혼자만의 식사가 더 좋아진다. 유행은 확고하고 사람들의 ‘좋다’는 기준은 정확하다. 나도 옷이나 머리 모양, 화장법의 유행이 변하는 걸 알고 있고, 그때마다 정확한 기준으로 좋은지 싫은지가 결정된다. 그러나 유행에는 이유가 없다. 무조...
소년은 논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었습니다. 자전거 뒷바퀴에 채인 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땀에 젖은 옷이 소년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볕은 달군 프라이팬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내리쬐었습니다. 초록색의 기다란 잡초가 길가에 늘어선 모습은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언뜻 보면 평온한 듯 보이지만 지루하기만 한 시골 풍경이 소년의 눈에 애정 없이 비쳤습니다....
네 모습은 구름에 가린 해처럼, 하늘 밑으로 버티컬을 친 빛줄기를 닮았다. 미술실에는 네 오뚝한 콧날을 새긴듯한 조각상이 차분하고 단조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가 오던 날 하품을 하며 목 뒤를 긁던 너는 장대비 사이로 뛰어들었다. 너는 아름다웠고 내게는 무형문화재였다. 교과서를 깜빡 잊고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자기 책을 줘버리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
8월 초로 잡은 이번 여름 휴가는 오래간만에 오신 할머니와 보냈다. 10년 가까이 발길을 끊으셨던 할머니가 피서를 오셨다. 두고두고 회자될 대단한 여름날씨 덕분이었다. 작년에 장만한 에어컨이 사람 대신 효자노릇을 해준 것이다. 3박 4일 간 우리 가족은 최대한 할머니를 위해 드리려 노력했다. 이불을 덮고 주무셔야 할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그동안 생각...
스무살의 첫 여름은 설렘으로 꽃 피웠다. 1학기 종강을 앞두고 연달아 기말고사를 보느라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방학동안 다녀야 할 알바를 미리 찾아봐야 했고 조별발표 준비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시험 대신 과제제출로 대체한 과목이 있어서 부랴부랴 밤샘 레포트 작성까지, 방학을 맞이하려면 이 정도의 고생은 감수해야 했다. Mp3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영화 '변산'은 따로 별점을 매기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는 영화였다. 개연성, 논리성도 희박하고 캐릭터도 일관성이 모자르고 주제의식도 결핍되어 있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러나 주연배우 두 명이 워낙 호감가는 배우들이고 스릴과 흥미진진한 모험 대신 헐렁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러 요소에 끌려 '변...
나는 이 와중에 내 심경을 알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사실적으로 내 모습을 그리려는 자들이 혐오스럽다. 역겨운 관음증 환자들. 사디스트나 마찬가지다. 그래, 얼마든지 보아도 좋다. 내 살갗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아픔보다 더한 두려움에 떠는 가련한 육신을. 그리고 저들도 역겹기가 다르지 않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너울거리며 천천히 내 시야에 들어오...
아주 바보 같은 부류의 사람은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다. 우리는 속마음을 감출 줄도 모르고 감추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한다. 거기에다가 큰 강박증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가고 있다는 듯이 굴고 싶어한다. 이 강박증은 내가 가장 강하게 갖고 있다. 일이 꼬여가고 그래서 심사가 잔뜩 뒤틀려도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이미 잘못된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이 이미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났고 더 이상 내가 고를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어야 한다. 보통은 억울해서 잊지 못하고 집착한다. '더 똑부러지게 말해서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어야 했다. 상대가 감히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려주고 일을 마무리했어야...
거짓말에 속았던 사람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속이 상했다. 보상은커녕 감수성이 쪽쪽 빨리고 쩍쩍 갈라져간다. 원래도 감흥이 없던 내가 갈수록 더 건조한 사람이 되어간다. 거짓말에 속고, 많은 것을 잃고, 아픈 것만 얻었다. 불신, 불신, 불신.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무도 나를 위해 울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고 있다. 나는 다 잃었다....
나는 어딘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당신에게 끌리고 있습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뼛속까지도 외로운 그대, 초점 없는 눈으로 상념에 빠져있네요. 당신의 긴 다리와 목덜미, 구부리고 있어도 각진 어깨선을 보며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당신은 누구일까? 아무도 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는 것을 알아 나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대에...
실은 옷 단추를 잠그다가 공허하게 떠나온 길이었다. 단조로운 일상을 피해, 새로운 삶과 애틋했던 과거를 꿈꾸며 목적지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무작정 타고 온 버스는 중간에 소도시를 머물다 갔다. 기다림이 싫어 경유지에서 훌쩍 내려버리고는 시내를 돌던 버스를 다시 잡아탔다. 버스는 짧은 시내를 돌다가 번화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번화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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